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의 팡세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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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음의 불편함><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로 만났던 에밀 시오랑의 <독설의 팡세>를 읽었습니다. 오래 동안 찾던 것을 직장에서 가까운 도서관에서 대차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사유를 짧게는 한 줄, 길게는 두어 쪽 길이로 서술하였습니다. 그런데 짧을수록 문장에 담긴 깊은 뜻을 깨우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심오한 사상의 주변을 아주 조심스럽게 배회한다. 그리고 현기증만 탈취하여 달아난다. 나는 심연의 도둑이다.’라는 문장은 심연의 도둑이라는 제목을 뽑아낸 글로 보입니다. 수많은 단상들은 언어의 위축 등 11개의 제목 아래 나뉘어있습니다.


하지만 제목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이해되지 않는 글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과 빈혈이라는 제목에 들어있는 미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은 불안뿐이다.(57)”의 경우입니다. 하긴 혈액을 잃어가는 백혈병은 신()이 만발하는 정원이다.”의 경우도 백혈병이 빈혈증상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이를 신와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해설서가 나와야 하지 않을ᄁᆞ 싶습니다.


언어의 위축이라는 제목에 들어있는 다음의 글을 새겨봅니다. “니체, 마르셀 푸르스트, 보들레르 혹은 랭보가 유행의 변화에도 살아남은 것은 그들의 무관심한 잔인성, 신들린 듯한 해부기술, 풍부한 독설에 기인한 것이다. 어떤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그 속에 존재하는 폭력성이다. 근거 없는 단어일까? 복음서, 그 그지없이 공격적이고 독살스러운 책이 누리고 있는 권위를 생각해보라.(19)”


보들레르나 랭보의 작품은 많이 읽어보기 못했지만, 니체나 마르셀 푸르스트는 적지 않게 읽어보았습니다만,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잔인하다거나 폭력적이라거나 독설로 채워져 있다는 느낌은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독설의 팡세>에서는 많은 작가들에 대한 저자의 독설에 가까운 평가라는 느낌을 곳곳에서 받았습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작품들은 모방의 재치, 학습된 공감대와 어딘가에서 훔쳐온 엑스터시로 만들어진다.(27)”라는 생각에는 자신도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요?


84세에 죽음을 맞은 저자이지만 젊어서부터 죽음에 대하여 깊이 사유를 했던 것 같습니다. <독설의 팡세>에서도 죽음에 관한 대목을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죽음의 문제는 모든 다른 문제들을 압도한다. 철학과 황당함에서 서열이 있다고 믿는 그 소박한 믿음에, 죽음 이상으로 황당한 일이 있겠는가?(38)”모든 물은 익사의 색깔을 띠고 있다.(66)”, “우리는 죽음에 대한 강박증을 즐긴다. 우리가 즐기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강박증이다.(67-68)” 등입니다. 역시 이 글들에 함축된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생명력이란 낭만주의와 성기로부터 살아남아 있는 감정을 비방한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 될 것이다.(129)”이라고 했는데, “성욕에 자신을 소모하는 것은 1초 동안, 또 나머지 인생 동안 이성을 잃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130)”라고 한 대목 역시 그 뜻을 알려면 많은 사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들은 발표한 사람이 무슨 뜻을 담았다고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타인의 그 뜻을 유추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짧은 글이 대종을 이루고 있어 단순히 읽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글 하나하나에 담긴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저 읽었다고는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 실린 수많은 글 가운데 관심이 가는 주제에 해당하는 글들을 뽑아서 심도 있게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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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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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밀리의 서재에서 읽게 된 <쓰게 될 것>입니다. 최진영 작가의 책으로는 처음 만나는 책입니다. 전자책이라서인지 아니면 작가의 작품들의 전반적으로 그런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으나 빠르게 읽었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이 작품집에서는 표제작 쓰게 될 것을 비롯하여 모두 8편의 작품을 담았습니다.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이들 작품들은 2020년부터 2023년 사이에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작품들이 발표된 매체는 물론 작품을 쓰는데 영감을 얻은 원천을 밝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쓰게 될 것의 경우는 우크라이나 여성 스베틀라나씨가 2022224일부터 426일까지 쓴 일기를 전재한 시사IN유모차 밀던 자리에 폭탄이 떨어져도와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암으로 진단받고 투병하는 과정을 적은 홈 스위트 홈은 개인적으로도 읽으면서 큰 관심이 생겼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조한진희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비롯하여 역시 시사IN의 기획 죽음의 미래엔드게임: 생이 끝나갈 때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어디이며 등장인물이 누구이던 간에 8작품 모두 작가의 시선으로 본 인간관계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에 자전적인 글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쓰게 될 것에 나오는 나의 일기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살아야 한다면 사는 게 낫다.’ 무의미한 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39)”는 대목은 여러 갈래로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전제가 필요하지 않는 명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다하더라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네 속담에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책을 읽어가면서 표시를 해둔 작품도 홈 스위트 홈입니다. 첫 번째 표시해놓은 대목은 아픈 사람일수록 생활이 편리하고 큰 병원이 가까이 있는 도시에 살아야 한다.(807)”입니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직장도 병원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필요한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표시해둔 대목은 수술과 항암치료가 종료된 후 1년이 지나지 않아 재발, 그리고 2차 재발이 되면서 등장인물과 가족은 상황이 어렵게 될 수 있다고 하는 3차 재발에 대하여 언급을 피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죽음이라는 검은 구멍이 한 발 앞에 있는 것 같았다. 한 발 뒤에도, 한발 옆에도. 죽음은 두려웠다. 그통에 짓눌릴 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내가 피하려고 하는 것이 고통인지 죽음인지 알 수 없었다. ()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내가 좀더 낮은 확률에 속할 수 있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믿음이 필요했다. 회복, 차도, 건강에 대한 염원, 기적을 바라는 기도, 나의 상태를 나타내는 숫자 바깥에 있고 싶었다.(773)”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숫자 바깥에 있고 싶었다라는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저 역시 18개월 전에 암수술을 받고 추적관찰을 하고 있는 중인데 재발을 감사하는 검사를 매월 받아가면서 검사값에 일희일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사값이 떨어지면 기뻤다가 다시 올라가면 두려움이 생기곤 합니다. 아직은 위험 수위를 나타내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경계할만한 수위에 올라와 있기 때문입니다.


평론가 소유정은 작품해설에서 최진영의 <쓰게 될 것>에 실려있는 여덟편의 작품들은 하나 같이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작가에게 미래란 알 수 없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지금과는 달리 바꾸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반드시 만나게 될 미래를 위해 불안을 딛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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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출간 10주년 기념, 그 후 이야기 수록, 개정판) - 암, 임사체험, 그리고 완전한 치유에 이른 한 여성의 이야기
아니타 무르자니 지음, 황근하 옮김 / 샨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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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암으로 진단을 받은 뒤로 악성종양으로 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호지킨 림프종으로 진단을 받았다는 인도 여성의 치유경험을 적은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도 같은 이유로 읽게 되었습니다.


지난 해 북인도를 여행하면서 인도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특히 인도의 전통에 대한 앞부분의 내용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인도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책은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줄곧 홍콩에서 살아온 인도여성이 호지킨 림프종으로 진단을 받은 뒤에 인도와 중국의 전통의학에 의지하여 치료를 해오다가 말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없다고 손을 든 상태에서 지내다가 혼수상태에 빠져 다시 병원으로 옮겨졌던 것인데, 이때 그녀는 임사체험이라고 주장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로 갑자기 증상이 호전되면서 완치판정을 받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책의 앞부분은 성장과정과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인도에서는 여성이 가정을 지키는 현모양처의 역할이 요구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가정에 안주하기보다는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진취적인 성향이었던 모양입니다.


문제의 호지킨 림프종은 몇 살이 되었을 때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결혼하고서 7년 뒤에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기는 2A단계였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항암요법과 방사선치료를 추천하였지만 환자는 치료를 거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악성종양으로 진단받은 친구와 남편의 처남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고통을 겪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호지킨 림프종 2A단계의 환자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경우에 5년 생존확률이 90~100%에 이를 정도로 치료법이 정립되어 있는 암입니다. 항암치료 역시 암종의 종류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치료가능성이나 부작용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 환자는 자신의 암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분이 선택한 치료는 인도로 돌아가서 인도전통의 요가와 아유르베다에 근거한 치료를 받고 건강이 훨씬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홍콩으로 돌아와서는 이번에는 중국의 전통의학에 따른 치료를 받으면서 병원에는 다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최초 진단을 받고서 4년만에 암은 말기에 이르게 되었고 병원에서도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말기에 이른 경우에도 적극적인 치료로 5년 생존율이 85%라고 하는데 이해되지 않는 점입니다)


결국은 혼수상태에 빠졌고, 큰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합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고는 하지만 심장은 자발적으로 뛰고 있는 상태였다고 하는데, 이때 저자는 임사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임사체험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환자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와 행동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물론 수천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의 행동, 심지어는 우주의 변화까지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에 들었던 것을 종합하여 책에 정리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혼수상태에서 돌아온 환자가 순식간에 암종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의학논문에 따르면 호지킨 림프종은 특별한 치료 없이도 자연치유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분 역시 그런 사례의 하나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임사체험이라고 하는 것도 일종이 깨달음, 영양의 섭취가 극도로 불량한 탓에 신체상태가 극도로 저하된 상황에서 벌어진 변화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영양섭취가 불량한 까닭에 암세포도 영양을 얻지 못해 사멸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현상은 특별한 누군가에게서만 일어날 수 있는 특이한 현상으로 다른 환자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 역시 처음부터 항암요법과 방사선치료를 받았더라면 완치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병식이 없는 관계로 죽음 목전까지 스스로를 몰아넣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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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8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전승희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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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을 읽다가 읽어볼 목록에 올려두었던지 잊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를 위시하여 모두 14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 책에서 어느 단편을 인용했던 것인지도 잊었습니다. 어떻든 14편의 단편 가운데는 검은 고양이도둑맞은 편지는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단편입니다14편의 단편을 모두 읽고서는 아마도 두 번째 단편인 리지아때문에 읽기로 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화자는 사랑하는 아내 리지아가 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하는 순간에 한 말을 몇 차례 반복합니다. “인간이 연약한 의지라는 단점만 지니지 않았더라면 천사에게도 죽음에게도 완전히 굴복하지 않을 텐데.(39)” 사실 이 대목은 모든 생명체라면 숙명처럼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의지가 강한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피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이 대목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내를 잃고서 아내가 남긴 막대한 유산으로 영국의 어느 황량하고 외딴 곳에 있는 사원을 구입하여 개조하고 몇 달 뒤에 만난 로웨나 트리배니언과 재혼을 하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화자가 리지아를 정말 사랑한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웨나 역시 결혼 후 한 달 만에 열병에 걸려 쇠약해진 끝에 역시 죽음을 맞습니다. 그런데 로웨나를 간병하는 가운데 화자는 리지아의 환영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화자가 뭔가 켕기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화자는 두 아내의 죽음을 겪게 되는데 첫 번째 아내 리지아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아내 로웨나의 경우는 병상을 지키면서 죽음을 맞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적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나 죽은 뒤에 느끼는 감정을 추스르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단편 리지아뿐 아니라, 이 단편집에 실려 있는 단편들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옮긴이 역시 책의 말미에 붙인 작품해설에서 인간 심리의 복합성은 사실 포의 단편소설, 혹은 산문시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이다.(315)”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성으로만은 설명되지 않는 인간 심리의 복합성에 대해 탁월하고 합리적인 통찰을 보여주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실린 단편들에서 볼 수 있는 두 번째 특징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다는 점입니다. 옮긴이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면서도 대체적으로 현실과 논리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즉 현실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특징은 작가가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단편들의 무대는 아주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의 경우는 인도네시아에서, ‘리지아의 경우는 독일과 영국에서, ‘윌리엄 윌슨은 영국에서,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은 노르웨이의 해안에서, ‘구덩이와 추는 스페인에서, ‘도둑맞은 편지는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을 다루었습니다.


많은 단편들이 죽음을 다루고 있는데 등장인물이 누군가를 살해하는 장면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살인자의 심리상태가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범행을 감추려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범행장소를 특정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이 사실일까 싶습니다. 여기 실린 단편 가운데는 충동적으로 살인을 다룬 이야기가 몇 개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일면식이 없는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범인이 그와 같은 범행을 저지른 이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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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테레즈 라캥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61
에밀 졸라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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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여곡절 끝에 휴대기전화기를 바꾸어야 했습니다. 쓰던 전화기가 단종이 됐다고 해서 최근에 나온 전화기를 쓰게 됐습니다. 그런데 새로 쓰게 된 휴대전화기를 개통한 통신사에 제공하는 기능가운데 밀리의 서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재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을 두루 살피다가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켕을 첫 번 째로 읽게 되었습니다. 어느 책인가를 읽으면서 읽어보려고 표시를 해놓았던 책입니다. E북으로 책을 읽기는 처음이었는데 일단 글씨가 커서 금세 다음 쪽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속독이 가능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밀리의 서재에 있는 테레즈 라켕은 살림출판사에서 내놓은 '생각하는 힘: 진형준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연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루공 마카르 총서의 하나로 주연급(?) 등장인물로는 라켕 부인을 중심으로 아들 카미유, 조카딸 테레즈, 그리고 아들 친구 로랑이 있습니다.


등장인물은 하나 같이 타인의 감정에 무디고, 자기중심적입니다. 테레즈는 어렸을 적부터 고모  라켕부인 집에 얹혀 살게 됩니다. 자연 사촌 오빠 카미유와 같이 지내게 되는데 라켕부인이 병약한 카미유에게 강요하는 것을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대신  해주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이 장성하자 라켕부인은 두 사람을 결혼시키게 되는데 카미유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혼 후에 카미유는 파리로 가서 살자고 테레즈와 의논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게 된 라켕부인이 나서서 가족이 모두 파리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독립을 꿈꾸었던 테레즈로서는 천국을 꿈꾸다가 지옥으로 굴러떨어진 셈입니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밋밋합니다. 자수가게를 차려 라켕부인과 테레즈가 운영하고 카미유는 철도국에 취직을 합니다. 라켕부인의 자수가게는 동네사람들의 사랑방이 되는데 어느날 카미유가 고향친구이자 직장동료인 로랑을 데려옵니다.


접촉이 잦아지면서 로랑과 테레즈는 눈이 맞게 되고 남편과 쓰는 방에서 밀회를 하게됩니다. 로랑과의 불륜관계가 깊어지면서 난관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우연히 카미유를 살해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지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온 끝에 유원지에서 뱃놀이를 가자고 꼬여 까미유를 살햇하기에 이릅니다. 살인의 뒷처리도 완벽하게 마무리를 하여 친구를 구하려 한 영웅 대접을 받게 됩니다.


카미유를 죽인 뒤에 테레즈와 카미유는 사건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혼으로 그 고통을 이겨보려 합니다. 로랑은 치밀한 구석이 있는 편입니다이번에도 라켕부인의 사랑방에 오는 이웃들을 엮어 결혼을 쉽게 성사시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이 상황을 개선시키는데 도움이 되기는 커녕 사태를 악화시킵니다. 두 사람 모두 죽은 카미유의 환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불륜관계에 있을 때는 열정으로 불타던 두 사람은 이제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적으로 변하게 되고, 결국은 라켕부인 앞에서 말싸움을 하는 중에 카미유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발설하기에 이릅니다. 뇌졸중이 와서 꼼짝을 못하는 라켕 부인은 두 사람이 공모하여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어쩔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치만 두 사람의 끝을 볼 때까지 살아남기로 결심하고 성공합니다. 갈등을 빚던 두 사람은 서로를 죽이기로 작정을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서로의 생각을 읽게 된 두 사람은 로랑이 준비한 독약을 나누어 마시고 죽음을 맞습니다.


요즘에는 이보다도 더 막장 같은 사건도 많습니다만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켕>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고, 박찬욱감독는 박쥐가 테레즈 라켕에서 주제를 가져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로랑이 카미유를 살해하는 방식은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1951년작 영화 <젊은이의 양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에밀 졸라는 <테레즈 라켕>의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동물적 기질들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세밀하게 그려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실험소설을 선보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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