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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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하 작가가 쓴 <지하철 여행자>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만난 어느 분이 지하철에서 박완서 선생님의 <노란 집>을 읽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노란집은 선생님께서 작고하시고 2년이 지났을 때 따님이 유고를 모아 책으로 묶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2000년대 초반 선생님이 아차산 자락의 아치울에 노란집을 마련하고 나서 쓰신 글들이라고 합니다.


57꼭지의 글들을 모두 6개의 묶음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단편소설집으로 분류를 해놓았습니다만 소설이라 할 만한 글도 있고 수필로 보이는 글도 있습니다. 특히 자전적인 이야기들은 수필의 범주라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글 묶음의 제목과 개별 꼭지들이 연관성이 있는지 아리송한 글들도 있어 보입니다.


선생님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에 관한 이야기들은 나이차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대목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특히 첫 번째 글 묶음인 그들만의 사랑법에 나오는 마나님과 영감님의 사랑 이야기는 제가 살아온 날들과 묘하게도 겹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며느리가 보내온 알배기 영광 굴비를 구워 상에 올렸는데, 마침 걸려온 딸의 전화를 받고 왔더니 영감님이 알뜰하게도 모두 발라 먹은 것을 보고 별안간 허방을 밟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평생 제 입 밖에 모르는 영감과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허망하더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면이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마나님이 토라지기도 잘 하지만 풀어지기도 잘 하기 때문에 영감님이 마나님의 토라진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너무 늦게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들일하는 영감님에게 새참으로 내간 막걸리를 내간 마나님은 혹시라도 영감님이 대작할 이 없이 쓸쓸하게 막걸리를 들이켜는 일이 생긴다면 그 꼴은 정말로 못 봐 줄 것 같아 영감님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지 싶고, 영감님은 마나님의 쭈그렁바가지처럼 편안한 얼굴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요즘 들어 부쩍 마나님의 견강이 염려스러운 것, 그건 그들만의 지극한 사랑법이다.(33)”라는 대목은 완전 감동이었습니다. 더하여 부엌 쪽에서 마나님이 설거지 하는 소리가 점점 아득해진다. 마지막 날까지 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죽음도 이렇게 달콤하게 왔으면, 그러면서도 그에게 가장 익숙한 생활을, 그릇 달그락댄ㄴ 소리에 안타깝게 매달리다가 마침내 스르르 놓아버린다.(55)”는 대목이 진심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특히 올해 여름이 무척이나 더웠기 때문에 예전에는 어땠나 싶어 되돌아보면 금년처럼 더운 여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의 옛 속담에 여름엔 첩 팔아 부채 산다는 말이 있다(93)”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더운 날이 있었다는 이야기겠지요?


선생님께서 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돈암동에서 종로까지 걸어 다녔다고 했는데, 종로도 1가에서 5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얼마나 먼 거리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매일 걸어 다닌 것은 아닙니다만, 대학시절에 돈암동에서 종로2가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오거나 걸어서 집에 간 적도 있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안국동에서 비원과 창경궁 돌담길을 따라 걷는 일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짤막짤막해서 읽기 시작했는가 싶으면 끝이 나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만, 주변의 사물들을 손에 잡히듯 묘사하기 때문에 금세 머릿속에 상황이 떠오르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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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 신화와 전설
찰스 스콰이어 지음, 나영균.전수용 옮김 / 황소자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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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는 아서왕이 영국 역사적인 인물이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영국역사를 배우기 전이었던 만큼 동화로 만난 아서왕을 실존했던 것으로 생각한 것이지요. 아서왕은 사실은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학생들이 연속극이나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역사공부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단군신화가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그리스ㅡ로마 신화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문학작품을 비롯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들을 기회가 많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스칸디나비아를 비롯한 북유럽의 게르만족 사이에 내려오는 노르드 신화에서 유래한 이야기들도 조금씩 듣고 있습니다.


19세기에 영국에서 활동한 찰스 스파이어가 쓴 켈트 신화와 전설을 읽게된 것은 영국과 아일랜드에 전해오는 신화와 전설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858년에 태어난 저자는 빅토리아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조국의 뿌리를 찾는 일에 매료되어 고대 아일랜드와 브리튼의 신화와 전설, 민담 등을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집한 것들을 정리하여 1905년에는 연구서로 <브리튼섬의 신화>를 출간했고 1906년에는 <고대 브리튼과 아일랜드의 신화>1909년에는 <셀틱 사람들의 신화>라는 대중서를 출간했다고 합니다. 이 책은 1910년에 나온 브리튼섬의 신화의 개정판을 우리말로 옮겼다고 합니다.


책을 모두 읽고 난 소감은 무엇을 읽었고 무엇을 기억할 수 있게 됐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신화 혹은 전설적인 인물들 가운데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중의 일부만이 알 듯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켈트와 브리튼의 신화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연작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저도 두 작품을 완독했습니다만 분위기가 신화적이라는 생각을 쌨을 뿐 켈트 신화와 브리튼 신화와 연관되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읽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브리튼족과 켈트족 사이의 충돌이 역사적 사건일 것이란 생각이었지만 그 또한 마법사가 등장하고 용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찾았습니다. 바로 브리튼족은 붉은 용을 가지고 있고 켈트족은 흰용을 가지고 있어 두 부족이 충돌할 때 두 용도 맞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파묻힌 거인>도 브리튼 신화에서 주제를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켈트 문화가 융성할 당시에 켈트 사람들이 그들의 신화를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이 전무했다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가 호머에 의하여 기록으로 남았기 때문에 유럽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과는 천지차이라 할 것입니다. 기록이 없을 뿐더러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 발칸반도 등지에서 성했던 전문적인 음유시인이 존재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민중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를 시인이나 소설가가 인용하여 작품으로 남기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구전의 경우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사실이 녹아들어가 기존의 이야기가 변형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켈트나 브리튼의 신화에 그리스ㅡ로마의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등장인물을 달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아일랜드의 전설에 등장하는 마난난이 다리를 세 개 가지고 있어 엄청 빠르게 걸을 수 있다는 대목은 시칠리아 섬의 상징이 되고 있는 트리스켈레스가 아일랜드의 신화에서도 등장하는 점 등입니다.


역시 브리튼의 신화에 등장하는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에 대한 설명이 빠지지 않았지만, 등장인물들의 뿌리를 캐는데 집중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는 빠져있어서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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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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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를 대표하는 작가 이스마엘 카다레의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는 준비하고 있는 여행과 책읽기에 관한 책의 한 꼭지가 될 알바니아의 티라나에 관한 내용으로 고른 책읽기였습니다. <돌의 연대기>, <잘못된 만찬>, <H 파일>, <부서진 4> 등을 읽었지만, 공산정권 시절의 알바니아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고 보아 이 책을 인용하기로 했습니다.


매년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오르던 이스마엘 카다레는 공산 독재정권 하의 조국 알바니아의 혼과 집단기억을 문학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리는 그의 작품세계는 마르케스와 비유되며, 전제주의와 유토피아의 위험을 고발하는 헉슬리와 오웰의 뒤를 잇는 반()유토피아 작가군의 후예로 꼽히기도 합니다. 또한 2천 년간의 외세 지배와 혹독한 스탈린 식 공산독재를 겪으며 유럽에서조차 잊힌 나라 알바니아를 역사의 망각에서 끌어낸 문학대사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36편의 소설, 수필집, 시집 등을 세상에 내놓았고, 우리나라에도 14종의 소설이 소개되었습니다.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1980년대의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를 무대로 합니다. 엔베르 호자가 알바니아의 공산정권을 이끌던 시절 그의 총애를 받던 후계자 메메트 셰후가 자살한 사건이 주제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자살이라고 발표가 되었지만 그의 죽음에 관한 의문은 알바니아 사람들은 물론 관련 국가들의 관심사였던 모양입니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19811214일 밤에 일어난 후계자의 죽음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이 죽음의 원인을 추적하는 방식을 취하지만 카다레는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 후계자의 죽음에 관련된 사람들이 사건을 전후하여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심리상태였는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사건에 관한 세부사항들이 비밀에 붙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모든 상황의 배경에는 지도자 동지가 있습니다. 화자 역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어갑니다. 서두에는 사건의 진행사항을 작가가 소개하며, 사건이 후계자의 딸 수잔나의 약혼과 관련이 있는 만큼 초반에는 수잔나가 화자가 되며, 타살을 의심하게 만드는 후계자의 집을 설계한 건축가와 사건 당일 후계자의 집을 방문한 내무장관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역할에 대하여 진술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을 옥죄어 오는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당시의 알바니아를 통치하던 지도자 동지의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알바니아의 공포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은 후계자의 부검이 결정되었을 때 부검의의 심리를 묘사한 대목입니다. ”이런 종류의 부검이라면 부검을 실시한 장본인도 그 후로 계속 목숨을 부지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달의 표면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는 것만큼이나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었다.(57)“ 그러니까 당시 알바니아에서는 한치 앞의 미래도 예측이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더하여 아들이 아버지를 팔고 아버지가 아들을, 아내가 남편을 팔아넘기도록 부추기는 새로운 유전학적 현상이 만연해있었다고도 합니다.


이 사건의 진실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밝혀지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구조와 다른 점입니다. 작가는 후계자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개의 가정을 차례로 제시하며, 관련 인물의 심리묘사에 집중합니다. 단순히 사건의 본질을 캐는데 집중하지 않고 알바니아에 내려오는 격언과 민담, 전설들을 인용하여 후계자의 죽음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후계자는 혁명의 순교자로 암살당한 것이라고 했다가 뒤에는 지도자 동지를 타도하기 위하여 군사반란을 일으키려 했다고 발표됩니다.


지도자 동지의 오락가락하는 생각에 따라 상황이 바뀌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지도자는 시력을 상실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비밀을 샅샅이 안다는 것은 분명히 축복이겠지만 차라리 모르는 편이 지고의 경지 아닐까. 그는 최근에야 이 사실을 깨닫고서 오랜만에 참 평화를 맛보게 되었다. 이처럼 평온한 상태에 이르는 데 시력 상실이 한몫한 것은 사실이다.(191)“


중간에 수산나의 애정행각을 다룬 대목이 나오는데 후계자의 죽음과 긴밀한 연관이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작가는 <아가멤논의 딸>에서 수산나의 약혼을 다루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아가멤논의 딸>에 이은 2부작 소설의 완성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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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
강민경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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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거사 이규보하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으로 기억합니다. 1168년에 태어나 1241년에 작고하였으니 800년전 고려시대를 살던 분입니다. 의종22년에 태어나 명종, 신종, 희종, 강종을 지나 고종 29년에 작고를 하였는데, 의종24년에 무신정변이 일어나 100년간 이어진 무신정권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1231년에는 몽골이 침입하여 이듬해 강화도로 천도하여 항전하던 어려운 시기를 살아내기도 했습니다.


고려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 드문 가운데 이규보는 자신의 시를 포함하여 전, , 서 등에 관한 방대한 글을 5313책에 담은 <동국이상국집>을 남겨 당대의 사회상은 물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료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이규보는 자신의 글을 모아둔 바가 없어 <동국이상국집>은 이규보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 함()1241(고종 28) 8월에 전집(全集) 41권을, 그 해 12월에 후집(後集) 12권을 편집, 간행하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가 썼던 글들은 이보다도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강민경 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에서 이규보가 살면서 붓 가는대로 자신의 처지와 생각을 풀어 놓은 시와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고려라는 왕조를 살았던 한 지식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난다라고 했습니다.


흔히 우리가 아는 역사는 사건 중심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아 당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담아내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규보가 남긴 <동국이상국집>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오늘의 우리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았던 800년 전의 고려 사람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단순히 <동국이상국집>을 오늘날의 언어로 옮기는데 그치지 않고 그림과 사진 등, 내용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자료들을 더하여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서설을 통하여 백운거사 이규보를 설명한 다음에는 일종의 자서전 같은 내용을 시작으로 이규보가 살아가던 방식, 이규보를 둘러싸고 있던 가족, 친구 그리고 친지에 관한 내용, 이규보의 글짓기, 이규보의 행적,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유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가에 대한 작가적 상상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800년이라는 세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감이 가는 대목이 너무 많았습니다. 배경이 없어 관직에 나가지 못하는 청년시절, 거칠 것이 없는 성격으로 그나마 얻은 관직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말년에는 권력자의 눈에 들어 고위관직에도 올랐다고 합니다.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고, 하늘이 정하면 또한 사람을 이긴다라는 <사기; 오자서 열전>에 나오는 유자의 언명을 인용한 이규보의 자기 성찰에 저 역시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다만 자신의 실패가 사람이 하늘을 이긴 셈이라면서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 이규보와는 달리 저는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한 과오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끝이 과히 나쁘지 않으니 다행이란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에 나오는 저문 봄 강가에서 그대를 보낸 뒤 느낌이 있어(暮春江上 送人後有感)’<동문선 권19, 칠언절구>에 나오는 정지상의그대 보내며(送人)’을 떠오르게 한다는 대목이 마음이 걸립니다.


늦은 봄에 가는 그대 보내고 돌아오니 / 눈에 가득한 방초(芳草)에 마음 상하네 / 마들날 조각배가 돌아온다면 / 뱃사공에게 알려주리라 / 이내 낀 강 천리에 아득한데 / 마음은 버들개지인 양 어지러이 날린다 / 하물며 꽃 지는 시절에 / 그대 보내고 서운하지 않으랴 / 석양 놀 해에 비쳐 불그레하고 / 멀리 강물은 하늘에 닿아 푸름을 다툰다 / 강가 버들 휘늘어진 가지를 / 가는 손 얽매어 떠날 줄 모르누나 (176)


비 개인 강둑에는 풀빛 더욱 푸르른데 / 그대 보내는 남포에서 슬픈 노래 울먹이네 / 대동강 물은 그 어느 때에 마르려는가 / 해마다 이별의 눈물 물결에 더하고 더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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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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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 https://blog.naver.com/neuro412/223363256388>과 함께 읽으려다 늦어진 책읽기였습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김초엽 작가의 첫 작품집으로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비롯하여 모두 7편의 단편을 담았습니다. 7편 가운데 감정의 물성관내분실두 편을 제외한 5편은 우주여행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특히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경우는 빛의 속도로도 수만 년이 걸리는 행성에 가려는 여성이 폐쇄를 앞둔 우주정거장에서 대기하는 상황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에서 우주선의 비행방식으로는 워프 항법이나 웜홀을 이용하는 방식이 소개됩니다. 그래도 오랜 세월이 걸리므로 냉동 수면기술이 적용되기도 합니다. 아직은 실용화되지 않은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55년 전에도 우주여행에 관한 이야기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도 냉동수면기술이 적용되었고, 조운트라고 하는 운항방식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우주여행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꾸어왔던 꿈인 셈입니다.

첫 번째 작품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경우는 유전자 조작 등을 통하여 만들어진 신인류가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이주를 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열여덟 살이 되는 해에 이동선을 타고 시초지(지구를 의미합니다)로 순례를 떠나고 1년 뒤에는 시초지에 머물거나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화자는 열여덟이 되기 전에 시초지로 떠나 순례에서 돌아오지 않은 이유를 뒤쫓습니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과학의 발전으로 미래에 등장할 수도 있는 인류이지만 어쩌면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인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미래를 어떻게 피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인간들과 공생하는 길을 모색해보자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상향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지만 실제로는 반이상향이라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상향과 반이상향의 이분법적인 사고 자체를 부정하려는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관내분실이라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마인드 박물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흔적을 누군가 기억해주기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제 생각을 담은 책을 세상에 남기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마인드 박물관은 죽은 사람들의 뇌에 담긴 모든 기억을 보관하는 기술에 관한 이야기로 보입니다. 심지어는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과 대화도 가능한데 그것은 사람들의 모든 기억을 자료화하여 사고하는 방식에 따라서 불러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죽은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죽음에 임박하여 대뇌의 신경연접을 비롯한 초미세구조는 물론 분자생물학적 기전까지고 복사하기 때문에 사자의 마음을 자료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작가적 상상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진시황을 비롯하여 영생을 꿈꾼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생물학적 신체는 소멸되지만, 자신 마음을 영원토록 남기는 기술에 대하여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관내 분실의 화자인 지민이 어머니의 마음이 접근불가라는 상황이 왜 일어난 것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자연스럽게 제기된 셈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정을 존중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공생가설이나 스펙트럼처럼 외계의 지적생물체가 존재함을 전제로 한 작품도 있습니다. 아직은 그러한 존재가 존재할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는 셈입니다만, 그런 존재와 조우하게 되는 상황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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