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마니아
김쿠만 지음 / 냉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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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레트로 매니아-김쿠만

 

너는 앉아서 서평을 쓰기로 결심한다. 지금까지 읽은 책에 비해서 나오는 서평이 적은 것이 아쉬웠던 너는 이번에는 월요일부터 서평을 쓰면서 자신을 다르게 만들자는 맨날 하다 실패한 결심을 다시 시작한다. 이번에 쓸 책의 제목은 <레트로 매니아>. 저자는 김쿠만. 우연히 만나서 고른 책답게 너는 책의 내용도 전혀 모르고 저자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그저 너는 <레트로 매니아>라는 제목에 꽂혀서 책을 골랐고 읽을 뿐이다. 사실 너는 알고 있다. 너 자신이 레트로 매니아라는 점을. 듣는 노래부터, 보는 영화부터, 책을 열심히 읽는 것까지, SNS를 거의 하지 않는 것까지 너 자신이 레트로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물론 너는 의식적으로 뉴진스, 아이브, 르세라핌, 케플러 같은 아이돌 음악도 듣고, 아이돌 그룹에 대해 공부도 한다. 암호화폐, 메타버스, NFT, 자율주행차와 A.I. 같은 현대 경제의 흐름에 대해서도 알기 위해 노력한다. 아프리카,트위터, 유튜브 같은 인터넷 생방송도 보고 채팅창의 흐름도 파악하려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도 들락 거리며 어떤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글을 쓰는지 파악해보려 한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도 많이 하지 않지만 가끔식 들어가서 뭐가 있는지는 살펴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노력의 일환이다.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하는 행동. 노력하지 않으면 너는 언제나 레트로에 머문다. 레트로를 벗어날 수 없었던 너의 눈앞에 <레트로 매니아>라는 책이 있으니 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읽었으니 글을 남겨야 하는 법.

 

너는 김쿠만이라는 저자의 출생연도를 살핀다. 1991년생. , 밀레니얼 세대군. 밀레니얼 세대라는 점을 아는 순간 특유의 세대론적인 사고로 책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런데 너는 알고 있다. 세대론적 사고라는 게 얼마나 일반화가 심한지를. 밀레니얼 세대에게 비판받는 586세대에서 기득권에 속하는 이들이 겨우 10%를 조금 넘는 다는 것도 알고, 나머지 586은 기득권이라기 보다는 힘겹게 삶을 살아왔던 이들이라는 사실도 안다. 밀레니얼 세대도 마찬가지다. 남성과 여성이 너무 다르고, 자신이 속한 계층에 따라 사고방식이 얼마나 틀린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너는 그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레트로 매니아>1991년생 저자가 썼다는 사실 만으로 세대론을 적용해본다. 그렇게 보는 게 편하고 쉽기에.

 

너는 책을 읽으면서 책 속 소설들이 과거에 머무른 채 벗어나지 못한 이들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그런데 너는 책 속 등장인물들이 과거에서 머무른 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서 미래로 나아갈 생각이 없다는 사실도 파악한다. 그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아니 미래라는 단어 자체가 들어설 여지 없이 과거에 머무른 채 현재를 살아나간다. 미래 없는 과거가 아니라, 그냥 과거와 현재의 교집합으로서의 현재만 존재하는 소설들. 그들은 그저 살아나갈 뿐이다. 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어쩌면 그건 미래에 대한 희망 없는 허무와 환멸의 문학적 형상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그건 하나의 문학적인 삶의 방식일 수도 있다. 미래의 희망 없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대한 지속적인 묘사도 문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적 삶의 방식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이것도 세대론적인 일반화에 따라서 책을 구분할 것인가? 너는 갑자기 이 책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세대론인지 아닌지가 궁금해진다. 생각하다보니 아리송해진다. 세대론인지 세대론인지 아니면 그냥 작가의 특징인지. 근데 뭐 어떠랴. 책이 재밌었는데. 그것 하나면 책 읽는 의미는 충분하다. 그렇게 너는 세대론 같지 않은 세대론, 문학론 같지 않은 어설픈 문학론을 들이대다 책을 덮고 서평마저 마무리한다. 역시 너답게 혼돈스러운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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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정희진의 글쓰기 5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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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정희진

 

책을 읽는데, 책의 갈피갈피마다 새겨진 정희진 씨의 사유가 내 몸으로 흘러들어옵니다. 내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정희진의 사유와 내 몸에 새겨진 나의 사유가 만나서 폭발하며 펑펑 터집니다. 사유와 사유가 만나서 터져 나오는 폭발의 굉음, 폭발의 흔적, 갈등과 충돌의 흔적들이 책을 읽는 내내 제 몸을 감싸고 돌며 정신을 못차리게 만듭니다. 저는 그 흔적들을 갈무리하며 생각을 정리하느라 엄청난 정신의 에너지를 쏟아냅니다. 책의 파트파트마다 너무 많은 생각들을 한 것 같습니다. 홀로 하는 내적인 대화의 장이라고 할까요? 정희진의 사유와 저의 사유가 만나서 행해진 무수한 사유의 흔적들을 서평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서평이 한 40개는 넘을 것 같습니다.^^;; 파트파트마다 다 서평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어떨 때는 동의하면서, 어떨 때는 비판하고 반박하면서 새겨진 사유의 충돌들을 다 서평으로 쓰지는 못해서, 이렇게 크게 짧은 글 하나 남긴다는 비겁한 변명을 해봅니다. 이런 책 읽기는 너무 좋네요. 할 말이 너무 많고, 생각도 너무 많이 해서 에너지 소모도 크지만, 그만큼 좋은 경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게 책에서 말하는 융합이 아닐까요? 정희진 씨의 사유를 받아들이면서 내 몸의 사유도 변화해가는 과정이 읽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니까요. , 아니라면 할 수 없죠. 어디까지나 저만의 융합개념이기 때문에 다를 수도 있는데, 저는 이런 식의 변화과정이 융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나름의 융합 과정을 거쳤으니 이제 책도 덮고 글도 마쳐야 하는데, 제가 했던 무수한 생각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가버리는 건 너무 아쉬워서 하나 정도는 남겨보겠습니다.

 

종이 신문 읽기에 대해서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를 읽다가 정희진 씨가 종이 신문 읽기를 권하는 부분에 눈이 간다. 종이 신문 읽기라... 그게 가능할까?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아주 힘들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도대체 왜? 나를 둘러싼 삶의 구조가 종이 신문 읽기와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이건 내가 기독교를 믿거나 유신론자 되기가 힘든 것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나의 가족이나 친한 이 중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관계를 넓혀야 기독교인이 나오고, 그마저도 삶의 접점이 그리 크지 않다. 한마디로 나는 평생동안 신 없이 살아왔고, 신에 대해 생각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내가 신을 생각하려면, 진짜진짜 억지로 관심을 가지고 신을 사유해야한다. 아니면 진짜 기독교를 믿게 하는 혁명적인 사건이 내 삶에 일어나거나. 이 확률은 기적에 수렴한다. 그나마 내가 서양철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신학이나 유신론, 무신론 관련 책을 읽어서 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면 나는 내 가족이나 친구들처럼 신 없이 살다 죽었을 것이다. 종이 신문 읽기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신문은 나의 삶이 아니었다. 신문은 어른들의 도구였고, 나에게는 tv편성표나 스포츠 결과를 볼 때 잠시 보는 정도였다. 이건 시간을 거치면서도 똑같았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종이신문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구독한 적은 당연히 없다. 구독이라고? 그건 부모님이나 나랑 나이 차이가 나는 윗세대의 이야기다. 나나 내 친구들에게 종이 신문은 자기 삶과 관련이 없는 매체였다. 학창시절을 거쳐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종이 신문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종이 신문을 읽는단 말인가? 읽어 본적이 없고, 읽을 이유도 없고, 읽을 필요도 없는데. 도대체 왜 읽어야 하지? 물론 책에 나오는 정희진 씨의 말은 옳다. 종이 신문이 불러 일으키는 사유의 방식과 인터넷이 불러 일으키는 사유의 방식은 다르고, 세상을 더 넓고 맥락적으로 보려면 종이 신문이 불러 일으키는 사유의 방식이 필요한 것도 맞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아니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종이 신문이 삶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도 해본적도 없고, 앞으로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만약에 종이 신문 읽기를 하려면 나 혼자 해야한다. 불교의 수도승이 면벽하는 느낌이거나 기독교의 사제들이 깊은 수도원에서 홀로 수련하는 기분으로. 오롯이, 홀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한 번도 해본적 없는 걸, 책의 저자가 권했다는 이유만으로 할 수 있을까? 학자로서 정희진 씨는 주류의 언어를 벗어나 자신만의 언어를 찾는데 소수지만 책이나 이론의 도움이라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종이 신문 읽기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 친구들이나 지인의 어떤 이해도 받지 못한 채 오로지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다. 그걸 생각해보면 너무도 암담하고 힘겨워진다. 나는 종이 신문 읽기를 할 바에는 지금까지 해온 책읽기를 계속 할 것 같다. 종이 신문 읽기와 인터넷 매체 읽기의 차이를 살펴봐도 나는 종이 신문을 읽자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인터넷 매체를 읽으면서 종이 신문이 불러 일으키는 사유의 방식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게 훨씬 나을 방법일 것이라고 이야기 할 것 같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나중에 생각할지라도


어쨌든 내게 너무나 힘든 종이 신문 읽기를 권하는 정희진 씨의 글을 보며 생각한다. 삶의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권하는 방식이 다른 거라고. 나라면 종이 신문 읽기를 권하지 못했을 거라고. 나라면 인터넷 매체와 종이 신문이 불러 일으키는 사유방식의 차이점을 말하며, 인터넷 매체가 불러 일으키는 사유방식과 종이 신문이 불러 일으키는 사유 방식이 비슷해지게 만드는 방법을 한 번 찾아보자고 말했을 것 같다. 그것이 내가 권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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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06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짜라투스트라 2023-01-07 18:5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3-01-07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짜라투스투라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짜라투스트라 2023-01-07 18: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thjang1001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thkang1001 2023-01-08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짜라투스투라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남은 휴일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짜라투스트라 2023-01-08 13:4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3-02-07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변에, 정희진읽기를 시작하신 시기에 (맞물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종이신문 구독도 같이 시작하신 분이 계셔서인지 짜라투스트라님 글 더 관심이 가네요

정희진 선생님은 워낙 다양한 매체(신문사)에 기고를 많이 하시니, 정기구독권도 많으실 수 있다는 상상도 해봤어요 ㅎ

축하드립니다 이달의 당선작~^^

짜라투스트라 2023-02-07 15:42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eBook]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 - 왜 지금 중국이 문제인가?
한청훤 지음 / 사이드웨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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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한청훤

 

이 책을 읽고 여러 가지 말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저는 독서모임에 여러 가지 말을 했죠. 하지만 지금은 독서모임이 아니라 서평을 작성하는 중이기에 줄여서 크게 세 가지 정도로만 말을 해보겠니다.

 

첫째. 중국은 움츠러 들면서 변화를 추구하던 시기에 팽창하는 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1세기까지의 중국은 움츠러 들면서 변화를 추구하는 시기였습니다. 아편전쟁에 뒤이은 청제국의 몰락과 서양 열강의 침탈, 청제국의 멸망과 중화민국의 등장, 군벌들의 대립과 국공 내전, 만주사변과 만주국의 탄생, 중일전쟁과 국공합작, 2차 대전, 다시 국공내전,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으로 숨가쁘게 이어진 시기 동안의 중국은 밖으로 뻗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추스르기도 힘든데 어떻게 밖으로 팽창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시기 동안 중국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생존하며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나가야 했습니다. 생존하면서 강해질 여력을 모으는 시기를 버텨나가던 중국은 20세기 말부터 세계적인 밸류체인의 흐름에 편승하며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하게 됩니다. 책에 따른다면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시 사태 이후에 강력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전세계에 과시하게 됩니다.

 

중국이 팽창하게 되면 문제가 되는 건 한국입니다. 중국이 분열되어 있을 때 근처에 있던 나라인 한국은 편하게 지내거나 성장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중국이 통일되어 강해지면 한국은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 역사를 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최초의 국가로 기록된 고조선은 한나라의 공격을 받아 망했습니다. 고구려는 516국과 남북조의 혼란 때는 승승장구했지만 중국이 통일되어 수나라, 당나라가 되자 연이은 공격을 받다가 패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몽골은 중국을 통일하여 원나라를 세우고 고려를 줄기차게 공격하고 점령했습니다. 명나라 때에 조선은 명나라와 긴장관계를 형성했지만 조공국으로 자신의 입장을 세우며 위기를 넘깁니다. 하지만 청나라의 건국으로 조선은 호란이라는 침탈을 겪게 됩니다. 이걸 작금의 상황에 적용해 봅시다. 중국이 위기의 시기를 건너, 통일된 상태에서 자신감을 드러낸 팽창의 시기로 가게 되면 한국은 역사를 돌아보건대 위기를 겪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게 이 책에서 말하는 차이나 쇼크입니다. 결국 우리는 팽창의 시기를 맞은 중국을 경계하고 또 경계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둘째. 등소평이 구축한 중국 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는 시진핑이 3연임을 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공산당 엘리트들의 권력분배 및 권력계승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 집단지도체제는 개혁개방 시기 이후로 중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죠. 하지만 시진핑은 3연임을 하면서 공산당 지도부를 자기파벌로 가득 채우면서 집단지도체제를 끝장냈죠. 팽창하면서 자신감을 드러낸 중국의 미래를 시진핑이 어떻게 할까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며 경제 성장률이 낮아진 현실, 후커우 제도로 드러난 상상을 초월하는 빈부격차와 지역간 격차, 인구 감소와 급격한 인구 고령화,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빚의 덫까지, 중국의 미래에 산적한 이 과제 앞에서 시진핑 중심의 공산당이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갈지 궁금해집니다.

 

셋째.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은, 화려하게 내세운 굴기의 목표에 비하면 반도체에서 아직 초라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미래 산업의 핵심적인 요소로 무엇보다 중요한 반도체를 두고 미국에게 뒤진 현실 앞에서 중국은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력을 가진 대만의 TSMC를 보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반도체를 얻기 위해 대만으로 쳐들어갈까요? 하나의 중국을 앞세우며 중국 인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적 결단으로서 대만 침공을 감행할 수 있을까요? 쉽게 결단을 내리긴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대만 침공을 하나의 카드로서 손에 쥐고 있는 건 확실한 상황이니,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겁니다.

 

독서 모임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여기에 세 가지만 적고 보니 너무나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해네요. 무엇보다 우리 옆의 강대국이다 보니 한국은 중국을 주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중국을 경계하고 또 경계하면서, 중국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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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지음, 이수경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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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어둠-레오니트 안드레예프

 

책을 읽으며 다양한 목소리들이 흘러 나오는 경험을 했다. 나는 그 목소리들을 그 다양한 목소리 그대로 옮겨 적기로 한다. 지금까지 써오던 서평과는 다른 서평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따라서.

 

A: 이 소설의 줄거리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우선 거사를 며칠 앞둔 혁명가가 있습니다. 이 혁명가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매춘업소로 가고, 거기서 평범한 가정집 여인 같은 류바라는 매춘부를 선택합니다. 그는 매춘부와 대화를 나누면서 심경의 변화를 겪고, 매춘부의 밀고로 경찰에 잡히게 됩니다. 더 단순하게 말하면 매춘업소로 갔고, 매춘부를 만났고, 대화를 나누고, 심정의 변화를 겪고, 경찰에게 잡혔다입니다. 줄거리로만 보면 특별한 게 없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줄거리가 아니라, 혁명가의 심경의 변화를 다룬 심경 묘사입니다. 세밀하면서도 자세하게 묘사되는 개인의 심리 묘사가 이 소설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이죠.

 

B: 이 작품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에게 문제가 되는 건 개연성입니다. 혁명의 대의에 충실한 한 인물이 매춘부와 대화를 나누고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는 게 개연성이 없다는 거죠. 개연성이 없다는 건, 다른 말로 설득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혁명에 대의에 빠져 자기 목숨을 걸고 거사를 하려던 인물이 갑자기 매춘부와 대화를 나누고 뺨을 맞은 뒤에 혁명을 버리고 나쁜 인물이 되기로 한다? 빛나는 혁명의 대의가 아니라 무기력한 어둠을 선택한다? 이 작품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혁명을 위해 자신을 바치려는 이가 대화를 나눈다고 아예 다른 사람이 되는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거죠. 어쩌면 러시아의 혁명이 다가오는 시절을 살아가던 이 소설의 비판가들에겐, 혁명의 대의를 받아들인 이가 무기력한 인물이 되는 게 싫었던 겁니다. 혁명이 다가오는데, 혁명을 해야할 이들이 무기력하게 패배주의적인 인물로 변화해서는 안 되는 거죠.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혁명을 성공시킬 영웅같은 이들이니까요.

 

C: 반대로 이 소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에게 중요한 건 개연성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들도 비판가들처럼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개연성 보다는 이 소설의 특징인 심리 묘사에 주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주인공의 변화가 개연성이 없을지라도, 섬세하고 디테일한 심리 묘사가 문학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문학이란 인간의 영혼을 세밀하고 자세하게 보여주면서 인간 삶의 어떤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니까요. 섬세하고 디테일한 심리 묘사로 인간 영혼의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고, 심리의 어두운 모습까지 파고들어가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게 문학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D: 특징, 비판적인 평가, 긍정적인 평가들을 다 들여다봤습니다. 골고루 저 요소들을 바라봐도 저에게 이 소설은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너무나 섬세하게 파고들어가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면도 있고, 인간 심리의 병적인 요소도 드러내기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비판가들의 말처럼, 너무 긴박하게 변하는 심리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하지 못해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도, 문학은 자신만의 가능성과 특징을 가진 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할 뿐이지, 자신만의 특징으로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요. 그게 지금까지 꾸준히 파악해 온 문학세계 속 문학의 모습이니까요. 이해할 수 없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멋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게 문학이라는 예술의 힘, 아니 어쩌면 예술이라는 영역의 힘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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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미하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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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야미하라-츠지무라 미즈키

 

괴담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왜 괴담을 좋아할까요? 시대가 바뀌어도 괴담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현대에도 괴담이 도시전설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사람들 사이에 퍼지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저 같은 사람이 알리 없죠.^^;;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원인 하나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인간에게서 너무나도 중요한 공포라는 감정 때문이겠죠.

 

공포. 진화심리학에서는 이 공포라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진화 과정에서 공포라는 감정이, 위협요소에 대한 경계심을 발휘하게 만들어 생존확률을 높였다고 말하며.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기술일 발달하지 않았던 인류의 초기 시대에 공포라는 감정이 생존에 도움을 줬을 거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힘들죠. 그때에는 공포라는 감정이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어느 정도는 생존의 문제와 이어진 점도 있습니다. 여전히 위기 시에는 공포라는 감정이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공포가 단순히 생존과만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지금 공포는 유희적인 부분과 이어지기도 합니다.

 

공포문학, 공포영화, 공포게임, 시중에 떠도는 괴담들과 도시전설들. 이제 공포는 단순히 생존에만 머물지 않고, 유희와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에도 진입했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적인 상업에 포함된 비즈니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시대는 공포를 즐기고, 공포라는 감정을 사고 파는 상황이라는 것이죠.

 

츠지무라 미즈키의 첫 공포소설 <야미하라>는 유희화된 공포를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괴담이라는 공포이야기가 어떻게 현대화된 공포스토리로 변화되는지를 알게 해준다는 말입니다. <야미하라>의 현대화된 모습은, 소설이 포커스를 맞춘 지점에서 드러납니다. <야미하라>는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공포에 핵심을 두지 않습니다. <야미하라>에서 강조하고 있는 건, ‘감정의 공포화입니다. 나의 감정, 혹은 나의 옮음과 나쁨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고 밀어붙이면서 생겨나는 억압과 공포의 행태들. 이 소설은 여기에서 생겨나는 어둠과 이 어둠에서 생겨난 존재들, 그리고 그들과 싸우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공포의 행위들, 언제 어디서나 있을 것 같은 공포스런 모습들을 기반으로 쓰여진 소설은, 그 어둠에서 태어난 초현실적인 존재들과 그들과 싸우는 존재들의 모습을 지우면 우리의 삶과 겹쳐집니다. 나의 가치관과 생각을 강요하고 타인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아 생겨나는 무수한 다툼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자 미래에도 쭉 있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이 소설의 공포는 소설 자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 소설이 알려주는 건, 소설에서 말하는 공포가 끊어지지 않고 인간이 살아 있는 한 계속된다는 점일 겁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공포. 적고보니 너무너무 무서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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