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질문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4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장영재 옮김 / 더클래식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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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과는 결이 다른 톨스토이의 단편들을 읽었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나와서 읽어보기로 했던 것인데 어느 책이었는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표제작 세 가지 질문을 비롯하여 모두 9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시대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탓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다는 생각입니다만, 당대의 독자들, 특히 노동자, 농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다면 세상이 잘 돌아갈까요? 한치 앞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사는 일이 재미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세 가지 질문무슨 일을 할 때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지궁금해진 왕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은사를 찾아간 왕은 고랑을 파는 은사를 도와주면서 해답을 얻게 됩니다. 그 답은 결국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루하루는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면 그것들이 쌓여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가질 수 있는,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주제는 하나님의 가르침이라고 보았습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영지에서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펼치는 등의 활약을 했다는 톨스토이는 주요 작품들을 집필한 뒤에 삶에 대한 회의에 빠져 정신적 위기를 겪기도 했다는데, 1880년 이후에는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단편들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러시아 정교라는 체계 안에서 규격화된 틀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단편 세 죽음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이 단편에서는 귀족 부인, 마부 그리고 나무 등 세 생명체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귀족부인은 병명이 분명치 않은 난치병에 걸려 모스크바에서 잘 알려졌다는 치료제를 써보거나 이탈리아로 요양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사업상의 이유로 궂은 날씨 등을 핑계로 결국은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마부 역시 역참의 마부 숙소에서 돌보는 이 없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특별하게 바라는 것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습니다. 나무의 죽음은 마부의 장화를 얻은 세료가가 세우기로 약속한 비석 대신 십자가를 만들기 위하여 잘라내는 바람에 죽음을 맞습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세 생명의 죽음을 두고 굳이 가치를 따질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등급을 매길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다만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맞는 사람이나 그러한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 역시 마음에 맺히는 바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귀족 부인이 이탈리아로 요양을 떠났더라면, 영약이라는 약제를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더라는 것입니다.

죄인은 없다라는 단편에서는 러시아의 귀족, 부자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부자들의 추악하고 나태한 삶은 이런 노예 같은 사람들의 끝없고 과도한 노동이 뒷받침되어야만 존재할 뿐이다. 또한 사모바르, 은제 접시, 마차, 기계,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만들기 위해 공장에서 쉼 없이 일하는 수많은 노예들도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107)” ‘촛불이라는 단편에 등장하는 마름 역시 농민들을 착취하는 인간으로 그려집니다. 재화의 분배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던 시절의 사회적 폐습으로 훗날 사회의 체제에 따라 급진적 혹은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나아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자들의 대화에 나오는 한 대목도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당신은 이미 멍에를 매었으니 짐을 끌어야 해요. 모든 남자는 자기 가족을 책임지고 먹여 살리기 힘들다고 느낄 때, 당신처럼 혼자서 어딘가로 훌쩍 떠나 자신의 영혼이나 구하고 싶다고 말하겠죠. 그건 정말 그릇되고 비겁한 일이에요.(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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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 - 되찾은 시간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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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2>를 새롭게 번역해서 내놓은 것이 20128월이었고 마지막 13권을 내놓은 것이 202211월이니 10년이 넘게 걸린 셈입니다. 추가 번역분이 나올 때마다 읽었으니 저 역시 마지막을 읽고 독후감을 마무리하기까지 12년이 걸렸습니다. 책읽기를 마무리하기는 했습니다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읽다보니 앞에 읽은 내용이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어서 다시 읽어볼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제가 참여하고 있는 고전독서회에서 7개월에 걸쳐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되찾은 시간2’의 독후감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투병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참석하지 못했던 게르망트 대공부인이 주최하는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과정에서 콩브레의 종탑에 관한 기억을 비롯하여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다시 솟구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문학작품의 모든 소재는 내 지나간 삶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마침내 작가로서의 길을 찾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자네는 몸이 아프지만 그래도 정신의 기쁨을 향유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자네를 동정할 수는 없을걸세라고 한 베르고트씨의 말에 공감하지 못한 것은 마르셀 스스로 글 쓰는 재능이 없어서 문학이 어떤 기쁨도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과거의 동일성에 의해서만 나타난 존재는 삶을 영위하고 사물의 본질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환경에서만, 다시 말해 시간 밖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라고 자각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프티트 마들렌의 맛을 무의식적으로 알아보던 순간, 왜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멈추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36)”


병약한 마르셀은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서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초시간적 존재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곱씹어보기도 합니다만, 마루셀처럼 초시간적 존재까지는 몰라도 제가 존재했었다는 흔적이 후세에 남아 있을까 생각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르셀은 예술작품만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깨닫게 되었으며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정리한 문학작품이야말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길임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제일 어렸을 적의 일들을 되짚어보기도 합니다만, 마르셀처럼 시시콜콜한 것까지 기억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옛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을 마르셀보다 훨씬 나이들어 해보려고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르셀은 자신의 모든 삶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쓸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스완 덕택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르셀은 되찾은 시간에서 이제 나는 늙음이 무엇인지 깨달았다.(134)’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마르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함께 지내던 분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죽음이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늙음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죽음이 내게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을 하거나,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는다는 것, 즉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 아닐까요?


자신의 긴 삶을 이야기하는 마무리단계에서 끝으로 이 시간의 관념이 가진 마지막 가치는 삶의 자극제라는 점이었다.(305)”라고 적은 부분을 생각해보니, 일찍부터 매 순간마다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이야기 같습니다. 물론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왔다고는 말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렇지 못한 나날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7개월간의 장정을 통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탐구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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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살아도 좋아
용수.박산호 지음 / 선스토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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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같이 일하면 좋겠다 싶은 과장님을 만나 설득하고 있습니다. 몇 년 동안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망설이고 계신 듯합니다. 사실 제 경우는 16년이나 현업을 떠나 있다가 복귀한 바 있습니다. 제 경우를 보더라도 다시 시작하셔도 잘 하실 수 있으니 힘을 내보시라고 격려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유비 현덕은 제갈량의 집을 세 차례나 찾아간 끝에 함께 하겠다는 뜻을 얻었다고 해서 삼고초려라는 사자성어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집까지 찾아갈 형편이 되지 못하니 결심이 설 때까지 식사를 모시면서 설득을 이어갈 요량입니다. 용수스님과 박산호 작가의 대담집 <이대로 살아도 좋아>는 그 분이 선물해주신 책입니다. 가톨릭 신자라고 하시는데 평소 용수스님의 말씀을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용수스님은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유타주립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2001년 우연히 달라이라마의 강의를 들은 것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달라이라마의 제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인도로에 갔다가 티베트 역경원의 창시자인 뻬마 왕겔 린포체를 만나 출가했다고 합니다. 남프랑스 티베트 불교선방, 화계사, 무상사 등에서 수행했습니다. 티베트 닝마파 한국지부인 세첸코리아를 설립하여 티베트불교를 한국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사회관계망에 꾸준히 글을 올리면서 독자들과 소통해오고 있는데, 스스로를 인간 되는 중, 착해지는 중, 스님 되는 중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용수스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살아도 좋아>는 스님이 사회관계망에 올리는 글을 본 출판사 선스토리의 대표께서 스님께 연락을 넣어 책을 만들어보자고 청했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으로 꾸며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박산호 작가와 함께 하면 더 현실적이고 풍성한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겠다하여 함께 하기를 청하였다고 합니다.


이리 하여 용수스님과 박산호작가님 그리고 출판사 대표님, 이렇게 세 분이 틈틈이 만나 나눈 이야기가 이 책으로 엮어졌다는 것입니다. 외로움, 분노, 질투, 수치스러움, 중독 등 용수스님의 사회관계망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감정들을 다루는 지혜를 나누었고, 그것들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이 책은 3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장은 사회관계망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2장은 부정적인 감정을 가라앉히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3장은 행복해지려면 죽음을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더라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큰 주제에 속하는 이야기 거리를 두고 박산호작가님이 용수스님에게 질문을 하면 용수스님이 답을 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됩니다. 1장에서 논의되는 사회관계망 활동에 관한 이야기의 핵심은 사회관계망 활동은 어쩔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어떻게 활동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20여 년 전에 누리사랑방을 운영하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방문객이 천만을 넘어 그 누리사랑방 무리 가운데 열손가락 안에 들기도 했습니다.


그 누리사랑방이 사라지고 새로 만든 누리사랑방은 상업적인 색채가 진한 까닭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그저 제가 쓰는 글들을 모아 관심을 주시는 독자들과 교감하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집착을 버리고, 다른 이와 비교하지 않는 평정심을 이루었다고 하겠습니다.


젊어서는 명예를 쫒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단속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친 뒤로는 그마저도 포기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요즈음에는 그저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그러려니 하면서 말입니다.


3장의 화두 죽음은 많이 공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작년에는 제가 암으로 진단받고 수술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역시 암으로 진단받아 내일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처음 암진단을 받았을 때는 바로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 또한 예정된 일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으니,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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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나라 경제툰 2 - 만화로 보는 금융위기의 역사 한빛비즈 교양툰 34
무선혜드셋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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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비즈의 교양툰 연작의 하나로 나왔던 <개미나라 경제툰; https://blog.naver.com/neuro412/222962179772>을 읽은 바 있습니다. ‘만화로 배우는 돈의 원리라는 부제처럼 개인, 가정, 사회, 국가, 국제 등으로 범위를 확대해가면서 돈과 관련된 주제들을 만화로 설명해서 경제와 관련하여 모호했던 개념들을 쉽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독후감을 마무리하면서 예감했던 속편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개미나라 경제툰(2)>만화로 보는 금융위기의 역사를 부제로 달아놓은 것처럼 한 나라의 경제활동을 휘청하게 만든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과정을 소개합니다.


<개미나라 경제툰>에서는 개미나라로 한정하여 경제를 움직이는 힘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는 지구촌이 긴밀하게 엮여 움직이기 때문에 한 나라의 경제에 발생한 위기상황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반대로 한나라의 경제 위기 상황을 여러 나라가 연대하여 도와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개미나라 경제툰(2)>에서는 개미나라에 더하여 별노린재, 꿀벌, 일본왕개미, 나비, 전갈, 딱정벌레 등 다양한 곤충왕국들이 등장합니다.


<개미나라 경제툰(2)>에서 다루고 있는 금융위기 상황은 그동안 여러 나라에서 발생했던 금융위기 상황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기 등장하는 곤충들이 어느 나라를 상징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개미는 미국을, 별노린재는 여러 산유국들, 일본왕개미는 일본, 그리고 나비는 우리나라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을 초래했던 기업들의 경우 실명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한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1970년대에 발생했던 석유파동을 다루었습니다. 1973년에 발생한 제1차 석유파동은 아랍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하는 과정에서, 1979년에 발생한 제2차 석유파동은 이란에서 혁명이 발생한 뒤에 국내정치의 불안으로 석유공급이 떨어지면서 발생했던 과정을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판기 안에 들어있는 주스를 석유에 비유한 것이 적절한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19871019(월요일)에 뉴욕증권시장에서 일어난 주가 대폭락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뉴욕증시의 폭락은 홍콩, 유럽, 호주, 뉴질랜드로 확산되었고 다시 뉴욕증권시장에 충격을 되먹이는 악순환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들어 호황을 누린 미국이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로 악화되면서 금융시장이 과열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월요일에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오던 일본경제가 무너지게 된 부동산 거품을 다루었고, 네 번째 이야기 외환위기는 우리나라에서 겪었던 일을 다룬 것 같습니다. 외환위기의 경우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등 몇몇 나라에서도 같은 상황을 겪기도 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이 개입하여 사태를 해결했다고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었기 때문에 국제통화기금이 만능이 아닐 수도 있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금반지 모으기와 같이 외환위기에 대한 국민적 대응도 소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한 관리로 인하여 2008915일에 발생한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는 바람에 미국의 경제가 휘청했던 사건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이야기 스탑게임은 발전해가는 과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세력에 대항하는 소액주주들의 방어작전은 발전한 누리망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싶기도 합니다.


사실 <개미나라 경제툰(2)>에서는 이미 지나가버린 상황을 해석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해석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도 없지 않을 것이며,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는 금융위기의 모형을 제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금융위기를 다룬 <개미나라 경제툰(2)>의 후속작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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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
승계호 지음, 석기용 옮김 / 반니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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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는 미국 텍사스의 오스틴대학 교양학부의 승계호 교수의 책입니다. 법학과 철학을 전공한 승계호교수는 문헌의 주제를 설명하면서 그 문헌의 문화적 주제의 모체, 즉 문화적 맥락에서 작동하는 주제들을 토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해석학에서 기호학과 주제학>에서 제기한 문화 주제학적 방법론이라는 것입니다. <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는 이와 같은 문화 주제학적 방법을 스피노자적 서사시의 탄생과 발전과정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작업에 적용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괴테의 <파우스트>,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의 주제를 낭만주의적 자연개념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원천이 되었던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토대로 해석했습니다. 저자는 1677년에 발표된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에서 고통 받는 영혼이 구원으로 나아가는 다섯 단계의 서사시적 여정을 설명했는데, 이 여정은 인간 실존의 보편적인 극의 스피노자의 도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파우스트나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지크프리트의 삶을 스피노자의 도식으로 설명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승교수가 괴테의 <파우스트>,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의 순서로 맥락을 이어간 점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1772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1832년에 완성이 되었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년에 시작하여 1885년에 완성되었으며, 그리고 네 개의 악극으로 구성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이 경우 1854년에 라인의 황금, 1856년에 발퀴레, 1871년에 지크프리트 그리고 1874년에 신들의 황혼이 완성되었습니다.


주요 활동이 시기로 보아도 괴테(1749~1832)-바그너(1813~1883)-니체(1844~1900)의 순서임에도 불구하고 바그너와 니체의 순서를 바꾸어 놓은 것은 바그너와 니체와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매료되어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녹여냈다고 하는데 음악가가 무슨 철학을?’하는 인식이 퍼지면서 바그너가 일방적으로 니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가 일반화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는 철학적 관점에서 세 작품을 해석하고 있어 이해는 물론 읽어내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머리말에 이은 본문은 모두 열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1~4까지는 괴테의 <파우스트>, 5~8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9는 괴테에서 니체로 이어지는 신비적 자연주의를 그리고 마지막 10은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의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앞서 이해는 물론 읽어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린 것은 600쪽이나 되는 방대한 내용이 일종의 독후감처럼 읽혀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특별한 대목에서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여 작가 나름대로의 해석 혹은 주석을 달아가는 방식이었는데, 그 정도가 방대하여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한참 만에 줄거리로 돌아오곤 하기 때문에 <파우스트><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이미 읽은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쫓아 가는 것도 힘겨웠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파우스트의 초입에 나오는 천상의 서곡에 나오는 관념이라는 단어를 영원의 영역에 있는 플라톤의 이데아(형상)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초월적인 존재자로 부활시켰으며, <판단력비판>에서는 이데아를 내재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파우스트>가 스피노자주의에 충실하면서도 괴테의 플라톤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파우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 개의 이야기들을 다시 읽은 다음 이 책을 다시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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