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우리를 만드는 다문화 교안 - 학교 현장, 단체, 가정 다문화 교육 가이드 어울누리 실용교육 3
이현정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즈음 인기를 끌고 있는 주말드라마에는 세칭 다문화자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동남아국가에 체류한 적이 있던 큰아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다 큰 아들이 등장하면서 조그만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큰아들로서는 진행 중인 연애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제외하더라도 아들로 인하여 벌어지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한눈에 봐도 남다른 외모로 인하여 놀림을 받게 되는 아이가 보이는 발작적인 반응을 보면서 처음부터 알고 적절한 대응방식을 공부하였더라면 좋은 결과로 남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이런 사례 말고도 어느새 우리사회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타문화권 출신인 사람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큰 주류는 국제결혼을 통하여 내국인으로 편입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국인들이 외면하는 3D업종에서 근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산업연수생 등 다양한 명목으로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 중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는 경우, 그리고 북한에서 탈출하여 국내에 들어오게 된 탈북자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2011년 현재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우리 국민의 비율은 전 국민의 2.5% 이상이며 이 비율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불거지기 시작한 사회현상에 주목하고, 다문화 사회의 연착륙을 위하여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 오신 이현정님은 그간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사회가 다문화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노정되는 다양한 문제점들이 앞으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의 현장경험을 정리하여 학교와 기타 교육장에서 다문화 이해수업에 도움이 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미래의 우리를 만드는 다문화 교안>를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다문화의 빠른 정착과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1부에서 특히 다문화 자녀들과 접촉이 많은 학생을 포함하여 일반인들이 꼭 알아야 하는 우리사회의 다문화 현상과 다문화적 배경을 지닌 국민들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게 된 배경으로부터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 등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중립적 시간이 돋보이는 점은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국민들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시혜를 제공하는 식의 접근이 가지고 올 수 있는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하여 다각적인 방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또한 이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사건들에 대하여도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회구성원의 다문화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유럽 및 북미, 대양주의 국가들에서 먼저 일어났던 현상이며, 우리나라 국민들 역시 이런 나라로 많이 이주하던 시절이 있었고, 당시 이주민들이 처한 상황은 요즈음 우리나라에 이주해온 다른 나라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등 아프리카와 중동지역 국가들로부터 이주민이 늘어 다문화현상이 심화되던 국가들에서 다양한 다문화정책을 시행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는 선언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최근 들어 악화되고 있는 유럽국가들의 경제사정으로 인한 실업율의 증가가 이들 탓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점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아마도 문화적 충돌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마련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정이 나쁜 국가에서는 이들 이주민들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정도를 뛰어넘어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사례들이 늘고 있어 사회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뒷짐 지고 있을 상황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2부에서는 다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특히 교육부문에서 시작해야 할 변화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앞서 예를 든 것처럼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국민들이 겪은 상황, 혹은 처한 상황을 예로 들어 우리사회에 이주해온 타국민들의 입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부록에는 다문화배경의 국민들을 교육시키는데 필요한 교안을 비롯한 접근방안을 예로 들어 두었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첨주를 각주가 아니라 양면의 중안에 배치함으로써 가독성에 다소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또한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만, 반복되는 문장이 읽는 호흡을 거칠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결혼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타국 여성들이 생략된 채로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면서 우리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배려가 전혀 없다는 지적이 반복적으로 기술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이미지프레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요즈음 유행하고 있다는 버킷리스트를 제가 준비한다고 하면, 아마도 ‘좋은 사진 찍기’를 꼭 윗 순위에 넣을 것 같습니다. 관심은 많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그저 셔터만 눌러대 왔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에야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직성이 풀릴 때까지 셔터를 눌러서 찍은 사진들을 나중에 살펴보고 좋은 사진을 고르는데, 그야말로 가뭄에 콩나듯 건진다는 것입니다.(당연히 제 눈의 안경으로 고르는 편이라는 것입니다.)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두 대의 카메라에 36컷 컬러필름을 열통인가를 준비해가서 2박3일에 모두 찍어왔다는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웹진 이미지프레스를 중심으로 활동하시는 이상염님, 임재천님, 강제욱님, 노순택님 등 네분이 ‘나의 아름다운 클래식 카메라’라는 주제로 클래식 카메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그 카메라가 함께한 취재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는 이분들이 찍은 프로다운 사진들을 감상하는 즐거움 뿐 아니라 사진촬영과 관련된 뒷이야기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없는 클래식 카메라에 얽힌 이야기를 잘 버무려 내고 있어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가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다만 이야기의 경계가 애매해서 글을 쓰신 분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헷갈리는 점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글을 쓰신 분들이 네 분이나 되는 것처럼 취재여행기로부터 카메라와 관련이 있는 분의 인터뷰 그리고 네분이 카메라와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들이 섞여 다양한 읽을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비운의 코비카 카메라를 위로하는 글을 읽으면서 제 소유의 카메라로 처음 샀던 카메라가 삼성이 미놀타와 합작하여 만들었던 삼성 미놀타 반자동 카메라로 오랫동안 추억을 담아오다가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슬라이드자료를 카피할 목적으로 미놀타 카메라를 적지 않은 비용으로 구입했고 이 카메라로 미국생활을 많이 담았구나 하는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 카메라는 저온에서 작동을 하지 않는 불편함이 있어서 크리스마스 야경을 찍으러 갔다가 실패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클래식 카메라와 함께하는 여행의 첫 번째 이야기가 제 고향 군산에서 시작하고 있어 반가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산은 일본 강점기동안 곡창 호남지역에서 나는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항구로서 번영을 누리던 곳이었는데 해방과 함께 급속하게 쇠락의 길을 걸어온 탓에 아직도 당시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어 옛날 풍경을 찾는 분들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쇠락한 모습의 ‘째보선창’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느껴지는데 째보선창은 경암천이 금강으로 흘러드는 지형적 특징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월명공원 아래 있는 월명터널에서 청량한 느낌을 얻었다고 하셨는데, 이 터널이 6.25동란 당시 퇴각하던 북한군이 양민들을 학살하여 처박아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비극의 장소로 알고 있습니다.

저자들의 사진은 당연히 프로다움을 절로 느낄 수 있습니다만, 더욱 놀라운 것은 저자들의 글 역시 참 아름답고 유려하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변치 않는 것들이 있을까? 시간과 공간도 절대적이지 않으면, 하물며 질량도 에너지로 변화한다. 오직 우주에서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빛의 속도’일 것이다.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고색창연한 부하라의 흙벽돌 건축물에 부딪혀, 내 렌즈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공간과 시간은 고정되고 만다.(88쪽)” 이상엽님의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의 취재여행기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분들이 클래식 카메라를 사랑하는 이유라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우아한 자태와 완벽한 기능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클래식 카메라들은 20세기 기계공학과 광학기술이 빚어낸,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공업 예술품으로, 디지털 카메라시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에 설명한 비운의 국산 카메라 1호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이라크전쟁을 인요하고 전투병과의 참전을 결정한 정부의 결정을 ‘탄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는 사건’으로 규정한 부분(251쪽)을 비롯하여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을 분할한 소련과 연합군이 취한 전쟁 뒤처리과정에서 칼 자이스의 카메라 생산설비를 뜯어 우크라이나로 실어갔다가 되돌린 사건과 칼 자이스 임원진이 소련군 점령지에서 카메라 기술자를 탈출시켜 슈투트가르트와 오버코헨에 정착시켜 공장을 새로 건립하는 과정은 미국이 뒤에서 사주했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 등은 아닌 밤에 홍두깨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아한 사진과 아름다운 설명을 읽던 흐름이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사족이 아니었나 싶다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 인문학 사전 - 다음 세상의 교양을 위한
A. C. 그레일링 지음, 윤길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다음 국어사전을 보면, “사전(辭典)이란,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굳이 사전(辭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 이유는 영국인들의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는 철학자 그레일링이 쓴 책 <ideas that matter; ‘중요한 생각들’이라고 친절하게 번역을 해두신 bladestorm님께 감사드립니다>를 번역하여 소개하면서 <새 인문학 사전>이라는 우리말 제목을 참 제대로 골랐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최근에 예스24 덕분에 인문학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인문학이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들던 참이었기 때문에 출판사의 리뷰를 요약하여, “복잡한 세상을 여행하기 위한 안내서” - 유럽의 대표 지성, 그레일링이 새로 그려낸 인문학 지도,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21세기 교양 안내서’라는 소제목을 붙인 것도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지성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세기 동안 살아남은 개념들을 1차로 선별, 그 가운데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철학과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전반의 개념 77가지를 엄선하여 수록했다. 용어 해설은 물론, 탄생 배경과 역사적 변천사, 철학적 해석은 물론, 현실 세계에서 활용되고 해석되는 방식까지 상세하게 설명하여 지금껏 인류의 생각을 주도해온 핵심 개념어들의 흐름과 가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출판사의 친절한 설명이 이 책의 성격을 제대로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77가지나 되는 다양한 분야의 이슈들이 인문학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는 저자의 아이디어가 제게는 인문학 분야의 이슈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저자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출발선에 세워놓은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새 인문학 사전>에서 다루고 있는 77가지의 주제 가운데는 그동안 제가 공부해온 자연과학을 비롯하여 관심을 두었던 사회과학분야 등을 망라하고 있어 낯익은 것들도 참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 제가 다루고 있는 의학과 인문학이라는 화두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열쇠가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첫발을 떼기가 어렵지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요.”라는 데팡 후작부인의 말이 제게도 보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의 머리말에서 제가 주목한 점이 바로 “과학이 갈수록 전문화하고 복잡해지면서 대중은 갈수록 과학과 소원해졌고, 따라서 갈수록 과학의 의미와 이용, 전망, 가능성, 그리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을 놓고 나누는 식견있는 대화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5쪽)”는 저자의 탄식입니다. 이어 저자는 “인문학을 공부한 이들이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 또한 과학도들만큼 풍부하거나 이해가 빠르지 않아서 더 높은 식견과 통찰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철학 사상과 정치사상, 사회사상의 개념에 주의를 기울여 하는 일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늘 노력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문이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고대의 학자들은 철학자이면서도 수학자, 과학자, 천문학자였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학문이 가지를 치면서 떨어져 나온 뿌리가 어디였는지 잊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바로 이웃으로 향하고 있는 가지가 하는 역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높은 담벼락으로 나뉜 학문의 경계를 허물어 서로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성과를 통합함으로써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제안이 나오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가 인문학의 중요성에 눈을 뜨자는 운동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77가지의 이슈가운데 제가 관심을 가지고 뒤쫓고 있는 화두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우아하게 죽을 권리를 허하라’는 제목으로 된 안락사에 관한 글을 읽다가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가 겉보기에 달라 도덕적으로도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둘 사이에는 도덕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76쪽)”는 저자의 주장에 놀랐습니다. 소극적 안락사는 허용되어야 하겠으나 적극적 안락사는 불가하다는 입장인 제 생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저자의 생각이 꼭 이치에 맞는다고 보아야 하는 의문으로 하더라도 생각을 뒤집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제목으로 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인정해야 하듯이,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에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를 설명할 때 사람들은 흔히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붐비는 극장에서 누군가 ‘불이야!’하고 소리치는 경우를 든다.(235쪽)”는 저자의 견해 역시 현재의 우리사회가 기억해야 할 점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이슈는 간단하게, 또 어떤 이슈는 장황해보일 정도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니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미에 든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철학’은 말 그래도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지만, ‘탐구’나 ‘탐구와 반성’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표현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 세계와 그 안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써야 더 좋고 더 정확할 것이다.(507쪽)”

정리해보면 인문학에 막 발을 들여놓은 저로서는 좋은 네비게이션이 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 대우학술총서 신간 - 과학/기술(번역) 598
조르주 깡귀엠 지음, 여인석 옮김 / 아카넷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인문학에 대한 우리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 분야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는 의학지식의 양에 눌리는 탓인지 인문학에 대한 작은 관심의 촛불조차도 켜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한국 의학의 이러한 모습을 콕 짚어 요약한 내용을 조루주 깡귀엠의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을 소개하는 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 의학은 묘한 역설에 빠져 있다. 그것은 현대 의학의 자기규정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분명히 특정한 철학적 입장 위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학은 철학과는 무관한 학문처럼 생각하는 역설이며, 또한 현대 의학의 발전은 오늘 진리로 여겨지던 사실이 내일은 다른 것으로 대치되는 지극히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오늘의 진리를 불변의 진리로 절대화하는 오류에 쉽게 빠져드는 역설이다.”

생명을 다루는 학문으로서의 의학이라면 그 안에서 생명에 대한 깊은 고뇌가 기술발전에 선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술발전이 눈부신 속도로 선도하고 있는 까닭에 미처 생명에 대하여 고뇌할 시간을 내지 못하고 허덕이는 우리의 자화상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근세에 이르기 전까지만 해도 동서양의 의학 수준이라는 것이 그만그만하였던 것이고, 오히려 동양의학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심오한 동양철학에 기반을 둔 한의학이 질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통합적 접근을 하고 있어 우수한 측면이 크다고 보는 한의학계의 주장도 있습니다만(http://blog.joinsmsn.com/yang412/12460282) 과연 동양의학의 발전을 위한 철학적 고뇌의 산물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양의학이 현대의학으로 발전해오면서 관련이 있는 과학분야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의학에 녹여넣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본질을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가 있었다는 점은 흔히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루주 깡귀엠은 철학을 전공한 다음에 의학을 전공하고 철학분야에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과학과 철학, 의학과 철학의 관계를 깊이 천착하였는데, 당시 프랑스가 임상의학을 중심으로 하여 유럽의학을 선도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도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의 의학철학은 의학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의학의 생성과 변천과정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결합하여 깊이 있는 반성을 하였고, 생기론을 중요한 요소로 하여 실증주의적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은 깡귀엠이 발표한 글들을 책으로 묶은 것으로 제1부에서는 19세기 과학과 의학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제2부에서는 19, 20세기 생물학적 합리성을 성취해온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라는 단어에 다소 민감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브리태니커사전에 따르면 “이데올로기(Ideologie)란 이론과 실천의 양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회·정치 철학의 한 형태로, 세계를 설명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뒷받침하는 관념체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기에 철학자 A. L. C. 데스튀트 드 트라시가 주장한 '관념의 과학'의 약칭으로 처음 소개하였다고 합니다. 관념의 과학은 인간정신에서 편견을 몰아내고 이성을 복권함으로써 인간에 봉사하고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조루주 깡귀엠이 중요하게 생각한 ‘과학적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제1부의 글을 여는 첫문장으로 던진 질문에 대하여 깡귀엠은 데스튀트 드 트라시를 인용하여 “이데올로기란 관념의 생성에 대한 과학으로 그 목표는 관념들을 자연현상과 같이 다루는 것이며, 살아있는 유기체이자 감각을 가진 인간이 자연환경과 맺는 관계를 표현하는 것(42쪽)”이라 정리하였다. 이데올로기란 원래 인간이 현실에 대한 관념을 획득하는 자연과학을 의미했으나, 마르크스에 의하여 현실에 대한 진정한 관계를 알지 못하게 된 어떤 상황에서 유래된 모든 관념의 체계를 의미한다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입니다. 깡귀엠은 과학적 이데올로기는 계급에 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같이 허위의식은 아니며 허위과학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깡귀엠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존 브라운의 <의학원론>에 담긴 한계를 설명하면서 의학적 이데올로기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주목을 받던 병리학, 생리학, 약리학 그리고 미생물학 분야의 성과들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클로드 베르나르가 생리학을 과학적 의학의 토대를 이루는 기초과학으로 옹호하고 입증하려는 노력을 의학적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 마장디가 소개한 실험의학의 의의를 소개하고 있는데, 생리학 분야를 비롯하여 약리학분야에서의 실험의학이 결과적으로는 서양의학이 현대의학으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제2부의 주제가 되고 있는 ‘합리성’은 이데올로기의 상대개념으로 깡귀엠이 제시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깡귀엠에 따르면, 생명과학에서의 과학적 이데올로기가 생명체의 외부에서 부과되는 외적 규범이고, 그 합리성은 생명체 자체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내적인 규범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깡귀엠이 제2부를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쌓여진 생물학적 조절개념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합리성’이라는 화두를 논의하기 위함이라 생각됩니다.

근세에 이르기까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계의 노력은 통상적으로 ‘써보니까 듣더라’하는 임상경험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통의학이 아직도 전승되어오는 의학서에 기록되어 있는 치료법을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고, 일부에서 새로운 처방을 개발하여 임상시험을 거쳐 실용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반면 현대의학에서는 질병이 일어나는 기전을 추구하고 밝혀진 기전을 바탕으로 하여 치료법을 개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천연물질에서 추출한 약제가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곧 이를 바탕으로 합성하기도 하며, 이제는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건강한 유전자로 바꾸어 넣는 치료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치료법을 개발해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치료제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용하는가 하는 확인하는 유효성시험이나, 개발된 치료제가 치료효과는 물론 독성을 가지고 있어 부작용을 나타낼 가능성까지 검증하는 안전성시험 등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등을 통하여 철저하게 검증하게 됩니다. 깡귀엠은 의학의 영역에서의 과학적 접근 방식을 ‘의학적 합리성’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학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정신이야말로 서양의학을 오늘날의 현대의학으로 변모시키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는 것을 깡귀엠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학적 합리성은 근대 서양의학의 가장 큰 특징을 이룬다. 르네상스 이후 새롭게 발달한 해부학적 지신을 임상적 지식과 결합한 파리임상의학파, 병리학을 생리학에서 연역하려 한 클로드 베르나르의 기획, 그리고 병원성 세균의 발견과 이를 죽이는 항생제의 개발로 완결되는 병인설과 치료의 패러다임은 근대 이후 서양에서 확립된 의학적 합리성의 대표적인 사례이다.(194쪽)”

깡귀엠이 과학적 이데올로기론을 내세운 배경에 대하여, “과학적 이데올로기론은 어찌 보면 과학의 담론을 손쉽게 이데올로기로 환원시키려는 ‘부유한 사회의 약화되거나 빈곤한 마르크스주의’인 사회구성주의로수터 과학적 담론을 지키기 위한 시도(192)”로 설명하신 여인석교수님의 후기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제2부의 말미에서 언급된 생명체가 환경과 맺는 관계에 대하여 보다 발전된 논지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생명은 물질의 행동이다 (…) 그것은 기존 질서의 유지를 토대로 한다.(157쪽)”는 슈뢰딩거를 인용한 부분과, “생명이 생명체를 구성하는 요소 전체를 붙잡아두는 단순한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은 생명에 대한 거짓된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생명은 요소들을 움직이고 운반하는 동력이다.(158쪽)”라는 퀴비에의 말을 보다 상세하게 풀어 설명을 해주었더라면 하는 점에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의학이 발전의 토대를 갖추게 된 프랑스 의학계에서 의학철학이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조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처럼 2011-11-28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신문 <라포르시안>에서 댓글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댓글 달아주신 한 분께 이 책을 드립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2637
 
이블플랜 - 당신의 가치를 높이는 40가지 발칙한 계획
휴 매클라우드 지음, 김미희 옮김 / 호미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제가 중앙일보 인터넷 커뮤니티에 블로그를 만들어 운용해온 것이 만 7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먼저 시작하신 분들보다는 다소 늦었지만 나름대로는 비교적 일찍 시작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블 플랜>의 저자 휴 매클라우드가 블로그를 만들어 운용해온 것이 10년이 넘었다고 하니 그는 분명 새로운 사조를 일찍 읽는 얼리 어댑터(early adapter), 즉 선각자임에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10대 블로그로 선정될 정도로 독창적이고 대중의 시선을 끄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 무엇이 무엇이었는지를 요약해서 정리한 책이 <이블 플랜>입니다.

당연히 블로그를 통해서 구현했던 영감들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블로그를 통해서 정리해온 생각들을 처음 책으로 엮었던 <Ignore everybody>가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것처럼 <이블 플랜> 역시 SNS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자는 세상을 살아내는 일이 답답하다 느껴져 무언가 해야 할 절실한 상황에서 도움이 될 40개의 팁을 <이블 플랜>에 담고 있습니다. anff론 블로그를 통해서 구현한 것들이 중심이 되고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바꾸어 생각해도 훌륭할 것들입니다.

저자는 그것을 ‘발칙한 계획’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 발칙한 계획들이 계획단계에서 그친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일입니다. 그리고 ‘발칙하다’고 한 것처럼 남들과는 분명 차별되는 그 무엇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트윗이나 페이스북의 열풍에 밀려 블로그가 심각하게 위축되어가고 있다고들 합니다. 제 경우도 블로그를 개설하고 만 3년에 백만명 방문을 기록하고서 이후 4년 동안 5백만명이 방문하는 파워블로그(http://blog.joinsmsn.com/yang412)로 성장했지만, 최근에는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커뮤니티를 주관하는 주체가 운영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블로그를 운영하는 저 역시 활동을 축소하고 있는 것이 상승작용을 한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는 대체적으로 전문성을 갖추고 방문객들에게 특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블로그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최근 블로그의 영향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블로그는 분명 트윗이나 페이스북이 담아낼 수 없는 장점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 생각이 저자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저자가 <이블 플랜>에 담은 40개의 팁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특히 제 경험상 크게 공감한 점들을 집중적으로 짚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줄 수 있다면 시장은 무한하다.”라는 휴 선언(26쪽)은 저 역시 2008년 제2차 광우병파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실감했던 부분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파워블로그로 영향력이 클 블로거들이 대가를 받고 특정제품에 우호적인 홍보성 포스팅을 올려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해서 블로그 커뮤니티 전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고 있는 것도 블로그 퇴조현상에 기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가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으러 이 세상에 왔다.”고 적은 부분은 제 큰 아이가 중학교 2학년때 학교수업에 흥미를 잃고 있을 때 “네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세상에서 네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네가 해야 할 몫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충분히 준비해야 할 것이고, 공부도 중요한 준비물이다.”라고 해주었던 말하고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당신만의 ‘글로벌 마이크로브랜드’라는 말은 방문객의 시선을 붙잡아 맬 특화된 컨텐츠를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파워블로그로 관심을 끄는 블로그 역시 평범하지 않는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모든 이에게 당신의 재능을 기부하라”는 38번째 이슈에 크게 공감하면서 최근에 소홀하고 있음을 자책하게 됩니다. 블로그를 만들었던 초기에는 이벤트를 통해서 조그만 선물도 자주 하고 온라인에서 만나는 분들과 오프라인에서도 관계를 맺고 만나게 되었습니다만, 언젠가부터 교류가 시들해지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 전공을 살려 건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응급상황에서는 도움이 될 조언도 해드렸던 역할이 이제는 아주 미약해진 이유는 아마도 블로그 커뮤니티 안에서 소통하는 노력이 줄어든 탓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자신의 전공을 제대로 살려 카툰과 함께 사랑과 일, 미래와 성공에 관한 촌철살인의 글을 올려 수백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카툰이나 광고카피 같은 짧은 문구는 미국사회의 문화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그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블 플랜>에 담고 있는 저자의 카툰이나 경구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이 될지 궁금합니다만, 본문에 담긴 블로그를 매체로 한 인생에 대한 저자의 철학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