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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콜라티에
우에다 사유리 지음, 박화 옮김 / 살림 / 2012년 3월
평점 :
쇼콜라티에-우에다 사유리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으면서, 그 책의 글을 쓰는 방식이 마음에 와 닿았다.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하루하루 대화를 건네는 스타일의 책인데, 나도 이렇게 북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닷새 대신 천일동안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일명 천일책야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스타일의 글인데(물론 이 모든 건 허구이다.)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자의 숙명처럼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나가는 방식의 글이다. 사사키 아타루의 말을 조금 변용시켜보면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고,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해보려 한다.
천일책야화-1.책을 읽고 침이 고이다.
M에게
M, 오늘은 너무 더워서 힘겨웠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무더위 속에서 진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더군. 너는 괜찮았어? 나는 그저 에어컨만을 찾아다녔어. 에어컨이 있으면 행복하고, 에어컨이 없으면 불행한 단순한 생활의 반복을 했다고 해야할까. 그래도 밤이 되니까 그나마 낫네. 아무리 열대야라도 해도 밤은 밤이니까.
나만큼 책을 좋아하는 너에게 오늘부터 책 이야기를 계속해서 해볼 생각이야. 기본적으로 천일동안 이야기를 할 생각인데, 어쩌면 천일을 넘을 수도 있어. 아니면 천일을 못 채우고 끝이 날수도 있겠지. 세상일이란 어찌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너무 말이 많다고 비난하거나 탓하지는 말아줘. 나만큼 너도 말이 많은 네가 내 얘기를 듣는 것이 억울하다면, 너도 나에게 이야기를 해봐. 그럼 나도 들어줄게. 아무튼 네가 내 이야기를 계속 들어준다는 전제아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보도록 할께.
첫 번째로 이야기할 책은 <쇼콜라티에>야. 초콜릿과 서양과자를 만드는 셰프 나가미네와 우연히 그를 알게 된 화과자(일본식 과자)가게 점원 아야베 아카리의 만남과 그 만남 속에서 빚어지는 인간과 과자 이야기를 그린 일본 소설인데, 일본 소설들이 자주 보여주는 무겁지 않음과 섬세하고 세밀하며 감각적인 묘사와 표현, 이상적이고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성을 그대로 갖춘 책이야.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초콜릿과 과자의 향연이었어.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책을 사랑하고 책에 마음 설레어 했지, 책에 나오는 것들에 관해서는 무관심했어. 특히 책에 나오는 음식들에 관해서는, 그게 책에 나오는 음식으로만 보였지, 미각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어. 나에게 그것들은 책에 나오는 미각과 관련 없는 음식들에 불과했거든. 하지만 <내 식탁 위의 책들>이라는 책을 보고 나서 갑자기 책에 나오는 음식들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어.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진짜 관심가지니 보이더군. 이 책이 그 관심이 위력을 발휘한 첫 책인데, 진짜 책 곳곳에 적혀 있는 수많은 초콜릿과 과자의 모습에 마음이 동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새 침이 고이는 거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막 들더군.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대다수의 초콜릿과 과자를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었어. 나는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미각적 표현과 묘사의 향연에 끌려서 욕망하게 된 것이야. 잘 모르지만 사랑한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건 ‘욕망하기를 욕망한다’에 다름 아니었어. 나는 책이 전해주는 미각적 욕망의 지도를 받고, 그 지도에 따라서 욕망하게 된 것이지.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막상 실제로 하니 너무나 좋았어. 알지도 못하면서 욕망하고, 욕망하니 좋아지는 이 욕망과 무지의 순환이 불러오는 쾌락 앞에서 즐거워했지. 이것을 경험했다는 것만으로 이 책은 내게 좋은 책이었어.
이렇게 좋은 점만 얘기하고 얘기를 끝내려 했는데, 아쉬워서 잠깐의 평가를 덧붙여볼게. (너도 알다시피 내가 책에 대한 평가를 좋아하지 않잖아. 그래서 평가는 최대한 짧게 할 생각이야.) 이 소설이 하나의 이상적인 가상의 공간으로서 우리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면 조금 더 그 목표에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이 읽으면서 들더군. 왜냐하면 갑자기 이상적인 가상의 공간에 현실이 틈입하면서 현실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너무 당혹스러운 거야. 물론 어떤 소설이든 현실과 가상의 조화와 뒤섞임 속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을 감안할 때 현실이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은 맞아. 문제는 그게 어느 정도냐의 것인데, 이상적인 가상의 공간을 표현한 소설에서 가상의 행복감을 맛보고 있는데 갑자기 현실이 튀어나와서 현실의 무거움을 드러내고는, 그것을 그냥 이상적인 마무리로 봉합해버리는데, 너무 황당한 거야. 이상적이려면 계속 이상적이던가 아니면 아예 현실적인 마무리를 하던가 해야지, 이건 그냥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잡탕이 되어버리니 뭔가가 어색한 거지. 책의 주인공인 나가미네의 입장에서도 이런 식의 잡탕 같은 과자나 초콜릿은 재앙이 아닐까?(모든 에피소드가 그런 것은 아니고 몇몇 에피소드가 그랬어.) 그러니 이상적인 가상의 공간은 계속해서 그 모습 그대로였으면 좋겠어.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꿈을 꾸게 해주는 것이 이런 소설의 미덕 아닐까.
여기까지 얘기하니 갑자기 졸음이 밀려오네. M, 미안한데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어. 나중에 다른 책으로 다시 다른 이야기를 할게. 그러니 오늘은 이만 안녕~~~
*참, 혹시라도 이 책을 읽고 여기에 나오는 과자나 초콜릿을 사게 된다면 잊지 말고 나에게 보여주지 않겠어? 나 사실 그것들이 너무 궁금했거든.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이럴 때 도와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