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안티고네-소포클레스
M에게
의지의 힘
M, 너는 의지의 힘을 믿니? 의지가 얼마나 무서운지, 의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너는 알고 있니? 아마도 너는 의지라는 단어를 알고는 있을지 몰라도, 그 말이 품
고 있는 무서운 힘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거야. M, 의지는 때로 사
람이 목숨을 걸 정도로 무서운 단어가 되기도 해. 우리가 '일찍 일어나야지'나 '열
심히 공부해야지'나 '열심히 일해야지' 라고 말하는 일상 속의 의지처럼, 한 인간
이 목숨을 걸고 추구하거나, 외부의 강력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밀고 나
가는 것도 의지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야. 이런 강력한 의지는
우리같은 평범한 이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거나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의지를 '의지'라는 단어 속에 쉽게 포함시키지 못하는 것이지. 그래도
의지는 의지야. 이것이 흔하지 않고, 쉽게 따라갈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의지가 되
지않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야. 하지만 난 이런 의지를 볼 때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 <안티고네>를 읽으면서도 강력한 의지의 힘 때문에 놀랍다는 생각과
더불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
의지의 비극, 안티고네
<안티고네>의 주인공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딸이야. 이 정도만 얘기하면 이 작
품이 <오이디푸스 왕>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거야. 이 작품은 소포클
레스의 최대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이디푸스 왕>을 포함한 오이디푸스 3부작
의 하나로서, 시대순으로만 보면 가장 마지막 이야기야. 하지만 이야기의 시작이라
고 할 수 있는 <오이디푸스 왕>보다 먼저 쓰여졌고, 상연된 소포클레스의 초기작
이야. 상연 순으로만 보면 이미 죽어있는 아버지가 갑자기 살아나서 젊어진 뒤에 등
장하는 셈이지.^^ 이렇게 생각하면 재미있겠지만, 비극 3부작을 하나로 이어지게 만
들었던 소포클레스의 선배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와 달리, 비극 3부작 하나하나를
완결된 작품으로 만들었던 소포클레스답게 굳이 <오이디푸스 왕>과 연결지어 생각
할 필요없이 한 개의 독립된 작품으로 읽어도 상관은 없어. <안티고네>는 분명히
<오이디푸스 왕>과 이어져 있지만, 동시에 떨어져서 읽어도 별 문제 없는 작품이란
얘기야.
무엇보다 <오이디푸스 왕>과 내용면에서 큰 차이가 있어. 주어진 비극적 운명을 알
지 못하고,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다 파멸을 맞는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와는 달
리,<안티고네>는 분명히 비극을 맞지 않을수도 있었는데, 자신의 의지 때문에 비극
을 맞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이것을 일반적인 해석으로는 신의 율법을
상징하는 안티고네와 인간의 율법을 상징하는 크레온의 대립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나는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건 두 사람의 대립만으로도 충분히 바라
볼 수 있다고 생각해. 사회 질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는 크
레온의 의지와 사회적인 압력이 있음에도 보편적인 정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
마저 굽히지 않는 안티고네의 의지의 충돌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이고, 감동적이라는
이야기야. 이것을 굳이 신의 율법과 인간의 율법이라는 해석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나에게는 너무나 큰 의미로 다가왔다는 말이지. 어쩌면 작품 중간에 나오는, 모든 것
을 인간 위주로 바라보는 소피스트에 대한 비판의 구절을 볼 때, 소포클레스는 이 작
품을 인간의 율법과 신의 율법을 대비시키며, 인간이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인간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오만하게 굴 때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다는 메시지를 이 비극을
보는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라.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던 그리스 비극
의 특성을 감안해 볼때, 분명히 소포클레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여. 하
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그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서 <안티고네>가 다가오
는 것이 아니라, '저항의 정치학'을 담은 텍스트로서 다가왔어. 이 '저항의 정치학'이
뭐냐고? 이왕 얘기에 나온 김에 한번 써보도록 할께.
안티고네, '저항의 정치학'을 보여주다.
우선, 이 얘기를 하기전에 전제 조건을 달고 싶어. 여기서 말하는 저항의 정치학이란
정치공학과는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 내가 여기서 하게 될 말은 '어떤 정당이 집
권해야 한다, 어떤 정당이 사회에 좋다, 어떤 정치사상이 어떤 정치사상보다 좋고, 그
정치사상을 지금 사회에 적용해야 한다, 어떤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라는 정치공학과
는 거리가 멀다는 거야. 나는 정치공학이 아니라 보편적인 정치적 삶과 정치적 태도
에 대해서 말할거야. 삶을 살다보니 그것이 어떤 정치적인 태도를 보여준 한 인간에
대해 말함으로써, 삶이 정치가 되고, 정치가 삶과 이어지는 정치적 삶을 말하게 될 거
라는 말이야. 이건 정치공학보다는 정치철학에 가까울 거야.(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정치철학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정치철학에 가깝다는 말을 쓸 수 밖에
없었어.)
이제 이야기를 해볼께. 안티고네는 작품 속에서 지도자 크레온이 정한 법에 저항하는
인물로 나와. 반면에 크레온은 자신이 보기에 그 법이 사회에 필요하다고 여겨, 법을
정하고 그것을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강요하고 억압하는 인물로 나오지. 어떻게 보면
크레온의 법도 공동체에 필요한 것도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법이 무조건 옳
다고 볼 수는 없는 거지.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특정한 문화적 토양에서는, 보편적
인 정의의 측면에서 그 법이 반드시 옳다고 볼수는 없다는 거지. 안티고네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크레온의 법에 저항하지. 많은 이들이 안티고네의 말에 동조하는 것
은, 크레온의 법이 보편적인 정의와 그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신의 율법에 어긋났기
때문이야. 그런데도 크레온은 지배자의 아집과 오만에 둘러싸여, 자신의 고압적인 태
도를 고수하지. 크레온에게 자신이 만든 법은 인간의 삶과 생활을 돕기 위해 만들
어진 도구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하는 인간 삶과
생활의 억압적 틀이 되어버린 것이야. 그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켜야 한
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야. 크레온은 자신이 만든 법과 그것을 옹호하는 태도를
통해 그것이 더 이상 사회와 공동체와 생활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삶과 생활의
주인이 된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는 것이지. 분명히 자신이 틀릴수도 있고, 자신이
만든 법이 옳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는 그것을 부정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무조건적
으로 주장하고, 자신에게 저항하는 인간을 용서하지 않아.
평범한 이들이라면, 크레온의 위협에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고 그에 순응해서 조용히
살아갔을 거야. 하지만 안티고네는 범인들과 달리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
하다 죽음을 맞게 되지. 여기서 이제 안티고네의 모습은 범인이 할 수 없는 행동으로
서의 아우라를 간직하게 돼. 그리고 그녀의 행동은 그것으로서 '저항의 정치학'과
이어지지. '어떤 특정한 법령이나 규율이 옳지 않다면 그것에 관해 생각해보고 저항을
실천하고, 동시에 그 행동 메커니즘에 대한 탐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저항의
정치학'은 안티고네라는 인물을 통해서, 그것의 이념적 토대를 실제적으로 드러내게 된
것이야. 사실 우리가 만들어진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맞아. 사회의 질서 유지와 공동체
적인 평안을 위해서 만들어진 법을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임에는 틀림없어.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만들어진 법이 반드시 옳을 수는 없다는 생각도 해야해. 법을 지
키면서도, 어쩌면 그것이 반드시 정당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이지. 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정당성을 생각해보고, 의문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안티고네는 거기서 더 나아가서 의문을 저항의 행동으로 바꾸고
실천했어. 그러니 <안티고네>를 어떻게 '저항의 정치학'을 보여주는 표본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정치적인 오독의 즐거움, 그리고...
물론 이렇게 정치적으로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어. 그렇게 읽지 않아도 충분히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거든. 그래도 내 마음대로 정치적인 오독을 하다보니 더
재미있어지는거야! 작품과 은밀히 혼자만의 대화를 하고, 그 지극히 주관적인 대화의
성과를 자기 소유로 한다는 건 독서가 줄 수 있는 최상의 즐거움중 하나거든. 특히 시
간의 평가를 이겨낸 고전들이 이런 식의 다양한 오독의 가능성이 있는 열려 있는 텍스
트로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볼때, 내가 고전 읽기를 계속하는 한 오독
은 계속 될거라는 생각이 들어. 반드시 이런 행동이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즐거운데
어쩌겠어!^^;;
정치적 오독의 즐거움과 더불어<안티고네>가 보여주는 정치적 행동은 지금의 나에게
는 너무나 큰 감정의 배설구와 같았어. 여러가지 사회적 제약과 압력, 나 자신의 소심함
때문에 하지 못했던 저항을 안티고네는 끝까지 밀고 나가거든. 거기서 느끼는 카타르시
스는 이루 말할 수 없었어. 물론 비극적인 결말을 맞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꼈던 울분
과 흥분은 나로 하여금 작품에 몰두하게 했지. 안타까운 건,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내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는 사실이야. 나는 현실에서 예전처럼 두려워하며, 숨죽이며, 조
용히 살아갈게 뻔하거든. 아! 그것이 너무 안타까워! 그것이 어찌할 수 없다고 해도. 다
만,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 내 마음 속에 안티고네가 들어왔다는 사실이야. 가끔
씩 그녀와 저항과 해방의 행동을 내 마음 속에서 할 수 있다는 말이거든. 하, 그것이 얼마
나 행복할까? 이런 일상의 사소한 행복을 줄 수 있어서 진정으로 <안티고네>의 '안티고
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싶어.
이제 말을 끝내야겠어. M, 내 말을 또 게속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다음에 또 기회 되면
다시 내 애기를 들어줘.(너 같이 내 애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있어서 나는 너무 행복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