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0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0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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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을 로마로 통한다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로마인 이야기10>는 지금까지 읽어온 <로마인 이야기>와는 형식과 내용이 전혀 달랐습니다. 저자는 <로마인 이야기>을 기획하면서 로마제국의 가회간접자본에 대하여 이야기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부제까지도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한다로 정해놓았다고 합니다. 로마 사람들은 사회간접자본의 중요성을 일찍 깨우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료조사를 통해서 고대 로마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저술, 즉 관련자료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인이 생각하고 있던 사회간접자본의 범주가 너무 방대하여 이를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연구가 불가능했던 까닭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로마제국의 유럽, 북아프리카 및 중동 등 광대한 영역에서의 사회간접자본의 발전과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로마제국의 연구하는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사회간접자본(infrastructure)를 굳은 모(hardware)와 무른 모(software)로 구분한다고 했을 때, 로마사람들은 굳은 모 영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도로, 교량, 항만, 신전, 공회당, 광장, 극장, 원형경기장, 공중 목욕탕, 수도 등 모든 것을 포함하명, 무른 모 영역에는 국방, 치안, 조세, 의료, 교육, 우편, 통화 등의 영역을 포함한다고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저자는 로마제국의 사회간접자본 가운데 굳은 모에 해당하는 가도, 다리, 그리고 수도를, 무른 모에 대항하는 의료와 교육 부문을 정리해서 이 책에 담기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회간접자본의 셩격상 문장으로 설명하기보다 그림이나 사진으로 보는 것이 이해를 빠르게 하므로 지도, 도면, 사진 등을 많이 실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로마제국의 본산이라 할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로마제국의 영토였던 유럽과 중동 지방에 흩어져 있는 로마유적을 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로마제국의 사회간접자본 가운데 굳은 모에 해당하는 유적들을 볼 기회는 많았습니다. 아피아 가도를 비롯하여 남프랑스 아를 인근에 있는 퐁 뒤 가르, 영국의 바스에서 본 로마 욕탕 등 로마제국이 남긴 사회간접자본을 실제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20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록 원형에 가까운 구조를 지켜온 것들을 보면서 로마사람들에 찬탄을 금치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무른 모에 해당하는 교육이나 의료 체계를 실제로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다만 인상적인 것은 로마제국이 의사나 교사를 양성하기 위하여 직접 투자를 한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공적 기관을 설리하여 그것으로 의료나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애쓰지 않고, 의사와 교사들을 자유 시장으로 내보냈다는 것입니다. 즉 의학교육에 투자하기 보다는 속주 등의 인력을 시민권을 부여하는 등의 유인책을 쓰면서도 자유롭게 학교나 병원을 개설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정책이 수도 로마에만 혜택이 돌아간 것이 아니라 주둔 군단을 중심으로 속주에까지 파급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카이사르가 생각하고 아우구스투스가 정책화한 로마 제국의 의료체계는 로마인의 생사관을 반영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수명이 다하면, 살려고 바둥거리지 않고 깨끗이 죽겠다.() 수명이 다하면 순순히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어차피 죽음을 변할 수 없는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라는 것이 로마인의 생사관이다. 로마인의 묘비에는 DM이라는 두 글자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사자(死者)를 양쪽에서 부축하여 하늘로 데려가는 두 천사에게라는 의미를 가진 약자다. 로마인들은 자기가 죽으면 두 천사가 데리러 와서 두 팔을 잡고 하늘로 데려갈 거라고 믿고 있었다.(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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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사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5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유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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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여행 작가 패트릭 리 퍼머가 펠로폰네소스의 남쪽에 있는 마니반도를 여행한 기록 <그리스의 끝, 마니>에서 피의 복수가 반복되고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험준한 타이게토스 산맥과 황량한 해안 환경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변란을 피해 숨어든 사람들이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니 씨족의 명예를 중시하게 된 결과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알바니아의 북부 고원지대에서도 피의 복수가 반복되고 있으며, 그 과정이 카눈이라고 하는 관습법에 정교하게 규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스마엘 카다레는 <부서진 사월>에서 카눈이라는 관습법에 따라 이루어지는 피의 복수를 세밀하게 정리해냈습니다. 씨족 간에 혹은 가문 사이에 벌어지는 피의 복수는 가문이 폐족되는 결과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의 복수를 이어가는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굳어진 가문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낳은 불행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알바니아 고원지대의 복수는 반드시 총으로 행해야 하고, 발사하기 전에 상대에게 귀띔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복수를 하면 상대 가문의 누군가가 복수에 나설 것이기 때문에 24시간의 휴전기간 베사를 요청해야 하고, 피의 복수를 한 사람은 죽은 자의 장례에 참석하여 조문을 하고 밥도 먹어야 한답니다. 그리고 오로시 성에 가서 피의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30일간의 대 베사를 요청하여 인정을 받으면 그 기간에 삶을 정리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숨어 살거나 가문의 유폐탑에 들어가 몸을 숨겨야 합니다.


<부서진 사월>에서는 베리샤가문의 그조르그가 제프 크리예키크를 쏘아 오래 미루었던 형님의 핏값을 회수한 뒤에 일어나는 일을 뒤쫓고 있습니다. 여기에 작가 베시안 보릅시는 아내 디안과의 신혼여행을 오로시성으로 오면서 카눈이라는 관습법을 자연스럽게 설명할 뿐 아니라 그조르그의 운명을 결정하게 됩니다.


알바니아 북부의 산악지대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광야 저편으로 안개에 싸인 산맥이 아스라이 보였다. 장막처럼 드리워진 안개 너머 산맥은 들쭉날쭉 산들이 연달아 늘어서 있다기 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산과 같은 모습이었으며, 신기루처럼 어딘지 모르게 더딘, 창백한 그림자같이 보였다.(29)”


피의 복수는 오래된 관습법이라고는 하지만 오로시 성의 대공의 수입 가운데 피의 세금이 차지하는 규모가 큰 것으로 보아 이 땅을 지배하는 자들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권장되어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알바니아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엔베르 호자가 이끄는 알바니아 노동당이 독재정권을 수립하였습니다. 1936년 알바니아의 남부 쥐로카스트라에서 태어난 이스마일 카다레는 티라나 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학을 공부하였고 모스크바의 고리키 문학연구소에 유학했습니다. 카다레는 알바니아의 신화와 전설, 구전 민담 등을 자유롭게 변주하여 암울한 조국이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에릭 페는 작품론에서 이 소설의 배경은 미르디트라는 알바니아의 고원지대를 암시하는 듯하나, 코소보나 몬테네그로의 남부, 알바니아령 알프스 혹은 두카그진고원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피의 회수는 아가멤논의 피를 회수했던 오레스테스의 행동과 연관을 짓기도 합니다.


카눈의 관습법에 따른 피의 회수에는 자유의지란 존재할 틈이 없습니다. 그조르그 역시 형이 죽음을 갚으라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 것입니다. 피의 복수의 악순환은 누군가의 결단에 의하여 끊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누가 그 일을 시작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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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독서 여행자
박시하 지음, 안지미 그림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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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두 번씩 갈아타고 출퇴근을 한지도 벌써 2년 반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환승이 불편한데도 지하철을 타는 이유는 시간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6시 무렵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대부분은 부족한 잠을 벌충하고 있거나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지만 드물게는 책을 펼쳐들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도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이분들은 같은 시간대에 움직이기 때문에 거의 매일 만나게 되는데 그분들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박시하 시인이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지하철 독서여행자를 썼다는 것을 어느 책에선가 읽고 찾아 읽었습니다. 특히 서울에 사는 보통사람들의 대분은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책읽기를 생활화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뭄에 콩 나듯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그런 사람들이 무슨 책을 읽나 관심을 가지게 됐고그들을 모습을 비롯하여 그들이 읽는 책과 관련한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출판사와의 계약에 따라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주변을 살펴왔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한 해 동안을 그리했던 모양으로 모두 25꼭지의 이야기를 모았고 이를 4계절로 나누어놓았습니다. 봄에 5꼭지, 여름에 6꼭지, 가을과 겨울에 7꼭지 등인데 겨울을 8꼭지로 늘렸더라면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어떻든 시인은 지하철을 타면서 모두 25명의 책 읽는 사람을 만났고 그들이 읽고 있던 25권의 책의 주제와 책 읽는 이의 행색으로 미루어 그 책을 읽게 된 사유를 유추하고, 거기에 시인이 그책을 읽고 느낀 점을 더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주제와 관련된 시인의 경험까지도 더합니다. 때로는 동떨어진 듯한 이야기도 같이 섞어 넣기도 합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제가 읽은 책도 꽤나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헤아려보니 25권들의 책 가운데 제가 읽어 본 책은 10권에 불과했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것처럼,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읽는 책도 다양해서 소설이 주류를 이루기는 해도, 교양서는 물론 철학, 시집, 만화, 동화, 심지어는 학습서도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가 학원들이 밀집해 있어선지 지하철에서 학습서를 읽는 학생들을 가끔 보기도 합니다.


시인이 지하철에서 만난 책 읽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모습은 아니 에르노의 <바깥 일기; https://sarak.yes24.com/blog/yang412/review-view/19343775>가 연상됩니다. <바깥 일기>를 읽고서 따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만,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책의 말미를 보면 시인이 지하철에서 만난 책들의 목록이 덧붙여져 있는데 읽어보지 못한 책인 경우에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도 구매해서 읽어보신 것 같습니다. 그밖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하여 인용한 책들도 밑줄 긋기라는 제목으로 목록을 만들어두었습니다. 시인이 밑줄을 그어놓은 글 가운데 눈길이 가는 몇 대목을 적어두려 합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띤 대목은 파스칼 키냐르가 <옛날에 대하여>에 적었다는 시간은 우리의 보이지 않는 땅(Terra invisibilis)”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의 생각들을 읽으면서 묘한 느낌이 드는 대목도 있습니다. 여름의 첫 번째 꼭지는 유난히 바람이 불던 가을이었다. 깊고 허무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그 계절 동안 나는 절망을 새로 익혔다. 절망은 왜 늘 새로운가. 나는 슬픔에 차서 죽음을 꿈꿨다.(69)” 여름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가을을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생뚱맞다는 느낌과 함께 시인이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느낌은 가을의 두 번째 꼭지에서도 만났습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죽음을 인식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나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삶보다는 죽음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146)” 이어 나오는 설명이 충분히 공감되지 않는 것은 지하철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하철에 타는 이 도시의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보게되었다. 그들을 보는 것은 언제나 좋았다. 그들이 아름답다거나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지하철 속의 사람들이 불행해 보였기 때문이고, 그들이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237)”라는 생각에도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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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에 관한 일반론 - 2017 더블린 인터내셔널 문학상 수상작,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후보작
주제 에두아르두 아구아루사 지음, 이지민 옮김 / 구민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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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기억이라는 화두에 오랫동안 매달려왔습니다. 기억이 만들어지는 기전은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을 되살리는 기전도 궁금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렇게 만든 기억이 사라지는 기전도 흥미롭습니다. 망각이 단순하게 기억의 반대 개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억을 제대로 못하는 건망증 환자는 기억을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기 마련입니다만, 기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은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기억이 신이 준 선물이라면 망각은 신이 내린 축복이라는 말도 있나봅니다.


조제 에두아르도 아구알루사가 쓴 <망각에 관한 일반론>은 개인적인 관심사로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앙골라의 우암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포르투갈계 그리고 아버지는 브라질계입니다. 포르투갈어가 모국어입니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의 고등농업학교에서 농업을 공부한 뒤에 언론계에서 일하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워왔다고 합니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서문에서 2010년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에서 생을 마감한 포르투갈 출신 여성 루보비카 페르난데스 마누가 남긴 일기, , 그림과 설명 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하면서도 이야기는 완전히 허구라고 주장합니다.


루도비카는 하늘을 마주하기 싫어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루도비카는 어린 시절 뒤에서 밝혀지는 그 사건을 겪고부터는 세상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언니 오데트에 의지해 살았습니다. 언니가 앙골라 출신의 사업가 오를란두와 결혼하게 되면서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에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575년부터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아오던 앙골라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독립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의 독립운동을 중국, 소련 그리고 쿠바 등을 비롯하여 미국 등 서방세계도 성향에 따라 독립운동단체를 지원했습니다. 1974년 포르투갈의 제2공화국 독재정권이 카네이션 혁명으로 붕괴되고 들어선 신정부가 식민지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앙골라도 1975년 독립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독립전쟁을 주도하던 단체들끼리의 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앙골라의 독립 이후 앙골라에 거주하던 포르투갈 사람들은 모두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단체들이 식민지배 당시의 수탈을 주도했던 것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재산을 몰수했기 때문입니다. <망각에 관한 일반론>은 앙골라가 독립을 앞둔 시점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오데트는 앙골라의 상황이 나빠지면서 떠나자고 오를란두를 재촉하지만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일하는 오를란두는 버티기로 일관하다가 결국은 떠나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런데 떠나기로 한 전날 송별회에 참석했다가 두 사람 모두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바깥출입을 하지 않던 루도빌라는 언니와 함께 살던 아파트의 입구를 벽돌을 쌓아 막고 스스로를 격리해버렸습니다. 다이아몬드를 내놓으라고 찾아온 남자를 살해하여 텃밭에 묻은 뒤에 말입니다. 아파트의 14층에 시체를 묻을 수 있는 텃밭이 어떻게 있는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만 이야기는 그렇습니다.


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식량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텃밭에 채소를 키우고 노대에 날아드는 비둘기를 다이아몬드로 꼬여 잡아먹으면서 버티기를 30년을 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물이나 전기를 사용하는 비용을 어떻게 감당했는지도 의문입니다. 루도빌라가 스스로를 격리하고 지내는 사이에 루도빌라와 간접적으로 인연의 고리가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혼란스럽게 돌아가는 앙골라 사회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루도빌라가 살고 있는 집에 어린 소년 사발루가 무언가를 훔치러 들어왔다가 두 사람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면서 이야기가 발전해가고 루도빌라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의 이야기 끼어들게 됩니다.


이야기의 어디에도 기억이나 망각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성폭력, 배신, 살인, 고문 등 어두운 과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무시하기도 하지만 그 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합니다. 성폭력의 피해자인 루도 역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린 것입니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루도를 구원해준 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심과 사랑으로 충만한 꼬마 사발루였습니다. 끔찍한 짓을 반성하고 망각을 통하여 내적으로 성장해나간다는 것이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주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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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9 - 현제賢帝의 세기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9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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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9>현제의 세기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것처럼 네르바-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이어지는 오현제 시대 가운데 트라야누스(서기 98~117), 하드리아누스(서기117~138) 그리고 안토니누스 피우스(서기138~161) 황제의 치세를 다루었습니다. 오현제라는 용어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마사 논고>에서 티투스를 제외하면 혈연관계의 세습을 통해 제위에 오른 황제들이 모두 암군이었던 반면, 네르바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기까지 양자 관계로 제위에 오른 황제들은 모두 명군이었다.”라고 하면서 시작된 표현이라고 합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만약 누군가에게 역사상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했던 시기를 골라보라고 한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도미티아누스의 죽음부터 콤모두스의 등극 사이의 시기(오현제의 시기)를 고를 것이다하고 했다는데, 이는 로마제국의 시민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일 뿐 인류 전체로 범위를 넓혔을 때고 과연 그럴까 싶습니다.


그런데 시오노 나나미는 5현제 가운데 처음과 마지막을 제외하고 중간의 세 황제의 시기만을, 떼어 현제의 세기라는 부제를 달았을까? 그리고 세 황제 가운데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시대는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에게 할애한 분량의 6~7분의 1에 불과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의문입니다. 아마도 네르바 황제는 오현제에 포함하지만 제위기간이 짧고 번영의 세기를 열었다는 점에서 <로마인 이야기8>에 포함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번영을 구가한 시기였지만, 번영의 몰락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로마인 이야기11>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다섯 황제들 가운데 네르바를 제외하고는 트라야누스를 중심으로 한 친인척관계, 즉 같은 집안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제외하고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양자를 들여 제위를 물려주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제위를 물려받을 사람이 거대한 로마제국을 다스릴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를 잘 가늠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이 정체하면 썪는다.’는 자연의 섭리처럼 황금 같은 세월을 보낸 오현제의 시기에 앞서부터 쌓여오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싹이 보이던 문제점을 조기에 잘라내지 못했을 뿐더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콤모두스가 결정한 잘못된 정책이 더해지면서 로마제국이 걷잡을 수 없이 기울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요? 트라야누스 황제의 치세를 읽다보면 자식을 적게 낳으려는 로마제국 본국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알리멘타 정책을 내놓았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꽤 오래전에 시작되어 이제는 나라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른 우리나라의 저출산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라야누스 황제가 다키아, 요즈음의 발칸반도의 북쪽 지역을 로마제국의 영역에 포한시키기 위한 과정은 5월에 발칸반도 여행을 정리하면서 그 흔적을 뒤쫓아 볼 생각입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에 머문 시간보다 속주를 돌면서 불합리한 점들을 개선한 점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앙 해외여행을 하면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발길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칠리아의 에트나 화산도 그런 장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에트나에 오른 이유는 애트나에서 해돋이를 보려함이라고 했는데, “에트나 화산에서 바라보는 해돋이는 일곱 빛깔의 일출이라 하여, 고대에는 유명한 장관의 하나로 꼽혔다(313)”는 것입니다. 여행사를 통하거나 자유여행을 하더라도 보기 힘든 그런 장관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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