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아 골랐다. 역시 쇼펜하우어! 이래야지 그답지. 오랜 만에 쇼펜하우어를 만나볼까 싶었다.

첫 장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압도 당했다!
그리고 계속 읽으면서 신선한 충격에 빠졌다.

머리가 텅 비워지는 느낌 때문에 한참 멍하니 있다가 밑줄을 그었다. 아, 다음 쪽을 넘겨야 하는데…

이 세상에 나 이상의 존재는 없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의 문제고, 내가 존재한다는 건 오직 나만의 문제다. 나는 이 세상에 있고 싶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쓸데없는 말로 그것이 나의 존재라고 설득당하고 싶지 않다.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어떻게 되는지를 분명히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낡은 계략에 속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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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8-29 1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표지가 매우 가벼운 느낌이라, 쇼펜하우어...하면 드는 묵직한 느낌과 또 다른 맛으로 어울리네요^ ^

오거서 2023-08-29 11:53   좋아요 0 | URL
그런 느낌은 포장에 불과하다고 쇼펜하우어가 말합니다. 다음 장에서요 ^^;
 

8월 3주 신간 목록에서, 과학 분야 첫 줄에 있는 책은 바로…

<플라잉>. 임재한 지음. 비행기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비행을 둘러싼 다양한 분야의 기술과 그 과학적 원리를 쉽게 설명한 책이다.

저자는 KAIST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하였고 항공기 관제시스템 연구로 2019년에 항공우주논문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미국 오스틴 텍사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항공우주 엔지니어.

책 제목은 영어 Flying을 발음대로 한글로 표기한 것인데 -ing 부가된 형태여서 동명사인지 명사인지 궁금해졌다. 나의 짧은 영어지식으로 단번에 판정하기 어려웠다. 명사라면 영어 사전에 등재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단어를 찾아 보았다.

뉴에이스 영한 사전에도 네이버 어학사전(옥스퍼드 영한사전)에도 Flying이 있다.

발음 기호는 [ˈflaɪɪŋ] (발음기호 i가 두 개다). 발음기호를 따르면 [플라이잉] 이다. 그렇다면 ‘플라잉’은 우리말의 외국어 표기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표기법 문서를 찾다가 발길을 되돌렸다.

영어 단어를 사전에서 찾다가 다른 표제어를 보았다.

카지노 용어: 플라잉
포커 게임에서 ‘풀 하우스(full house)’ 안에 같은 등급의 세 장의 카드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는 어느 등급의 3장 카드와 다른 등급의 2장 카드를 가진 핸드를 말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플라잉으로 시작하는 표제어들이 상당수 있다. 플라잉 킥, 플라잉 링, 플라잉 점프, 플라잉 스타트, 플라잉 메어, 플라잉 폴 등등. 거의 스포츠 관련 용어들이다. 예상 밖의 일이라 기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사전을 보는 재미이기도 하다. 특히, 플라잉 스타트(flying start)와 같은 말이 플라잉이다.

체육: 플라잉
육상이나 수영 경기에서, 출발 신호가 나기 전에 스타트하여 범하는 반칙. 육상 경기에서는 2회, 수영 경기에서는 3회를 범하면 실격이 된다.

영어 Flying을 번역하는 우리말은 비행(飛行). 동음이의어로, 다른 비행도 있다.

비행(卑行) 「명사」 도덕에 어긋나는 너절하고 더러운 행위.
비행(非行) 「명사」 잘못되거나 그릇된 행위.


온라인 사전을 사용하는 중에 오타 때문에 비헹… 덤으로 신조어를 하나 알게 되었다. 비헹분섞(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기). 재활용 위한 올바른 분리배출 방법이라고 한다. 즉, 내용물을 비운다, 이물질을 헹군다, 다른 재질을 제거하여 분리한다, 재질별 종류별 섞지 않는다는 것이다. 뜻밖에도, 비행이 제로웨이스트(Zero waste)까지 이어졌다. (여기서 그만!)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면서 좌석별로 가격이 다른 이유가 궁금한 적이 있었는데 책에서 과학적 원리를 곁들여서 알려준다. 연료를 최대한 아끼면서도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비행기의 중앙부부터 승객을 배치해야 한다. 승객이 원하는 좌석을 고르면 이상적인 무게중심이 깨진다. 좌석의 차등요금은 안정적인 비행을 보장한다.

재미있는 내용으로, 비행기의 코가 뾰족하지 않고 둥근 이유는 공기가 의외로 끈적끈적하기 때문이다. 점성이 있는 공기는 달리는 물체의 표면에 달라붙는데 코를 뾰족하게 만들면 표면적이 넓어져 더 많은 공기가 붙는다. 공기 저항을 줄이려면 오히려 적당히 둥근 모양이 낫다.

비행기는 어떻게 하늘을 나는지 궁금한가. 이제 책을 펼쳐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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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주 신간 목록에서, 소설 분야 첫 줄에 <나 같은 기계들>이 있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이 소설을 추천한 매스컴에 실린 기사의 제목만 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나와 친한 여자(애인, 썸녀, 여자친구 등)가 인조인간(A.I. 포함)을 더 좋아하고 사랑에 빠진다면, (더 세고 나쁜 경우로) 인조인간한테 나의 여자를 빼앗긴다면… 가정하는 것이었다. 인조인간이 나를 빼닮도록 세팅한다는 전제로 말이다.

다른 하나는, 이언 매큐언의 최초 SF 소설임을 내세웠다. 또한, 작가의 단 하나의 SF 소설이라고도 하였다. 최초 또는 유일무이에 방점이 찍힌 것이리라.

작가가 소설 속에서 지어낸 상황이고 허구인 줄 아는데도 빠져 든다. 만일 나와 같은 인조인간이 만들어진다면 나를 복제한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을까, 그로 인해 복잡하고 끔찍한 일들을 분명 겪게 되리라고 잠시 생각해 본다. 소설이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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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8-24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거서님 반가우십니다^^

˝소설이어서 다행˝
Sci-Fi 영화 좋아하는 저로서도 비슷한 생각 많이 해 보았습니다

오거서 2023-08-24 12:12   좋아요 1 | URL
얄라님 반겨주시니 황송스러운데 감사합니다! ^^
저도 Sci-Fi 영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
공상과학 소설에서 선보이는 미래 사회상이나 신기술이 곧잘 현실에서 실현되기 때문에 안심보다는 걱정이 앞서네요. 지금은 막연할 수 있지만요…
 

2017년에 열렸던 제 14 회 EBS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EIDF)를 특별히 기억하고 있다. 영화제 사상 처음으로 한국 작품이 대상을 수상하였다는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수상작은 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 IMF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투자에만 관심을 보이는 부모와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였다.

대상 수상작을 소개하는 영상에는 아주 인상적인 부제가 달렸었다. “영원히 부자일 것 같던 우리 집은, 망했다.”

<버블 패밀리>는 대상 수상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데다 마민지 감독의 장편 데뷔 작품이라고 해서 놀라움을 더했다. 이후로도 마민지 감독은 여러 다큐멘터리 작품을 발표하였다고 안다.

작년에 발표한 조남주의 <서영동 이야기>에 아버지의 부동산 투기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감독이 등장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마민지 감독이 절로 떠올랐었다. 마 감독을 카메오로 캐스팅 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8월 3주 신간 중에서,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이라는 제목을 보고나서 부동산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마민지 감독을 다시 떠올렸다. 가족의 부동산 흥망사가 오버랩 되었기에. (<버블 패밀리>와 감독 이름을 금방 기억해지 못했지만, 저자를 확인하면서 깜짝 놀란 것은 맞다.)

책 소개를 통해 저자를 다시 만나 한동안 소원해진 기억을 완충했다. 1980년대 한국의 도시개발계획 덕분에 저자의 아버지가 연립주택을 지어 파는 집장사가 아파트, 상가, 빌딩으로 점차 커지면서 부동산 성공신화를 이루는 줄 알았지만, IMF가 닥치고 아버지의 사업 도산으로 어머니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접 일을 찾아 나서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고. 저자의 영화 <버블 패밀리>가 책의 밑바탕이 되었을 테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보다 더 많은 개인적인 스토리를 책에 담은 것 같다.


주제 분류: 한국 에세이, 영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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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주(8/14 - 8/20) 신간 목록을 정리하였다. 그 중에서, 린다 콜리가 지은 <총, 선, 펜>의 추천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이 책은 18 세기 중반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동안 성문 헌법의 역사를 집약하였다.

제목이 무척 인상적이다. 표지도 강렬하다. 제목을 보자마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먼저 떠올렸다. 아니 착각할 정도였다. 그 책이 다시 리커버 변신 판으로 나왔나 싶었지만… 의구심이 들어 제목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두 번째 글자부터 다르고 결국 다른 제목이었다.

참고로, <총, 균, 쇠> 출간 25주년 기념 양장본이 8월 초에 출간되었다.

원서 제목은 The Gun, the Ship and the Pen. 2021년 출간. 번역서 제목은 원서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총’은 전쟁을 상징하고, ‘선’은 함선을 포함하는 배를, 그리고 ‘펜’은 인쇄술을 상징한다. 여기서 ‘선’은 수송과 통신의 기능까지 확장할 수 있는 다중 의미를 제대로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책의 내용을 함축한 제목으로 손색이 없다.

저자는 린다 콜리. 1949년 영국 체스터에서 출생하였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9년에 대영제국훈작사(CBE)를, 2022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70주년 생일 기념 대영제국훈장(DBE)을 받았다. 저자의 주요 저서로, <브리튼인(Britons)>으로 울프슨 역사상을 수상하였고, <엘리자베스 마시의 시련(The Ordeal of Elizabeth Marsh)>은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007년 올해 최고의 책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저자는 1700년 이후 영국, 제국주의, 세계사에 정통한 전문가.

저자는 18 세기 제국주의 국가에서 애국심을 토대로 규범으로 인식되는 헌법이 발명되었다고 주장한다. 시민 의식이 함양된 국민들을 이로써 전쟁에 동원하기 수월해졌다고 한다. 국민의 의무를 성문 헌법에 넣음으로써 국가가 결정하는 전쟁에 일부가 아닌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징병이 가능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권리는 전국민이 피를 흘린 댓가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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