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미궁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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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3-1.책담화: 물의 미궁=꿈의 마궁
이것은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남자가 있었다. 열심히 살아가던 그는 어느날부터 망상에 가까운 거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 남자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진짜로 노력했다는 데 있다.  바로 여기서 이 책의 모든 일이 시작된다.
망상에 가까운 거대한 꿈이라는 건, 실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건 실현하기가 아주,아주,아주 어렵다는 걸 의미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남자의 힘겨운 행보. 그러나 그 남자의 꿈은 너무 거대했기에,
그 남자는 꿈을 꾸다가 꿈에 사로잡혀 꿈의 포로가 되어버린다.
꿈 속에 갇힌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 꿈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꿈에 사로잡힌 상태의 삶을 이어가던 그는 어느날 불운과 우연이 겹치며 최후를 맞는다.

여기까지가 도입부다. 책의 몇페이지를 차지하지 않는 듯 보이는 이 부분. 그러나 <물의 미궁>은 이 도입부가 엄청나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왜냐하면 뒷부분은 이 앞부분의 내용에서 파생되는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을 잡아먹고도, 꿈은 너무나도 거대했기에 계속 살아남았고,살아남은 꿈은 다른 이들을 자신의 포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성과를 달성해 다른 이들을 자신의 노예로 만든다.
책의 도입부를 넘어선 본격적인 내용은 이 과정을 담고 있다. 거대한 꿈이 한 남자를 죽이고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다른 이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는 과정이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도입부의 남자가 죽고 3년 뒤에 벌어지는 정체불명의 협박자가 벌이는 협박과 의문의 죽음과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고가와 후카자와의 활약,그들이 밝혀낸 진실은 모두 꿈에게 사로잡혀가는 인간들의 모습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한 남자의 거대한 꿈은 실현된다. 꿈이 실현되는 순간, 꿈은 상상에 불과했던 자신이 실체화하는 것을 보고 만족하고, 그제서야 포로들을 놓아준다. 꿈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기에 드디어 책은 끝을 맺는다.
 

작가는 이 과정을 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꾸미기 위해 노력한다. 거대한 꿈을 꾸는 남자가 남긴 꿈의 유산이 남은 이들에게 넘어가 꿈이 실현되는 과정을 추리 소설적 내용을 담은 감동극으로 그리려 했다.
 

그러나 최소한 내게 이 소설은 꿈의 무서움을 여실히 보여주는 공포극에 가까웠다.
책 속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한 남자가 남긴 꿈을 좇고, 그러다가 꿈에 사로잡혀, 오로지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그러다가 꿈을 실현시킨다는 건, 꿈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꿈이 삶을 지배하고, 인생을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게 만들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그건, 그리스 신화 속의 테세우스가 괴물을 퇴치하기 전의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을 연상시켰다.
복잡하게 얽힌 길을 희생자가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괴물을 만나게 되는, 그렇게 희생자를 잡아먹는 소머리의 괴물이 있는 그 미궁을.
소설 속에 테세우스 같은 영웅은 없었다. 있는 건 오직 꿈이라는 괴물뿐. 책 속 등장인물은 그렇게 차례차례 그 괴물에게 잡아먹힌다.
 

희생자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나는 책의 제목을 내 식대로 바꿔봤다.
수족관 배경의 물의 미궁을,꿈이라는 괴물이 지배하는 꿈의 마궁 이라는 제목으로.
 

*꿈을 쫓다는 틀린 표현. 꿈을 좇다가 맞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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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풍경
페터 슈탐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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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책 없이 해피엔딩>이라는 에세이에서 소설가 김중혁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보낸 며칠을 못 견디게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해가 뜨지 않고 밤이 계속되는 겨울철 북극권 극야의 날들, 어두움과 희미함이 뒤섞인 모호하고 희미한 풍경들,

밤을 환하게 밝히는 한국의 불야성과는 다른 희미한 빛으로 뒤덮인 도시.

그곳에서 보낸 며칠은 무엇하나 명확하지 않은, 희미한 빛에 휘감긴 나날들로서 감당 못할 우울함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겨우 며칠을 보낸 사람에게 우울함을 불러일으키는 그곳의 희미한 풍경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에 누군가가 그곳에서 희미한 풍경을 바라보며 살다보면, 그 누군가의 삶도 희미해지지 않을까?

확실한 의지를 가지기보다는 타성에 젖어 자신의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희미한 풍경>은 이런 상상을 나보다 먼저 한 작가에 의해 쓰여진,

희미한 풍경에서 살다가 삶이 희미해진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2.
스웨덴보다 위도가 높은 노르웨이 북구 항구마을에서 삶을 살아가는 카트리네.

백야와 극야가 이어지는 이 마을은 희미한 풍경을 거의 일년내내 유지하는 곳이다.

그곳의 풍경이 그녀에게 영향을 끼친 것일까?

카트리네는 확고한 자아를 가지고 살기 보다는 타성에 젖은 채 수동적인 삶을 이어나간다.

알코올 중독자로 싸움이 잦았던 첫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실패였고,

타성적이고 희미한 삶을 탈피하기 위해 행한 부유한 집안에다 명확한 인생의 목표를 가진 두번째 남편과의 결혼 생활도

마초적이고 권위적이며 거짓말 투성이인 남편의 행동때문에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길 원했지만, 언제나 어긋나버리는 그녀의 삶.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하고 희미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녀는 결국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자아를 찾는 여행에 나선다.

 

'너, 항상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언제나.'

 

3.

<희미한 풍경>은 이야기의 힘보다는 풍경과 일상 묘사를 바탕으로 한 분위기에 의존하는 소설이다.

평범한 풍경과 일상묘사이지만 다른 무엇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분위기를 실남나게 재현하며,

소설은 한 여인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조명한다.

 

희미해진 삶을 희미하지 않게 만들려는 여인의 여정.

그 여정에서 그녀가 겪을 일들이 그녀를 변화시키리라는 점은 누구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녀가 변화를 위해 스스로 나섰다는 바로 그점이다.

그녀가 변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의지를 품고 나섰기에, 여행이 그녀를 변화시킨 것이다.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여행은 진정한 변화라는 마법을 그녀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녀 스스로의 의지가 만든 여행. 여행은 단지 그녀에게 그 기회일 뿐이었다.

 

4.

만약 지금 스스로가 표류하고 있다면 그녀처럼 여행에 나서야 할 것이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여행이 문제가 아니라, 거침없이 나서려는 의지가 이미 스스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에,

우리는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앞으로 나서자.

그러면 전혀 다른 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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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분 1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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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뉴햄프셔 플럼상' 수상작인 『19분』. 실제 있었던 고교 총기 사건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작가는 총기 사건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많은 사람들이 피터를 기억할 때 떠올릴 19분 동안의 피터가 아니라 나머지 9백만 분의 시간을 산 피터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두 권짜리입니다. 저는 아직 두 권을 다 읽지 못한 상황에서 1권에 대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괴물을 만드는 방법

 

괴물을 만드는 방법을 한번 알아보자.

 

대상. 먼저 괴물이 될 대상이 있어야 한다. 가급적이면 내성적이고, 마음이 약하고,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소심하고 소극적인 아이면 좋다.

얼굴이 잘 생기거나 예쁘지 않고, 발육상태도 좋지 않고, 키도 크지 않고, 운동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라면 더욱 좋다.

이 정도의 자격을 가진 아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또래 집단에서 왕따를 당할 확률이 높다.

아니, 유치원 시절부터 왕따 당해서 왕따 자체가 생활이 된 인물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벌레보듯 처다보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정도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괴물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안 된다. 진짜 괴물이 되려면 이것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다.

 

가족. 형제가 있으면 좋다. 그것도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형이 있으면 더 좋다.

그 형이 왕따 동생을 무시하는 데 앞장선다면 이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형은 자신이 동생과 다른 인물이라는 점을 다른 모든 이들에게 과시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형은 동생을 수렁 속으로 몰아넣는데 앞장선다. 

당연하게도,  형은 동생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부모에게나 다른 친구들에게나 모두 인정받는 인물이다.

 

부모도 중요하다. 어머니는 형과 동생 모두 진정으로 사랑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형과 동생을 똑같이 취급한다.

힘도 약하고, 운동도 못하는 동생이 친구들에게 괴롭힘당하자 어머니는 동생에게 저항하라고 쉽게 말한다.

동생은 그 말을 믿고 저항 하지만, 저항은 부질없이 짓밟히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심한 괴롭힘을 당한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니는 동생에게 형처럼 축구부에 들라고 강요한다.

잘 하지도 못하고, 재미도 없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들어간 축구부.

그러나 동생은 그 축구부에서 만년 후보에다 힘 센 아이들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한다.

당하고 당하고 당하고 당하고...

어머니는 동생을 너무 사랑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동생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도 중요하다. 경제학자로 대학교수인 아버지는 어머니 만큼은 자식에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총기 사용과 사냥에 대해 가르치며 자식들과 일체감을 유지하려 한다.

피를 무서워해서 사냥도 하지 않고, 총 근처에 가지 않으려 했던 형 대신 동생은 아버지에게 총에 대해 배우고 사냥도 한다.

총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이것을 잊지 말자.

괴물은 자신의 쌓이고 쌓인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총이라는 도구를 얻었다. 그것도 아버지에게서.

 

여기까지는 기본 베이스다. 시간이 흘러 이 가족의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형이 술 취한 운전자의 차에 치여 죽은 것이다.

부모는 절망한다. 그리고 망가져서 괴물이 되어가던 동생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괴물의 탄생은 이렇듯 가족적 환경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 가족은 가망 없는 수렁에 빠져 있었어요. 그 아이는 화약통이나 다름없었고요.

부모들은 각자의 슬픔을 감당하느라 그 애한테 소홀했던 거예요.

피터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고요.'

 

사회문화적 환경. 작은 마을이 좋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한 가지 행동을 하면 순식간에 퍼져 버리는 그런 작은 마을.

이런 마을에서 어릴 때부터 왕따가 되면 중,고등학교까지 쭉 왕따가 될 확률이 높다.

잊지 말자. 괴물이 될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또래 집단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 정도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괴물을 만들려면 사회적으로 경쟁을 장려하고, 경쟁에서 뒤쳐지는 존재를 가차없이 비웃고 무시하는 풍토가 있어야 한다.

우위에 서 있거나 자신이 정상이라고 여겨진다면 비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존재들을 짓밟고

자신의 위치에 올라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쟁 지상주의적 풍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존재들의 내면에 엄청난 불만과 분노가 쌓일 것이다.

 

총에 관련된 문제도 있다. 사회적으로 총기의 자유를 허용하고, 총기 소유에 제한을 두지 않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이런 사회적 배경을 지역이라면 분노한 인간이 총을 가지고 괴물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

'아무 이유도 없이 괴물이 자라지는 않는다. 누가 그렇게 몰아가지 않는 한 주부가 살인자로 변할 리도 없다.

... 피터의 경우에는 스털링 고등학교 전체였다.

약자를 괴롭히는 애들이 걷어차고 놀리고 주먹으로 때리고 꼬집었다.

그 모든 행동들이 피터가 속한 곳의 누군가에게 반격을 하도록 피터를 몰고 간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괴물이라는 폭탄이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러나 아직 괴물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남았다.

그건 바로 괴물이라는 폭탄을 점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괴물이라는 폭탄이 점화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괴물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어린 시절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괴물의 단짝친구로, 어릴 때는 괴물이 괴롭힘 당하면 괴물을 도와주고,

왕따당해도 같이 어울리며 괴물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 친구는 괴물이 계속 주류에 끼지 못하자 괴물을 버리고 주류에 편입된다.

그 친구는 이제 다른 이들처럼 괴물을 무시하고, 상대조차 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괴물이 그 친구를 같이 무시하고 상대하지 않으려 하던 순간에는 문제없다.

 

문제는 그 친구가 괴물을 찾아오면서 부터 생긴다. 그 친구는 괴물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한다.

그리고는 이용가치가 사라지자 다시 무시한다.

평상심을 가진 채 지내던 괴물의 마음은 요동치고, 괴물과 그 친구의 인연은 다시 시작된다.

사랑에 고민하던 그 친구에게 괴물은 지속적으로 접근하며 인연을 이어간다.

그렇게 접근하다 그 친구를 사랑하게 된 괴물.(그 친구는 여자다!!)

 

그러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괴물의 사랑이 성공할리는 없다.

결국 괴물은 사랑에서 실패하고, 괴물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이 부분은 아직 완벽하게 나오지 않았다. 아마 2권에서 나올 것이다.

 

자, 이제 괴물이라는 폭탄이 완성되었다.

 

괴물, 폭발하다.

 

19분이면, 당신은 앞뜰의 잔디를 깎고, 머리를 염색하고, 하키 경기 3분의 1을 관람할 수 있다.

19분이면, 당신은 ... 치과에서 이를 하나 넣거나 다섯 식구의 빨래를 갤 수 있다.

19분이면, 당신은 세상을 멈추게 하거나, 세상에 공격을 개시할 수 있다/

19분이면, 당신은 복수를 당할 수 있다.

 

그렇다. 19분은 범죄를 저지르기 충분한 시간이다.

19분이면 괴물이 학교에 쳐들어가 총기를 난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19분이면 10명이상이 죽고 수십명이 부상당하고 수백명이 무서워서 숨거나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이다.

19분이면 학교가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어, 지옥도가 펼쳐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19분이면 마을 전체가 공포에 빠지고, 국가가 경악할 만한 사건이 벌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이것도 아는가?

그 괴물의 19분 이전에 괴물이 태어나기까지의 9백만 분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시간이 19분동안의 괴물의 폭발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되돌릴 수 없는 19분. 우리는 그 시간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내용은 2권으로 이어진다.

*1권의 경우, 감상보다는 내용을 적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식의 글을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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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멘 - 지만지고전천줄 25
프로스페르 메리메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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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오페라로 더 유명한 카르멘 

카르멘. 이 이름은 소설보다는 오페라로 유명하다.

아니, 실상 우리는 카르멘이 소설이었는지 어땠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카르멘은 언제나 오페라였다.

눈으로 보이는 역동성과 화려함, 귀로 듣는 열정적인 음악으로 대변되는 카르멘은 눈과 귀의 축제였지

문자로 읽어나가며 뇌로 사고하는 책의 이름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유명한 오페라 카르멘 대신,

지금은 잊혀져 버린 소설 카르멘을 떠올려본다.

화려한 오페라가 아닌 글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우리의 사고 속에서 생성시키는 그 카르멘을.

 

카르멘, 진정한 팜므파탈, 진정 자유로운 영혼

 

오페라 내용- 에스파냐의 세비야를 무대로 정열의 집시여인 카르멘과 순진하고 고지식한 돈 호세 하사와의 사랑을 그린 것으로,

사랑 때문에 부대에서 이탈하고 상관을 죽이기까지 한 그를 배신한

그녀의 마음이 이번에는 투우사 에스카밀리오로 옮겨가자

호세는 여러 모로 그녀를 타이르며 멀리 미국으로 도망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자고 설득하나 끝내 말을 듣지 않자

단도로 그녀를 찔러 죽이고 만다는 비극

 

팜므파탈-거부할 수 없는 관능적 매력과 아름다움으로 남성을 유혹하여,

그 남성을 죽음이나 고통 등 치명적인 불행의 늪으로 빠뜨리는 여성을 이르는 말

 

카르멘. 그녀는 팜므파탈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능적인 열정과 뇌쇄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유혹하여 자신의 매력에 빠뜨리고,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든 뒤

남자를 떠나버려 남자로 하여금 치명적인 고통과 불행을 느끼게 하여 파멸시키는 그녀야말로

진짜 팜므파탈 그 자체인 것이다.

 

남자들은 그녀의 눈빛에, 몸짓에, 목소리에, 당당함과 자부심에, 교태에 녹아내린다.

그녀가 파멸을 부르는 불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나방처럼 달려든다.

자신을 파멸로 몰 것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남자들은 그녀의 품에 안긴다.

그들도 그녀가 자신을 망칠 것을 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향해 간다.

그 파멸의 유혹이 주는 극한의 쾌감이 그만큼 강렬하기에.

 

소설 속 카르멘은 오페라의 카르멘보다 더한 존재다. 오페라가 카르멘을 순화시켰다는 말처럼,

소설의 카르멘은 팜므파탈적인 측면에다 세상의 가치관과 사랑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스러운 성격을 더욱 강하게 표출한다.

도덕과 통념,지배적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비도덕적이고,불의한 일들을 능수능란하게 저지른다.

그런 짓을 저지르는 못하는 돈 호세를 무시하고, 나쁜 길로 거침없이 인도하는 것하며,

애인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 호세와 관계 맺고, 다른 남자들과도 거침없이 자는 여인.

 

그녀에게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건 자기 자신의 자유다.

자유롭기에 한 남자에게 얽매여 살아가는 사랑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무시하고, 여러 남자를 만나며, 열정적으로 사랑하다가도 사랑이 식어버리면

가차업이 그 남자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가 버린다. 그 남자의 마음 따위는 상관없이.

 

방종에 가까운 그녀의 자유. 그녀는 자신의 그런 자유를 얻기 위해 철저하게 몸과 마음이 무장되어 있다.

자유롭기 위해 사악해지고, 능수능란한 기교를 부리고, 엄청난 열정과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유를 위해서라면 죽음 따위도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 돈 호세가 미국으로 떠나자고 하며, 같이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말에도

카르멘은 눈빛하나 변하지 않고 말한다.

사랑하지 않는 그와 같이 떠날 수는 없다고. 그런 사랑 따위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누군가에 얽매여 살기 보다는 차라리 죽겠다고.

돈 호세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카르멘이라는 여인을 잡을 수 없음을.

그녀는 잡으려하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아~~ 그녀는 자유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자유를 너무 사랑하기에, 한 남자를 계속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사랑으로 남자들에 대한 사랑을 희생한 것이다.

이 극단적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한 카르멘.

 

왜 나는 그런 카르멘이 밉지 않은 걸까? 왜 카르멘을 비난하고 욕하고 싶지 않은 걸까?

아마도 내가 카르멘을 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비부인>의 나비처럼 순종적인 인물보다는 차라리 카르멘같은 인물에게 고통받고 싶은 것이다.

 

부나방같은 인물을 꿈꾸는 나.

바로 나 같은 인물이 있기에, 이 현대라는 시간에서도 현대판 카르멘들이 판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직도 우리가 마음 속 깊이 무한한 자유를 동경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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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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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 (지은이) | 이현경 (옮긴이) | 민음사 | 222p

 

1.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무한히 열린 구조를 가진 텍스트이자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야기의 무한 연쇄가 가능한 소설이다.

 

소설 속 이야기들은 각자 따로 떼어내도 하나의 이야기로서 읽을 수 있으며,

그 이야기들이 모여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라는 소설을 형성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보이지 않는, 신비롭고 매혹적이고 아름다우며 쓸쓸한

상상 속 도시들이 모인 거대한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칼비노의 놀라운 상상력이 빚어낸 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도시의 건물들은

각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그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할지도 모르는, 존재했으면 하는, 존재했었지만 사라진, 미래에 존재할 수도 있는

도시의 모습과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과 도시의 시간을 그려낸다.

 

우리는 쿠빌라이칸과 마르코 폴로라는 안내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 도시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도시의 진실과 맞딱뜨린다.

 

2.

도시에 사는 이들은 자신이 보는 부분만이 도시의 전부라고 착각하기 일쑤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우리가 보는 부분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부분만이, 우리가 걸어다니고 돌아다니는 부분만이 도시인가?

도시는 우리가 바라보고 걸어다니는 부분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없다.

도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을 품고 있으며, 끊임없이 다른 구성원들을 받아들이고 확장하는

하나의 열린 공간으로서 우리의 인식 범위를 초월해서 존재한다.

 

과거를 품고 있으며 현재의 모습이 새겨진 채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도시를 하나의 모습으로 한정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식적 틀에서 비롯된 것일뿐 실제 도시는 우리의 인식으로 다 파악할 수 없다.

그곳은 끊임없이 건물과 영역을 늘려나간다. 그곳은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며, 모습과 형상이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그곳에는 우리가 모르는 이들의 삶이 흘러간다. 그곳에서는 지금도 누군가가 부부싸움을 하고 있으며,

누군가가 술에 취한 채 한풀이를 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범죄를 위해 사악한 숨결을 내뿜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도시를 하나의 형상으로 파악하고, 머리 속으로 정의내리는 그 순간, 이미 도시는 우리가 파악한 형상을 벗어나

달아나는 것이다.

'도시를 도시라 하면 이미 그 도시가 아니다' 라는 명제로 설명할 수 있는 이 혼돈의 상황은

우리가 도시를 완벽하게 정의내릴 수 없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칼비노는 이 불가능에 도전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 우리앞에 보여준다.

그 결과물이 이 소설인 것이다.

 

3.

칼비노는 존재하는 도시들을 고정된 언어로 묘사하거나 정의내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존재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상상해서 언어로 형상화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도시를 언어로 고정시키는 대신 아예 도시를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도시들은 단순히 가공의 산물이 아니다.

그 도시들은 칼비노 자신이 살고 지나쳤으며 다른 자료들을 통해서 보고 들은 도시들의 숨결과 삶이 스며있다.

그래서 이 도시들은 보이지 않는 가상의 도시들이지만 현실의 도시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의 중간에서 요동치는 이 도시들.

 

이 무한히 열려 있는 도시의 형상들에다 칼비노는 인간들의 삶과 욕망, 현실적 삶과 사회에 대한 비판, 철학적인 관점을 섞어서

생생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칼비노의 도시는 글속에서만 머물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것은 글속에서 머물지 못하고 독자의 머리속으로 들어가서, 칼비노의 도시가 아닌 독자 자신만의 도시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순간이 진짜 도시의 완성인 것이다.

 

칼비노의 상상이 만든 도시가 우리의 인식으로 들어와 자신의 도시가 되게 만드는

이 언어적 마법앞에서, 그 신화적 풍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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