할런 코벤의 신작이 나왔다길래 전자책으로 구입해 읽었다. 말이 신작이지 2007년작이니깐 벌써 7년전 작품. 미드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익숙한 에피소드지만, 흡입력은 상당하다. 미스터리물은 전자책으로 구입해도 잘 읽힌다. 막힘없이 술술~ 

 

이 책 구입하면서 교보문고의 샘을 이용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 좀 했다. 교보 샘이 한달간 만구천원에 5권을 볼 수가 있고, 한달에 전자책으로 미스터리물은 5권의 가독이 가능하다.

 

자연과학책은 읽는데 무리는 없지만, 아무래도 진도가 미스터리물이나 소설처럼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기 때문에, 망설여지는데 반해 소설이나 만화 분야는 확실히 한달에 다섯권을 볼 수 있다는 조건은 매력적이었다.

 

 

 

에잇, 그런데 이차저차 하다가 샘을 포기하고 구입해 읽었다. 적어도 한달에 오만원은 책을 구입해 읽자는 독자의 의무 비슷한 책임감이 생겨서. 이번 로앤오더 SUV 14시즌에 새로운 검사(이름이 뭐더라?)가 나오는데, 상당히 매력적이다. 지금까지 카봇검사나 노박검사가 워낙 잘해 주어서 그녀들을 대신할 매력적인 검사가 등장하지 않았는데, 이번 14시즌에서야 그 두명의 검사를 대체할 수 있는 검사가 나오는 셈.

 

코벤의 작품은 마이클 코넬리처럼 해리보슈같은 자신만의 트레이드 캐릭터가 없고 작품마다 다른 캐릭터들을 내세우는데, 이번 <숲>의 주인공은  코프라는 에식스 카운티 검사이다.  작품 읽으면서  저 양반 상상(융통성 없고 꼬장꼬장한 정의의 수호신 캐릭터 비스무리~)하면서 읽으니 제법 소설 속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져 <숲>을 재밌게 읽는데 덤스러운 존재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이 작품에서 불만스러웠던 것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루시와의 관계를 그렇게 끝내다니, 코벤이 여자를 다루는 끗발이 매번 이런 개끗발식이어서 그다지 기분 좋게 작품을 끝낼 수 없었다. 윽~ 맨 마직막 장면은 독자인 나에게 권한이 주어진다면, 완전 삭제 누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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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분야의 책을 읽은지 한 7년 정도 되었나 보다. 그 이전에는 과학의 과자도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왜 과학책 따위를 읽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치부할 정도였다. 시간 낭비야, 읽어도 이해 못하는 그런 글을 읽어서 뭐한담.

 

그러다 2007년 겨울 무렵 한 블로거가 쓴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리뷰를 읽고 나서 다양한 과학책을 읽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읽기 시작한  한두해 동안에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던 글들이  지금은 어느 정도 대강 흝으면 인상비평은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발전했기는 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으수록 과학책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전문적으로 공부를 한 게 아니라 이 분야 저 분야 건드리고 있는 상황이라 반복되는 설명이나 부분이 많이 하지만, 현대 과학분야로 눈을 시작할 때부터 헤매기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내려놓을까, 이해가 정말 안되는데,  어떤 땐 내가 왜 이렇게 사나 싶을때가 있다. 굳지  안 읽어도 되는 책들인데, 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며 우주의 초기가 빅뱅이 일어나건 말건 아, 반짝반짝 거리는 별이 이쁘다! 해 버리면 되고, 봄에 피는 꽃들을 보며,식물이 빛을 받아 어떤 작용을 하건 말건 아, 눈이 즐겁구나~ 겉으로 보는 즐거움만 느끼고 살면 되는 것을 나는 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의 프로세스를 속속들이 알고 싶어, 이렇게 버거운 책들을 부여 잡고 씨름하는 것일까? 소설이나 자기계발 책이나 읽으면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과학분야의 책은 내 인생의 무한도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다가..... 내려 놓기를 수십번, 그러다가 아냐, 도전해보자는 맘으로 다시 읽고 읽고 하루에도 열두번도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니 도대체 저들(과학자들) 머리엔 뭐가 들었길래 이런 아이디어와 이런 사유 체계가 논리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것일까,,,왜 나는 이 나이 먹도록 그들을 사고를 따라가지 못할까하는 열등감 비슷한 자괴감이 들면 도전 정신이 솟아 오르긴 한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세상과 싸우거나 뭔가 도전의식을 가지고 시도해 본 것이 없었다. 먹고 살기 바빠서 먹고사니즘이 우선이니깐. 시간이 남아 돌아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정말 뭔가 나의 사고를 더 깊이 세상을 이해하고 진실에 다가가, 내가 관습처럼 받아 들였던 지식과 사유체계에 대한 도전이다.

 

아닌게 아니라 무한도전팀만 도전하는 인생이냐 싶어, 과학책 분야에 끝까지 도전하고 싶은 무한도전 정신이 들었다. 지구에 사는 수십억의 인구중에서 과연 과학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론이나 진실을 몇%나 받아 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까? 전 세계 인구 1%도 안 되는 사람들이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들도 그들과 함께 이론으로, 실험실에서, 현장에서 참여하면서 99%의 사람들의 관습과 풍속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나 혼자 변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가 아니라 나 혼자라도 변하면 세상이 변할수 있다라는...무한도전~

 

2. 남편회사 부서에서 생일때마다 삼만원미만의 책을 신청하면 선물로 주는데, 작년엔 이영희선생 평전을 신청해서 받았고 올해는 <미래의 물리학>을 애아빠한테 부탁했는데, 생일이 이월초였는데, 아직도 신청을 안 해서 못 받았다. 남편은 이제 책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젊은 시절에는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회사 생활 하면서 책과는 점점 멀어지는, 일년에 단 한권이 책도 안 읽다 보니, 회사 내에서 이런 책선물 차지는 다 내 차지인데, 아직도 이 책을 못 받았다. 신청해 달라고 닥달해서 소용없어 기다리고만 있는데, 다음 주쯤에는 한번쯤 말해야겠다. 그나마 내가 책 사들이는 것에 대해 단 한번의 잔소리도 하지 않으니 언제나 감사한 맘~

 

과학분야 책은 어떡해서든지 새책을 사서 구입한다. 게다가 도서관에 신청도 해 준다. 중고로 나오는 책들이 있긴 하지만, 새책을 사서 보는 이유는 작가와, 출판사와, 번역가에 대한 예의 때문. 책을 안 읽는 시대고, 무관심과 소외받는 분야가 이 분야이다 보니 이렇게 출판사에서 기획해주고 번역해주는 번역가들이 노고때문이라도 책을 사야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요즘은 박병철씨 번역책만 읽는 듯.

 

3. 내가 좋아하는 사진(슬로우 뉴스 보니 어느 기자의 글 제목이 맘에 들어서~)

 

폴디랙과 파인만, 1962년 바르샤바 상대성이론 회의에서.

두 명의 천재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 둘의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도 하지만, 저 자리에서 사진 찍은 사진사가 부럽다~

 

천재란 모든 분야에 뛰어나고 머리가 똑똑하다는 <제노사이드>에서 나오는 루벤스같은 아이큐를 측정할 수 없는 상태라기 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예전에 누가 천재와 영재의 차이점에 대해 쓴 글을 읽었는데, 천재는 일반인들보다 휠씬 똑똑하다, 라는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제노사이드>의 루벤스도 아이큐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머리가 좋은 사람이지만,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고 점에서 그는 일반인의 머리 좋음을 뛰어 넘는 영재일뿐이지 천재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오히려 <제노사이드>의 신인류야말로 천재라 불릴 수 있으리라.

 

파인만의 책을 읽으면 천재란 의도적으로 자신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론 하나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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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2013-04-21 10:42   좋아요 0 | URL
저도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후에 과학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기점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만들어진 신이 나왔을때 샘물교회사건인가 한참 떠들석할때 였죠. 아마 그 분위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자극을 줬을것 같습니다. 제게도 어쩌면 도킨스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창문이었던것 같습니다.

기억의집 2013-04-23 10:06   좋아요 0 | URL
저도요~ 도킨스가 아니였다면 아마 우리 주변의 일상적 관습과 풍속에 얽매여 살았겠지요. 과학이라는 생소하고 낯선 분야로 이끈 도킨스에게 감사하고 싶을 정도에요. 사실 저는 그 전에 소설이나 에세이 드문드문 인문학 정도 읽었는데, 새로운 지식의 기초 토대를 쌓을 수 있게금 한 것은 과학분야의 책이 아닐까 싶어요.
 

바슐라르는 도서관이야말로 천국일 것이라 말했지만, 책을 싫어하는 누군가에겐 사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그 곳이 따분하고 지루한 지옥일 수 있다. 하물며 책의 천국인 알라딘 서재인들도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지식을 추구하며 자신과 다른 취향의 서재인과는 선을 그으며 자신의 서재를 운영하지 않는가 말이다. 누구나 다 책을 좋아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들이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한 쟝르의 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즐겨 읽으며 행복감을 느끼는 거, 그 것이야말로 지상의 천국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쩜 천국이란 자신의 취향이 극명하게 드러나며 열정으로 가득 찬 곳 아닐런지. 모든 사람들에겐 각자 자신의 취향이란 것이 있는 법. 그렇다면 누구나 꿈꾸는 천국이란 어떤 곳일까? 신에게 구원받아 돈 걱정 없이 손하나 까딱 않고 놀고 먹을 수 있는, 그런 편한 곳일까? 그 말인즉슨, 손하나 까닥하지 않고 내 몸뚱아리 하나 편할려면 나 대신 누군가는 일해야한다는 말인데, 그 이야긴 인간의 종속관계가 존재하고 계급사회가 존재한다는 말 아닌가? 아니면 손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척척 해 낼 수 있는 기계 혹은 물질적인 세계인가? 아니면 요술봉 을 휘두르며 수리수리 마하수리 주문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마법의 세계일까?

 

물론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구원의 세계도 사후의 세계도 천국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 여러 종류의 과학책을 읽으면서 신의 존재보다 과학의 사실적 진실(진화나 우주에 관련된)에 다가가려 노력하기에 천국이 있다는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아니 과학적 진실에 내가 천국의 삶보다 더 무게를 두는 이유는. 천국의 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나는 내 몸이 썩어 지구의 자양분인 흙이 되는 것에, 그리고 우주의 보이지 않는 먼지보다 더 작은 티끌이 되어 떠도는 것에 만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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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라딘 대문에 걸린 거 보자마자 주문해, 어제 하루종일 할애한 책이다. 온 식구가 순서대로 감기에 걸려 이놈 나으면 저 놈 걸려 병원 데려가 링겔맞으며 병원에서 노닥거리면서 보냈는데, 어제는 아이들도 학교 가고 해서 하루종일 한껏 책 읽을 여유가 있었다.

 

블로거 지인이 한번 언급한 책이라 빨리 번역되어 나왔으면 했는데, 드디어 나왔다. 사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대도해>라는 사전을 편찬하기 위한 편집부 사람들의 끈기 있는 열정과 사전을 만들기 위해 걸어온 여정을 이야기한 책이라 숨 넘어가는 클라이막스 전개나 불같은 호흡이 느껴지는 책은 아니다.

 

우리가 말하고 쓰고 듣는, 매일 사용하지만 그 유용성과 고마움을 모른 체 사용하는 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를 채집하고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고 의미를 되새김질하며 사전을 만들기 위한 편집부원들의 사전 편찬 노력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 책을 읽기 전만해도 사전적 언어란 언어와  언어사이의 결합이 없다면 참 의미없는 글자 혹은 말쪼가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나의 척박하고 무지한 생각을 일순간에 바꿔 놓은 책이다. 언어란 단순한 독립체의 말쪼가리가 아니라 이 소설의 조연 아라키의 입을 빌리면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야."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지. 더 어울리는 말로 누군가에게 정확히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만약 사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드넓고 망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을 거야," 로 말이다.

 

갈릴레오는 24개의 글자(letter)만으로 무한 사고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4개의 글자로 말이다. 인간이 언어가 없었다면, 원숭이에서 인간이란 종으로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언어란 잇점(말하는 것, 쓰는 것)을 있는 힘껏 표현(가장 좋은 예로 문학이나 철학같은 추상적 언어)하고 살고 있지만, 종종 언어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

 

언어가 있으므로 우리는 음악이든 미술이든 어떤 추상적인 형태로로도표현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사고와 표현영역은 사실 바다와 같이 넓어서 언어란 배가 없었다면 명징하게 표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언어는 인류의 공통 기호일뿐만 아니라 그 어떤 형태의 추상과 상징을 해석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기호이다. 문학도, 음악도, 미술도,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예술의 형태는 우리가 음성으로 표현하는 언어로 시작되었다라고 생각한다. 문학의, 음악의, 미술의 즐거움은 우리 사회에서 정해놓은 언어라는 기호에서 보다 심화된 표현이 아닐런지.

 

그런 언어를 채집하고 기록하는 사전이야말로 우리 인류의,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가진 나라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겠다. 언어는 우리의 인간처럼 유행과 뒤처짐이, 단일어가 아닌 여러 언어가 혼합되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삶과 죽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언어라는, 사전이라는 변두리 소재로 감동과 재미를 주는 미우라 시온의 언어적 능력에 감탄스럽다. 작가의 초창기 작품부터 계속 읽어오고 있지만, 점점 그녀의 도전하는 글쓰기가 좋아진다. 마이너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작가의 사고와 세계관이 더욱 더 성숙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뭐랄까, 작가와 독자인 내가 돌계단을 나란히 한걸음씩 걸어 올라가는 느낌이랄까. 기분 좋은 올라감이다.

 

2. 어제 저녁, 이 책을 거의 갈무리해갈 무렵에 우리 딸이 옆에서 숙제를 하면서, 자기 선생님이 박근혜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숙제로 해가야 한다며 엄마인 나에게 박대통령에게 바라는 게 뭐냐고 자기는 딱히 바라는 게 없어 엄마가 대신 해 주면 안되겠냐고 물어보길래.... 기분 좋게 저 책 책갈무리 하려다가 좀 짜증이 났다. 지난 달에도 박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뭐냐는 숙제를 내 준 적이 있었는데, 4월에도 그 레파토리를 또 내 주다니.... 거참.

 

어지간한 박통팬인가보다. 학부모회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지난 번에 몰래 훔쳐보니 나이도 30대로 보이는 젊은 애기 엄마건만, 아주 열성팬 나셨다. 솔직히 애아빠나 나나 우린 좌빨팀인데, 신자유주의 신봉하는 대처팬을 자처하는 박통에게 우리가 바랄게 뭐 있겠냐고. 사실 북한이 쳐 들어온다고 지랄떠는 것 좀 어떻게 해 달라고 쓰라고 하려다가, 우리 모든 국민이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쓰라고 했다.

 

언어는 배와 같아서... 키를 잘 잡아 주어야지 울 딸에게 우리의 본심을 그대로 쓰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 언어의 항해에서 우리는 좀 더 세게 노를 저어갈 때가 있고 천천히 저어갈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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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핑키 2013-04-11 17:26   좋아요 0 | URL
제목만봐서는 마르코폴로의 항해일지? ㅋㅋ 느낌같았는데요 사전 만드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니 ㅎㅎ 흥미로워요!! 사전을 좋아하기도 하고 국어가 짧아서;;; 하루에도 사전을 열댓번은 열었다 닫았다 하는거 같아요 ㅎㅎ
하아.. 학부모회다 뭐다 학무모도 참;; 신경쓸일이 이만저만 아니겠구나. 더 나아가 세상살이도 어느것 하나 녹녹한게 없구나;;; 싶어져요 ㅎㅎ

기억의집 2013-04-12 22:16   좋아요 0 | URL
저도 왠 배? 이랬어요. 아마 지인의 언급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책인데, 작년에 일본에서 저 책의 인기가 엄청 났었다고 하더라구요.

저 책 읽기전에 사전이라곤 영어사전밖에 안 들춰보았는데, 사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였던 좋은 소설이었어요. 진짜 어떻게 보면 마이너한 소재인데, 참 진지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작가가 글을 썼구나 싶어요. 언어에 대해 자료공부도 제법 많이 한 것 같더라구요~

학부모회~ 정말 학교 가기 싫어요. 사실 선생하고 할말도 별로 없고 제 친한 친구 담임이 전교조 선생이라 이번에 광화문에서 일인시위 했다고 카스에 올렸더라구요. 그런 선생 만나면 열심히 학교 찾아가 열성으로 돕겠는데... 생각보다 학교 선생들이 보수적인 사람도 많고 다들 친정부주의자들이라...더더 안 가고 싶어요~

재는재로 2013-04-12 15:02   좋아요 0 | URL
대도해 사전이라는 시대와 맞지 않는 일이지만 그 꿈을 위해 열정을 쏟으며 달려간 사람들의 모습이 멋있죠 몇십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비로써 완성된 사전 그걸로 끝이 아니라 또다른 목ㅍ를 잡고 달려간 사람들의 모습도

기억의집 2013-04-12 22:19   좋아요 0 | URL
이 책 구입할때 재는재로님게 땡투했는데~ 단기간이 아닌 오랜 세월 회사의 돈 먹는 벌레 취급 받아가며 자신들의 사명을 끝까지 밀고나가 관철시키는 저력에 감동 받은 작품이에요~

음, 근데 스맛폰으로 작성하셨죠? 저는 스맛폰으로 덧글 못 쓰겠던데..답답해서요^^

아영엄마 2013-04-12 19:12   좋아요 0 | URL
서재 안 들어오느라 글 몇 편 올려놓으신 것도 이제서야 봅니다. ^^;
(과학 분야 책은 꾸준히 읽고 있으시네요~. 제노사이드는 읽은 지 좀 되는데 언제 다시 읽어봐야지 싶어요. 요즘 같은 기억력으로는 일 년 전에 읽은 책 내용도 가물가물 생각이 안 나는 지경인지라 이제 책 좀 그만 사고 읽었던 책 다시 읽어도 될 것 같습니다. ㅋ~ 서재 이미지가 참 예쁘네요~.

기억의집 2013-04-12 22:23   좋아요 0 | URL
잘 들어가셨어요!
그 시간에 헤어져 집에 오니 아들냄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쳐 급하게 밥 해서 먹고 한잠 자고 일어났어요. ㅎ~ 게다가 애아빠 회식이라고 해서 편하네요. 애 학원도 안 데려다 줘도 되고 그러니깐.

과학책은 꾸준히 읽어요~ 워낙 어려워서 리뷰나 페이퍼를 어떻게 작성해야하는지, 저는 읽고 난 다음 제 생각을 쓰고 싶지 거기 있는 글을 그대로 베껴 올리고 싶지 않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언제나.... 읽은 과학책은 글이 잘 안 써지게 되요.

친구의 카스에 이쁜 사진이 많이 올라와서 담아봤어요~
 

보른과 요르단은 하이젠베르크의 천재성이 발현된 독창적인 성과를 행렬 미적분으로 재구성하면서 연구 결과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 작업을 거의 완성하기 직전에 리더퍼드가 보른에게 디랙이 쓴 출간 전 논문을 보내왔다. 보른은 이렇게 썼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그 논문은 과학적로서의 내 삶에서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였다. 디랙은 내가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고 젊은 사람이었는데도 모든 내용이 완벽하고 감탄스러웠다." 괴팅겐에서는 크나벤피지크, 즉 '청년 물리학'에 관해 수군대기 시작했다. 디랙과 요르단은 스물 둘이었고 하이젠베르크는 스물셋이었으며 파울리는 스물다섯이었다.

 

모든 수학자들은 수학이 젊은 사람들을 위한 학문임을 알고 있다. 예술이나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는 수학에서 더욱 절실한 현실이다. 비교적 초라한 수준의 간단한 예를 들자면, 로열 소사이어티 회원의 평균 연령을 비교했을 때 수학자들이 가장 젊다. 휠씬 더 충격적인 예를 찾는 일도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학자중 세 손가락안에 꼽히는 한 인물의 이력을 살펴보자. 뉴턴은 50세에 수학을 포기했으며, 수학에 대한 열정을 잃은 것은 그보다 휠씬 이전이었다. 40세 무렵 그는 이미 자신의 창조적 두뇌가 유효 기간을 넘겼음을 깨달았다. 유율, 중력 법칙 등 그의 위대한 아이디어들은 1666년경에 밝혀진 것인데, 이때 그의 나이는 24세였다. 뉴턴은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그 무렵 나는 발명의 최절정기에 있었고, 그때만큼 수학과 철학에 몰두한 적이 없다."

 

갈루아는 21세에 요절했고, 아벨도 27세에 세상을 떠났다. 라마누잔은 33세에, 리만은 40세에 각각 사망했다. 물론 휠씬 나이가 든 후에 업적을 쌓은 이들도 있다. 가우스의 미분 기하학에 관한 연구 논문이 출간된 것은 그의 나이 50세 때였다.(물론 이 논문의 기본틀은 그보다 10년전에 잡힌 것이다).

 

내가 아는 한, 50세 이상의 수학자에 의해 중요한 수학적 진보가 이루어진 경우는 지금껏 단 한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유전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많은 혼란이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자의 비판이 옳은 것인가?

 

 " 제 생각에는 생화학자들은 철학자들이 유전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말했듯이, 과학의 있어서의 철학은 섹스에 있어서의 포로노그래피와 같습니다. 더 싸고 더 쉽고, 어떤 사람들은 더 좋아하기도 하죠. 하지만 생물학에서는 이처럼 더 많은 것을 알아낼수록 사정이 더 복잡해지는, 다소 철학적인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다분히, 이것저것 잔뜩 알아낸 다음 우리가 안다고 생각한 것의 예외들을 발견하고 있는 입장입니다.p26

 

철학은 대체로 쓸모가 없지만, 약간의 흥미로운 과학철학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학이란 어떤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칼 포퍼의 견해를 좋아합니다. 만일 롤렉스시계를 차고 있는 네안데르탈인을 발견하다면, 저는 진화론을 포기할 겁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증거는 나타난 적이 없지요. p31

 

잘은 모르겠지만 양자역학에 대해 읽으면 읽을수록,  포스트모던이나 해체주의철학의 베이스는  양자역학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모든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넘나들며, 본질 혹은 사물의 불정확성과 같은 개념은 양자역학의 주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철학에 대해 잘 모르는 나이기에 섣불리 단정짓기는 뭣하지만, 여튼 양자역학이 현대 과학기술의 기초였을뿐만 아니라, 현대 철학이나 문학 사조의 디딤대 역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현대 철학이나 문학 사조가 과학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고 과학이 현대 철학이나 사조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터무니 없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읽어본 바로는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면, 20세기 들어서 과학이든 철학이든 인문학이든 어떤 쟝르를 불문하고 학문이라는 미명하의 인간 정신 활동은 서로 연관되어 있어 서로 영역을 침범하며 카테고리란 범주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며 각자 학문의 폭을 넓혀나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어느 학문이든 오늘날의 지식체계를 쌓아 올린 업적은 우월을 가릴 수 없이 비등하다. 흔히 우리가 이분법적으로 보는 인문학/과학이라는 라이벌 관계는 서로 우르렁거리거나 무관심한 채 각각 독립적인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학자들에 의해 서로의 영향력을 인정하며 통합쪽으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한때 나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은 서로 뒷받침없이 독립적인 관계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과학책을 읽어가면 읽을수록 나의 그러한 생각이 오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나라같이 과학교육이 후져도 너무 후진 나라에서 과학보다 인문학을 우선시하고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뭔가 잘 못 되어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 물론 안다. 인문학을 소리 높여 외치는 이유를, 그 뒷 배경에는 인문학의 위기가 있고 인문학을 배워봤자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사회에 나가면 아무짝에도 쓰잘데기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보니, 현재 인문학이란 학문이 허세 가득한 지적 말놀음에 너덜해질대로 너덜해져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죽하면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존스 또한 철학은 약간 쓸모가 있고 포로노그라피와 같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말할까.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론과학자들이 현대철학을  폄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오늘 날 철학(혹은 인문학)의 위상이 잘 드러나 있다. 사유의 장난인지 언어의 희롱인 것처럼 읽혀지는 글들이 나열되어 있는 인문학(철학)책을 접하고 나서 그런 오류의 뿌리가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문학이 바로 나아가야할 길은 지적인 말놀음의 언어의 향연이 아니라 사물의 대상이나 본질 혹은 근원적인 것에 대한 논리적인 사유 체계를 정립하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의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과학자들의 아이디어가 단순히 머리에서 번뜩하며 생겨난 것일까? 아니다. 사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인문학적 기틀에서 사고하고 아이디어를 탄생시키고 다듬었다.  과학적 아이디어는 인문학적 베이스가 없다면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없는 사유체계를 요구한다. 왜? 어떻게? 무엇을?같은 의문이나 호기심은 여러 각도로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정립하고 체계화한다. 학문이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며 그 와중에 창의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를 길러내는 작업이며 인문학은 그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사고를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구력같은 학문이기 때문이다.

 

<얽힘의 시대>는 오늘날의 현대 과학 기술을 만들어 낸 양자역학을 창조한 과학자들을 조명한 책이다. 양자역학을 이끈 하이젠베르크, 보어, 아인슈타인, 디랙같은 천재 물리학자들의 과학적인 아이디어는 인문학이나 철학의 사유체계와 흡사하며, 그들이 헤겔이나 칸트와 같은 철학을 10대 시절에 배우지 않았더라면, 자신들이 만들어낸 양자역학의 아이디어나 방정식은 사유하는 법을 요구하고 과학적 사유체계는 인문학적 베이스가 어느 정도 깔려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과학적 사유의 인문학적 베이스는 창의력과 영감이 한창인 젊은 나이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한 순간의 아이디어로 날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아이디어를 체계화, 강화시켜 준다고 본다. 수학자 하디가 말했듯이, 노년의 과학적 아이디어는 쓸모가 없다. 세상을 바꾼 과학 이론은 과학자들이 젊은 시절, 끓어오르는 혈기에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세상을 뒤흔드는 이론으로 탈바꿈 시켰다. 우리식으로 젊은 게 뭘 알겠어? 가 아닌, 20대나 30대 시절의 더오른 아이디어가 인문학적 베이스의 사유체계를 더해서 더 깊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과학적 아이디어의 인문학적 사유 체계의 도입이 아니라, 우리의 과학교육이 아니 초중고 교육이 인문학적인, 과학적인 교육이 전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무수히 많은 지식을 주입해 봤자, 그 지식을 사유하지 않은 아이디어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사실을, 과학적 아이디어나 인문학적 발상이든 사유체계가 형성되지 않는 현 교육에서 정말 뛰어난 영재도 평범한 일반인으로 역변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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