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미소 - 개정판 문예 세계 시 선집
칼릴 지브란 지음, 김승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언자>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자 철학자 그리고 화가인 칼릴 지브란의 서사시집 <눈물과 미소>를 읽은 것은 눈물과 미소를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열면 표제작인 눈물과 미소를 바로 만날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슬픈 일 그리고 기쁜 일 등 다양한 일을 겪기 마련입니다. ‘눈물은 내 가슴을 씻어주고 인생의 비밀과 감추어진 것들을 이해하게 하네. 미소는 나를 내 종족의 아들들에게 가까이 이끌어주며, 또한 신들에게 바치는 찬미의 상징이기도 하네.(11)’라는 대목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일 모두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이 시를 읽었습니다.


이 시집을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하면서 읽었습니다. 특히 뉴질랜드를 여행할 때는 매일 비를 맞아야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구름과 비에 관한 대목이 실감이 났습니다. “바다의 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함께 모여 구름이 된다. / 그리고 구름은 언덕과 계곡 위를 헤매어 다니다가 부드러운 바람을 만나면 눈물을 흘리며 들판 위로 떨어져서 시냇물과 자기들의 고향인 바다로 돌아가는 강물과 합류한다. / 구름의 생이란 작별과 만남, 그리고 눈물과 미소.(12)” 회자정리를 구름과 비로 순환되는 물의 본성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시 사랑의 생애는 사랑하는 이와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함께 할 일을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죽음에 이르는 순간을 함께 하자고 합니다. 죽음을 잠으로 비유했군요. 가을이 한창일 때 인천을 떠났는데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신록이 푸르고 꽃이 만발한 봄이 한창이었습니다. 가을에서 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셈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시 죽은 자들의 도시에서는 뉴질랜드를 차로 여행하다보면 마을 어귀에서 흔히 만나는 묘지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을과 묘지를 삶의 도시와 죽음의 도시로 비유하고 삶의 도시는 투쟁과 멈출 수 없는 움직임을, 그리고 죽음의 도시에서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노래합니다. 그런가 하면 삶의 도시에는 희망과 절망과 사랑과 증오가 있고 빈곤과 부유함이 있으며 믿음과 불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도시에는 대자연이 뒤바꾸어 놓은 흙속의 흙과 또한 그 흙을 가지고 고요함 속에서 대자연이 창조해놓은 최초의 식물과 동물적 삶이 있다고 했습니다.


<눈물과 미소>는 시인이 청년시절에 쓴 초기 작품들과 파리에서 지낼 무렵인 스물다섯 살 무렵에 썼던 산문시들을 모은 것이라고 합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영혼 등 불멸과 무한, 그리고 구원에 대한 동경을 담아냈다고 느꼈습니다. 해설을 보면 칼릴 지브란에게는 신비주의자, 철학자, 종교가, 이단자 평화주의자, 반항아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고 했습니다.


지브란의 조국 레바논은 다윗과 솔로몬과 선지자들이 사라진 이래 잊혀버린 전설의 지역으로 기억되는데, 파괴된 사원들과 문명의 잔해들에 남아있는 신들의 조각들은 지브란의 신비주의, 제행무상에 대한 관념, 일시적이고 덧없는 영화를 부정하고 불멸의 영혼은 섬기는 정신적 자세를 만들어주었다고 했습니다.


끝맺는 노래에서 지브란은 나는 사랑의 찬란함과 아름다움의 빛 속에서 살고 있다. 삶 속에 있는 나를 바라보라. 사람들은 나를 내 삶에서 불리하지 못한다.”라고 했고, “나는 모든 것을 위해 존재하며 모든 것 속에 존재한다. 내가 오늘 홀로 말했던 것들이 다가올 미래에는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히 선포될 것이다.(186-7)”라고 했습니다.

한 편의 시마다 한 폭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지브란이 그린 작품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 한 폭의옷자락도 걸치지 않은 남녀가 서로 교감을 나누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마음에 마법을 건 나라, 뉴질랜드 - 키위 작가 이노이의 뉴질랜드 라이프 스토리, Slow Travel 1 New Zealand
이노이 글.사진 / 즐거운상상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호주와 뉴질랜드 여행을 준비하면서 읽은 책입니다. 책을 쓴 이는 열여섯에 투자이민을 떠난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이주한 분입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매체예술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 이노이교수입니다. 이노이(inoi)는 마오리어로 기도를 뜻한다고 하시는 것을 보면 필명이지 싶습니다.


작가는 이 책을 쓴 세 가지 이유를 꼽았습니다. 첫째는 삶의 터전을 옮기려는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아 되고 싶어서, 둘째는 뉴질랜드에 대한 정보를 전하려, 셋째는 가족의 소박한 이민의 역사의 기록이라 합니다.


이 책은 26 꼭지의 글과 11개의 삽화 그리고 뉴질랜드 이민에 관한 정보 4개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글과 삽화는 구분이 모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본문 역시 온가족이 뉴질랜드로 떠난 이야기로 시작하자마자 혼자서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하게 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책을 쓴 세 가지 이유가 꼭지마다 뒤섞였다는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를 이해하기에 충분하고 많은 정보들이 담겨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누리망을 뒤져보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쉽게 만나기 어려운 것들이라서 여행을 다녀와서 후기를 정리할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또한 작가 자신이 뉴질랜드에서 공부한 이야기의 비중도 적지 않기 때문에 뉴질랜드 유학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로의 이주에 필요한 비자 신청을 비롯하여 뉴질랜드에 정착하는데 필요한 정보들이 넉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이주하기 전에 뉴질랜드는 마오리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마오리 사람들이 뉴질랜드로 이주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전설도 흥미롭습니다. 뉴질랜드의 원주인인 마오리사람들은 이곳을 아오테아로아(Aotearoa)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는 키아 오라(Kia ora)라는군요.


북섬과 남섬이 무려 1,600에 걸쳐 길게 늘어진 뉴질랜드는 다민족국가인데, 정서적, 문화적, 종교적 갈들이 갈수록 골이 깊어지고 있다고도 하면서 융화를 내세우고 있다고 해서 헷갈리기도 합니다. 전혀 생소한 나라구나 싶으면서도 영화 <반지의 제왕><피아노>를 비롯하여, 소설 <루미나리스>, 키위, 마오리 전사들의 춤 하카, 우리에게 <연가>로 소개된 마오리 대표 민요 <포카레카레 아나> 등으로 나름 뉴질랜드에 대한 앎이 늘어가고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작가가 뉴질랜드의 남섬과 북섬을 여행한 기록을 사진과 함께 정리해두어 이번 여행길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책에 곁들인 수많은 사진들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풍광을 눈으로 즐길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는데 같은 사진을 찍어보겠다는 의욕이 용솟음치게 됩니다.


여행사에서는 호주 뉴질랜드의 입국절차가 꽤나 까다롭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비상약이나 상시 복용하고 있는 약의 경우 영문으로 된 처방전을 가져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곡물이나 육류로 된 먹을 것은 반입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입니다. 다른 해외여행과는 달리 가급적이면 현지에서 구해서 해결하는 편을 택하려 합니다. 키위 말고도 녹색의 못생긴 과일 피조아도 사 먹어보려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1
드니 디드로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밀란 쿤데라의 <자크와 그의 주인>은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각색한 희곡이라고 했습니다. 무대에 올리기 위한 대본이었기 때문에 내용이 함축되어 있어, 아무래도 원전을 읽어봐야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자크와 그의 주인 그리고 여인숙의 여주인이 전하는 포므레 부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교차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쿤데라의 희곡이 세 사람의 전도된 사랑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반하여 디드로의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자크와 그의 주인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들이 단절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야기의 전개가 난삽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디드로의 작품에서는 세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부수적인 느낌이고 자크와 그의 주인 사이의 관계설정이 아주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분명 자크가 하인인 듯하나, 어떤 장면에서는 두 사람이 친구인 듯, 심지어는 주종의 관계가 역전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사실 자크와 그의 주인은 분명 여행하는 과정에서 심심풀이로 자크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로 하였습니다만,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디에서 어디로 여행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만 자크의 전 주인인 대위가 여기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좋고 나쁜 일은 저기 높은 곳에 씌어있다.”고 한 말을 자크가 신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자크는 운명론자가 된 셈입니다.


실제로 자크가 하는 행동은 상황에 따라서는 적절하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지만, 상황이 전개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 자크에게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긍정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벨라벨이라는 분은 자크가 결정론자가 아닌 운명론자다라고 했다는데 결정론과 운명론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호한 느낌입니다. 옮긴이는 운명론과 결정론은 그것이 다만 신이야 물질이냐 하는 차이를 떠나, 운명론이란 일체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나, 결정론이란 만약 우리가 원인의 유희에 개입할 수만 있다면 그에 따라 결과를 수정할 수 있다(456)”라고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자크가 운명론자라기보다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긍정론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디드로의 작품에서 보는 특징은 작가가 나서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혹은 등장인물의 처지를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코러스와 같은 역할을 작가가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쿤데라 역시 사회자를 두어 관객들의 이해를 도울만한 설명을 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두 사람의 여행이 모호한 점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들이 고도를 기다리며 의미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러저러한 사건들이 끊어질 듯 이어지던 자크의 사랑이야기가 마지막 부분에서 급물살을 타면서, 반전을 이루어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것입니다. 하지만 쿤데라는 세 사람의 사랑이야기에 방점을 찍은 탓인지 열린 상태로 결말을 짓는 차이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짚어보자면, 코러스의 역할을 하는 작가가 독자의 눈치를 보아 이야기를 끌고 가는 듯한 암시를 준다는 점입니다. 자크의 사랑이야기가 끊어지는 상황에서도 잠시 기다리면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독자를 달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작가에 따르면 우연한 일들이 일어나 자크의 사랑이야기를 끊어놓지만, 그의 주인은 끈질지게 자크의 사랑이야기를 요구하고, 끊어진 부분을 이어줍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작품해설에서 이야기하는 우리가 운명을 이끌고 간다고 믿지만, 실은 운명이 우리를 이끌고 가는 것이다.(437)”라는 명제를 증명해가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라미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2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바니아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은 적지 않게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잘못된 만찬>을 읽어본 인연과 년전에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피라미드를 구경했던 인연으로 <피라미드>를 읽게 되었습니다.


<피라미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26세기 무렵 파라오로 등극한 쿠푸의 피라미드가 건설되는 과정, 세월이 흘러 쿠푸를 비롯한 파라오들의 무덤이 도굴되는 과정에서 파라오 디두프리가 목졸려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집트 사회에 충격을 던지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14세기 중앙이시아를 지배하게 된 티무르 왕조가 오트라르에 해골을 쌓아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는 사실로 건너뛰면서 작가의 고국 알바니아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폭압으로 눌린 국가들이 여전히 있다고 고발하는 셈입니다.


사실 쿠푸는 등극한 직후에 자신만은 피라미드를 건설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신하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제사장을 비롯한 신하들은 파라오를 설득하기 위하여 피라미드 건설의 당위성을 찾아냈습니다. 피라미드는 이집트 사회가 처한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하여 건설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집트 사회의 위기는 풍요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안락한 생활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독립심과 훨씬 자유로운 정신을 갖게 되고 일반적인 권위는 물론 심지어는 파라오의 권위에까지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심 끝에 내놓은 방안이 이집트 사회가 누리던 부의 일부를 고갈시킬 수단을 찾게 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벌이는 대규모 수로공사가 본보기감이 되었습니다. 땅 속에 있는 지옥의 방향으로 끝없이 구멍을 파들어 간다거나, 이집트 전체를 에워싸는 성벽을 쌓거나, 인공폭포를 만들거나 하는 안이 검토되었지만 언젠가는 공사가 끝날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되풀이될만한 일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채택되지 않았고, 결국은 파라오의 거대한 무덤을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로는 파라오와 죽음. 더 정확하게는 파라오의 신성(神性)이라는. 그런가 하면 피라미드는 가시적이었고, 아주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피라미드 건설이 유한성과 무한성을 모두 지녔다는 점이었습니다. 파라오마다 자신의 피라미드를 건설하게 되면, 피라미드를 건설한 파라오가 죽으면 새로 등극한 파라오가 자신의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피라미드가 건설되는 과정도 상세하게 설명이 됩니다. 이집트 각처에 산재해있는 채석장에서 피라미드에 사용될 바위덩이를 캐어 나르는데, 작업지시에 따라 각각의 채석장마다 미리 정해진 위치에 맞게 바위를 잘라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잘라낸 바윗덩이를 나일강 수로를 따라 피라미드 건설현장으로 옮겨져 경사로를 따라 차곡차곡 제자리에 놓아 쌓아올렸던 것입니다.


풍설에 따르면 피라미드는 하늘과 땅 사이의 균형을 상징했다고 합니다. 피라미드가 하늘의 빛과 땅의 암흑을 빨아들이면 동굴 안에서처럼 그 둘 사이에 내통과 교합이-심지어는 근친상간이-안에서 은밀하게 성사된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피라미드는 천상의 종자나 빛을 빨아들인다기보다 이집트를 통째로 먹어치우는 무엇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그들이 겪은 속박과 축적된 고통을 떨치고 새로운 이집트, 수정처럼 맑게 빛나는 이집트가 탄생했다고 믿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합니다. 쿠푸 역시 피라미드에 대하여 끌림과 증오심의 양면적인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피라미드의 도굴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된 다음에는 피라미드가 노화되는 과정에 대하여도 설명합니다. “흰빛이 급속히 윤기를 잃어 이제 분홍빛이 감돌게 된 것을 제외하면 사람들의 눈으로는 변화를 감지할 수 없었다. 팔백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주름살이 하나둘 드러나 보였다.북쪽 면의 돌 하나가 12월 어느날 오후 맨 먼저 갈라졌다. 그전에 이미 주춧돌 여섯 개가 부서진 바 있었다. () 천오십년이 지나자 마모의 흔적이 멀리서도 분간되기 시작했다.(152)” 아무리 돌로 지었다고는 하나 피라미드 역시 세월에 따른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크와 그의 주인 - 드니 디드로에게 바치는 3막짜리 오마주 밀란 쿤데라 전집 15
밀란 쿤데라 지음, 백선희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에 밀란 쿤데라의 전작 읽기에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전작 읽기를 마친 뒤에 소개된 작품들 가운데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으니 전작 읽기가 완성된 것은 아닌 셈입니다. <자크와 그의 주인>은 희곡입니다. 이 작품이 탄생한데는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희곡으로 각색해보라는 제안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쿤데라의 조국이 소련에 점령당한 상황에서 이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행위와 어두운 깊이, 공격적인 감정들로 이루어진 그 세계가 혐오스러웠다라고 했습니다.


대신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의 각색을 제안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러시아의 무거운 비합리성이 내 나라를 짓눌렀을 때 나는 서양 근대의 정신을 강하게 들이마시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를 느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 정신은 지성과 유머의 환상의 향연인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이 아닌 다른 어디에도 그만큼 진하게 농축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았다라고 들었습니다.


작가는 희곡 <자크와 그의 주인>의 서두에 적은 변주서설을 통하여 이 작품을 쓰게 된 사연을 길게 적었습니다. 그리고는 <자크와 그의 주인>이 각색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으로 디드로에 대한 변주이자 디드로에게 바치는 나의 오마주라고 했습니다.


이 작품의 구성은 자크와 그의 주인이 여행하는 가운데 들른 그랑세르 여인숙이 무대가 됩니다. 자크와 그의 주인 그리고 여인숙의 주인이 전하는 포므레 부인의 사랑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무대는 앞 부분이 낮고 뒷부분이 높은 연단 형태로 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앞부분은 현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뒷부분은 과거에 자크와 그의 주인 그리고 여인숙의 여주인의 사랑과 관련된 과거의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이 등장하는 공간입니다.


세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진정한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라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개입되어 있는 가운데 뒤틀린 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자크의 사랑은 친구의 연인에게 동정을 빼앗긴 사연을, 주인의 사랑은 사랑하는 여인을 친구에게 빼앗긴 사연을, 여인숙의 여주인 포므레 부인은 후작의 배신을 처절하게 복수한 사연을 펼쳐냅니다.

이원화 되어 있는 무대를 활용하는 까닭에 그랑세르 여인숙의 여주인이 어느새 포므레 부인 역할을 하고, 자크가 아르시 후작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이중적 역할은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사랑이 서로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세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다보니 자크와 그 주인이 왜 그리고 어디로 여행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한 대목도 나오지 않습니다. 작크와 그의 주인도 자신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르고, 그저 저 높은 곳에 씌어 있는 대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미 운명에 정해진 대로 따라간다는 운명론자의 입장인 셈입니다.


작가의 3막의 진행속도도 지정하고 있습니다. 1막은 알레그로(Allegro, 빠르게 명랑하게) 2막은 비바체(Vivace, 화려하게 빠르게) 그리고 3막은 렌토(Lento, 길게 끌어 느리게)로 하라는 것입니다. 극의 진행을 협주곡을 연주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작가는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 변주의 개념에 대하여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음악의 서사시라 할 교향곡이 외부 세계의 무한을 가로지르는 여행이라면, 변주는 다른 공간에 대한 탐험으로, 내면세계의 무한한 다양성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하였습니다.

희곡은 등장인물들의 대사로 작가의 의중이 전해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함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등장인물의 의중을 작가가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읽어봐야 쿤데라의 <자크와 그의 주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