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생각처럼 대화가 되지 않을까? - 인간관계의 갈등과 오해를 없애주는 소통의 기술
앤드류 뉴버그 & 마크 로버트 월드먼 지음, 권오열 옮김 / 알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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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시즌입니다. 지난 5년간을 돌이켜 보면 이번 정부만큼 ‘소통’이 화두가 되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소통을 잘 할 것 같은 후보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 같습니다. 원활한 소통을 염두에 두면서도 막상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분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나름대로는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대화의 상대가 상처받을 수 있는 말을 건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었구요.

 

<왜 생각처럼 대화가 되지 않을까?>는 바로 저 같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뇌의 기능과 생리학을 연구하는 앤드류 뉴버그교수와 의사소통을 전공하는 마크 로버트 월드먼교수가 공동연구를 통해 만들어낸 원활한 소통을 극대화시키는 새로운 전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변역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연민소통’이라고 이름붙인 적절하고도 원활한 소통을 위한 열두 가지 전략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그 전략은 “1. 긴장을 푼다, 2. 현재에 머문다, 3. 내면의 침묵을 강화한다, 4. 긍정성을 높인다, 5.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숙고한다, 6. 즐거운 기억에 접속한다, 7. 비언어적 신호를 관찰한다, 8. 감사를 표현한다, 9. 따뜻하게 말한다, 10. 천천히 말한다, 11. 간단히 말한다, 12. 깊이 듣는다.(12쪽)”입니다. 우선은 우리말로 옮겨진 용어들이 쉽기는 하지만 간혹 핵심내용이 무엇인지 머릿속에 쉽게 정리되지 않는 것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읽어나가다 보면 금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읽어가면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상대와 대화를 나누기 전에 “나는 지금 만나려는 사람의 어떤 점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질문을 통하여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대화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별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제8장 ‘의식, 협력, 신뢰를 강화시키는 12단계’에서 설명하고 있고, 제9장 ‘사회적 뇌를 재훈련하라’에서는 8장에서 설명한 전략들을 몸에 익힐 수 있도록 훈련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그리고 둘이서 같이 훈련하는 방법인데 읽어나가다 보니 공연히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들은 “대화 중에 연민소통 전략을 사용하면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바로 두 사람의 뇌가 서로 공조하기 시작한다. 이 특별한 유대와 공조가 이른바 ‘신경공명’이라는 현상이며, 이 고조된 상호 조화상태에서 두 사람은 함께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다.(13쪽)”고 적고 있는데, 이론적 근거는 연민소통법이 대뇌에 있는 거울세포를 활성화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고도 소중한 대화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 직장과 가정에서 연민소통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하는 사례를 제3장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소통기술’편에서 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사이에서, 직장에서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자녀들과 대화할 때 연민소통법을 적용한 사례가 되겠습니다.

 

저 역시 최근 아이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습득한 소통전략을 제대로 사용해볼 생각입니다. “부모들이 연민소통의 원칙을 가정에 적용하면 자녀의 공격적인 행동이 줄어들고 현제들과도 더 사이좋게 지낸다. 또 부모들이 깊이 듣는법을 배우면 파괴적 성향이 있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222쪽)”고 적고 있어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아내에게도 소개하여 연민소통법을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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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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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노벨문학상은 또다시 우리나라를 비켜 이웃나라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소문에는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접전 끝에 중국의 모옌으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모옌은 198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던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이자 각본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고들 합니다. <붉은 수수밭은>모옌의 중편 <홍까오량 가족>을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장예모감독과 주연을 맡은 공리가 이 영화를 계기로 세계적 스타로 떠오르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작가 모옌 역시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만들어주었으니 한편의 영화가 가지는 문화적 파워의 영향력을 짐작케 합니다.

 

모옌은 1987년 프랑스로 망명한 다음 200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가오싱젠이나 201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류샤오보의 경우와는 달리 중국당국으로부터는 환영을 중국정부에 비판적인 그룹으로부터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민해방군 출신 작가이며 중국 당국의 검열읕 염두에 두고 쓴 작품에서 작가정신이 얼마나 반영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구심때문이라고 보입니다만, 조선일보의 김태훈 차장은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검열에 짓눌려 형편없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검열의 칼날을 교묘히 피해가며 중국의 원형적 가치를 훼손한 인민공화국을 비판하는 모옌의 솜씨를 볼 수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조선일보 2012년 10월 23일자. [조선데스크] ‘중국 노벨 문학상’ 흉보기) 아마도 모옌이 한국어판 서문에서 “소설을 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을 쓰는 것이며, 나는 ‘사람을 똑바로 보고 쓰기’로 했다.”라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인성을 중요시하는 그의 창작철학을 고려한다면 그에 대한 비판자의 시각이 다소 편협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모옌의 최신작 <개구리>를 보면 이런 지적이 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국은 남아선호사상이 우리나라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한 가정 한 자녀’를 강제하는 ‘계획생육’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엄청난 반발과 부작용이 있었을 것이란 점을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과거 ‘죽의 장막’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을 정도였던 중국의 국내사정이 외국에 알려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 실상은 감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옌은 <개구리>를 통하여 ‘계획생육’ 정책이 추진되는 동안 중국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설적화법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른 탓에 중국정부의 검열이 느슨해진 것인지 아니면 <개구리>를 통해서 계획생육정책의 절박함 역시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1949년 당시 5억 4천만명이던 중국인구가 1969년 8억을 넘어서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민을 먹여 살리는 일이 결국은 국가운영의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수립된 정책이 계획생육이라고 합니다. 점진적으로 추진되었던 우리나라의 가족계획정책과는 비교되는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1950년대 베이비붐을 맞으면서 인구정책의 필요성을 느낀 우리나라는 1961년 사단법인 가족계획협회을 창설하고 60년대 3자녀 운동을 1970년대에는 다시 2자녀로 목표를 수정해서 국가시책으로 추진하다가 1980년대 들어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어 이제는 다자녀를 권장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지만, 젊은층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합니다.

 

서신체라는 독특한 소설구조에 연극의 극본을 결합한 복합적인 체계를 가진 <개구리>는 노먼 벳순과 함께 팔로군 군의관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고모는 산부인과를 전공하여 잘 나가다가 약혼자가 대만으로 탈출하는 바람에 졸지에 입장이 난처해졌는데, 이 무렵 정부에서 계획생육제도를 추진하면서 인공임신중절과 정관수술을 맡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민들의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은 정부의 감시를 벗어나 사내아이를 가지려 별별 수단을 다 쓰지만 정부 역시 주민들을 이간시키고 폭력도 불사하는 극약처방으로 대응하게 되고 화자의 고모가 가장 일선에서 일을 떠맡게 됩니다. 화자인 커더우 아내 런메이 역시 딸을 낳게 되지 고모의 눈을 피해 둘째를 임신한 다음 몸을 숨기는데, 고모는 집요한 추적 끝에 중절수술대에 올리지만 수술도중 출혈로 런메이가 사망하게 됩니다. 사실 임신말기의 중절수술은 산모가 죽음에 이를 위험이 아주 높기 때문에 시술의사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젊어서는 정부의 앞잡이가 되어 인공중절수술을 도맡아하고 때로는 임신부를 추적하다가 혹은 임신중절수술 도중에 임산부가 사망하는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던 고모가 은퇴하고서 자신의 손으로 지운 아이들과 자신의 무모함 때문에 세상을 떠난 여인들에 대한 연민으로 흔들리게 됩니다. 커더우는 이런 고모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중국 정부의 계획생육제도의 비참했던 실상을 고발하겠다는 마음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는 내용이 줄거리가 되는데, 화자인 커더우는 작가 모옌의 대리인이라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듯 계획생육으로 출산을 통제하던 중국에서 이제는 불법이기는 하지만 대리모를 통해서 아들을 낳아주는 사업까지 벌이고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에서 고모를 중심으로 벌였던 계획생육제도 아래 일어났던 불행한 사건들의 전말을 빠뜨림 없이 기록하고 고모의 삶이 변하는 모습을 그리다보니 이야기가 다소 방만하게 흘러간 점이 없지 않은 듯 합니다. 또한 자신의 행적에 대한 고모의 심리적 갈등을 극본의 형식으로 담고 있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읽는 호흡이 갑자기 바뀌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는 말씀을 사족으로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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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클럽 2
매튜 펄 지음, 이미정.장은수 옮김 / 펄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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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1865년에 일어난 사건을 뒤쫓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사건의 시대적 배경에 1865년에 끝난 미국의 남북전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노예제도의 폐지를 둘러싼 남부와 북부의 갈등으로 빚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부지역이 노예제도를 반대한 이유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처럼 북부사람들의 인도주의적 성향 때문이라기보다는 농업이 발달한 남부에서 노예의 일손을 필요로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공업이 발전한 북부에서는 값싼 흑인 노동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는 점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남북전쟁은 1861년 4월 노예제도를 지지하던 남부 주들이 남부연합을 결성하여 미합중국으로부터 분리를 선언하고, 4월 12일 아메리카 남부 연합군(남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항의 섬터 요새를 포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초반 기세를 올리던 남군은 1863년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패한 것을 고비로 점차 밀려 1865년 4월 9일 남군의 리 장군이 항복하면서 붕괴하고 1865년 11월 6일 최종적으로 항복함으로서 전쟁이 마무리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남북전쟁이 마무리단계에 있을 무렵으로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점, 당시 북부에서도 금전을 주고 전쟁터로 가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사회불안 요인이 되었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힐리판사의 죽음의 배경이 되고 있는 도망노예법이 대한 이해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도망노예법’은 도망간 노예를 소유주에게 돌려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으로, 노예제도를 두고 갈등을 빚어온 남부와 북부가 극한상황을 피하기 위한 타협의 산물이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이 법을 계기로 노예제도에 대하여 막연하던 북부사람들이 흑인노예들의 잔학한 실상을 알게 되어 납북전쟁의 단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단테클럽으로 돌아와서 2부가 시작되면서 세 번째 희생자가 생기게 됩니다. 단테클럽의 핵심멤버인 로웰교수의 친구 제니슨의 폐쇄된 요새에서 끔찍하게 난자된 모습으로 발견된 것입니다. 제니슨의 부검에 참여한 홈즈교수는 심리적으로 혼란상태에 빠지고 단테클럽에서 탈퇴는 선언하지만 결국은 사건을 해결하는 단초를 발견해내게 됩니다. 그 단초는 역시 <신곡>의 한 구절에서 찾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단초를 찾았다고 해서 범인이 바로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이 텍스트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당시만 해도 연쇄살인범의 정신상태를 분석하는 등의 수사기법이 발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 때라서 작가는 범인을 사이코패스라고 단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후반부에 드러나는 범인은 사고체계가 정상이 아닌 일종의 사이코패스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건을 뒤쫓는 사람들이 여럿인 까닭에 시선이 분산되는 부작용(?)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간다는 구도가 어떻게 보면 셜록 홈즈와 같이 다방면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한 사람의 영웅이 사건을 뒤쫓는 스토리구성과는 다른 맛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단테클럽>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른 범인을 뒤쫓고 추가범행을 저지하기 위한 주인공들의 노력을 감상하는 재미 이외에도 19세기 보스턴을 무대로 활동하던 롱펠로우 교수를 비롯한 다수의 문인들의 가족 및 개인사, 혹은 그들 사이에 있었던 관계 등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읽을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단테클럽>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줄곳 단테의 <신곡>을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건수사의 줄기는 <신곡>에 나오는 결정적 한 구절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나 홀로 그 전쟁을 견뎌 낼 준비를 하노라./ 고통과 연민으로 가득한 방랑의 길을,/ 내 기억은 이 모든 것을 틀림없이 기록하리라.(e io sol uno, m'apparecchiava a sostener la guerra, sì del cammino e sì de la pietate...)(126쪽)” 지옥에 첫발을 들여놓으려는 단테가 스스로의 마음을 다지는 장면을 전쟁터를 누벼온 자신의 경험을 녹여 쓴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해결을 앞둔 클라이막스에는 적당한 톤으로 고조되는 위기상황이 조성되어야 하고, 위기는 뜻밖의 등장인물에 의하여 반전되면 극적인 효과를 즐길 수 있습니다만, 저자는 이런 공식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어 읽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더라는 말씀을 끝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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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클럽 1
매튜 펄 지음, 이미정.장은수 옮김 / 펄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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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읽을 때 무대가 되는 장소가 잘 아는 곳이면 소설의 흐름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매튜 펄의 <단테클럽>은 1865년 미국의 보스턴을 무대로 하여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을 뒤쫓고 있습니다. 주요 무대가 되는 하버드대학교와 롱펠로우의 집 그리고 시내의 보스턴커먼과 올드 코너 등, 지난 6월에 보스턴에서 열린 학회를 다녀오면서 돌아보았던 장소(http://blog.joinsmsn.com/yang412/12880647)들이 등장하고 있어서인지 작가의 설명이 금새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었습니다. 리뷰를 읽으시는 분들도 제가 소개하는 보스턴 시가지를 둘어보시면 <단테클럽>에 대한 관심이 커지실 것 같습니다.

 

연쇄살인사건의 경우 범인은 사건마다 흔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공통점이 있다거나 심지어는 다음 번 사건을 예고하는 사인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런 점을 유추해서 범인을 좁혀 들어갈 수 있어야 읽는 재미도 더하기 마련인데, <단체클럽>의 경우에서는 특이한 사건전개를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보스턴 지역의 유지라고 할 수 있는 힐리판사와 톨벗목사가 잇달아 살해되는 동안 시인 롱펠로우를 중심으로 하여 단테의 <신곡>을 번역하는 단테클럽과 하버드대학의 집행위원회를 대변하는 매닝교수의 갈등에 대하여 따로 설명해나가고 있습니다. 경찰이 주도하는 사건수사와 단테클럽이 어떻게 연결되어 사건을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도 관전포인트일 수 있습니다.

 

단테클럽은 롱펠로우교수를 비롯하여 번역이 끝나면 출판을 담당할 필즈, 원전해석에 참여하고 있는 단테를 강의하는 로웰교수, 그리고 의과대학의 홈즈교수, 그리고 그린 목사겸 교수 등이 핵심멤버입니다. 참고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후주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읽어나가면서 후주를 읽는 것이 불편한 독자들은 먼저 후주를 읽어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를 갖추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경찰이 오리무중인 범인의 종적을 뒤쫓고 있는 동안 단테클럽은 <신곡>의 번역을 통하여 미국 독서계에 불어닥칠 수 있는 단테열풍을 타고 가톨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질 것을 우려하는 유니테리언계 기독교 인사들이 <신곡>의 번역을 저지하려는 노력을 그리고 있습니다. 읽다보면 이들 가운데 범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고전을 전공하는 매닝교수의 입장에서 현대어란 값싼 모방이나 조악한 왜곡에 지나지 않아서 스페인인이나 독일인과 마찬가지고 이탈리아인들 역시 나사 풀린 정치적 열정과 육체적 욕망, 그리고 타락한 유럽의 도덕성 부재를 대변한다고 여겨 외국의 독이 문학으로 위장해서 미국에 퍼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신곡>의 번역을 중지시키려는 노력에 적극 나서게 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별도의 구조로 전개되던 이야기는 톨즈목사의 주검에 대한 부검에 홈즈가 참여하면서 그를 살해한 방식이 <신곡>의 지옥편에 등장하는 성직매매자에 대한 처벌, ‘발꿈치에서 발끝까지(Dai calcagni a le punte)'을 따르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고 결국은 단테클럽이 경찰수사와 별도로 사건수사에 착수하게 되면서 연쇄살인사건이 <신곡>의 지옥편과 연관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당연히 범인은 오리무중인 상태라서 독자의 궁금증을 한껏 부풀리고 있습니다.

 

단테가 지옥에서 만난 사람은 자신의 죄목에 따른 콘트라파소(contrapasso), 즉 영원한 형벌을 받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단테클럽>에 등장하는 희생자들 역시 롱펠로우의 번역이 진행되는 과정과 흡사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고 있다는 점이 전율을 느끼게 하는 점입니다. 어느새 살인자는 <신곡>에 나오는 루시퍼로 불리게 되는데, 루시퍼(Lucifer)는 신곡의 지옥편 가운데 가장 깊은 ‘반역 지옥’에 머물고 있는 악마 중의 악마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단테클럽은 진행하고 있는 단테의 <신곡>의 번역작업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뒤쫓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범인의 그림자를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요? 일단 1부는 범인의 그림자 끝도 밟아보지 못하고 끝이 났습니다.

 

사족입니다만,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문인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데다가, 보스턴 문단과 뉴욕 문단이 경쟁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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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교양 강의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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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국어사전에서는 교양(敎養)이란 “지식, 정서, 도덕 등을 바탕으로 길러진 고상하고 원만한 품성”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품성을 갖추기 위하여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거나, 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경로의 교양강좌에서 관련 분야의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예과시절에 의학교육에 필요한 필수과목 이외에도 교양과목들을 공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 되어 몇 가지밖에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국사, 문화사, 철학 등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해당과목의 일반적인 사항으로, 당시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던 것을 다루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하버드 교양 강의>는 하버드 대학교 문리학부의 교양교육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진후인 1945년 <자유 사회의 교양교육>이란 이름의 책을 통하여 하버드대학은 “앞으로 우리 시민이 될 사람들을 가능한 많이 교육하여, 그들이 미국인이고 자유인이기에 갖는 책임과 혜택을 알게 하는 것”이라는 교육목표를 당당하게 선언하였다고 합니다(7쪽).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교양교육과정의 목표에 학부생들이 한국인이고, 자유인이기에 갖는 책임과 혜택을 알도록 명시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유산과 변화‘에 초점을 둔 교육이라고 주로 해석된 교양교육과정은 1970년대에는 학생들에게 지식에 접근하는 주요 방법을 소개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다시 21세기 들어 기술에서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방법론이 바뀜에 따라 교육의 핵심을 새롭게 정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적지 않은 준비기간을 거쳐 2009년 시작된 새로운 교양교육과정은 “학생들이 하버드 대학교 강의실에서 배운 내용을 상아탑 밖에서도 그리고 졸업한 뒤에도 실생활에서 직접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 급변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시민의 자질을 심어주고, 스스로를 문화의 산물이자 참가자로 인식하게 하며, 윤리의식을 고취케 하고자 한다.(8쪽)”고 합니다. 이처럼 하버드 대학의 변화는 시의적절하여 학부학생이 시대의 변화에 맞는 품성을 갖추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하버드 대학은 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이외에도 대중교육이라는 사명도 수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대학 수업을 들을 능력이 되고 듣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정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사회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으로 ‘저녁 강의’와 ‘여름 강의’ 외에도 150개가 넘는 온라인 강의를 일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의 대중교육의 일환으로 교양교육이 아우르는 다양한 예술·인문·과학 분야에서의 주제를 골라 각 분야를 대표하는 교수들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글들이 우리 시대의 주요 쟁점을 해박하고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데, 해당 분야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생각을 아우르며, 저자 나름대로의 판단을 더하고 있습니다. 각 주제의 말미에는 저자가 인용한 자료의 목록 뿐 만이 아니라 관심있는 독자들이 더 읽어 이해의 폭을 넓히고 독자 나름대로의 판단을 가지는데 도움이 될 참고도서의 목록을 덧붙이고 있습니다.(옮긴이는 해당 도서들이 국내 출간정보를 더하는 열성을 보여주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모두 열 개의 주제들 가운데 스티븐 핑커교수의 ‘인간정신’을 가장 먼저 다루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정신세계가 중요할 뿐만 아니라 밝혀져야 할 영역이 풍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정신에 이어서 도덕, 지구사, 세계인권, 사이버공간, 진화, 종교, 질병, 에너지 및 환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학 등의 분야에서의 뜨거운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해당 주제들 모두 독립적으로 다루어도 한권 이상의 분량을 이룰 정도로 논의범위가 방대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30~50쪽 정도의 분량으로 요약되고 있어 수박 겉핥기식의 개론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개강좌의 특성상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들을 개괄하여 독자들은 관심에 따라서 필요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나, 각론에 해당하는 책들을 읽다보면 자칫 놓칠 수 있는 중심줄거리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북소리]에 늘어놓는 저의 리뷰가 때로는 넋두리처럼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전체의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면 [북소리] 리뷰 원고의 심리적 한계를 넘길 듯하여 <하버드 교양강의>를 읽으면서 저에게 특별했던 주제 몇 가지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려 합니다.

 

아무래도 첫 번째 주제가 되는 ‘인간 정신’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언어심리학과 진화심리학을 강의하고 있는 스티븐 핑거교수가 쓴 글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심리학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만, 실험자료들을 인용하여 기억과 착각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활동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정신의 작동방식에 관한 인간의 심리 가운데 추론, 감정 그리고 사회관계와의 관련 등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은 정신의학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개인이 혹은 집단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심리학에 관한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정신’에 이어 ‘도덕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두 번째 주제는 철학과 스캔론교수의 글입니다. 금년 말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 ‘도덕성’이 우리사회에 큰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저자는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와 자신의 방식의 계약주의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리주의에서 도덕은 사회 통제체계이며 비공식적 법이라는 공통적인 인식에서 출발하는데, 공리주의가 보편적 선(善)을 근거로 목표가 되고 정당화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계약주의에서의 도덕 기준은 사회 통제의 일차적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하는데 있어 공리주의는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고려하지만, 계약주의는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정당화되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도덕이 무엇이고, 그것이 왜 중요한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은 서로 다른 다양한 가치를 통합할 때 가장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82쪽)”는 점을 바탕으로 도덕에 대한 설명을 이끌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보는 인권에 관한 현상과 관련하여 철학 공공정책을 전공하는 마티어스 리스교수의 ‘세계인권에 관한 철학적 탐구’는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인권에 관한 사회적 현상을 지적하는 저자의 다음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권은 해방을 뜻하는 가장 흔한 말이 되었다. 조직적인 힘이 마땅히 돌봐야 할 사람에게 되레 해를 입힐 경우 그것을 비난할 때, 마르크스주의적 표현이나 비판이론 또는 근대화이론이나 종속이론 아니면 ‘인간’의 권리와는 대조적으로 정의니 권리와 의무니 하는 도덕적 표현에 호소하기보다 인권에 호소하는 일이 잦아졌다.(124쪽)”

 

저자는 인권운동를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평가하기 보다는 철학에 기초한 인권의 개념을 논하고 있는데, 인권, 즉 인간의 권리 밑바탕에 개인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권리는 갖는다는 생각이 있고, 따라서 그러한 권리 실현은 개인이 속한 국가의 관심사일 뿐 아니라 세계적 책임이 된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인권의 세계적 책임과 관련하여 도덕 상대주의에 대한 저자의 설명도 있어서,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인권의 상대주의 현상이 이해되지 않는 다는 점을 꼭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도덕 상대주의란 근본적 가치와 윤리적 신념은 문화와 밀착된다는 논리로, 해당 문화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거기에 진지하게 개입할 수 없다.(155쪽)”는 것인데 인권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특정집단이 북한 동포의 인권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될 때는 굳게 입을 다무는 현상을 도덕 상대주의로 설명이 가능할 것인가 여전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컴퓨터과학을 담당하고 있는 해리 루이스교수의 ‘사이버공간에서의 자유’라는 제목의 글은 최근 우리사회에서도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 사이버공간에 관한 통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열린 공간이라는 특성을 가진 인터넷공간에서 대부분의 네티즌은 자유를 넘어 방종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어 정도를 넘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유를 즐기기 위하여 일정 수준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공감할 수 없는 통제도 있다는 점을 꼬집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와 우리 아이들과 우리 사회를 기술이 만든 악막에게서 보호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두려운 악마를 억누를 목적으로 다양한 법과 규제를 제안하고 실행한다. 그것들은 더러는 정치적이고, 더러는 개인적이며, 더러는 상업적이다.(190쪽)”

 

인터넷을 통하여 일어나는 여론몰이 현상에 대한 분석과 해답을 보면서 2008년 우리사회를 달구었던 제2광우병파동을 떠올렸습니다. 저자가 “여론몰이에서 두려움은 자유보다 잘 먹힌다. 우리는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과장한다.(193쪽)”라고 적은 것처럼 2008년 당시, 때로는 괴담 수준의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정부는 아무런 대응없이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전문가들 가운데 일부는 인터넷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부축이기까지 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치닫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필자를 비롯한 소수의 전문가들이 나서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글로 사태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하였고 오랜 노력 끝에 결국 빛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루이스교수 역시 “두려움에는 지식이 약이다. 교육은 장기적으로 공포를 이긴다. 말에는 말로 대응해야 옳다는 것이 궁극적인 결론이다. 나쁜 정보에는 올바른 정보로 대응해야 하고, 거짓에는 진실로 대응해야 한다.(196쪽)”는 말로 정리되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리학과의 조너선 로서스교수는 ‘진화의 증거’ 편에서 “나는 진화생물학을 가르칠 때, 세월과 더불어 생물 종이 변해온 실제 기록보다는 진화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시조새의 그림이 빠지는 등, 진화론을 부정하는 특정 종교의 움직임과 관련하여 교과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에서 참고할 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진화론을 부정하는 창조론과 이어 나온 지적설계론 그리고 이 이론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시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이론의 허구를 비판하고, “우리 주위에 있는 생물의 다양성을 설명할 견고한 대안과학이론은 (진화론 이외에) 없다.(244쪽)”고 결론내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과대학의 캐린 미셸스교수의 ‘질병의 과학’에 대한 느낌입니다. 19세기 중반 런던에서 발생한 콜레라를 역학조사방법으로 접근하여 확산을 방지한 존 스노우경의 사례를 빌어 역학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구방법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모순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건강 과학뉴스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학부생을 비롯하여 일반대중이 갖추어야 할 다양한 분야에서의 지식을 이해하기 쉽게 요약하여 전달하려는 하버드 대학의 노력은 대학이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나온 결과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점과 이러한 교양과목에서는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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