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담긴 과학 - 와인에 얽힌 15가지 과학 이야기
강호정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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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우를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주종을 가리지 않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는 술이 주는 느낌으로부터 술을 마시는 분위기까지를 제대로 느끼려 생각하는 편입니다. 최근에는 제가 알라딘 블로그 커뮤니티에서 닉네임으로 사용하고 있는 브랜드의 소주를 주로 마시는 편입니다. 하지만 지방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지역별로 나뉘어있는 브랜드 소주 혹은 토속주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른 동네에 가면 그 동네 술을 마셔 보아야 한다.’는 강호정교수님의 와인선택철학을 저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양조(釀造)가 정부의 통제 아래에 있기는 하지만 고장마다 독특한 향미를 자랑하는 향토주가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문화를 말살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대부분의 향토주가 사라지고 근래 들어 각고의 복원작업 끝에 몇 가지 술이 다시 옛 맛을 살리고 있습니다. 다른 동네에 가면 그 동네 술을 마셔 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와인에 관한 이야기가 곁길로 빠졌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부상하고 있는 와인에 저 역시 관심을 가져보려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와인’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와인을 마실 기회가 되면, 약주마시 듯 원샷을 하지 않는 선에서 와인에 대한 무식이 탄로 나지 않도록 위장하고 있다는 고백을 드립니다. 이제 겨우 까베르네 쇼비뇽이 와인을 만드는 포도의 품종이라는 것을 깨친 저로서는 “와인의 ‘폭발적’ 맛이 화산폭발로 생긴 토양의 맛을 반영한다.”거나 “붉은 토양이 와인의 ‘붉은’ 고유의 색을 만들어낸다.”는 등 저자가 인용한 현학적이고 수사적인 표현을 따라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강호정교수님께서는 와인에 대한 많은 과학적 연구성과 가운데 일반인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것들을 골라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하여 <와인에 담긴 과학>에 담았다고 합니다. 와인양조학(oenology) 수준의 학문적 성과까지 다룬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도 잘 알고 있는 네이처나 사이언스와 같은 과학전문 학술지에 실린 내용들이니 일반적으로 와인을 소개하는 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들이라 하겠습니다.


서문을 읽다보면 글쓰기와 책쓰기에 대한 강호정교수님의 내공에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 있습니다. ‘포도는 뿌리, 줄기, 잎, 열매의 네 가지 요소로, 자연은 흙, 물, 공기, 불의 네 가지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고 있는 도멘 르루와를 소유하고 있는 랄루 비즈-르루와의 생각을 인용하면서, 과학자답게 ‘지상은 흙, 물, 공기, 불의 네 가지 기본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주는 에테르라고 하는 완전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5원소설’을 끌어와 기본틀을 구성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천문학의 영역에 속하는 별자리 12궁이 흙, 물, 공기, 불의 네 가지 구성요소가 각각 3개씩 배치되어 구성된 것을 참고하여 5원소에 각각 세 가지의 세부항을 두어 모두 15가지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하니, 정말 깜찍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흙, 물, 공기, 불, 에테르’에 각각 들어가 있는 세 꼭지의 글들이 5원소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의학은 과학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단정적으로 말씀하는 실험실과학자도 있습니다만, 방법론적으로 볼 때 의학은 분명 과학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응용과학이라고 분류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책읽은 느낌을 적어보겠습니다. 먼저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제목을 붙인 제 1 장을 보겠습니다. ‘와인에 얽힌 다양한 생물의 세계’라는 부제가 달린 것처럼 주로 와인의 품질을 좌우하는 미생물에 관한 학문적 분석을 담고 있습니다. 포도를 발효시켜 와인이 되는 과정(이런 역할을 하는 미생물은 좋은 놈입니다), 그리고 와인을 산패시키는 주범(당연히 나쁜 놈이겠지요?) 그리고 아이스와인과 유사한 소테른이나 토카이 같은 고급 후식와인은 포도를 부패시키는 미생물의 특성이 기후조건에 따라서 유익한 방향으로 전환되는 점을 이용하여 만들었다고 해서 이상한 미생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홍승우화백의 삽화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7080세대에게는 익숙한 석양의 무법자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삽화를 보면 저자의 생각을 참 잘도 읽었구나 싶습니다.


저의 리뷰를 읽으시는 분들이 대부분 보건의료분야에 계시기 때문에 ‘와인이 보약이다’라는 제목의 5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레드 와인에는 폴리페놀이 많이 들어 있어 건강에 유익하다고 믿어져 왔지만, ‘프랑스인의 역설’이 그 믿음에 힘을 더해주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인들은 다른 서구사람들보다 엄청난 양의 포화지방을 섭취하는데, 포화지방은 녹는점이 높기 때문에 많이 섭취하면 혈액을 탁하게 하고 혈관이 막히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포화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프랑스사람들에서 심혈관질환의 발생이 적은 비밀이 바로 레드와인에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구전되어오던 이 생각은 1990년대 프랑스 과학자 세르주 드노박사가 학계에 공식 보고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강호정교수는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는 점도 빠트리지 않아 <와인에 담긴 과학>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있습니다. 마침 책을 읽고 리뷰를 준비하는 동안 레드와인이 심혈관질환 건강과 노화에 이롭다는 연구결과 가운데 연관된 데이터를 대규모로 조작한 논문들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와인에 담긴 과학>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와인의 떼루아에 대한 과학적 접근방법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와인에 문외한이지만 ‘떼루아’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제가 드라마에 관심이 많은 덕분인데 2년 전에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위키디피아에는 “<떼루아; Terroir>가 원래 토양을 의미하는 프랑스 단어이지만 포도주(Grape Wine)가 만들어지는 모든 환경. 즉, 포도가 자라는 토양과 기후조건, 자연조건 그리고 만드는 사람의 정성 등을 뜻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되어 있습니다. 강호정교수님께서 떼루아를 ‘와인의 생태학’ 혹은 ‘포도밭의 정체성’이라한 표현한 까닭이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강호정교수님께서 <와인에 담긴 과학>에서 와인과 관련된 ‘흙, 물, 공기, 불, 에테르’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과학적 분석결과를 쉽게 설명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와인에 대한 색다른 앎을 얻을 기회가 될 것입니다. 조금 더 소개드린다면 유전자분석방법을 통하여 포도품종의 족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거나, 현장을 찾지 않더라도 원격탐사와 인공위성사진과 같은 지리정보시스템을 이용하여 포도품종에 꼭 맞는 재배장소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거나, 화학분석을 통하여 가짜 와인을 감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들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서, 어쩌면 뚱딴지같은 생각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와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신의 영역을 넘겨보는 인간의 무한도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의 물방울’이라 부르는 와인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과학이라는 포장으로 찢고 쪼개고 부수는 참담한 짓을 신께서 관용하시겠는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과학적 분석으로도 소믈리에의 평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는 합니다만, 체스게임에서 드디어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있었다는 예를 보더라도 언젠가는 한 장의 분석평가서로 와인의 질을 표시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되면 ‘신의 물방울’이라는 별명도 사라지게 되는 것인가요?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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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1-1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 http://www.rapportian.com"에 올리고 있는 북리뷰관련 이벤트 안내입니다.

'양기화의 Book소리'에 트위트나 페이스북을 통해 서평에 관한 소셜댓글을 남겨주시면 매주 5분을 추첨해 해당도서를 보내드립니다. 댓글을 남긴 후 메일(bus19@rapportian.com)로 주소를 알려주세요.

oren 2012-01-19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와인을 좀 알아보고 싶은데 말이지요.. 까쇼(까베르네 쇼비뇽)와 쇼블(쇼비뇽 블랑)이 포도품종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으니, 이런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도 같습니다. (제가 최근에 사서 마셔본 것 중 괜찮은 것들로는 '발레 안디노 리제르바 쇼비뇽 블랑'과 '발레 안디노 이스페셜 쉬라' 그리고 '몬테스 알파 쉬라' 등 '칠레 와인'들이었는데, 처음처럼님께서도 혹시 기회가 되시면 드셔보세요~)

처음처럼 2012-01-21 18:41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회가 되면 꼭 음미해볻록 하겠습니다.
 
창선감의록 우리고전 다시읽기 3
구인환 엮음 / 신원문화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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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의 난쏘공 활동기간 중에 많은 인문학 서적들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평소 읽어온 책들과는 다른 분야였던 탓에 정독을 하다보면 리뷰를 작성해야 하는 1달이 훌쩍 가곤했습니다. 특히 부피가 있는 책을 읽을 때는 리뷰로 요약하는 일조차 힘겹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책 가운데 간호윤교수님의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 http://blog.joinsmsn.com/yang412/11888212>이 있었습니다. 현대적 문체로 풀어 소개한 책들은 대부분 읽어 알고 있지만, 알지 못하던 우리 고소설이 그렇게나 많이 있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가끔은 아이들 책장을 살펴보는데, 그 이유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2년에 나온 책이니 오래된 책입니다만, <창선감의록>도 작은 아이의 책장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아내에게 듣기로는 어느 해 수능시험에 <창선감의록>이 인용되었다 해서 입시준비용으로 읽은 책이라는 것입니다. 참 대단한 대한민국입니다.

 

<창선감의록>은 해제한 분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간호윤교수님에 따르면 이본이 무려 351편이라고 하니 요즘으로 치면 꿈의 시청률 50%를 넘어 고공비행한 인기소설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읽은 구인환교수님이 엮은 책이나 가장 최근에 나온 이지영교수님이 엮은 책에서도 작가 미상이라 표기하고 있습니다만, 간호윤교수님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선 19대 숙종때 유학자 조성기를 작가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윤리였던 충효사상과 권선징악을 핵심으로 하고 있고, 작가가 명문 사대부였으며, 집필동기가 ‘어머니’의 시름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 대중적 인기몰이를 한 까닭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우리나라의 관직 등이 등장하여 조금 헷갈리기는 합니다만, 중국의 명나라입니다. 지금도 가보지 못한 이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같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에 살던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가보지 못하였지만 구전으로 듣는 중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대를 중국으로 하는 경향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당대의 권력자 엄숭이 조자룡 헌칼 쓰듯 마구 휘두르는 권력으로 무너지는 나라기강을 바로 잡기에 한계를 느낀 도어사 화욱이 낙향하여 세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화욱의 아들 정진이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고 다시 향리로 물러나있는 중에 셋째부인 심씨와 그 소생 화춘, 그리고 그의 후처 조녀의 등장으로 맞은 멸문의 위기를 화진의 지고한 윤리적 성정이 빛을 발해서 만사가 해결된다는 해피엔딩에 이르는 소설입니다. 딱 요즘 말로 바꿔 말하면 영어로는 soap drama의 범주에 넣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장르라고 할 막장드라마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읽는 이의 눈물로 범벅이 되고 주인공이 위기에 몰리면 악역을 한 심씨와 조녀, 화춘이 독자의 지탄을 받고, 핍박받는 남녀 주인공에게 애절한 마음이 쏠렸을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요즈음의 시청자들이 막장드라마라고 비난을 하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못하는 이유가 막장에 대한 성향이 유전자에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창선감의록>을 엮은 구인환교수님에 따르면 조정에서 일어나는 권력싸움이나 변경에서 일어나는 전쟁도 등장하지만 화욱의 가솔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다루고 있고 결국은 선한 이가 승리한다는 도덕소설로 보고 있습니다. ‘인생은 남녀와 귀천을 막론하고 충효로서 근본을 삼고 여타의 다른 덕행은 모두 이에서 나온다’고 작가가 모두에 밝히고 있는 점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간호윤교수님의 경우는 이 작품이 나올 무렵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치열하던 당쟁에서 밀린 서인(조성기는 서인이었다고 합니다)을 윤리적으로 우위에 두려는 의도가 녹아 있지 않겠나 추정하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는 불교와 도가적 사상까지도 등장하여 읽기에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만, 그저 읽는데 흥미를 더한다 생각하면 별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계모 심씨와 그 아들 춘의 계략에 말려 그들을 살해하려 했다는 모함을 받은 주인공 화진이 변명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형을 받기로 한 배경이 요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즉 자기가 변명하여 진실이 밝혀지게 되면 모함을 한 계모 심씨와 형인 화춘이 화를 당하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누명을 쓰는 쪽을 택한 주인공을 저 역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의 이런 걱정을 배려하여 주인공의 이런 선택이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결국든 자신을 모함한 계모와 형님이 개과천선하는 계기로 이끌고 있으니 독자들의 환호성을 받게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현대문으로 옮겼습니다만 고어체가 많이 남아있어 읽는 호흡을 맞추기가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우리 선조들의 생각의 단편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학생시절에 <홍루몽>을 읽고 그런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판타지를 가졌던 기억도 되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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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KBS 사이언스 대기획 인간탐구
김윤환.기억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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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아무래도 기억력이 조금씩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적에는 스치듯 본 것까지도 잘 기억해내서 할머님께서 기특하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던 것 같습니다.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억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기억은 어떻게 갈무리되는지 관심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기억의 형성에 관한, 기억력을 높이는 방법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해왔고,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만, 아직도 해야 할 연구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기억>은 KBS 사이언스 대기획 <인간탐구>에서 3부작으로 다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조사된 자료를 토대로 프로그램을 주관한 김윤환PD님이 요약하여 보고 듣는 프로그램을 읽고 생각하는 책으로 만든 것입니다. 역시 TV프로그램을 제작하시는 분답게 오밀조밀한 구성에 다양한 화면구성으로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풍성하게 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께서 기억에 관심을 가지게 동기가 보통사람들과는 차이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길상사 덕현스님이 설법 중에 주신 ‘나는 누구일까요? 우린 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이곳에 있을까요? 그리고 왜 고민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평생을 살다가 떠날까요?’라는 사람의 근원적 존재이유에 대한 물음을 듣고서, ‘왜 나는 남과 다르지? 부모님께 받은 유전자? 개성? 인격? 나를 나로 있게 하는 것은 뭐지? 그리고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뭘까?’하는 의문이 화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 가운데 하나가 ‘기억’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기억을 뒤쫓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기억에 관한 자료는 너무 방대해서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을 지경입니다. 저자는 관련 자료를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그 첫 번째는 기억이란 무엇인지, 기억이 왜 만들어지는지,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져 어떻게 저장되는지를 한 묶음으로 하여 ‘1부 오래된 미래, 기억’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고민대상인 기억력감퇴에 관한 이야기, 건망증에서부터 치매로 인한 기억력 상실에 이르는 심각한 병적 상태,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실험을 통하여 증명하려는 노력을 ‘2부 봄날은 온다’에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3부에서는 기억이 사라지는 망각(妄覺)은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기억을 잊거나 나쁜 기억을 오히려 좋은 기억으로 바꾸는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TV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내용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환자 사례들을 볼 수 있어 기억과 관련된 질환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국내외 석학들을 두루 만나 그들의 연구성과를 정리하고 기억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요약하여 박스형태로 혹은 본문에서 충실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진자료들은 뇌과학의 연구산물에서부터 환자와 관련된 영상자료, 병리학 자료들이 전문가들이 참고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입니다. 그리하다 보니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를 뛰어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뇌의학의 한 분야를 공부한 저도 생소하다 싶을 정도의 자료도 있습니다.) 실물사진을 바탕으로 그래픽처리를 한 그림들도 많았습니다만, 영상자료를 옮기다 보니 사진설명으로 충분할까 싶은 부분도 있는 듯합니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충분한 자문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워낙이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했겠다 싶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57쪽에서 인용하고 있는 뇌사진은 형태로 보아 정상 성인의 것은 아닌 듯하다 싶습니다. 128쪽에서 인용하고 있는 뇌사진 역시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개념도 눈에 띄었습니다. 용어선택에 있어서도 플라크, 탱글과 같이 의학용어집을 바탕으로 번역되지 않고 원음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단어들은 이미 판, 섬유농축체라는 우리말이 일반에게 많이 소개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129쪽의 알츠하이머성 치매, 파킨슨성 치래, 알코올성 치매 등도 정확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기억과 관련된 다양한 실험이 소개되어 있어 흥미로웠는데, 일반인과 택시기사의 해마용적을 비교하는 실험을 설계자체가 잘못되었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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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혁명 - 힘과 위력, 인간 행동의 숨은 결정자 데이비드 호킨스 시리즈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백영미 옮김 / 판미동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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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른 이유는 아마도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다는 귀띔때문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특이하게 느껴진 모두의 편집자의 말에서 저자인 호킨스박사가 진실과 거짓에 대한 신체운동학적 반응을 연구하여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데, “기만으로 알려진 진술이 담긴 테이프를 듣는 피험자들은 비록 화자가 진실을 말하는 것 같고 그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더라도 테스트에서 약한 반응을 보였다.(13쪽)”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서문에는 “인간 삶의 큰 비극은 항상 심령이 너무도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데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불화와 반목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는 인류의 무능함의 불가피한 귀결이었지요.(29쪽)”라고 적고 있어 혼란스러웠습니다.

 

이와 같은 혼란은 많은 의사들을 만났음에도 치료되지 않는 긴장증을 앓는 여성 환자를 진료하면서, 저자가 “신이여, 이 여성이 어떤 일을 겪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물었음에도 이어서 “나는 온갖 고통과 괴로움은 신이 아니라 오직 에고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26-27쪽)”라고 적고 있는 것으로 가중되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 이은 서론에서 자신이 전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전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겠다고 하였습니다. “개별적 인간 마음은 어떤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된 컴퓨터단말기와도 같습니다. 그 데이터베이스는 인간 의식 자체이고 그것에 대해 우리 자신의 지식은 개별적 표현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 개별적 표현들은 전 인류의 공통의식 속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 데이터베이스는 천재의 영역입니다. 인간이란 그 데이터베이스에 참여한다는 것이므로, 만인은 자신의 탄생 덕분에 천재에 접속되어 있습니다. 그 데이터베이스에 들어 있는 무한한 정보는 누구든,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건, 몇 초 만에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금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발견인데, 그 속에는 개인과 집단이 아직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정도로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들어 있습니다.(46쪽)”

 

인용하기에는 조금 긴 문장입니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읽고나서도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메시지가 무엇인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또한 책을 모두 읽고 난 다음에 다시 읽어보니 더욱 헷갈리고 있습니다. 저자가 책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는 내용과 너무 동떨어진 요약이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한편으로는 특정종교의 의식을 주제하는 분이 전하는 말씀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데, 어떤 신도 믿지 않고 있는 저로서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저자는 특정종교에 속한다기 보다는 영적존재를 믿는 영성주의자라고 보입니다. 영성주의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현상들 가운데 인간의 지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초자연적 존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영성주의는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시작하여 유럽으로 확산되었는데, 역사적으로 과학을 전공하는 과학자들 가운데 의외로 영성주의자가 적지 않은 것은 초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도 답을 구하지 못하는 개인적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호킨스박사 역시 영적진실은 설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시되어왔는데, 바로 그렇게 무시당해 온 영적 진실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몸이 해로운 자극에 노출되면 근육이 즉각 약해지는 현상에 주목하여 개발한 ‘근육테스트법’으로 우리 몸이 생명을 지지하는 것에는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것입니다.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인간의 의식수준을 수치화하는데 성공하여 과거의 인물에 이르기까지 의식수준을 수치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것이 과연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검증과정이 신뢰할 수 있는가 입니다. 영성주의는 회의주의자들의 주요 논쟁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마이클 셔머교수는 <과학의 변경지대;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02415>를 통하여 과학, 의사과학, 비과학의 범주를 나누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사물을 과학이라는 잣대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는 스펙트럼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퍼지이론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셔머교수는 다윈과 더불어 진화론을 완성한 월리스박사가 과학적 방법으로 영성을 추구한 사실을 뒤쫓으면서도 영성주의가 과학으로 입증되었다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셔머교수의 방법론으로 호킨스박사의 의식수준 수치화방식을 검토해보면 과학의 이름만 빌었다 뿐이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 더 꼭 짚어야 할 점은, 호킨스박사의 생각이 지극히 서구중심적이라는 점입니다. “세상의 상태를 살펴보면 우리는 여러 아대륙(亞大陸)의 인구가 근근이 연명하는 수준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금세 상기하게 될 것이다.l 그런 곳에서는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자원결핍을 자주 동반하는 기근과 질병이 흔하다. 그런 국민 다수가 무감정 수준으로 측정되는 희망없음의 상태에서 비참한 가난을 체념한 채 살아간다.(113쪽)” 과연 그가 그런 지역을 방문하여 직접 의식수준을 평가해보았을까요?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확인해보았을까요? 그리고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교훈을 얻었고 집단적으로 진화상의 큰 도약을 이룬 반면, 미국의 의식수준은 베트남 전쟁 결과 하락했다고(260쪽) 단정한 것 역시 그의 편향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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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는 모른다
맥스웰 그렉 블록 지음, 박재영 옮김 / 청년의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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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타운대학교 로스쿨의 맥스웰 그렉 블록교수의 <히포크라테스는 모른다>를 읽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신화(The hippocratic myth)”라는 원제목을 ‘히포크라테스는 모른다’고 소개한 것은 블록교수가 이 책을 통해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히포크라테스는 예상하지 못했을 의료환경의 변화에 따른 의학의 위치 재설정과 관련된 것들이며, 우리나라 의료계도 당면하고 있는 과제일 수 있다 싶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박재영 선생님은 역자서문에서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라는 말만 들어도 뭔지 모를 부담을 느끼고, 많은 시민들은 인술을 베푸는 의사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개탄한다. 의사들은 의료제도가 잘못됐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시민들은 의사들의 냉정함과 탐욕을 비난한다. 그 와중에 의료비 급등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저자는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의료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일부를 확대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또는 그 책임이 꼭 의사들에게만 있는 것일까요?


블록교수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의학의 능력이 커지게 됨에 따라 의사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요구가 확장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학을 치료 이외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옳지 못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 현대의학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담론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의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트기 위하여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충돌하고 있는 의료현장의 문제들을 골랐다고 합니다. 열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의 진료범위에 관한 내용과 고문, 사형집행 등과 같이 비의료의 영역에 의사들이 참여하는 행위에 대한 의료윤리적 타당성 등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블록교수가 제기하고 있는 화두가 생소한 것은 아닙니다. 하버드대학의 아툴 가완디교수 역시 2007년에 발간한 “Better: A Surgeon's Note on Performance”(우리나라에는 2008년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번역 소개되었습니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0272224)에서 건강보험제도 아래서 의료가 가지는 한계, 즉 박재영선생님 말씀대로 의사들이 진료현장에서 무엇에 휘둘리는지, 그리고 사형제도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인들의 입장에 대하여 나름대로 상세한 데이터를 인용하여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말기암으로 호스피스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혈소판제제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보건의료정책결정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치료하는 의사들이 비용절감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프고 두려울 때, 의사들이 우리 편이 되어 우리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한다. 우리는, 결과가 어찌되건, 우리의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잘 지켜주기를 원한다.(7쪽)”고 속내를 털어놓고 있습니다.


저자가 의사들이 보험회사의 입장을 대신하여 비용을 절감하기 위하여 유익한 치료를 자제하는 것 아닌가 의혹의 눈길을 보내면서도 환자들의 신뢰에 커다란 흠집을 내지 않으면서 의료비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논하고 있는 것과 모순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궁내막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례에서는 적극적인 수술로 병소를 제거하는 시술을 보험에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도 합니다. 환자는 시술을 통하여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를 얻었지만, 이 방법은 보험회사에서 규정한 진료행위로 인정되지 않아 일단 자비로 시술을 받고 보험회사가 관련 비용을 지불하도록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모험을 한 결과 승리를 쟁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밖에도 충수돌기염의 진단에 필요한 초음파검사를 인정하지 않는 규정 때문에 천공이 발생하여 위급상황을 맞은 사례, 임신으로 오인된 융모암의 사례, 비용-효과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검사를 시행하지 않았던 뇌종양 사례 등을 인용하면서 의학이 한정된 자원을 지키기 위하여 환자의 생명을 구할 기회를 은밀하게 침해하는 것은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특히 말기암환자에서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건강보험의 재정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저로서도 답변이 쉽지 않은 사례들이라 생각됩니다. 최근 많이 인용되고 있는 근거중심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사례들에 적용된 시술이 근거를 입증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성공사례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급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런 개별 사례를 인용하여 현대의학이 당면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입장, 즉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말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정신을 위배하여 충분한 진료를 제공하지 않는 점을 지적하는 한편, 제한된 의료자원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점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특히 저자는 지난해 12월 3일 서울에서 열린 2011 KHC (Korea Healthcare Congress)에서 ‘히포크라테스의 고민: 의료서비스가 배급의 대상인가’를 주제로 한 기조연설을 통해 “의료비용 증가의 주요인으로 고가장비를 통한 신의료기술 사용을 꼽으면서 이에 대한 접근성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고 합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442275). 정말 의료비가 빠르게 상승하는 책임이 의료계에만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앞서 소개한 아툴 가완디교수가 “보험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해이’의 온상이기도 하다. 돈은 딴 사람이 내고 우리는 아이를 살리는 데 얼마가 들었는지 얼마가 청구되었는지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라고 한 말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환자입장에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선의 진료를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볼멘소리도 있습니다. 공공부조와 민영의료가 공존하는 미국의 보건정책담당자들은 캐나다, 우리나라에서 운용하고 있는 단일보험자체계가 관리운영비를 절감하는 등 효율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원의 한계성을 고려한다면 환자가 원하는 다양한 수준의 의료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점도 고려되어야 하겠습니다. 저자는 의사들이 보험재정의 덫 때문에 필요한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분배자로서 악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환자를 돕되 해를 주지 마라’는 구절이 현대의 생명의료윤리의 네 원칙 가운데 ‘선행의 원칙’으로 정리되어 금과옥조처럼 존중되고 있으나, 사실은 ‘악행금지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히포크라테스 시대에도 ‘질병이 위중하여 의학이 도움을 주지 못하는 환자에 대하여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 윤리적이라는 주장이 논의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주제입니다. 이라크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이락크군 포로를 학대한 사건이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포로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의사들이 동원되었던 것이 뒤에 밝혀져 논란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한국전쟁 때 포로로 잡힌 미군들이 적국의 심리전에 말려 미군의 전쟁참여가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선언을 했던 사건이 교훈이 되었다고 합니다.


포로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수준을 넘나드는 심문과정에서 의료자문을 하거나 심리적 기법을 자문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과연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말라’는 전문가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임에 틀림이 없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 과정은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로서의 의무를 지킬 이유는 없다는 해석을 내리기도 하지만 선서에서는 “나는 어떤 요청을 받아도 치명적인 약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며 그에 대해 조언도 해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어, ‘약’을 의사로서 배워 익힌 ‘의학적 지식’으로 해석하는데 크게 무리가 없다 하겠습니다.


또한 의학의 의료이외의 영역에 적용하기는 의학자의 전문적 자문이 필요한 사법적 판단영역이 있습니다. 의학적 판단의 대상이 자문결과에 따라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형집행에 의료인의 참여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점도 논의하고 있습니다. 사형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총살로부터 교수형, 가스실, 전기의자 등을 거쳐 지금의 독극물을 주사하는 사형방법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사형방법이 이처럼 변하게 된 배경은 형을 받는 사람의 고통을 최소화하려는 윤리적 고려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독극물주사의 경우 사망을 확인하기 위하여 배석했던 의료인이 집행과정에 개입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의사윤리의 저촉여부가 쟁점이 된 것입니다.


건강보험체제 안에서의 진료의 범위를 비롯하여, 군사, 사법 등, 전통적 의료영역 이외의 분야에서 요구되는 의학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자리매김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감하게 되었고, 앞으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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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1-0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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