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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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데미안-헤르만 헤세


2023년에는 제가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을 빠짐없이 쓰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다짐은 다짐일 뿐, 새해가 시작된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지만 다짐은 사그라들고, 의욕은 사라졌습니다. 왜 그렇게 글쓰기가 싫은건지... 글쓰기 싫어하기가 지속되다보니 아예 글쓰기에 대한 의욕이 사라집니다. 그냥 글에 대한 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정신적 상태가 도래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줄 예상이라도 했던건지 2022년에 의도적으로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만들어놨습니다.^^;; 강제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기에 글을 써야 합니다. 없는 의욕을 끌어올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 자판을 두드립니다. 


자, 이제 글을 써봅시다. 그런데... 그런데... 역시나 떠오르는 건 없습니다. 읽은 책이 있지만 읽은 책 서평을 쓰기가 싫어집니다. 그냥 포기해버릴까? 포기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죠. 하지만 지금까지 항상 쉬운 일만 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쉬운 일이 아니라 어려운 일을 선택해봅니다. 다시 글을 쓴다는 어려운 일을 선택한 것지요. 자, 다시 글을 써봅니다. 최근에 읽은 책이 아니라 과거에 읽은 책들을 떠올려봅니다. 어떤 책에 대한 글을 써볼까. 일단 철학책?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픕니다.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책? 음, 글을 쓰려고 생각하니 뭔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나네요. 자료의 도움이 없으면 글을 쓰기가 어려운 느낌이라고 할까. 예술이나 역사책은? 아, 그쪽 글들은 뭔가가 아쉽네요. 어쩔 수 없이 과거에 읽은 고전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래, 나에게는 고전들이 있었어. 특히 문학의 고전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내가 사랑하는, 잊을 수 없는 막스 데미안이네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글을 쓰기 싫어하는 나는 지금까지 나를 지배한 세계, 나의 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새로운 나로 태어나려면, 글을 쓰기 싫어하는 나라는 나의 알을 깨뜨려야 합니다. 지금 내가 앉아서 글을 쓰는 건, 나의 세계를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면서 추구하는 건,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나의 이상이 되려는 행위이죠. 그걸 신이나 아프락사스라는 이름에 비유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건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추구하는 이상이기에 나의 이데아 정도로는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무언가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습니다. <데미안>에서 말하는, 선과 악의 양면성을 모두 포괄하는 총체적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삶은, 우리가 그걸 원하는 한 언제나 그 과정으로서 존재합니다. <데미안>에서는 그 과정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혹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서 표현합니다. 그걸 지금의 나에게 적용해보면, 지금의 글을 쓰기 싫어하는 나는 글을 쓰는 내기 되기 위한 과정에 위치합니다. 지금의 나는 미래의 글을 쓰는 걸 자연스럽게 하는 내가 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나에게는 그 과정을 돕는, 싱클레어의 친구 막스 데미안이 없지만,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글을 쓰는 나기 되기 위해 노력해 볼 것입니다. 2023년은 글을 쓰는 새로운 나가 되기 위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아니, 너무 확신은 하지 않을께요. 그저 새로운 나기 되기 위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기원해볼께요. 그 기원의 끝에 글을 쓰기 싫어하는 지금의 나가 산산이 부서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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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이면 을유세계문학전집 122
씨부라파 지음, 신근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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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그림의 이면-쓰부라미

 

사랑은 아름답다는 말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아름다운 건 아니죠. ‘사랑이 아름답다는 말이 맞으려면 아름다울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할 겁니다. 만약에 아름다울 수 없는 조건이라면, 그 사랑이 아름다운 게 될리는 없죠.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 유부남과 유부녀의 사랑이라는 조건이라면 거기에 아름답다는 말을 쉽게 붙일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이 거부하는데 다른 한 사람이 미친 듯이 사랑한다면 그것도 아름다울까요? 어쩌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스토킹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사랑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혹은 때에 따라서 아름다울 수도 있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를 생각해봅시다. 이 영화는 바람피는 배우자를 둔 유부남과 유부녀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사랑을 그립니다. 여기까지 본다면 이 영화는 단순한 불륜 영화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한 불륜 영화를 벗어납니다. 왜냐구요? 이 영화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 둘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미묘한 감정선과 상황들이 빚어내는 사랑의 느낌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죠.

 

어찌되었든 모든 사랑이 아름다울 수 없지만, 아름다울 수 없는 사랑이라도 아름다울 수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고 스쳐지나간다면, 그런 모든 상황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조건으로 수렴된다면, 충분히 그런 사랑들도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쓰부라미의 대표작으로 태국을 대표하는 로맨스 소설 <그림의 이면>이 가리키는 사랑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소설은 30대의 왕족 출신 유부녀와 20대의 중상층 출신 일본 유학생의 사랑에서 다룹니다.

 

여기까지 본다면, 이 소설도 단순한 불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단순한 불륜 이야기가 아닙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소설 내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둘은 끝없이 어긋나며, 결론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으로 결론납니다. 처음에 일본 유학생인 남자가 사랑을 고백하지만 유부녀가 진정시켜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의 열병이 지나가고 나서 남자에게는 그 기억이 추억이 됩니다. 태국으로 돌아온 남자는, 과거의 사랑이 대상이었던 여인이 죽기 전에 한 고백으로 인해서야 그녀도 자신을 사랑했음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이 끝나고나서야 둘이 서로 사랑했음을 알게 된 것이죠. 하지만 사랑은 지나가버렸고, 다시 돌이킬 수 없죠.

 

돌이킬 수 없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만약에 이루어졌다면 그게 아름다웠을까요. 현실이라는 힘 앞에서 그들의 사랑은 아름다움을 잃고 현실화되어 산산히 바스라지거나 그저 그런 일상의 삶이 되었을 겁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아름다움은, 이루어질 수도 있었을 사랑의 가능성과 아직 간직되고 있는 사랑의 낭만성과 순수함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림의 이면>은 그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가능성과 낭만성 때문에 충분히 아름다운 사랑의 소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낭만주의가 이 소설을 아름답게 만든 것이죠. 저는 여기에 이 소설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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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지 마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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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눈감지 마라-이기호

 

이기호 작가의 <눈감지 마라>는 짧은 소설들 모음집입니다. 짧은 소설들 모음집답게 수십 개의 단편이 되지 못한 짧은 소설들이 모여 있습니다. 일반적인 짧은 소설들 모음집이라면 각기 다른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있겠지만, 이 책은 전진만박정용이라는 두 사람의 삶의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구성입니다. 두 사람의 삶의 이야기로서 커다란 하나의 소설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각각의 소설들은 각기 다른 구성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말입니다.

 

소설들 전반에 깔린 건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삶의 비애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비극적이고 슬픈 분위기같겠지만, 이기호 작가의 특성상 소설은 슬픔이 가득한 무거운 분위기로 흐르지 않습니다. 이기호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경쾌한 느낌은 희극적인 어조를 가져오며 소설 전반에 깔린 비극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희비극적인 느낌을 불러 일으킵니다.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그런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느낌.

 

그러면 왜 이 소설들은 희비극적인 느낌을 가지는 걸까요? 그건 전진만박정용이라는 두 주인공의 삶 자체가 가진 구조적인 요소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공부도 잘하지 못해 지방대에 들어갔고, 지방대 졸업 뒤에는 아르바이트와 파트 타임을 전전하며 살아갑니다. 사는 곳도 보증금 없는 원룸에 함께 월세를 보태며 살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들 주위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돈 없고 힘 없는 이들이고, 그들과 함께하는 그들의 삶에는 어찌할 수 없는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들은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쉽게 할 수 없고,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삶 속에서 그저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갑니다. 기본적으로 가난이 그들을 힘겹게 하지만, 가난이 불러 일으킨 다른 삶의 요소들이 더해져 그들은 더욱더 힘겨워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빡빡해지는 환경이 그들의 삶을 비극으로 몰아간다는 말입니다. 일을 하다 벌어지는 사고도, 심지어 죽음마저도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지나갑니다. 마지막에 진만이 떠나간 정용의 삶에 젊은 청년이 등장하지만, 그는 이름만 다른 또다른 진만으로서 정용과 함께 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슬프긴 했지만 이기호 소설 특유의 희극적인 느낌이 비극을 덜어주면서 슬프면서도 기쁜 느낌으로, 슬픔이 덜어지는 식으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읽어나가다 보니, 삶의 비극에 비극이 겹쳐지면서 점점 슬픔이 커져가는 것이 아닙니까? 읽다가 더해지는 슬픔에 어느 순간 슬픔이 빵 터지며 지독한 슬픔이 들이닥쳤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어진 가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도 없는 삶, 그러면서도 울고 웃으며, 때로는 다른 가난한 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때로는 그들과 다투기도 하고, 가난한 삶의 구조이 자신을 옥죄는 삶의 비극의 끝에 결국 닥친 비극까지. 어찌할 수 없는 한국적인 삶의 비극 앞에서 저의 슬프고도 슬플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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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과는 무관하게 소설Q
강성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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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나의 잠과는 무관하게-강성은

 

시인의 소설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고 봐도 이 책에 나오는 소설들은 어딘가 독특합니다. 산문 같지 않은 느낌, 배경 묘사나 인물설정에서 어딘가 자유스러운 모습 같은. 거기에 저자가 시인이라는 걸 알고 나면 깨닫게 되죠. 이 소설은 시와 소설의 경계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는.

 

중간 중간 보이는 시적인 묘사,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냥 이어지는 소설의 구성, 급작스러운 상황 전개 등이 가득한 이 소설들은 시-소설이자 소설-시로 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의 매력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소설가가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인 소설가의 개성을 이 저자는 이미 첫 소설집에서 매우 강력하게 뿜어내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것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적 지문 같은 개성이 가득 담긴, 이 소설집을 읽다보면 이런 소설은 오직 강성은 작가만이 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죠.

 

사람들이 갑자기 늙고, 정체 모를 시체들이 마을에 나타나고, 개의 목소리를 번역하는 기계가 등장하고, 버스 기사가 내린 사이에 버스가 갑자기 사라지고, 이 세상 존재 같지 않은 이들이 무한정 버스를 기다리는 등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이 소설 속 세계는 내가 사는 현실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언제나 존재해왔습니다. 바로 시인들이 사는 시적 문학의 세계로요. 그러니 소설로 표현된 시적 문학의 세계가 어딘가 낯설다고 해서 당황하지 말기를. 언제나 존재해왔던 시적 문학의 세계가 산문화해서 나타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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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2-12-27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급 땡기네요. 한국소설 안 본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표지그림도 매우 인상적이고...

시적문학이라...저도 한 번 보겠습니다!ㅎㅎ

짜라투스트라 2022-12-27 23:30   좋아요 0 | URL
아, 이게 시와 산문의 중간 느낌이라서 사람들마다 다 생각이 다를 것 같네요.^^;; 어쨌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책을 읽고 머릿속에서 뭔가 흘러나올 때 바로바로 써야 한다.

쓰지 않으면 글을 쓰기기 힘들다. 오늘 서평도 바로 생각난대로 써서 가능했다.

앞으로는 생각나면 바로 쓰는 걸로 해야겠다.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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