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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중송
나가르주나 지음, 이태승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9월
평점 :
2023-5.근본중송-나가르주나
<제1게>
이미 간 것은 가는 것이 아니며 또 아직 가지 않은 것도 가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간 것과 아직 가지 않은 것 이외에 현재 가고 있다는 것도 가는 것이 아니다.
<제2게>
현재 가고 있는 것에 가는 것이 [있다]. 그 [가는 것은] 현재 가고 있을 때에 [있는 것이지]. 이미 지나간 때나 아직 가지 않은 때에 [있는] 아니다. 실로 가는 것은 현재 가고 있을 때 가는 것이다.
(p.18~19)
<제1게>
만약 현재와 미래가 과거에 의존한다고 한다면, 현재와 미래는 과거의 시간 속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제2게>
현재와 미래가 과거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 그[과거]에 의존해서 존재할 것인가.
<제3게>
더욱이 과거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그 양자[현재와 미래]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현재와 미래의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p.124~125)
머리가 혼란스럽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어디가 앞과 뒤인가... 혼란이 끊이지 않네요. 인도 대승불교 사상의 철학적 체계를 확립한 것으로 유명한 불교 사상가 나가르주나의 대표 저술인 <근본중송>을 읽은 후유증 탓입니다. 책을 펼쳐 읽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말들만 가득하네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을 필사적으로 참아가며 꾸역꾸역 읽어가다 보니 머릿속에 혼란스러워 지네요. 저라는 존재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지,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는지, 이 책은 존재하는지, 아니 나라는 존재는 존재하는지, 세상은 존재하는지, 모든 게 혼돈 속에 빠져드네요. 읽다보니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말들의 흐름에 빠져서 제가 살아가는 세상도 잊고 저 자신도 잊고 모든 게 사라져가는 경험을 하게 되네요.
아, 정신을 차려봅니다. 정신을 차려야지...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엥, 제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거죠. 정신을 차려야지 하는데 혼돈은 쉽게 가시지 않네요. 어쩔 수 없습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앉아서 글을 써봅니다. 뇌 속에 가득한 혼돈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읽은 책에 대해서 서평을 쓰면 혼돈이 사라지고 무언가 정리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정리하려고 보니 뭘 정리해야할까요. 뭘 알아야 정리를 하지. 책을 분명히 읽었는데 알아낸 것도, 이해한 것도 없습니다. 알아낸 것도 없고 이해한 것도 없는데 무슨 정리를 하고 글을 씁니까. 하지만 언제나 해답은 있는 법. 알아낸 것도 없고, 이해한 것도 없다면 그 무지와 혼돈의 과정을 글로 쓰면 되죠. 생각해보니 무지와 혼돈의 과정을 어떻게 글로 쓸 수 있나요. 그 방법조차 혼란스럽네요.
무지와 혼돈이라도 조금은 알아야 쓸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아는 게 진짜 없는데요. 잠깐, 잠깐, 아는 거라도 정리를 해봅시다. 나가르주나는 연기설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나가르주나는 연기설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자 불교 교리의 근본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연기설이란 무엇인가. <근본중송>의 해설에 따르면 연기란 ‘연으로 인해 생겨난다’는 것으로, 무엇인가 생겨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연, 즉 조건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즉, 무엇인가가 생겨나려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어떤 원인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서 무엇인가가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죠. 아니, 인과의 법칙이라고 하면 되지 왜 연기설이라고 하냐고 할 수 있는데, <근본중송>의 말을 따라가 보면 이 인과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기설은 결코 단순한 게 아닙니다. 나가르주나는 연기를 여덟 가지의 부정, 즉 팔불로 서술하고 있는데, 저는 여기서부터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몰라서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도 아닌. 이런 식의 논의가 이어지는데... 음 무슨 말인가요, 이게?
책의 해설에는 이어서 나가르주나가 연기의 개념과 대립되는 실체의 개념을 비판한다고 써 있습니다. 실체란 변하지 않고 항상 존재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불교에서는 아트만에 해당하는 개념이라고 하네요. 실체, 자성, 아, 아트만, 푸드갈라, 본성 같은 단어들이 비슷한 개념에 속한다며 <근본중송>은 지속적으로 비판을 한다네요. 네, 비판하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뭘 어떻게 비판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혼돈 속에서 <근본중송>을 통한 미지의 불교 지식 대륙 탐사는 끝났습니다. 이 탐사 쉽지 않네요. 불교 지식 대륙을 감싼 무지의 안개를 뚫기가 쉽지 않아 보이네요.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포기는 없습니다. 힘들어도, 쉽지 않아도 다른 서양철학 대륙 탐사나 동양철학 대륙 탐사 때처럼 계속해서 전진할 수밖에요. 계속 시도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게 저의 경험에서 얻은 방법론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