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하루
마르탱 파주 지음, 이승재 옮김, 정택영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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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이고 감각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글이라는 평가를 받는 프랑스 작가 마르탱 파주의 두 번째 소설입니다. 대학에서 심리학, 언어학, 철학, 사회학, 예술사, 인류학, 음악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이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관심사가 다양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벽한 하루>에서는 자살을 꿈꾸는 스물다섯 살인 젊은 남자 회사원의 24시간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라는 서문에서 “<완벽한 하루>는 내 첫 소설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가 출간되기 8개월 전에 써둔 작품이다.”라고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완벽한 하루>는 등단 전에 써보았던 무수한 습작들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강의실에서 원고를 쓰고 출판사에서 거절한 원고들을 들여다보던 학생시절을 거쳐 중학교의 야간 경비원, 축제의 안전요원, 기숙사의 사감 등 먹고살기 위한 직업을 전전하였다고 합니다.


작가가 어려운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친구 두 명과 함께 만든 실패자들의 모임덕이었다고 합니다. <우울한 하루>의 주인공이 자살을 꿈꾸는 것처럼 자칫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고 세워낼 수 있었던 동력이었고 합니다. 대체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비관적인 성향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비관적이라는 성향은 낙천적 성향과 대치되는 개념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작가는 두 성향이 공존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결국 스스로를 어떤 방향으로 밀고 가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자전적 소설 <우울한 하루>의 주인공처럼 작가는 자명종이 울리며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매일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 쓰디쓴 절망 속에서 나는 광기에 가까운 아이디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가득 찬 이야기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우울한 일상과 정면으로 싸워 나갔다. 하루를 보내는 동안 머릿속으로는 온갖 비관적인 상상을 하면서도 남들과 더불어 지냈고, 토론을 하고 이야기도 하며 농담까지 주고받았다. 그 덕에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삶이 힘들어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더라도 혼자만의 세계로 스스로를 몰아넣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유지함으로써 낙천적인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자살을 꿈꾸는 주인공이 기막힌 상상을 하는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들어 살고 있는 집의 세간살이 골프채로 흠집을 내고 부식성 화학약품을 사용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상상도 모자라서 카펫과 마루판을 뜯어내고 바닥에 구멍을 파 부식토를 채우고 토마토나 딸기 등 제철 채소류를 심고 심지어는 사과나무와 등나무, 장미와 팬지를 심어 실내 정원을 만드는 상상도 합니다. 이 부분을 읽다보니 고인이 된 저의 사수께서 저와 함께 쓰던 사무실에 화분을 들여 밀림처럼 만들었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평소 달고 살던 통증이 심해진 듯하다는 느낌은 회사 동료가 폐암으로 진단받았다는 소식을 듣고서 생긴 증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몸 안에 길이가 5.2미터에 달하는 백상아리가 살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런 진단을 내려주는 의사가 있다는 사실도 신기합니다. 백상아리는 낚아 몸밖으로 내보내려는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공존하기로 합니다. 즉 소소한 잔병과 굳이 싸울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겠지요. 일종의 자가치료법인데, 끔찍한 사회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요일 별로 자신의 기분 상태를 부여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는데 참고할 만합니다. "월요일은 행복하고 긍정적이다, 화요일은 우울하고 지친다. 수요일은 공격적이다, 목요일은 순진한 척한다. 금요일은 냉소적이고 지루하다, 토요일은 어리벙벙하다, 그리고 일요일은 똑똑하고 유머러스하다.(61)"


날이 밝으면서 구토가 일고 몸안에 있던 백상아리가 빠져나와 거리로 헤엄쳐나갑니다. 자살충동으로 고통스러웠던 하루가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1993년작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처럼 하루의 일상이 반복된다는 것인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제목으로 보아서는 우울한 일상에서 해방되는 길을 찾아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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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오기 전에 - 프루스트 단편선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유예진 옮김 / 현암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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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프루스트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인지 프루스트의 작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 해도 국일미디어, 열화당, 펭귄클래식, 동서문화사, 민음사 등 다섯 곳에서 새로 번역한 작품들이 완간을 앞두고 있고, 그의 단편들을 묶은 단편집들도 여러 종류가 출간되고 있습니다. 단편집들의 경우는 골라 뽑은 단편들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아서 아쉬운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밤이 오기 전에>도 프루스트의 단편들의 일부를 묶은 단편집입니다. 모두 18편의 글을 골랐는데 모두 20대 초중반에 쓴 글들이라고 합니다. 1부에 담긴 6편의 단편들은 작가의 생전에 발표된 것들이고 2부에 담긴 12편은 미공개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20대에 쓴 작품들이라서인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비교하면 다소 투박한 느낌이 들지만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사교계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적지 않은 것을 젊은 시절 프루스트의 사교계의 경험을 녹여낸 것으로 보이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습작으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 작품 <무관심한 이>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앙투안 바토의 동명의 그림과 <어린 소녀>라는 두 작품의 대조적 분위기를 이야기에 담은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밤이 오기 전에>는 동성을 사랑한 여주인공이 스스로의 가슴에 총을 쏘아 죽음을 앞둔 상황에 찾아온 이성 친구에게 속마음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사실 프루스트적인 색채가 많이 느껴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스스로를 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매우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그런 절망의 순간들 중 하나에 놓여 있었을 때 나 자신이 쏘았던 거예요.”


그녀가 죽음을 맞는 순간에, “우리는 함께 울었다. 슬프면서도 무한한 조화의 일치, 우리의 합체된 연민은 이제 우리 자신보다 거대한 대상을 향했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마음껏 자유롭게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나는 가여운 눈물로 흥건히 젖은 그녀의 두 손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새로운 눈물로 젖어들었고 그녀는 한기를 느꼈다. 그녀의 손은 분수대에 떨어지는 창백한 나뭇잎처럼 차가워졌다. 우리는 그 순간만큼 그렇게 아파했던 적이, 또 좋았던 적이 없다.”


프루스트 자신이 천식으로 고통을 받았기 때문인지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이야기가 많은 듯합니다. <추억1>에서는 불치의 병으로 쇠약해진 여자 친구를 문병하는 이야기합니다. 못 알아볼 정도로 초췌해진 그녀는 바닷가에서 정양 중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바닷가 풍경이 묘사됩니다. 먼저 여주인공 오데트의이야기입니다. “저 끝없이 푸른 바다를 보는 건 정말 매력적이에요. 모래사장에 와서 부서지는 파도는 저를 슬픔에 빠지게 하는 생각들이고, 동시에 이제는 작별을 고해야 하는 희망들이에요.(51)” 한창 잘 나갈 때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못한 회한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와 헤어져 바닷가에 나온 화자는 나는 바닷가로 나왔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오데트에 대한 생각에 잠겨 무관심하고 고요한 긴 해변을 따라 걸었다. 태양은 수평선 너머 사라졌지만, 자줏빛 광선으로 하늘을 여전히 물들이고 있었다.(52-53)” 결국은 무로 돌아갈 상황을 바닷가 풍경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 담긴 이야기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의 분위기는 결코 우울하거나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을 구원할 무언가가 내재된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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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철학강의 동서문화사 월드북 26
게오르크 W.F. 헤겔 지음, 권기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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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역사철학강의>는 심강현님의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http://blog.yes24.com/document/15617533>에서 추천한 철학책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동서문화사의 월드북으로 읽은 <역사철학강의>는 역시 560쪽에 달하는 분량인데, 앞서 읽은 <정신현상학>처럼 난해한 책읽기였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강의의 주제는 철학적 세계사이다라고 책의 성격을 규정했습니다. 머리글에서는 역사고찰의 종류, 역사의 이성과 그 실현, 세계사의 발자취, 세계사의 지리적 기초, 세계사의 시대구문 등을 다루었습니다.


먼저 역사를 고찰하는 방식으로 사실 그대로의 역사, 반성적 역사 그리고 철학적 역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대로의 역사는 중립적인 시각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반성적 역사는 역사적 사료를 기록자의 시각으로 가공해서 기록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적 역사, 실용적 역사, 비판적 역사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철학적 역사란 역사의 사유적 고찰 이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헤겔은 역사는 이성의 지배를 받으며 역사의 자연적 과정은 절대정신의 외화(外化)에 기인한다고 보았습니다. , 인간의 정신은 인류의 문화처럼 자신을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변화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헤겔은 역사가 현실적으로 개인이 생겨나는 첫 단계, 과거의 세계사적 민족과 접촉하는 가운데 대외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국가의 독립과 행복을 구가하는 둘째 단계, 후대의 세계사를 담당할 민족과 맞부딪쳐 쇠퇴와 몰락의 아픔을 맛보는 단계로 구성된다고 보았습니다.


1부에서는 동양세계를 다루었는데, 중국, 인도, 페르시아(젠드족,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메디아, 페르시아, 페르시아 제국과 제국 내의 각 지역, 이집트 등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2부에서는 그리스 세계를, 3부에서는 로마세계를, 4부에서는 게르만세계를 다루었습니다.


인간의 한 평생과 비교하면 게르만 세계는 노년기이다.(113)’라고 한 것을 보면, 인류 역사의 흐름을 기독교 사관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즉 로마제국 멸망 이후의 유럽의 핵심세력으로 자리한 게르만세력이 기독교적 정신을 바탕으로 역사를 주도했다는 시각으로 세계사의 흐름의 궁극에 도달하였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고대사는 물론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유럽 밖의 세계는 정신적으로 분화되지 않은 그런 저급한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해석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아프리카는 세계사에 속하는 지역이 아니며, 어떤 움직임도 발전도 보이지 않는다고 논외로 하였습니다. 특히 로마시대에는 제국의 경계 밖에 있는 인간들은 야만족이라고 단정지었던 것을 계승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집트의 테베에 있는 스핑크스와 그리스 테베에 전해지는 오이디푸스 설화를 뒤섞어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세계사를 조망한다는 취지가 세계사에 대한 기본적 자료를 제대로 이해한데서 출발한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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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길렘의 의학론 - 자연, 질병, 건강, 치유, 유기체와 사회에 대하여 철학의 정원 50
조르주 캉길렘 지음, 여인석 옮김 / 그린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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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분야의 누리망 신문에 독후감을 연재할 때 인문학, 특히 의철학 분야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저의 전공을 살려서 조르주 캉길렘의 <정상과 병리>를 읽었더라면 좋았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르주 캉길렘은 20세기 프랑스의 의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입니다. 고등사범학교의 철학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에 의학을 공부하였고,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가 1955년부터는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교수로 봉직했습니다.


그는 생전에 다섯권의 책을 펴냈을 뿐인데 의학박사 학위논문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그리고 철학박사 학위온문 <17, 18세기 반사 개념의 형성>을 제외하고는 발표된 논문들을 비슷한 주제로 묶어서 펴낸 것이라고 합니다. 미리 기획한 책이 없었던 것은 생전에 너무 바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캉갈렘의 의학론> 역시 비공식적이거나 지금은 절판이 되어 만날 수 없는 다섯 개의 글을 모아 엮은 것입니다. 다섯 개의 글은 모두 의학의 역사 혹은 철학에 관한 글로서 <과학사과학철학 연구>에서 의학이라는 표제 아래 있는 세 개의 글과 함께 의학에 관한 글 모음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글 의학 이론과 실천에서 자연 관념에서는 질병의 자연치유력을 주제로 합니다. 의학이 첨단으로 향하고 있는 요즈음에도 인정받고 있는 자연치유력에 관한 개념은 일찍이 히포크라테스 시대에 전개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현대의학이 히포크라테스를 찬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이상 그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며, 그의 유기체 개념이 가진 근사적 정확함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관찰법과 관망법을 거부하는 것이다(28)’라고 잘라 말하였습니다.


두 번째 글 질병은 의학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질병에 대한 사유를 담았습니다. 질병 개념에 대한 역사적 변천과정을 개괄합니다. 현대의학에서는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부정한 이에 대한 초자연적인 힘의 징벌로 간주되었습니다. 저자는 질병의 실존적 의미를 추구하여, “질병은 생명체가, 혹은 인간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존재임을 시인하게 강제하는 생명의 도구다라고 적었습니다.


세 번째 글 건강: 통속적 개념과 철학적 질문에서는 건강의 의미를 정의하였습니다. 르리슈는 건강은 장기들의 침묵 속에서 누리는 삶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한편 캉길렘은 “(건강은) 규범의 위반을 허용하고, 새로운 상황에서는 새로운 규범을 확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건강이란 늘상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환경의 변화를 수용해낸 결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의 의사를 치료자로 보기 이전에 내 몸에 대한 주석가로 본다.(57)”라는 구절을 새겨봅니다.


네 번째 글 치유에 대한 교육은 가능한가에서는 치유라는 개념을 두고 환자와 의사의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치유에 대한 성찰에 머물지 않고 치유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로 확대해나간 이유를 설명합니다. 일반적으로 환자는 질병이 생기기 이전의 건강상태로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100% 완벽하게 이전 상태로 되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적정한 선에서 수용하는 것이 나을 수있습니다.


마지막 글 유기체와 사회에서 조절의 문제는 유기체와 사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글입니다. 생명체는 세포라고 하는 기본 단위가 집적되어 형성합니다. 마찬가지로 사회 역시 구성원들이 모여 구성되는 것이고, 그 기능 역시 유기체와 사회 사이에 닮은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캉길렘은 유기체와 사회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 유기체는 이상적인 상태가 분명함에 비하여, 사회는 이상적인 상태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캉길렘은 사회는 유기체라기보다는 도구에 가깝다고 본다고 하였습니다.


다양한 주제들에 대하여 고금의 생각들을 두루 살펴 비교하고 새로운 생각을 뽑아 올린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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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게임 살인사건 봉제인형 살인사건
다니엘 콜 지음, 유혜인 옮김 / 북플라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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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다니엘 콜은 <봉제인형 살인사건>을 발표하며 등단하여, <꼭두각시 살인사건>, <조각상 살인사건>에 이어 <엔드 게임 살인사건>으로 마무리하는 연작을 발표하여 추리소설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합니다. 그의 전작들을 미처 읽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연작의 마지막 작품을 읽어보는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추리소설 연작은 각각의 작품을 읽어도 흥미롭기는 합니다만,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흠이 있어서 첫작품부터 읽어야 이야기의 흐름을 쉽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엔드게임 살인사건>은 밀실살인의 전형입니다. 게다가 사건의 피해자는 은퇴한 런던경시청의 형사로 자살로 처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따르던 후배 형사 울프가 보기에는 자살일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 수사에 나서게 됩니다. 울프 역시 꽤나 긴 시간 경시청을 떠나있으면서 범죄혐의가 있어 수배령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런던 경시청장이 살해의 위험에 쫓긴다거나, 미국 CIA요원이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수배중인데 런던 경시청 경감이 숨겨주는 상황이라거나, 범죄조직이 공공연히 경찰 수사관을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상황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과연 정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사건의 수사하는 경찰이 범죄조직의 돈을 빼돌리는 일이 벌어지고, 그런 일을 저지른 경찰이 경찰 고위직에 오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도 싶습니다. 오래 전에 주목받았던 영화 <투캅스> 연작이 생각났습니다.


어떻거나 의외의 인물이 범인이고, 범인은 사건을 은폐하고 수사를 방해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사건수사에 매달리고 있는 수사관들은 어떤 묘책으로 범인을 특정하여 처벌할 수 있을지 궁금한 가운데 막판에 기막힌 반전이 있습니다. 수사진을 비롯하여 이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의 다각적인 협조체계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의문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피해자의 집이고, 피해자가 직접 설계하였는데, 범인이 어떻게 사건 현장을 밀실로 만들 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밀실에 숨겨진 비밀을 주인공이 어떻게 추론해냈는지도 의문입니다.


사건의 단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혹은 밑밥을 깔아두기 위하여 피해자가 신참 형사이던 시절의 사건형장이나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추리를 헷갈리게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전작들을 읽어보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발생 한 달 만에 범인을 특정해 체포하는 성과를 올린 것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등장인물 사이에 사랑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데, 수사관들이 담당하고 있는 사건에 치어 긴장된 생활을 하고 있는 탓인지 사랑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우리 인생은 죽음과 고통뿐이고 혼자 살아야 할 운명이에요.(163)”이라는 벡스터의 탄식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전개되는 시점을 분단위로 구분하여 이야기의 소제목으로 삼은 이유도 분명치가 않습니다. 그저 날자만 특정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어떻든 사건은 해결이 되고 서로의 마음을 읽지 못하던 울프와 벡스터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행복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과연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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