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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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포세의 3부작https://blog.naver.com/neuro412/222292675088><아침 그리고 저녁;  https://blog.naver.com/neuro412/222313007819>을 읽은 인연으로 고른 책입니다. 두 작품을 읽은 뒤에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욘 포세의 3부작>을 읽고 나서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던 것인데, <아침 그리고 저녁>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샤이닝>을 읽고나서도 비슷한 느낌이 남습니다. 특히 <아침 그리고 저녁>이 한 생명이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됐는데, <샤이닝>은 삶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야기는 화자가 차를 운전해서 길을 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사거리를 만나면 왼쪽 길 혹은 오른쪽 길을 선택하는 순간은 살아가면서 선택을 하는 과정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바큇자국이 점점 깊이 파이는 숲길에 접어들어서 차가 완전히 멈춰버리는 상황은 살아가다가 곤경에 빠지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요? 숲길에서는 차를 돌릴만한 장소가 없었다는 것은 곤경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처박힌 차를 꺼내려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어느새 세상이 눈에 덮입니다. 결국은 차를 되돌리기 위하여 누군가의 도움을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온길을 되짚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숲으로 깊이 들어서게 됩니다. 칠흑 같이 어두운 숲길에서 밝은 빛을 내뿜는 하얀 형체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정체를 파악하기 전에 사라지고, 이번에는 두 사람의 형체가 등장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화자를 찾아서 숲길로 들어온 두 사람 역시 숲길에서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순백색의 빛나는 존재도 같이 나타나는데 그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을 감싸고 있는 느낌입니다. 화자가 처한 상황을 읽어가다 보니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상황은 일단 유체이탈을 경험하는데 자신을 죽음을 3인칭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육체적 고통이 없어지면서 편안한 상태가 되는데 어두운 굴을 지나 아득히 멀리로부터 비치는 밝은 빛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경계를 느끼게 되면서 되돌아온다고 합니다. 밝은 곳에 계속 머물게 된다는 의미는 죽음에 이르는 것이고 되돌아 온다는 것은 회생 혹은 환생이 되는 셈입니다.


화자의 이야기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화자는 순백색의 반짝이는 존재를 따라 검은 양복을 입은 얼굴 없는 남자, 부모님과 함께 따라가서 무의 공간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한 숨 또 한 숨, 어느 순간 숨이 사라지고, 그곳에 있는 것은 오직 호흡하는 무를 빛처럼 뿜어내는 반짝이는 존재뿐이고, 어느새 숨을 쉬고 있는 것은 우리다, 각각의 순백색 속에서.”라고 마무리합니다. 한 생명의 존재가 스러지는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 것입니다.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길지 않은 소설에 이어 2023년 노벨상 수상 연설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역시 쉽지 않은 대목은 자신의 작품세계가 침묵의 언어로 구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침묵을 내세우는 것은 오직 침묵 속에서만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는 귀를 기울여 듣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옮긴이는 이 작품은 명상이자 묵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묵상은 이 책의 끝부분에서 정점에 이른다. 포세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과 죽음의 이상하고도 미묘한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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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산책가
카르스텐 헨 지음, 이나영 옮김 / 그러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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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읽을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책읽기를 편식하듯 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심분야가 아닌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나와 있거나 새로 나온 책들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읽을 책을 고를 때 전문적으로 조언을 해주는 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카르스텐 헨의 <책 산책가>는 독자에게 맞춤한 책을 추천해두기도 할 뿐 아니라 그렇게 주문한 책을 집에까지 배달하는 서점직원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서점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은퇴를 하면서 딸에게 서점 경영을 물려주면서 책을 배달해주는 업무를 중단하기로 하였습니다. 경영 측면에서 별 이익이 없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서점을 물려받은 딸은 딸보다도 책배달을 맡고 있는 직원에게 서점을 물려줄 생각을 했을 정도로 각별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이 가슴에 맺혀있었기 때문에 책배달 업무를 종료하고 담당 직원을 해고하기로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일자리에 비하여 일할 수 있는 전문가가 태부족인 상황 덕분에 저는 아직도 현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때에 일을 그만 둘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 물러날 때를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년전에 십여 년을 다닌 직장을 물러난 것은 늦었지만 정말 잘한 일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 산책가>의 주인공 콜호프 씨는 자신의 고객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그런 인품이 샤샤라고 하는 소녀와 인연을 맺게 하고, 서점을 그만 둔 뒤에서 책을 배달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샤샤를 비롯한 콜호프 씨의 단골들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아닙니다. 강아지처럼 짖는 고양이도 있습니다. 한때는 콜호프 씨가 챙겨주는 먹이를 먹으려고 다가온 것으로 오해했지만 콜호프 씨의 엽엽한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멍멍이였습니다.


콜호프 씨는 다가서는 샤샤에게 쉽게 곁을 내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샤샤의 적극적인 접근을 막아선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새 샤샤가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역시 진심은 통하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를 사귀는데 있어 사심을 버리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배웁니다.


콜호프 씨의 단골들은 독특한 면모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아시 씨는 구입한 책을 읽고나면 동네 도서관에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책이 누레질 때까지 다른 사람들도 즐겨 볼 수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는 읽은 책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책나눔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직원들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동안 옮겨다닌 3곳의 직장에서 그런 일을 했습니다.


은퇴한 서점주인 구스타프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겨우 책읽기를 시작하였을 때 아버지로부터 토마스 만의 <부르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선물받기 시작하여 열 살 때는 어머니로부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선물 받았다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책을 읽다보면 엄청 많은 책들을 인용하고 있어서 한번쯤은 읽어보면 좋겠다 싶은 책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로 독일작가들의 책이 많은 듯합니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는 저도 읽어본 책입니다만, 에리히 캐스트너의 시집 <마주보기>는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눈물에 관한 이야기도 적어놓아야 하겠습니다. 샤샤가 콜호프 씨에게 혹시 속으로 우셨어요? 눈에서 눈물 나게 말고 마음에서 눈물 나게 우는 거 말이에요.”라고 물으면서 콜호프 씨의 눈이 달라보이는 것은 “(눈이) 부끄러워하는 거죠. 사실 우는 건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이니까요.”라고 설명합니다.


현미경으로 관찰해 보면 감정적인 눈물은 다르게 보인다. 강한 바람이 불 때나 양파 껍질을 깔 때 나는 눈물, 혹은 눈이 마르지 않도록 유지해 주거나 자극적인 물질이 들어갔을 때 반사적으로 흘리는 눈물과도 다르다. 눈물은 동물한테서는 발견되지 않는 인간 고유의 것이다.(198)”라는 대목은 오래전에 미국에서 공동연구를 하던 신경과 의사가 쓴 <눈물들>이라는 책에 실린 내용을 인용한 것으로 보여 반가웠습니다. 제가 그 책을 번역했는데 출간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콜호프 씨가 책을 읽는 사람들을 토끼, 물고기, 거북이 댕기물때새로 비유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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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샵
피넬로피 피츠제럴드 지음, 정회성 옮김 / 북포레스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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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벤 슈틸리히의 <존재의 박물관>에서 인용된 것을 보고 찾아 읽게 된 피넬로피 피츠제럴드의 <북샵>입니다. 2008년 타임스가 선정한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에 선정된 피츠제럴드는 61살이 되던 해에 등단한 늦깎이 작가입니다.


이야기는 1959년 북해 연안에 있는 하드버러라는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런던에 있는 뮐러서점에서 일하던 플로렌스는 서점에서 만난 찰리라는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전쟁에 나가서 전사하는 바람에 혼자되었습니다. 10년 전에 하드버러 마을에 들어왔는데, 뮐러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하드버러에 서점을 내기로 합니다. 하드버러에는 서점이 없습니다.


지은 지 500년이나 되었고 오랫동안 방치해놓았던 올드하우스를 은행융자를 받아 구입하여 서점을 열려고 하는데 마을 유력자인 가맛장군의 부인이 훼방에 나섰습니다. 건물을 예술센터로 쓸 계획이라면서 올드하우스를 비우라고 압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계획이 있으면 진즉 올드하우스를 사서 사업을 벌일 것이지 굳이 플로렌스가 서점을 열겠다고 하니 뒷북을 친 것은 객지 사람이 마을에 정착하는 꼴을 보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서점의 운영이 궤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의원인 조카를 동원하여 법안을 만들어 플로렌스로 하여금 올드하우스를 강매하도록 강요합니다. 가맛부인이 뒤에서 움직인 탓인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가맛부인 쪽으로 넘어가 플로렌스를 외면합니다.


이런 소설을 읽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 서점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좋은 마무리를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결말을 암시하듯 왜가리가 장어를 물고 날아가는데 장어는 필사적으로 왜가리의 입에서 떨어져 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플로렌스가 지켜보게 되었다고 한자락을 깔아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인간 세상은 절멸시키는 자(exterminator)와 절멸당하는 자(exterminatee)로 나뉘어 있고, 언제나 절멸시키는 자가 우세하다.(63)”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플로렌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사실을 부인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물론 플로렌스 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명문가의 후손으로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브런디시 씨입니다. 그런 브런디시 씨도 가맛부인의 횡포가 심해지자 직접 찾아가 플로렌스를 내버려두라고 말합니다. 가맛부인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좀 더 유의미한 용도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묻는다. 이에 브런디시 씨는 오래된 것과 역사적 가치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같다면 저나 댁이나 지금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겠지요.(228)”라고 반박합니다. 이런 브런디시 씨의 도움도 가맛장군의 집을 나서는 순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맛부인은 브런디시 씨가 자신의 생각에 동의했다고 플로렌스를 속입니다. 작가가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독자를 끝까지 외면한 셈입니다.


서점이 가지는 문화적 가치가 구체적 활동계획도 없는 예술센터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한 하드버러 사람들에게 서점은 사치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주변에서 서점이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네 사정도 하드버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실 플로렌스의 서점이 문을 열었을 때 책을 사러 온 마을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책을 빌려주는 일을 중단하였을 때는 대여업무을 다시 시작해달라고 요청한 마을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가맛부인의 횡포에 맞서 플로렌스를 편들어 줄 사람도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드러난 결과는 그렇지 않았던 것을 보면 역시 타지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은 토착민들의 결속력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플레렌스가 마을을 떠나기로 한 것은 잘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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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스트 윈터 -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이은진.정윤미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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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동란 발발 직후부터 흥남철수에 이르기까지의 미군의 대응을 기록한 마거리트 히긴스 기자의 <자유를 위한 희생;https://blog.naver.com/neuro412/223449622454>에서 인용된 것을 보고 읽게 된 책입니다. 제가 학생 때 배우기로는 6.25동란은 북이 치밀하게 준비하여 쳐들어왔다는 북침설이 확고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남침설이 나오더니, 근거 없는 낭설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이번에는 남침유도설이 등장하여 전쟁을 모르는 세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유를 위한 희생>에서도 북한군이 38선을 넘어서자마자 한국군을 궤멸시키며 급하게 동원한 미군마저 밀어붙이면서 순식간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는 상황을 현장에서 목격했음을 기록했습니다. 한국군이 북침을 했다면 그렇듯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쟁의 양상은 북한군이 얼마나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를 위한 희생>이 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었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되밀린 흥남철수까지의 상황을 다루었다면 <콜디스트 윈터>는 북한의 전쟁준비와 전쟁 발발 전후의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련 그리고 미국의 정치현황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의 정체로부터 북한에서 권력을 잡기까지의 과정,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남침을 계획하고 소련의 지원을 요구하던 정황, 오랜 내전 끝에 국민당 정권을 대만으로 몰아낸 마오쩌뚱의 중국공산당이 대내외적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참전을 결정하게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정리해냈습니다.


읽다보면 김일성이 남침이라는 오판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미국의 국무장관 애치슨이 1950112일 미국의 극동방위선을 공표하면서 대한민국을 제외한 것이었습니다. 정부수립 이후에 미군을 철수한 것도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다행이었던 점은 625일 북한이 38선을 넘어서자마자 미국이 참전을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이마저도 한국의 방위보다는 중화민국의 국민당 정부가 본토를 공산당에 내주고 대만으로 밀려나고 보니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방위하는 것이 위태롭다고 판단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주둔하던 맥아더 사령부는 북한군과 중공군의 전력을 형편없는 것으로 오판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제외하고는 3년에 걸친 전쟁기간동안 전쟁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응전하려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콜디스트 윈터>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북한의 남침으로 촉발된 전쟁과정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전과로 전쟁영웅으로 인식해온 맥아더 장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비행기로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지형이나 날씨 등 제반사항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의지가 있었나 의심받을 정도였을 뿐 아니라 눈치나 보은 참모를 측근에 두어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고 지적합니다.


<콜디스트 윈터>는 미국인의 시각에서 미군 중심으로 전쟁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유엔군이 참전하게 된 계기라던가 참전 규모, 한국군의 실태 및 전과, 그리고 한국 정부의 대응 등은 전혀 논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낸 것도 미군의 공이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것도 미군의 전과이며 38선을 넘어 북진하게 된 것도 맥아더의 선택이었으며 압록강까지 밀고 간 것은 중국 공산당의 참전을 촉발하게 되었다는 점, 참전 초기에 중공군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미군이 함정에 빠져 지리멸렬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동란이 김일성의 인민군이 치밀하게 준비한 전쟁이라는 점, 소련이 사주하고 중공군이 막판 뒤집기로 지원에 나섰다는 점 등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1000쪽이 넘는 부피가 부담스러워서 상하권으로 나누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6.25동란의 내막에 대하여 그저 막연한 젊은 세대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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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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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길 잃기 안내서>로 이미 만나본 적이 있는 레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었습니다.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만, 책을 다 읽고서도 제목이나 부제의 의미를 쉽게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이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보는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굳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사자성어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편입니다.


작가가 <멀고도 가까운>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은 멀고도 가까운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평생 자신을 못마땅해 했고, 시기했고, 불평만 했다고 고백합니다.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그 옛날 작가를 왜 그렇게 대했는지 직접 들어볼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찾는 과정에서 왜 다른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끌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켄슈타인, 체 게바라의 혁명, 아이슬란드의 늑대, 남편과 아이를 뜯어먹을 수밖에 없었던 에스키모 여인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이 책을 옮긴이는 작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 끝에 어머니와 화해를 하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는 자신과도 화해했다고 말합니다. 알츠하이머병이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난 뒤에 그때는 왜 그러셨을까요? 하고 물어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은 어머니를 이해하도록 스스로를 설득하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야기 속에는 어머니가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이 담겨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환자들의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보이는 증상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지인으로부터 초대받아 아이슬란드를 방문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금년 겨울에 오로라의 장관을 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있어 저 역시 금년 겨울에는 아이슬란드를 방문해보려 생각하고 있어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작가가 유방암으로 진단받고 치료하는 과정도 나오는데 설명하는 내용을 보면 용어나 설명내용이 정확하지 않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그 과정이 나의 삶이라는 배를 다른 이들이 조종한다.(141)’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배에는 자신도 이애할 수 없는 수수께끼가 실려 있고, 그 수수께끼는 언젠가 나도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고 만다는 필연성이 담겨있다는 것으로 확대됩니다.


체 게바라가 등장하는 과정이 다소 생뚱맞아 보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체게바라가 등장하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제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체의 이야기와 작가가 이야기하는 체의 이야기에 다소 차이가 있어서 영화를 찾아 보거나 책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과 관련된 대목을 만났습니다. 조지아 오키프라는 사람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에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그것이 물리적 거리와 정신적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었다.(160)’라고 설명합니다. 앞서 어머니와의 거리를 그렇게 비유했나 싶었던 저의 생각이 틀린 것 같습니다.


각장의 마지막에 곁들여져 있는 눈물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본문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독립적인 글인 듯한데, 이와 같은 글의 배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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