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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 여행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29
하인리히 하이네 지음, 황승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평점 :
저도 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여행기를 읽고 있습니다. <하이네 여행기>를 읽은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낭만주의의 마지막 시인이자 현대 독일 시의 선구자 하인리히 하이네의 대표작’이라는 설명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이네 여행기>에는 하이네가 1825년과 26년 여름, 북해의 동프리지아 군도에 속하는 노드러나이섬에 있는 휴양지에 머물렀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연작시 「북해1부」와 「북해2부」 그리고 산문 「북해3부」그리고 르그랑의 책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념들」을 담았습니다. 북해1~3부가 여행기라면 이념들은 잡다한 생각이나 상념은 물론 역사적, 정치적, 철학적 이념들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참고로 르그랑은 프랑스 혁명 사상을 북소리를 통해 매개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폭풍을 주제로 한 시와 산문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면 북해의 여름철은 날씨가 불순한 모양입니다. 또한 「북해2부」에서 특히 고대 신화를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유럽에서는 신화가 각계각층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 신들’이라는 제목의 시에서는 그리스의 신들을 비판하는 내색을 숨기지 않은 것이 놀랍습니다. 그 이유는 “왜냐면 그대들 옛 실들은 언제나 일찍이 인간들이 투쟁할 때 / 언제나 승자의 편만 들었기 때문이지. / 하지만 인간은 그대들보다 더 관대하니 / 신들의 투쟁에서 나는 이제 / 패해한 신들 편을 드는 것이다.(74-75쪽)”
저는 지난달에 지중해에 있는 시칠리아와 몰타를 여행했습니다. 북해와 지중해의 날씨는 분명 차이가 있을 터이나, 비오고 바람 부는 날씨는 별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시칠리아의 타오르미나에 머물 때 폭풍이 불었는데, 하이네의 시 ‘폭풍’에서 “우르릉, 휘익, 후드득, 윙윙, / 마치 소리의 정신병원 같구나!”라는 대목이 딱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언’이라는 시에서 “우악스러운 손으로 노르웨이의 숲에서 / 가장 높은 전나무를 뽑아 / 애트나 화산의 이글거리는 목구멍에 담갔다가 / 불구덩이에 적신 거대한 붓으로 / 캄캄한 하늘에 이렇게 쓴다: / ‘아그네스, 널 사랑해!’”라는 대목에 나오는 그 에트나 화산은 시칠리아 동해안에 있어 제가 머물던 숙소에서 빤히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몰타에 갔을 때는 해넘이를 보기 위하여 바닷가에 나간 적도 있습니다. ‘황혼’이라는 시에서 “태양은 고개를 한껏 떨구고 / 바다 위에 벌겋게 이글거리는 줄무늬를 드리우며 / 가로로 늘어선 하얀 파도가 / 거품을 물고 철썩이며 / 조류에 밀려왔네, 점점 더 가까이 -”라고 노래한 대목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북해3부의 산문은 바다가 대상인 1부나 2부와는 아주 다른 내용입니다. 시작은 섬주민 혹은 섬을 방문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다가 섬과 무관한 것으로 상념이 비상합니다. 고금은 물론 양의 동서를 넘나들면서 비판의 날을 세웁니다.
‘마담’이라는 특정하지 않은 여성에게 자신의 상념을 전하는 방식으로 쓴 「이념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산문이었습니다. 모두 20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 이 글들은 주제에 따라서 사랑(1~5, 16~20)-자유(6~10)-진리(11~15)로 구분하거나, 사랑(1~5)-소년시절과 프랑스 혁명(6~10), 검열과 당대 작가문제(11~16)-사랑(16~20) 등으로 주제에 따라서 나누거나, 주관적 체험을 다룬 사적 영역(1~5, 16~20)과 역사적, 정치적 문제와 문학적, 미학적 문제를 다룬 공적인 영역(6~15)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눈물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19장에 마음이 끌렸다는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