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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벤야멘타 하인학교(야콥 폰 군텐 이야기)-로베르트 발저
1.
스위스의 신화로 기록되는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대표작.
광기의 작가이자 개인적인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는 작가로
살아있을 당시에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1970년대에 들어서
새롭게 재조명받으며 독일어권에서 신화적인 존재가 된 로베르트 발저.
그의 소설은 범상치 않은 그의 삶만큼이나 독특하고,괴상하다.
근대 교양소설의 범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의 소설은,
성장하거나 발전하거나 성숙한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주변에 위치한 아웃사이더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이 자신의 작은 삶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결코 성숙하거나 성장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에 안주하거나,
오히려 퇴보하거나,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이 반교양적이고 반영웅적인 캐릭터들의 삶을 때로는 추상적이고,
때로는 현학적이며,때로는 선동적인 문체로 표현해내는
로베르트 발저의 소설은 그래서 살아있을 당시에는 인정받을 수 없는
미래의 소설이었다.
2.
지극히 개인적인 의도로 쓰였지만,미래에나 읽힐 이상한 소설을 쓴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을,진짜 미래인인 내가 읽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그 기분 묘함은 작품 자체가 풍기는 이상한 기운와 맞물리며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이상한 소설로 만들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그 부유함과 위선을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와
자발적인 무지와 복종,체념과 수동적인 삶을 선택하여 하인이 되고자 하는
주인공 야콥 폰 군텐.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교육철학을 내면화하여,
자아가 없는 살아있는 완벽한 하인상을 보여주는 크라우스.
하인학교를 설립하고,하인이 될 아이들에게 복종을 내면화시키는
이상한 은둔자 벤야멘타 교장.
그 외에도 수동적이고,무비판적이고,무사고적인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이 소설은
하인학교의 교육철학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소설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독자에게 가르치는 이 역설적인 소설의
울림 속에서 내가 들은 것은, 해체니 포스트 모더니즘이니 하는 비평적인 해석이 아니라
한 외로운 은둔자의 외침이었다.
그는 이상한 인물들의 이상한 삶을 통해서, 당대의 고정관념을 뛰어넘고, 동시에
세상에 절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그들의 삶이 틀리지 않았다고. 어쩌면 주류의 삶을 사는 이들이 틀릴수도 있다고.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감정적인 공감과 유대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세상은 더욱 살만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