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우스터리츠 을유세계문학전집 19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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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책과는 다른 형식의 책을 읽었습니다. 독일 작가 제발트의 소설 <아우스터리츠>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아마도 작가일수도) 화자가 벨기에에서 만난 영국의 건축사가 아우스터리츠를 처음 만난 뒤로 가끔씩 만나서 들은 그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화자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듯하다가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라고 서술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화자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대목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이야기가 시작되는 대목에는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서 아우스터리츠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이라거나,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아우스터리츠를 만나는 과정은 화자의 시선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안트베르펜의 녹투라마 동물원이아 안트베르펜 중앙역의 모습을 서술하는 것을 보면 화자의 시선은 아주 세밀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기차가 양쪽에 기이한 뾰족탑이 달린 아치를 지나 어두운 정거장으로 서서히 들어와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 당시 벨기에에서 보낸 시간 내내 떠나지 않던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혔다.”라고 적은 대목처럼 풍경은 물론 화자 자신의 미묘한 감정까지도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아우스터리츠는 4살이던 1939년 가을 영국 구조단체의 유대어린이 호송작전(Kindertransport)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당시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할되기 전입니다)의 수도 프라하에서 영국으로 보내져 웨일스 지방의 칼뱅파 목사 부부의 슬하에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데이비스 얼라이스라는 영국식 이름을 얻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프라하에서의 기억은 조금씩 잊게 되었습니다. 양부모가 아우스터리츠의 과거에 대하여 전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선 아우스터리츠의 행보를 화자가 받아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자가 전하는 아우스터리츠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작업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공간을 찾아가 남아있는 기록이나 자신의 과거와 관련된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것입니다. 저 역시 꽤 오래 전부터 저의 삶의 흔적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경관기행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작업은 아직은 현장을 찾아가는 단계가 아니라 남아있는 기억을 글로 옮기는 단계입니다만, 어느 정도 뼈대가 잡히면 현장도 찾아가보려 합니다.


아우스터리츠에게 남아있는 기억의 조각들은 여러 도시의 공간에 흩뿌려져 있어, 기억의 조각들을 조각그림맞추기 하듯 이어붙여가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을 저자는 “‘시간의 외부에 있는 존재( Das Außer-der-Zeit-Sein)’는 시간의 배열이 아닌 공간적 배열 원칙을 따르게 된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경관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성장과정의 기억을 짜 맞추는 작업 역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실제로는 공간의 배열을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이름 아우스터리츠(Austerlitz)는 나폴레옹 시기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라고 합니다. 아우스터리츠라는 이름은 물론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리엔바트의 아우쇼비츠(Auschowitz) 샘물, 테레지엔슈타트의 바우쇼비츠(Bauschowitz) 분지 등의 이름에서 이 책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를 암시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아무래도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전자책은 물 흐르듯이 읽어낼 수 있지만 흐름을 되돌려서 음미하듯이 읽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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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치유를 파는 찻집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권하영 옮김 / 북플라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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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파는 찻집이라고 해서 궁금했습니다. 치유를 어떻게 파는가 해서 말입니다. 알록달록한 표지도 눈길을 끌었음을 고백합니다. 작가 모리사와 아키오의 작품으로는 <치유를 파는 찻집>이 처음입니다. 치유를 판다는 찻집 쇼와당에서는 커피도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사장 키리코가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치유사 노릇을 하는데 그 해결방법이라는 것이 기상천외하다는 것입니다. 일용직으로 들어왔다가 점장으로 승격한 캇키가 사장을 대신하여 맛있는 차를 만들어 내고 있을 뿐 아니라 키리코의 치유작업에 보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치유보조 역할을 하는 인물로는 자칭 영능력자라고 하는 뉴도씨, 퀵서비스 일을 하는 료 등이 있다. 그밖에도 쇼와당의 단골손님들이 사건에 따라서 보조 역할을 맡아 한답니다.


캇키씨가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전수받은 것은 우연히 한적하고 아름다운 곶에 있는 찻집을 방문했다가 소소한 마법이라는 비법을 배웠다고 하는데, 아마도 작가의 다른 작품 <무지개 곶의 찻집>에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등장인물은 물론 장소 역시 서로 연계되어 있는 모양새입니다.


어찌되었거나, 쇼와당에 가면 고민거리를 해결해준다는 소문이 꽤나 널리 퍼져 있는 모양입니다. 남편과 쇼와당이 공식적으로 심리치료소나 탐정사무소를 표방하지 않는 찻집임에도 치유를 판다고 하는 이유는 찻집에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은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 사장 키리코 씨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일종의 선수금조로 찻집의 계산대 옆에 있는 감실에 모신 신 앞에 있는 새전함에 헌금을 하도록 강요(?)할 뿐 아니라 고민이 잘 해결되었을 때는 큰 돈을 내도록 역시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사별한 뒤로 함께 사는 시어머니와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유리코 씨의 고민이 <치유를 파는 찻집>에서 처음 등장하는 치유의 사례입니다. 키리코씨가 준비한 문제해결방식은 유리코와 시어머니가 정면에서 맞붙는 방식이었습니다. 상대의 단점을 열 개씩 적고 비난하는 방식을 몇 차례 반복하도록 만들어 더 이상 단점을 발굴해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한 뒤에는 장점을 적어 칭찬하도록 한 것입니다. 결국 유리코와 시어머니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고부간의 갈등이 종료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연은 쇼와당의 단골인 시오리의 언니 키라라가 어떤 남자가 치근대고 있어 문제가 된다는 사연입니다. 역시 쇼와당의 단골인 전직 킥복싱선수이자 화과자 가게의 사장인 세이스케씨가 치유보조자로 등장하여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 사례의 반전은 키라라씨가 따르는 남자로부터 금품을 우려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사연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료타로가 의뢰한 고민으로 어머니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이 새전을 낼 여력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치유보조자들이 새전을 대신하여 내도록 강요받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 사례를 해결하는 방식도 당사자를 만나 문제해결에 나서는 것이었는데, 료타로의 어머니 마사코씨는 부유한 집안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도벽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키리코씨는 행복은 얻는 게 아니라 깨닫는 것이라면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 몸의 가치를 떠올리고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의 값으로 환산해보면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았고 행복한지 기억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네 번째 사건은 역시 쇼와당의 단골로 53살 된 회사원 코헤이씨가 조기 퇴직 이후의 삶으로 고민한다는 내용입니다. 코헤이씨가 고민하는 것은 가족들을 위하여 재취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젊었을 때 꿈꾸었던 록큰롤 가수로 새 출발할 것인가 였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코헤이씨의 가족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결정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게 됩니다.


다섯 번째 사연은 캇키의 절친인 양과자점의 치카가 결혼을 앞두고 사기를 당해서 돈을 잃은 것도 모자라 부모님까지도 돈을 잃게 되자 죽음을 생각하게 된 사연입니다. 치카가 의뢰한 것은 아니지만 낌새를 눈치 챈 캇키가 키리코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캇키의 사연과 키리코 사장의 사연이 등장하여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는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치유사와 보조치유사도 문제를 안고 살아왔던 것이고 모두의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한다는 행복한 결말로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키리코가 악착같이 새전을 모으는 이유도 밝혀집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의 작가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성향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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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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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트루게네프의 대표작입니다. 박시하의 <지하철 독서여행자; https://blog.naver.com/neuro412/223546649728>에 나온 이야기를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트루게네프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게 된 책입니다. 민음사에서 나온 <첫사랑>에는 표제작 첫사랑을 비롯하여 귀족의 보금자리, 무무 등을 담은 소설집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사랑하는, 어찌 보면 황당한 경우가 없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아들과 정혼한 여자를 가로채는 그야말로 황당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아버지와 아들이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벌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트루게네프의 <첫사랑>은 한 여자와 아버지의 삼각관계를 다루었습니다. 아들이 연모하는 여성이 아버지와 사랑을 나눈다는 선택을 한 셈이니 아버지는 아들이 그 여성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들이 연모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 여성에게 접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에는 부자간의 천륜도 외면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1883년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모스크바에 살고 있던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의 집 곁채에 몰락한 공작부인 가족이 세 들어옵니다. 담 너머로 공작부인의 딸 지나이다를 보게 된 블라지미르는 한눈에 반하게 되는데, 스물한 살이라는 그녀는 여러 남자들의 애정공세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런 대목을 보면 그녀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집을 드나드는 모든 남자들이 그녀에게 홀딱 반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 모두를 밧줄에 묶어 자기 발밑에 꿇어 엎드리게 했다. 그녀는 그들의 마음속에 때로는 희망을, 때로는 불안을 불러일으키며 기분 내키는 대로 그들을 조롱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52)”


다섯 살이라는 나이차가 있는 블라지미르도 그녀의 어장관리 대상이 되어 몰입해야 할 대학입시도 팽개치게 됩니다. 그녀의 밀당에 정신이 혼미해진 탓이겠지요. 그런 그녀가 몸과 마음을 준 사람은 알고 보니 블라지미르의 아버지였습니다. 지나이다와 아버지의 애정행각이 드러나고 어머니는 시내로 이사를 가면서 지나이다와 블라지미르의 관계는 소원해지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그녀와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블라지미르의 지나이다에 대한 사랑은 여성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풋사랑이었다면 블라지미르의 아버지에 대한 지나이다의 사랑은 현실적인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대상이 유부남인 것과는 무관하게 모든 것을 가진 남자를 차지하겠다는 빗나간 욕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사랑이 아닐까요?


두 번째 소설 <귀족의 보금자리> 역시 사랑이야기입니다. 변방에 있던 러시아에 유럽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혼란에 빠지던 1840년대의 러시아의 귀족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서른다섯 살인 라브레츠키는 파리에서 지내면서 바람이 난 아내를 두고 러시아로 돌아왔는데, 4촌인 마리아 드리트리예브나의 어린 딸 엘리자베타에게 연정을 느끼게 됩니다. 엘리자베타는 <첫사랑>의 지나이다와는 달리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까닭에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다보니 서로에게 마음이 끌리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신문에 죽었다는 기사가 떴던 라브레츠키의 아내 바르바라가 딸과 함께 돌아오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남편의 처분에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라브레츠키의 아내로 돌아오려고 모사를 꾸미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숙과 조카딸의 사랑도 깨지고 엘리자베타는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을 터입니다만 엘리자베타가 꼭 그런 선택을 해야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세 번째 <무무>는 벙어리이자 귀머거리 농노 게라심이 우연히 발견한 강아지 무무를 돌보면서 생기는 여주인과의 갈등을 안타깝게 마무리하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앞선 두 이야기가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었다면 <무무>는 사람과 개 사이의 진심이 통하는 사랑이야기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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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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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에 떠난 발칸여행은 무려 아홉 나라, 아니 공항만 이용한 체코를 포함하면 무려 열 나라를 여행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강행군인 여정을 선택한 이유는 책읽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루마니아의 브란, 그리고 알바니아가 포함된 여정을 고른 이유입니다. 여기에서는 알바니아의 경우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사실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는 크게 관심을 두던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알바니아를 여행하게 된 것은 이스마일 카다레의 영향이었습니다. 그의 작품으로 처음 읽었던 <돌의 연대기>가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습니다. 이어 읽은 <잘못된 만찬>, <피라미드>, <H파일>, <부서진 사월>에 이르면서 알바니아라는 나라를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습니다. 발칸여행을 마치고서는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를 읽은 것은 제가 준비하고 있는 <양기화의 BOOK소리-유럽여행>에서 티라나와 함께 소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티라나를 여행하면서 해설사는 엔베르 호자가 이끌던 알바니아의 공산정권이 정말 끔찍할 정도로 독재를 펼치고 국민들을 억압했다고 설명했는데,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에서 당시의 알바니아의 사회적 분위기가 어땠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떠나지 못하는 여자>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혔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극작가 루디안 스테파입니다. 극작가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영감에 따라 작품을 쓰기보다는 당이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작품을 써내야 하기 때문에 심사를 마칠 때까지 전전긍긍해야만 했던 모양입니다. 신작을 준비하던 루디안은 어느 날 당 위원회에 소환을 받았습니다. 작품에 관한 건으로 소환된 줄 알았던 그에게 판사는 한 여성에 관한 일입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도둑이 제 발 절인다.’는 말처럼 은밀한 애정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일이 꼬이게 됩니다.


당 위원회에서 문제가 된 여성은 최근에 자살한 린다B라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루디안의 책에 저자의 헌사가 적혀있었고, 그녀의 일기에도 루디안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는 이유로 소환이 된 것입니다. 사실 루디안은 린다B라는 여성을 만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알지도 못합니다. 단지 애정관계에 있던 미대생 미제나의 부탁으로 헌사를 적어주었을 뿐입니다.


문제는 린다B라는 여성이 구체제의 귀족으로 지방의 작은 도시를 떠나면 안 되는 유배의 형을 받은 상태이며 그녀의 유배형은 5년마다 재심을 받게 되지만 계속 연장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여성과 연관이 되어 있으니 루디안 역시 반역의 죄를 범한 것인지를 밝혀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린다B와 미제나는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로 학교를 졸업하고 미제나는 티라나로 진학을 하게 되었지만, 린다B는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린다B가 루디안을 추앙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미제나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하여 루디안에게 접근하였고, 린다B를 위하여 루디안의 책에 헌사를 받아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빈틈없이 감시를 받는 체제이지만 그 와중에서 이런저런 사랑도 이루어지고 사람들 간에 관계도 형성되었던 모양입니다. 문제는 누가 누구를 감시하는지 서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겠지요.


루디안이 린다B와 만나지 않은 것은 사실일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를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몰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린다B가 유방암영상검사를 받게 된 것과 관련하여 루디안이 린다B와 드리니호텔에서 만나게 된다고 했지만, 사실은 린다B는 이미 자살을 한 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야기가 마지막에 이르면 루디안이 면담을 하는 정신과 의사가 감시자였고 주기적으로 지도자에게 보고서를 보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는 5년 뒤 지도자가 실각을 한 듯 광장에 있던 그의 동상이 끌어내려져 끌려 다니고, 루디안은 여전히 극장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린다B에게, 저자의 추억을 담아라고 헌사를 적어 그녀에게 전합니다. 그가 바라는 대로 여자는 결국 책을 받았고, 죽음의 어둠 속에서 그들의 손가락이 살짝 차갑게 스쳤다고 합니다.


생사를 넘나들고, 이야기가 과거로 넘어가는 등 집중을 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줄거리를 놓칠 수도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만사는 사필귀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도자는 그토록 끔찍한 독재를 펼쳐야만 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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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
조한진희(반다) 지음 / 동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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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암 수술을 받고 추적관찰 중입니다. 두 사람이 하던 일을 혼자서 맡아 하고 있던 탓에 수술 후 보름 만에 불편한 몸으로 출근해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기억 때문에 읽게 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였는지도 모릅니다. 수술을 받았을 때는 저 역시 아파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모두 읽고 난 뒤에 역시 아파서 미안한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인 가구이자 페미니스트로서 철인 3종 경기를 준비할 만큼 튼튼한 몸을 자랑하던 저자가 어느 날 암 진단을 받은 뒤 아픈 나를 긍정하기 위해 분투했던 치열한 기록이라고 출판사에서는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아픈 나를 잘 봐주세요.”라고 징징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혼을 추구하다보니 아픈 몸을 의지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서 잘 아플 권리를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후기에 질병을 통해 변화된 몸과 삶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아득함이 글을 쓰게 했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만, 글의 줄기를 제대로 붙들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좌충우돌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두 매체에 썼던 글을 통합하고 새 글을 더하여 책을 꾸몄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 30대에 팔레스타인에 3개월 현장 활동을 다녀온 뒤로 피로감, 현기증, 출혈, 전신 통증 등이 생겨 1년 동안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대목에서 느낀 점입니다. 병원에서 진찰을 하고 검사를 해보면 환자의 증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자도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건강검진에서 1.2cm크기의 갑상선암이 의심되므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권고를 받고도 병원을 전전하고도 모자로 한의사와 대체요법사를 만나 식이요법을 받았고 합니다. 이 대목을 읽고서는 이 분은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을 모두 해소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은 수술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대체요법사가 추천하는 식이요법을 한참동안 해본 뒤였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일본의 전문병원을 찾아 확진검사를 반복하면서 우리나라 병원의 진단절차와 비교한 것도 그리 잘한 것 같지 않습니다. 갑상선암이 예후가 좋은 편이기는 합니다만 환자에 따라서는 조기에 전이를 하는 경우도 있어서 진단이 되면 수술을 통하여 절제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역시 예후가 좋은 편이라는 전립선암이 의심된다는 검진결과를 받자마자 조직검사을 통해 확진하였고 병기를 정하기 위한 영상검사를 하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운이 좋아서 한 달여 만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진행이 느린 암이라고 해도 환자마다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를 최대한 빨리 받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주변에서 이래라 저래라라면서 건네는 조언이 불편해서 질병을 숨기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병환은 소문을 내야 좋은 방도를 찾을 수 있다는 우리네 옛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누리망에 넘쳐나는 건강정보들 가운데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정보는 오히려 치료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입니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것처럼 여성의 관점에서 질병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병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여성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얼마 전에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보니 남편으로 보이는 보호자들이 간병하는 병실이 적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친구가 간병을 맡아 해줄 수도 있습니다만, 병원에서 요구하는 행정적 절차를 직계가족이 아니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관행을 비판하는 것도 비혼주의를 주장하는 저자의 편견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결혼을 하고도 출산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세태입니다. 우리나라가 몇 십 년 뒤에는 소멸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형편입니다. 나이든 사람은 많아지는데 젊은이들은 거꾸로 줄어들다보니 젊은이들의 사회적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기만 합니다. 그런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결혼을 회피하는 것은 자신이 나이 들었을 때 돌봐줄 사람이 없어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은 내가 할 몫을 다하고 나서야 할 주장이라는 생각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아프면 가족에게 그리고 직장에서도 역시 미안한 것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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