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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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이 책을 쓴 한국계 미국인인 미셸 자우너는 인디 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가수입니다. 이 책은 미셸이 H마트라는 한인 잡화점에서 장을 보면서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되살린다는 내용의 수필을 <뉴요커>에 기고하여 수많은 독자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H마트는 한아름 마트를 줄인 것으로 미국 14개 주에 걸쳐 70여개의 가게가 영업중이라고 합니다. 이 가게예서는 만두피, , 뻥튀기, 조리퐁을 비롯하여 갖가지 밑반찬 등 한국 먹거리를 팔 뿐만 아니라 식당가에서는 뚝배기에 담은 찌개는 물론 떡볶이까지 파는 한국 음식 전문점과 탕수육, 짬뽕, 볶음밥과 짜장면 등 한국식 중식당이 있어서 그야말로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보물창고와 같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근무하던 미국 남자와 결혼한 엄마는 작가가 한 살 때 한국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오레곤 주의 유진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는데,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엄격하게 키웠다고 합니다. 자녀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미국 엄마들과 달리 딸의 외모, 화장, 옷차림, 공부 등 사사건건 간섭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엄마의 간섭에 딸은 저항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다만 먹는 것만큼은 한국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엄마의 간섭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동부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호사다마라고 엄마가 암으로 진단을 받게 됩니다. 유진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간병하기 시작했지만 엄마는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엄마를 잃고서도 엄마가 해주던 음식의 맛을 기억하는 작가는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서 기억만은 생생히 남았다. 이제 엄마를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라고 시작하는 <H마트에서 울다>는 작가의 절절한 사모곡인 셈입니다.


막내 이모가 대장암으로 타계한 2년 뒤에 이번에는 엄마가 췌장암으로 진단받은 것입니다. 평소에 배가 아팠는데도 병원에 잘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병은 때가 되면 낫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옛날 사람들 가운데 그런 분들이 많은 편입니다. 아마도 한의원이든 병원이든 가는 것이 쉽지 않던 시절을 살아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췌장암 4기로 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존율이 3퍼센트라고 했습니다.


대서양 연안의 필라델피아에서 공연을 하고 있던 그녀는 공연을 접고 태평양 연안의 유진에 있는 엄마에게 달려가 간병에 나섰습니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서울에 있는 이모를 만나 함께 제주로 여행하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작별하는 과정으로 생각한 듯합니다. 하지만 장거리 여행으로 한국에 도착해서는 입원을 해야 했고, 병세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유진으로 돌아가 남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는 카펜터스의 <비오는 날과 월요일, Rainy Days And Mondays>에 맞춰 첫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저도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비내리는 월요일 아침, 우울하고 쓸쓸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는 노랫말인데도 결혼식에서 들었다는 것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어떻든 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 결혼도 하고 간병도 한 그녀의 효심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얼마가 지나 엄마가 타계하였습니다. 아내를 잃은 아빠는 술에 의지하는 날이 많았지만, 그녀는 엄마를 생각하면 한국 음식을 만들고 노래를 지었습니다. 이 무렵 엄마는 간병하는 동안 고향집에서 만든 노래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악단 이름을 일본식 아침식사( Japanese Breakfast)라고 한 이유는 아마도 한류의 열풍이 불기 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H마트에서 울다>를 통하여 암환자를 간병하는 일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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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참 좋았더라 - 이중섭의 화양연화
김탁환 지음 / 남해의봄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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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광우병이 위세를 떨치던 2000년 무렵 유럽에서 수입된 육골분이 가축사료로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제1차 광우병파동이 일었습니다. 그 무렵 식약청에서 근무하던 필자는 일본에서 열리는 해면상뇌증 관련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받아 우리나라의 광우병 관리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발표 자료를 준비하면서 이중섭 화백의 소 연작을 살펴보게 되었고, 그 가운데 한 점을 자료에 넣어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이중섭 화백의 삶과 그의 작품세계를 뒤쫓은 김탁환 작가의 <참 좋았더라>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현대의 국내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김탁환 작가의 작품은 <혁명>을 비롯하여 여러 편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의 책 <읽어가겠다>의 독후감을 김탁환 작가님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라 할 만합니다.”라고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잘 읽히고 울림을 느끼는 그런 작품들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중섭 화백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참 좋았더라>는 제목처럼 참 좋았습니다. 역사소설의 대가라고 명성처럼 이중섭이 머물고, 걷고, 바라봤을 풍경을 뒤쫓아 전국 곳곳을 누비면서 현장을 취재하고 관련 인물들을 면담하고, 이중섭에 관한 자료를 검토하여 이야기를 엮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탁환 작가는 화가로서 진면목을 드러낸 때와 장소, 또 그와 같은 솜씨를 선보인 과정과 까닭에 천착했다.”라고 했습니다.


이중섭 화백의 삶은 기구했던 것 같습니다. 해방 전에는 부유한 집안의 배려로 일본으로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6.25동란으로 겨우 몸만 빼내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오면서부터는 어려운 생활을 영위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아내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과 두 아들(태현, 태성)을 외가인 일본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홀로 한국에 남은 그는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림으로 돈을 벌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 궁리를 하였지만 여의치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부산에서 고군분투하던 그는 통영의 공예가 유강렬의 초대가 가뭄의 단비였을 것 같습니다. 경상남도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에서 강사로 재직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시기에 이중섭은 공예가 유강렬, 화가 유택렬, 김용주, 최영림, 박생광, 시인 김춘수, 구상 등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수차례의 전시를 열었다. 당시 문인이나 예술가들과 어울리던 분위기를 보면 서양의 근대미술의 사조를 우리 전통예술과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하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통영에서 그의 수발을 든 남대일에게 가르쳐 줄 선생 잇구, 배울 교실 잇구, 아틀리에에 연필과 물감과 종애래 함깅도 말로 수두구리한데, 어케 여구메가 지옥이네? 하루하루 소중히 하라우.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아니라 턴국에서 보낸 한 철이니까니라고 미술수업에 전념하라 설득하는 모습을 보면, 강습소의 학동들에게 미학사를 가르치는 일도 소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해돋이보다는 해넘이에 의미를 두어왔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고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붉은 하늘을 그렸다. 지금까진 뜨거운 낮을 보내고 스러져가는 저물녘을 담으려 했다. 노을이 아무리 붉어도, 수평선 바로 아래엔 막막한 어둠이 뱀처럼 도사렸다. 허전하고 쓸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물녘을 동틀 녘으로 바꿨다. 시작하기 직전의 붉음이요, 점점 밝아지는 붉음이요, 채워가는 붉음이다. 몸도 마음도 차오를 때, 소의 뿔과 입술에도 힘이 실린다. 첫 숨을 토한다.”라는 대목 때문입니다. 하늘가의 붉음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우쳤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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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하게 산다 - 몸과 마음까지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상의 습관
오키 사치코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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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무렵에 나이 들어 잘 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방법들을 책으로 만들어보려고 준비를 시작했지만 막상 글로 옮겨 책으로 만들 정도까지는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아쉬워하는 부분입니다. 노후대책은 젊어서부터 제대로 해야 했는데 중도에 포기한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청소업을 창업한 일본의 오키 사치코씨가 쓴 <홀가분하게 산다>를 읽게 된 것도 어쩌면 나이 들어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를 배우겠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기 위한 비결은 일상 속의 습관에 있다고 말합니다. ,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을 지니지 않고, 단순하고 간편하게 살아간다는 것. 무슨 일이든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나를 둘러싼 세계가 바뀌고 눈앞에 충실하고 밝은 인생이 펼쳐져 몸과 마음이 스트레스에서 해방된다고 합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작은 습관들은 살아오면서 실패한 경험에서 배운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런 습관들을 모두 4개의 장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1장은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요, 2장은 지금을 성심껏 사는 습관, 3장은 물건을 줄이는 습관, 그리고 4장은 생활의 달인이 되는 습관 등입니다. 읽어보면 대부분이 쉬운 일이지만 막상 따라 하려면 쉽지 않은 구석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조그만 일에도 화가 솟구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내 잊어버리긴 합니다만, 그 순간에는 무언가 일을 저질러야 속이 시원할 것 같지만 결국은 참게 됩니다. 저자는 웃고, 울고, 화내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웃고, 울고, 화를 내면 스트레스가 사라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과장스럽게 소리 내어 울어도 스트레스가 눈물과 함께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라고 했는데 정말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인지 의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슬픔을 극복한다.’라는 글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이별의 슬픔이 점점 깊어지는 듯하다.’라고 적었습니다. 사실은 살아오면서 다양한 이별을 겪어왔기 때문에 나이가 들게 되면 이별에도 대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아무래도 저자는 저와는 약간 결이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젊어서는 체육관에 나가는 일도 회원가입만 했지 이래저래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았던 것을 반성(?)하면서 나이가 들어서는 적어도 주3회는 반드시 나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저도 금년 1월에 체육관에 등록을 하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만, 적어도 일주일에 6번 이상 나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근육도 붓고 피로한 느낌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나름 죽음에 대하여 생각을 많이 한다고는 합니다만,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생각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말하는 인생의 마지막 날에 무엇이 제일 좋았니?’라고 물으면어떤 말을 할까 지금부터라도 고민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청소업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청소와 관련된 많은 습관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습관적으로 자연스럽게 청소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만, 청소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면 오히려 정신적으로 압박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당하게 어지럽힌 상태에서 무심하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쉽게 말하면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과연 그럴까 싶은 부분도 없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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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35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 벌써 마흔이 된 당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 42
김혜남 지음 / 메이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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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기가 읽고서 좋았다면서 읽기를 추천한 책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57세가 되던 해에 출간했던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10만부를 돌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2022년에 제목을 바꾸어 내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정신과를 전공하는 의사로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작가가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을 썼을 때는 파킨슨병으로 투병을 시작한지 14년째 되던 해였다고 합니다. 퇴행성 신경계질환으로 도파민을 보충해주는 약제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삶도 세월이 흐르면 약제 내성도 생기고 파킨슨병과 연관된 치매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만, 심각한 합병증이나 부작용 없이 투병을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가끔씩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럭저럭 이겨낼 수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아팠기 때문에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해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을 출간하면서 그때까지 의무와 책임감에 따른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이든 다 잘해 내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방치해두었던 나 자신을 챙기며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년 뒤에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으로 개정판을 내게 된 셈이니, 재미있게 살아왔는지, 그래서 인생을 다시 살아볼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 책은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장은 30년을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면서 체득한 살아가는 방식을 소개합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장은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짚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장에서는 인생을 다시 살아볼 기회가 생긴다면 이렇게 살아보겠다는 희망을 담았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인생항로는 예행연습이 없는 외길이라서 시행착오와 수정할 기회는 있겠으나 과거로 돌아가서 새로운 항로로 나아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수시로 자신의 항로를 점검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변침하여 항로를 바꾸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옛날에는 한 우물을 파야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직장을 바꾸면 큰일 나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야 하는 일이 버거울 것이라고 예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변화를 한번 가져보면 새로운 환경에 대한 도전 정신도 생기고 바뀐 환격에 쉽게 적응하는 자신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작가는 사진가 앙리카르티에 브레송이 남긴 말을 인용했습니다. “나는 평생 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헤맸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하지만 삶이란 매순간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더 정확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인지 작가 역시 그래서 나는 완벽한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 삶에는 늘 빈 구석이 많았고, 그 빈 구석을 채우는 재미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나는 가고 싶은 길을 갈 것이다. 준비가 좀 덜 되어 있으면 어떤가. 가면서 채우면 되고 그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인 것을.(32)”라고 말했습니다.


작가의 이야기 가운데 더 이상 과거가 당신의 현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를 덮고 있는 과거의 무거운 이불을 걷어 내고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이다. 과거가 고통스러웠다고 해서 현재까지 고통스러워야 하는 법은 없다. 과거가 고통스러웠다면 그것을 잘 지나 온 당신을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79)”라는 대목이 가장 공감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손에 잡힐 듯한 무언가가 생겼습니다. 아마도 욕심을 내려놓았다는 대목이지 싶습니다. 제 경우는 꽤 오랫동안 욕심에 붙들려 어려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내려 놓는다는 것에 대하여 고민을 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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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더 기묘한 미술관 - 하나의 그림이 열어주는 미스터리의 문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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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에 읽는 밀리의 서재는 한 편의 책을 읽는데 시간이 꽤나 걸립니다. 독후감을 쓰는 것도 종이책에 비하면 다시 살펴 읽을 곳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단점이 있습니다.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 진병관의 <더 기묘한 미술관>을 밀리의 서재에서 발견하고 읽었습니다.


파리에서 16년을 살아온 작가는 수천번에 걸쳐 파리의 미술관을 섭렵해왔는데 코로나 유행이 심각해지면서 미술관이 폐쇄되자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기묘한 미술관>의 출간에 이어 <위로의 미술관>, <더 기묘한 미술관>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는 명화 뒤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이 책들에서 풀어놓았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익숙하게 보았던 그림들이 다시 낯설고 새롭게 느껴지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취향의 방, 지식의 방, 아름다움의 방, 죽음의 방, 비밀의 방 등으로 구성했던 <기묘한 미술관>과 같은 형식으로 <더 기묘한 미술관>에서는 운명의 방, 어둠의 방, 매혹의 방, 선택의 방, 기억의 방 등으로 구성하였습니다. 다섯 가지의 주제에 걸맞는 화가의 작품을 앞세웠지만 연관이 있는 다른 화가의 작품들도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기묘한 미술관>에서 다루었던 그림들의 상당수는 어디선가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던 것 같습니다만, <더 기묘한 미술관>에서는 처음 보는 그림이 많고 생소한 화가들도 많아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래서 작가 역시 전작에서 비교적 대중적인 작품을 주로 다뤘다면 <더 기묘한 미술관>에서는 잘 알려진 화가의 숨겨진 이야기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의 새로운 이야기같이, 흥미롭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을 소개하려 했다.”고 합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화가의 경우 화가의 삶을 뒤쫓고, 작품을 그리게 된 배경 등 명화들을 소개하는 해설서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라갑니다.


아르놀트 뵈클린의 <죽음의 섬>에 얽힌 이야기는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올 봄에 몬테네그로의 코토르 인근에 있는 페라스트를 여행하면서 그곳에 있는 성 조지 섬이 뵈클린의 <죽음의 섬>에 영감을 주었을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죽음의 섬>은 같은 주제로 다섯 점을 그렸으며 판화로도 제작되어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르놀트 뵈클린을 소개하는 그림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죽음과 자화상>입니다.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뒤편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해골이 서 있습니다. 해골은 죽음을 상징하는데, 해골이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바이올린에는 오직 G현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흔히 G선상의 아리아라고도 하는 바흐의 모음곡 3BWV 1068 2악장 ‘Air’가 아닐까요? 이곡이 G현만 사용한 것은 독일의 바이올린 연주자 아우구스트 빌헬르미가 편곡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음악 이야기는 그렇다 치고도 의학이 발전하기 이전, 죽음은 흔한 일이었다. 죽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기에 죽음을 노래하고, 그리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일상에서 죽음에 관해 이야기 나누지 않는다. 타인의 죽음에 관해 안타까워하는 일은 있어도, 나와는 관계없는 일처럼 터부시한다. 하지만 뵈클린의 그림은 죽음이 멀지 않고, 언제가 나에게도 다가올 것이며,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묻는다.”라는 대목은 인상적입니다.


파블로 피카소가 1897년에 그렸다는 <과학과 자비> 역시 언젠가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16살이 되던 해에 마드리드에서 열린 미술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그렸다는 정도의 설명에 그치고 있어 조금 아쉬웠습니다. 현대미술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 <아비뇽의 여인들>과는 전혀 다른 사실적인 분위기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죽음을 앞둔 환자를 두고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인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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