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눈물 - 조선의 만시 이야기
전송열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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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섭렵하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의 눈물>이라는 제목에서 우리네 선조들의 눈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려니 하는 짐작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문학 특히 한문으로 되어 있는 우리의 고시문학은 한문뿐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 등의 역사,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지 않으면 시에 담긴 깊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20여년을 조선시대 시문학에 천착해온 전송열교수님의 자상한 해설을 곁들인 우리 고시조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조선의 만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옛사람의 눈물>에는 모두 35편의 만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잘 알려진 허난설헌과 남씨부인이라는 두 사람의 만시를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남성들의 작품입니다. 나머지의 대부분이 남성 사대부들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조선 사대부들은 함부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교육을 받아왔다고 알고 있던 저로서도 생각지 못한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죽은 자를 애도하여 지은 시를 만시(挽詩)라고 한답니다. 요즘으로 치면 추모시가 될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사대부 정도가 되면 상갓집에 갔을 때 문상은 당연한 것이고 이승을 떠난 고인을 기리는 만시 한편 정도는 남겨야 예의였다고 하니 문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전송열교수님은 책 속에는 아내를 위해 지은 도망시(悼亡詩), 친구를 위한 도붕시(悼朋詩), 먼저 간 자식을 위한 곡자시(哭子詩) 외에 스승과 제자, 선배, 심지어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종을 위해서 지어진 만시, 나아가 자기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기린 자만시(自輓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만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를 쓴 분 그리고 그 시의 대상이 된 분의 삶과 죽음의 배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고 있어 만시에 담긴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야기 거리에 걸 맞는 서화 혹은 도자기 등의 자료를 인용하여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송열교수님의 죽음에 대한 시각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이 있다면 아마 죽음일 것입니다. 죽음은 결코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 죽음을 ‘공도(公道)’라고 했습니다. 즉 ‘누구든지 다 똑같이 가는 길’이란 말입니다. 그것은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온갖 모순이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그런대로 불평할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죽음일 것입니다.(87쪽)” 어찌 보면 죽음에 있어서도 있는 대로 사치를 부리는 풍조는 죽음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한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말씀을 새기다 보면 담담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경지에 절로 오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시를 통하여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엿볼 수 있었는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경향을 보이는 자만시(自輓詩)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극한 상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내와 자손에 대한 슬픔은 더욱 곡진한 것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인 탓일까 싶습니다만, 전송열교수님이 엄선한 만시들 가운데 부모에 대한 슬픔을 담은 사례가 없다는 점이 조금은 의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교수님이 고르신 모든 만시에서 극진한 슬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만, 추사 김정희선생이 제주에 유배 가있는 사이에 세상을 하직한 아내를 위한 만시를 소개합니다.

뉘라서 월모에게 하소연하여

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

천 리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크게 상심한 나머지 건강까지도 잃게 되는 경우를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선친께서 세상을 하직하셨을 적에 장례를 주관하시는 스님께서는 애도는 하되 곡을 크게 하지는 말라 권하셨습니다. 가족들이 지나치게 슬퍼하면 저승으로 떠나야 하는 영가께서 발길을 떼지 못하고 구천을 방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눈물로 슬퍼하는 과정은 통하여 고인에 대한 애닮픔이 점차 희석되고 살아있는 사람의 기억 안에서 영원한 삶을 얻게 되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전교수님의 중국의 시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국의 시는 크게 송시(宋詩)와 당시(唐詩)로 나뉘는데, 둘은 시적 분위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당시가 ‘보여주는 시’라면 송시는 ‘말하는 시’라고 하고, 또 당시가 ‘가슴으로 쓴 시’라면 송시는 ‘머리로 쓴 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연 당시는 묘사적이요 서정적인 경향을 띠는 반면에 송시는 사변적이요 설리적이 됩니다.”

전교수께서 유일하게 인용하고 있는 현대시가 한 수 있습니다. 바로 천상병시인의 귀천(歸天)입니다. 바로 ‘막설인간만시비’라는 제목으로 된 절입니다. 여기에는 방상이 죽은 조광조를 위로하고 나무라는 ‘인간 세상 부질없는 시비일랑 논하지 마세나’와 이용휴가 일찍 져버린 유서오의 죽음에 다섯 수의 시를 적은 ‘오십삼년 동안을 빌려 썼구려’라는 제목의 글을 두고 있습니다. 세상에 나와 천명으로 주어진 일을 다하고 나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일진데 제 몫이 아닌 일까지 이루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하릴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관심으로 심노숭이 썼다는 「누원(淚原)」즉, 눈물의 근원이라는 글입니다.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마음에 있는 것인가?”하는 글로 시작하는데 우리 몸에 대하여 기능적으로 접근하는 서양적 시각과는 달리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35편의 만시를 나누어 담은 21개의 글제목을 별다른 해설없이 원문없이 한글로 차음해놓은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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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
데이비드 H. 프리드먼 지음, 안종희 옮김 / 지식갤러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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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의 전문가들의 대공방이 있은 뒤로 전문가들의 주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관한 책을 집중적으로 읽어오고 있습니다. 과학 및 기업분야의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프리드먼의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는 “전문가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의 말을 언제 믿어야 할까?”라는 극단적인 화두로 시선을 끌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우리는 따르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잘되리라고 약속하는 과학자, 경제학자, 의사, 경영의 대가, 심리학자, 그 외 여러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사실, 이런 혼란의 큰 책임은 이런 전문가들에게 있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견해를 조금 달리해서 이런 혼란의 큰 책임은 이렇듯 거짓말을 파는 전문가들의 말에 쉽게 넘어가는 귀가 얇은 사람들의 책임이 더 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전문가들이 전하는 조언을 되새겨 사실여부를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저자가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을 마치 사기꾼으로 몰기보다는 왜 전문가들이 오류에 빠지는 지, 그리고 우리가 더 신뢰할 만한 전문적인 조언을 찾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먼저 전문가들이 함정에 빠지는 패턴을 6가지로 구분해놓았습니다. 편견과 부패, 비합리적 사고, 청중에 대한 고려, 능력 부족, 감독의 부재, 그리고 자동적인 대응입니다. 이런 분류에 해당되는 다양한 사례들을 적절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때로는 사례가 안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부풀려 독자들의 반응을 끌어내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짧은 발레용 치마를 입은 쥐가 인간 발레리나와 같지 않은 것처럼 뇌에 프라그가 축적된 쥐는 인간의 알츠하이머 환자와 같지 않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80쪽)”와 같은 표현입니다.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거나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질병을 잘 표현하는 동물모델이 있으면 쉽고 안전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이 인간이 될 수 없듯이 동물모델 역시 인간의 특성을 정확하게 나타낼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의학자들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인간의 질병과정을 잘 나타내는 모델을 개발하기 위하여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붙고 있는 것이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한계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인데 이런 과정을 모두 쓸모없는 헛짓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2장에서는 과학자들이 실수로 혹은 일부러 저지르는 잘못의 종류를 나누고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사항에 대한 측정, 잘못된 자료의 측정, 잘못된 동물시험 연구, 원하지 않는 자료의 폐기, 골대 이동, 교란변수, 숫자조작,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오류 등 과학자들이 들으면 오금이 저리는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전문가들이 전문가에게 기대하는 조언은 명쾌함, 확실성, 보편성, 낙관성, 실행 가능성, 호감도, 파격적인 주장, 이야기, 숫자, 회고적 관심 등 열가지 특징을 담아야 한다고 합니다. 반면 저자는 4장의 대중의 어리석음이 안고 있는 문제점의 분석에 대한 관심은 다소 인색한 것 아니었는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예시한 “다수의 관점이 옳은 관점을 이긴다(138쪽)”는 부분에는 2008년의 사례를 보았을 때 크게 공감합니다.

저자가 인용한 사례들 가운에 우리나라의 사례는 황우석교수 사건이 유일합니다만, 만일 제가 이런 종류의 책을 쓴다면 인용할 우리 사례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연구부정을 방치한 볼티모어사건(166쪽)의 경우와 꼭닮은 생동성시험결과 조작사건 등에서 연구원들이 지도교수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사회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편없는 연구를 보증하는 전문가 리뷰(172쪽)의 경우도 경험이 있습니다. 독성관련 전문잡지로부터 리뷰를 요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검토한 끝에 게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검토의견을 적어서 보냈는데, 뒤에 들으니 또 다른 리뷰어로부터 의견을 받아서 게재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어냈다고 합니다. 높은 성과를 달성한 기업에서 배울 경영 경영교훈은 없다(196쪽)에서 인용하고 있는 도요타와 GM사이의 순위가 최근에 바뀌었다는 사실에서 옳은 지적이라 공감합니다. 리콜에 소극적이었던 도요타 자동차가 결국은 하위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 요즘 상황입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신뢰하기 어려운 전문가 조언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1. 단순하고, 보편적이고, 확정적인 경우. 2. 단 한 건의 연구 또는 많지만 소규모로 이루어졌거나 부주의한 연구 또는 동물실험 연구에 근거한 경우. 3. 연구 결과가 획기적인 경우. 4. 사람들이나 기관이 어떤 조언을 하면서 받아들이면 유익하다고 설득하는 경우. 5. 최근의 큰 실패나 위기가 장래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둔다는 조언들.을 들고 있습니다. 또한 무시해도 좋은 전문가 조언의 특징으로는 1. 그럴듯하고 좋게 들릴 경우. 2. 도발적인 경우. 3. 적극적인 관심을 많이 받을 경우. 4. 다른 전문가들이 조언을 받아들인 경우. 5. 권위있는 저널에 발표된 경우. 6. 대규모의 엄격한 연구에 의해 지지를 받는 경우. 7. 전문적인 조언을 지지하는 전문가가 자신의 훌륭한 자격을 내세울 경우. 등이라고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뢰도가 더 높은 전문지식의 특징으로 1. 다른 경보기를 작동시키지 않는다. 2. 부정적인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3. 연구의 제한사항을 많이 제시한다. 4. 연구 결과에 반대되는 증거를 솔직하게 밝힌다. 5. 연구의 배경을 제공한다. 6. 연구결과에 대한 해석을 제시한다.솔직하고 직설적인 논평을 싣는다. 등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독자들은 저자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사례인용을 통하여 그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족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만, 제 전공분야이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그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퀴즈쇼”라는 제목으로 인용하고 있는 사례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사례검토회입니다. 국내에서도 이 사례들을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의과대학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례회에서는 해당 사례의 주치의를 비롯하여 토론자로 나서는 유명한 임상의사들 모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사례토의를 통하여 진단이나 치료과정에서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이런 경험이 임상에서 인용되는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되는 것인데, 이를 “퀴즈쇼”라고 희화한 저자에게 제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는 제 리뷰를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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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미래 - 인류의 미래에 관한 눈부신 지적 탐험
데이비드 오렐 지음, 이한음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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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류의 미래에 관한 눈부신 지적탐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데이비드 오렐박사의 <거의 모든 것의 미래>를 읽게 된 것은 최근 들어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기상이변과 화석연료의 한계 등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예측에 힘을 얻어가는 것 같아서입니다. 데이비드 오렐박사는 캐나다 앨버타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예측모형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일기예보가 자주 빗나가는 것은 혼돈(나비효과) 때문이 아니라 날씨예측 모형 자체의 오류 때문으로 나비효과가 일기예보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미미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여 기상학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오렐박사는 모형오류 논쟁을 계기로 예측과학 전반에 관심을 갖게 되고, 예측이 가장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영향력이 가장 큰 날씨, 건강, 경제의 분야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하는 이슈를 집중적으로 검토하여 그 결과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그가 세 분야에서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 까닭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상예보는 질병이나 경제예측과 거의 무관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이 세 분야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세 분야는 종종 서로 영향을 미치므로, 예측은 본질적으로 전체론적인 일이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폭풍우가 미치는 영향은 지상의 조건들에 의존하며, 엄청난 경제적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 또 이 세 종류의 예측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며 공통의 기원을 갖는다. 점성술이 바로 그것이다. 점성술은 출생이라는 생물학적 사건이나 수확하기에 좋은 날씨라는 기상학과 경제적 사건을 행성들의 운동과 연관을 짓는다.”

오렐 박사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제1부에서는 예측과학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현대의 예측가들은 고대 그리스부터 내려오는 물리적 우주의 모형화라는 오랜 전통을 이어받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예측가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한몫을 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제2부에서는 날씨, 건강, 부라는 구체적인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예측활동을 살펴보고, 오늘날 예측을 본업으로 삼는 과학자들이 쓰는 기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3부에서는 이 별개의 흐름3들이 어떻게 지구의 장기예측으로 통합되는지 안내하고 구체적으로는 2100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예측하고 있습니다.

오렐박사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1. 수학모형은 세계를 단순한 기계적 용어로 해석한다. 2. 생물은 예측을 벗어나는 특성을 지닌다. 3. 예측에는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4. 그래도 여전히 가능한 예측도 있다. 5. 우리는 예측에 대한 접근방식을 바꿔야 한다.

저자의 결론을 먼저 인용한다면, 오렐박사는 “지금까지 개발된 수학모형은 대기, 생물, 경제 계의 정확한 예측을 내놓는 데 계속 실패해왔다. 모형은 미래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수학모형이 세계의 문제를 규명하거나 현재를 이해하는 데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 수학모형은 언제나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모형도 세계를 이해하고, 우리의 사고를 조직하고, 서로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모형은 가상의 실험을 수행하고,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살펴보며, 약점을 드러내는 일을 돕는다. 무엇보다도 모형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고 정리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재의 수학모형으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따라서 지구온난화를 우려하는 그룹이나 이에 대하여 회의적인 그룹의 주장이 모두 틀릴 수 있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다만 오렐박사가 인용하고 있는 모아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스터섬과 솔로몬제도 근처에 있는 티코피아섬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실을 배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두 곳 모두 사람이 정착하기 전에는 숲이 우거지고 다양한 동물과 물고기가 풍부한 아열대 낙원이었다고 합니다. 이스터섬에 정착한 사람들은 모아이를 세우기 위하여, 농경지를 만들기 위하여, 혹은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나무를 베어냈는데 결과적으로는 섬에서 숲이라곤 찾아볼 수 없게 되어 전성기에 1만명에 이르던 인구가 유럽사람들이 찾았을 때는 2000명에 불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반면 티코피아섬에서는 사람들이 정착한 이후 섬에 있는 자원들이 줄어드는 상황에 이르면서 지속가능한 생활양식의 혜택을 누리는 방향으로 전환하여 출산과 식량소비를 규제하는 금기들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티코피아는 여전히 예전과 같은 수준의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1990년대에는 인간광우병으로 수백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우려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사망자 수가 훨씬 낮다는 추정값이 나왔다.(387쪽)”는 인용부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목에 관한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 <거의 모든 것의 미래>가 마치 우리네 삶의 모든 것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묘안이 담긴 것처럼 느껴집니다만, 원제는 <Apollo's arrow; The Science of Prediction and the Future of Everything>입니다. 원제의 부제를 제목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아폴론의 화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졌는데,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아폴론의 화살은 미래로 날아가거나 전염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는 없다. 그러나 위험을 가리키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서 우리가 항해하도록 도와주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어 예측과학이 우리의 미래를 정확하게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안내할 수는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렐박사는 아폴론의 화살에 숨은 이야기를 따로 전하고 있습니다. 아폴론이 젊어 혈기방장하던 시절 거대한 뱀 피톤을 만났을 때 피하지 화살 한통을 다 쏘아 죽였는데,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딸 피톤을 죽인 행위를 배상하기 위하여 8년 동안 소몰이꾼으로 봉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델포이로 돌아와서는 가이아의 신탁을 탈취해서 예언의 신이 되었는데,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태어났을 때 아폴론의 신전에서 ‘지금까지 살았던 어느 누구보다도 외모와 지혜가 뛰어난 자’라는 신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피타고라스는 아폴론신을 섬기는 히페르보레오이족의 아바리스로부터 아폴론이 지녔었다는 신성한 화살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폴론의 화살은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어 장애물을 넘게 해주고, 전염병의 확산이나 독을 정화하는 능력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마법의 힘이 예측수학에 깃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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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시계 -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매혹적인 심리 실험
엘렌 랭어 지음,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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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동안(童顔)을 주제로 한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흔히 동안은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안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에서도 적지 않은 나이를 속여 디자인회사에서 일하게 된 주인공의 나이를 의심하는 동료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낙천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많이 늙었으면 속으로 마음고생이 많았나보다 싶습니다.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습니다만, 우리나라 경제가 위축되면서 명예퇴직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여 한창 일할 사람들이 일터에서 물러나는 사태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없이 일할 때는 거울들여다 볼 시간도 없었지만, 일없이 집에 있게 되니 하루하루 늘어가는 주름이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된다고들 합니다. 아무래도 현업에서 물러나게 되면 자신이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고 집안에서의 위치도 점점 뒷켠으로 물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때부터 나이를 먹는다는 느낌이 몇배나 빨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시계>는 바로 엘렌 랭어박사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심리실험의 결과를 토대로 생각의 활기는 물론 몸의 활력도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실험을 통하여 증명해 보이는 책입니다. 실험은 요양원에서 지내는 노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의 노인들은 매사를 스스로 결정하여 행동을 하도록 하였고, 또 다른 그룹은 관례대로 요양원 직원들의 돌봄으로 피동적으로 받도록 하였더니 1년 6개월이 지난 다음 첫 번째 그룹의 노인들이 더 쾌활하고 활동적이며 민첩해졌다는 사실을 확인한데서 출발한 것입니다. 신체적으로도 더 건강해졌고 심지어는 사망률 역시 절반에 미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실험은 1979년 9월 뉴햄프셔 주의 피터버러에 있는 오래된 수도원을 다시 단장해서 1959년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하여 진행되었습니다. 모두 8명의 노인들이 인터뷰를 통해서 선정되었는데, 4명은 1959년의 시간에 맞추어 마치 당시에 사는 것처럼 현재진행형으로 생활하였고, 다른 4명은 20년 전인 1959년을 회상하면서 1주일을 생활하여 생활태도를 비롯하여 신체활력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비교해보는 실험이었습니다.

노인들은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이 발사되는 장면을 흑백텔레비전으로 지켜보고, 카스트로의 아바나 진격과 공산주의 등 1959년 당시의 시사적인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냇 킹 콜의 노래를 듣고 옛날 영화를 보았습니다. 가족이나 간병인의 도움없이 무엇을 먹을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요리와 설거지, 청소 등 그간 배려하는 이름으로 해보지 못했던 육체활동을 하면서 꼭 1주일을 보냈습니다. 그 결과는 20년 전의 세상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1주일을 보낸 노인들 대부분 스스로도 젋어졌다고 주장했으며 시력과 청력, 기억력, 악력이 향상되고 체중이 늘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걸음을 내딛기가 힘들었던 한 노인은 지팡이를 집어던지고 꼿꼿한 자세로 걸었으며, 연구원들과 미식축구 경기를 즐기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20년 전을 회상하는 그룹보다도 20년 전의 시간에서 살아낸 그룹이 뚜렷한 차이를 보여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엘렌 랭어박사는 이 실험 이외에도 자신의 연구성과들은 물론 다른 이들의 연구결과도 적절하게 인용하여 삶의 질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사실, 우리가 현대의학의 성과에 지나치게 매여 살고 있다는 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실험에서는 실험자의 가설에 부합하지 않는 피험자는 데이터상 달갑지 않은 잡음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내계는 그러한 예외의 경우가 오히려 연구의 초점이 된다.(33쪽)”와 같은 부분입니다.

하지만 의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옹호한다면 현대의학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은 통계학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 큰 동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개별사례는 통계적 처리 안에서 묻히게 되는 것입니다. 랭어박사의 주장처럼 의학의 큰 틀에서 벗어나는 독특한 사례에 주목할 필요도 있겠지만,아직까지는 개별사례에 주목하여 별도로 다루는 것을 일반화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발전하고 있는 유전공학 영역에서는 유전자수준에서 개별적 접근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사소한 것입니다만, 저자가 연구성과를 인용하는 경우 그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의 이름을 모두 거명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입니다. 학술논문에서도 대표저자만을 인용하는 것이 관행인 점을 고려한다면 읽기에 번잡하더라는 느낌을 전합니다.

<마음의 시계>를 읽게 되면 자신의 삶에 대한 또 다른 눈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네 가지가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에 언제나 똑같이 반응할 수도 있고, 같은 것에 달리 반응할 수도 있으며, 같은 것에 같은 방식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다른 것에 다르게 반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하지 않는 점은 비슷하고 다름을 결정하는 장본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그렇습니다. 동안을 얻기 위하여 보톡스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과 생활태도를 선택하는 것이 뜻하지 않은 부작용도 피하면서 효과 역시 빠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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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 빠르게 나빠지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같이 생활하는 사람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이 평소와 달라진 점을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제가 처음 치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1990년 즈음에만 해도 국내에서 참고할만한 책도 별로 없었지만 이제는 치매에 관한 전문서적 뿐 아니라 일반대중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쓴 책도 많이 나와 있고 치매환자를 돌본 분들이 환자를 지켜보면 쓴 책들도 적지 않게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하버드대학에서 신경학을 전공한 리사 제노바박사의 소설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는 지금까지 나온 치매관련 서적과는 전혀 다른 치매환자의 시각에서 알츠하이머병이 시작해서 진행되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식한 2003년 9월부터 2005년 6월까지 매월 한달 동안 진행된 치매증상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2005년 여름 다음에는 2005년 9월까지 건너 뛰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화자는 하버드대학에서 인지심리학교수으로 재직하는 언어학의 권위자 엘리스박사입니다. 그녀의 남편 존은 역시 하버드대학에 근무하는 생물학교수로 왕성하게 연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앨리스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방향감각 상실, 정신 혼란, 기억력 쇠퇴 등입니다. 쉰살에 불과한 주인공은 자신의 문제가 갱년기증상일 것으로 짐작하지만 막상 정밀검사에서는 초기단계의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받게 됩니다. 최근에 나온 연구결과에서는 앨리스처럼 60세 이전에 증상이 나타나는 조발성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경우 기억력이 멀쩡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213825).

이 책의 독자들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심리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치매는 초기부터 모든 증상이 나타나서 꾸준하게 나빠지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증상이 파도를 타는 식으로 나빠졌다가 좋아지는 식으로 조금씩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초기 치매환자가 자신의 치명적인 병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뉴스에 소개되기도 합니다. 또한 치매 환자는 초기에 자신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증상을 감추고 진단을 위하여 병원에 가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선친께서도 돌아가실 무렵에 초기 단계의 치매증상을 알게 되었는데 사실은 2~3년 전에 산책가셨다가 길을 잃은 사고가 있으셨다는데 부모님 모두 이를 감추셨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치료약을 드셨더라면 증상이 천천히 진행되었을 것인데 많이 아쉽습니다.

책에서 잘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현재로는 사망 전에 알츠하이머병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방법은 개발되어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만 MRI 등과 같은 영상검사를 비롯하여 혈액검사, 심리검사 등을 증상과 같이 종합판단하여 진단을 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은 앨리스박사의 진단이 결정되는 과정에 잘 언급되어 있습니다.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은 증상이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지만 젊은 나이에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생존하는 기간은 길다고 합니다.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은 약 10% 정도 차지하고 65세 이전에 발병하는데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앨리스박사 역시 큰 딸이 유전적 성향을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져 가족들의 걱정거리가 됩니다.

앨리스박사의 경우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연극을 공부하는 작은 딸과 갈등을 빚어왔지만 투병과정에서 작은 딸의 연극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고 작은 딸과의 만남을 통해서 투병에 도움을 받게 됩니다. 치매환자는 아무래도 간병하는 사람이 거의 24시간 지켜봐야 안전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들의 부담이 매우 큰 병입니다. 따라서 간병의 부담을 나누고 배회증상이나 변실금과 같이 가정에서 간호하는데 한계가 있는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 경우에는 요양전문기관에 맡기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는 것이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

제가 맡고 있는 요양기관의 평가사업에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조기진단을 권장합니다. 의사들이 40대와 50대 환자들의 기억력 및 인지장애를 단순히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폐경기 증세로 진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확한 진단을 빨리 받을수록 빨리 약물치료를 시작하여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이 진행되지 않는 정체기를 길게 유지시켜 더 나은 치료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완치가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325쪽)”

두 가지 안타까웠던 부분은 자신의 병을 알고나서 자신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순간에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려던 앨리스박사의 결정(349쪽)은 잘못된 것이었다는 점과 앨리스가 주도하여 조발성 알츠하이머병 환자들만의 모임을 만드는 부분입니다. 통상은 알츠하이머병은 간병하는 분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여 도움을 받기 위하여 결성하는 자조모임입니다만, 환자들이 만나 서로의 어려움을 나눈다는 발상은 상황에 따라서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책의 저자인 리사 제노바 박사의 경우 할머니가 치매를 앓았고, 번역을 맡은 민승남님 역시 어머니가 치매를 앓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 역시 선친께서 치매증상이 있으셨고, 치매의 진단영역을 공부한 바가 있으니 공감이 많이 가는 책입니다.

뇌신경분야이기 때문에 전문용어가 많아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번역이 깔끔하게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목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Still Alice>라는 원제는 치매증상으로 무너지고 있지만 그래도 앨리스박사는 여전히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라고 정한 번역서의 제목은 치매환자의 주된 증상인 기억력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점을 잘 반영한 제목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블랙베리>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을 전자사전으로 소개하고 있는 점이 거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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