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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
조셉 M. 마셜 지음, 김훈 옮김 / 문학의숲 / 2009년 8월
평점 :
<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 역시 지난달에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읽은 책입니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 일이 밀린데다 코로나에 걸려 쉬는 바람에 독후감이 늦어졌습니다. 이 책을 쓴 조셉 M. 마셜3세는 미국 원주민으로 라코타 부족의 일원입니다. 교사이자 역사가이며 민간전승을 연구하는 민속학자이기도 합니다. 라코타 부족은 오하이오강 유역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으며 16세기 무렵에는 오대호 부근에서 살다가 다른 부족에 밀려 중서부의 대평원지역으로 옮겨갔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다코타 부족들이 주로 살던 사우스 다코타 주의 옆에 있는 미네소타 주에서 살았습니다. 서부를 여행하면서 원주민들의 문화를 볼 기회가 여러 번 있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라코타 방식(The Lakota Way)인데, ‘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는 이 책의 우리말 제목은 저자의 할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에서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백인 아이들과 입씨름을 벌이게 되었는데 백인 아이들이 원주민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는 바람에 분통이 터져 결국 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와 할아버지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말이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은 네가 그렇게 되도록 허용할 때만 그렇단다.”라고 하시면서 “바람 같은 그 말들이 너를 화나게 하고 자존심을 건드리게 하는 일이 없어 그냥 지나가게 하면 그것들은 네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할 거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남의 말에 크게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라는 라코타 원주민들의 현명한 생각을 가르쳐 스스로를 귀하게 생각하도록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실 20세기 말 쯤에는 미국이나 캐나나 등지에서는 인디언이라는 퇴출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 캐나다에서는 첫 번째 부족(First Nations)이라고 부르다가 최근에는 토착민족(Aboriginal People)이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스스로를 아메리카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다시 인디언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저 스처가는 바람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삶을 축복으로 바꾸는 라코타 인디언의 12가지 선물’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겸허함, 인내, 존경, 명예, 사랑, 희생, 진실, 연민, 용감함, 꿋꿋함, 너그러움, 지혜 등을 주제로 라코타 부족들 사이에 대대로 전해오는 살아가는 방식 열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제를 담은 전설이나 이야기들을 어릴 적부터 집안의 어르신으로부터 들어오기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읽어가다 보면 원주민의 이름이나 지명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름이나 지명을 자연과 흡사한 것들에서 고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저자만 해도 라코타 부족의 이름은 ‘들소가 사랑해’라고 합니다. 사실을 원주민들의 이름을 의미를 살린 영어로 옮긴 것을 우리말로 번역을 한 까닭으로 보입니다. 외래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원칙은 현지인의 발음에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코타 부족의 언어로 표기하는 것을 살려야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을 하나 적어두겠습니다. 일곱 번째 주제인 진실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기 시작하며, 그것은 결국 잘 산다는 것은 잘 죽는다는 것을 뜻한다. 죽음이야말로 모든 삶의 가장 참된 측정 수단이다”라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