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매튜 라이
번역: 이경아, 이문희
페이지: 960 (부록 포함)
출판사: 마로니에북스
초판 인쇄: 2008. 9. 20.
정가: 43,000 원
이 책, 편하지 않다. 제목부터 편하지 않다. 책을 대하기가 편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제목은,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 1001.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 1001, 제목을 구성하는 요소 어느 하나 부담스럽지 않는 것이 없다.
책 제목을 보면서 영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렸다.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출연했고,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나서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실행에 옮기는 두 남자의 로망을 그린 영화였다. 재미와 감동을 느꼈던 영화라고 기억한다. 그러나 영화의 버킷리스트에 클래식은 없었던 것 같다.
저마다 일생의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우선순위를 매기면서 의미를 확인하기도 하지 않는가. 감상자들한테도 이런 류의 리스트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제 각각 기준이나 의미가 다른 리스트라고 하더라도 나름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한테도 그런 리스트가 있다. 그러한 감상자의 버킷리스트를 이 책이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감상자마다 취향이 다른데 저자나 출판사가 그것을 대신해주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이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하는 것이라면, 놓쳐서는 아쉬울 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는 눈치를 챌 수 있겠으나 그와 맞먹는 절실함이나 당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원서 편집자도 서문에서 언급했다시피 글리에르 교향곡 제 3 번이나 플로렌트 슈미트 작품 `살로메` 등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하였지만 쉽게 인정되지 않는다. 이처럼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 상당히 있는 것 같고, 그래서 편하지 않다.
제목에 있는 숫자 1001,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1001, 크기를 가늠해 보면, 의외로 큰 수다. 1001 개를 모두 듣기 위하여 필요한 시간을 예측해보자. 하루에 하나씩 꼬박 듣는다해도 2년 9개월이 걸리고, 일 주일에 하나씩 듣는다면 19 년 이상 걸린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음반 하나에 여러 장이 있는 경우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될 것이다. 바흐 칸타타는 200 곡이 넘는데도 음반 하나로 간주했다. 이 칸타타 곡들을 모두 들으려면 하루 아니라 일 주일도 모자랄 것이다.
결정적으로, 책 제목이 잘못됐다. 원서 제목은 이렇다. 1001 Classical Recordings You Must Hear Before You Die. 여기서 중요한 단어 `Recoding`이 번역된 제목에서 빠졌다. 이로 인한 문제점으로, 원서는 제목에서부터 음반에 관한 책임을 명백히 알 수 있지만, 번역서는 클래식 음악 해설서로 착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명음반 가이드이지 클래식 음악 해설서는 아니다. 두 가지 사이에 걸친 어정쩡한 책이라는 느낌을 없애기 어렵다.
원서에 사용된 `Classical Recording`이 핵심인데 번역서에서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된다. 클래식 레코딩은 고유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또다른 분야이고, 명음반을 선정하는 기준은 명곡의 기준과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클래식 레코딩 분야는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알기 힘든 영역이기도 해서 클래식 음악 즉 작품 뿐만 아니라 연주자, 연주 시기, 장소, 녹음 레퍼런스, 음반 레이블, 프로덕션 등에 대해 폭넓은 지식이 요구된다.
게다가, 클래식, 그 자체로 한 부담 한다. 한편으로는, 부담감을 극복하고 싶은 독자 입장에서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커지면서 클래식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이런 종류의 책을 찾게된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 책이 그런 기대에 크게 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귀띔하고 싶다.
이런 첫인상을 애써 외면하면서 책을 펼치면 서문에 이어서, 작품별 색인이 가나다라 순으로 앞에 나오고, 사전식으로 구성된 페이지를 마주하게 된다. 명음반에 수록된 작품의 연대 순으로 페이지가 배치되어 있지만, 색인 말고 목차가 없어서 전체를 일람할 수 없다.
이 책은, 눈여겨 보면, 저자 서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2007 년 기준으로 선정한 1001 개 명음반을 소개하고, 해당 음반에 수록된 작품 해설과 함께 연주, 음반 정보를 두서너 단락에 채워 서술한다. 모든 음반에 대해 획일적인 분량으로 내용이 채워진 것이 좀 아쉽다. 그러나 소개된 음반의 사진이 실렸고, 유명 연주자의 사진과 그림이 듬성듬성 게재되어 있어서 보는 재미는 있다. 부록에 용어사전(4쪽 분량), 작곡가별 색인(abc 순), 사진 출처를 제공한다.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음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고자 주변 자료를 찾다가 관련된 지식을 알게될 뿐만 아니라 상식도 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백조의 노래이다.
슈베르트 연가곡집 `백조의 노래` 덕분에 알게된 것으로, 백조는 죽기 직전에 한 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슈베르트가 남긴 연가곡집 중에서, `백조의 노래`가 마지막 작품이다. 슈베르트가 다른 아름다운 곡도 많이 작곡했지만, `백조의 노래` 속의 가곡이 더욱 아름다운 곡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백조의 노래를, 슈베르트 생애 마지막이기도 하면서 3 대 연가곡집에서 마지막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수식어처럼 챙기게 된다.)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 1001 은, 좋은 측면으로, 감상자가 여생을 바쳐 부를 수 있는 백조의 노래가 될 듯 싶지만, 책 구성과 내용은 그러한 백조의 노래를 어렵게 만들지 않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