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

 

이제는 빵굽는 마법사다!!

 

멀린이 아더왕을 도우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마법사라는
직업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거치고 나서
현대의 소설,영화,만화,게임을 만나서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미치광이 마법사, 여자 마법사, 깡패 같은 마법사...
그러다 드디어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 빵을 굽고,
빵집을 운영하는 제빵 기술자 마법사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마법사는 웬지 사연이 있는 듯하다.
내면의 아픔을 간직한 채 인간을 멀리하고
쌀쌀맞게 구는 모습에서
지금까지의 마법사들의 모습과는 달라 보인다.
빵굽는 마법사가 있는 빵집 위저드 베이커리.
그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의 빵. 그러나...

 

마법사가 만드는 빵이기에 당연히 보통 빵은 아니다.
일명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의 빵.
다양한 용도의 마법의 빵들이 있고,
인간들은 그 중에서 골라서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이 마법의 빵에는 피드백 능력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남을 저주하는 빵을 선택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나중에 그 피해가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실명이 되거나, 집이 불타거나, 장애인이 되거나.
아이가 유산되거나, 자신의 아이가 장애인이 되거나...
저주같은 부정적 능력만이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아니다.
사랑의 묘약과 비슷하게 누군가를 홀리는 빵에도
무서운 부작용이 있다.
내가 유혹하기를 바랬던 상대방이 그 빵을 먹고
연인에서 스토커 수준으로까지 변신해
나를 죽이거나 폭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위저드 베이커리의 마법은
현실이라는 기반위에 있다.
단순히 적을 물리치거나 사랑을 이루거나 상황의 반전을 위한
꿈 같은 마법이 아니라
초월적 마법이 사용되면 어떤 상황이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법의 빵.
그러나 그 빵은 마법이지만 그 마법의 대가로
현실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때론 당사자가 견딜 수 없는
처참한 상황일 수 있다.
이렇게 위저드 베이커리는 판타지이지만
환상보다는 현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동화같은, 환상같은 판타지가 아닌 현실을 선택한 판타지

주인공 '나'의 상황은 최악이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던 경험 때문에
말을 더듬고,
아버지는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새 엄마는 부부간의 불화를 자신에게 화풀이하고,
학교에서는 친구하나 없고.
그런 최악의 상황이 더욱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순간
'나'는 현실을 벗어나서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지내는 걸 선택한다.
그러나 위저드 베이커리도 단지 환상의 영역만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마법사를 돕는 일을 하면서
'나'는 많은 인간들의 비극과 어리석음,
현실의 무게감을 마주본다.
초월적인 능력을 보유한 마법사조차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의 힘.
마법의 빵을 먹어서 소원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불행한 사람들.
그런 일들을 겪으며 '나'는 한 인간으로서
성숙이란 현실과 맞부딪히며 얻어가는 경험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자신이 위저드 베이커리를 벗어나
불행의 포스를 뿜어내는 집으로 돌아가
그 상황을 마주해야만
자신이 성숙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 '나'가 겪은 판타지는
'나'로 하여금 현실을 선택하게 했다.
그렇다. 이 소설은 판타지이지만
현실을 선택한 것이다.
동화같은 해피엔딩이나
판타지 소설의 초월적 힘의 출현보다는
현실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판타지를 통해 드러낸 것이다. 

 

마법의 빵 찾기는 계속된다.
현실의 문제는 현실만이 해결할 수 있다.
환상의 영역은 말 그대로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을 수는 있다.
환상 속에서 원기를 충전하고, 피로를 씻고,
감동을 느끼고, 메마른 가슴을 사랑으로 채우는 식의
활동을 통해 현실로 나가기 위한 힘을 새롭게 충전할 수 있다.
환상은 우리를 위한 휴식처는 될 수 있어도
목적지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마법의 빵을 찾아다니고 있다.
현실의 무게감을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아니면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 강렬해서
인간들은 마법의 빵을 원한다.
그것이 비록 비극을 초래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마법의 빵을 계속 원할 것이다.
그렇게 마법의 빵 찾기는
인간이 살아가는 한 계속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도 마법의 빵을 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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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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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어둠 속에서 차차차 스텝을 밟다!!

 

그의 이름은 도.완.득.
학교의 누구와도 친하지 않고, 공부보다는 싸움에 능한 아이.
세상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완득이의 근처에는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난의 구멍 속에서 허우적대는 형편에
아버지는 난쟁이에 춤꾼이고,
피가 섞이지 않은 삼촌은 말더듬이에
정신이 박약한 인물이다.
어머니는 한국으로 건너온 필리핀 사람으로
어릴 적에 완득이의 곁을 떠난 상황이다.

 

마냥 어두울 것 같은 완득이의 삶.
하지만 완득이의 삶은 어둡지 않다.
그는 그 어둠 속에서, 아버지가 가르쳐준 차차차 스텝을 밟으며
경쾌하게 어둠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완득이의 옆에서 힘을 주는 인물이 바로 똥주다.

 

똥주, 완득이의 영원한 천적

 

소설의 첫 부분.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똥주는 완득이의 담임 선생님으로
지나친 솔직함과 거침없는 입담, 괴팍한 성정으로
스스로를 조폭 스승이라고 부른다.

 
완득이가 생활 보호 대상자라고
아이들 앞에서 거리낌없이 이야기하고,
완득이에게 값싼 애정을 잔뜩 베푸는 듯하면서도(?)
등쳐먹고,
옆 집에 살면서 시시때때로 완득이의 생활에 참견하는
똥주는 완득이의 천적이었다.

 
동시에 똥주는 단지 완득이를 못 살게 구는 존재만은 아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쉼터를 자비로서 만들고,
완득이의 어머니를 찾아내어
그녀를 완득이에게로 이끌고,
집안의 어려운 일에 큰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똥주는 완득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완득이에게 똥주는
미움의 대상이자, 스승이자, 친구이자, 조력자와 같은 
복합적인 존재가 되고,
그들의 관계는 산초와 동키호테, 셜록 홈즈와 와트슨 같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발전한다.
똥주가 베푼 애정과 관심, 노력이
상처투성이 완득이를 감싸안고
꼼짝 못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완득이>에서 똥주는
비인간적인 완득이를 사람 냄새나는
인간의 세계로 이끄는 진정한 천적이 된다.

 

절망을 향해 날리는 거침없는 하이킥!!



 

완득이의 삶은 어둡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그 삶속에서
희망을 보고 유쾌함을 이끌어낸다.

분명히 어둡고 힘든 절망의 향기가 아른거리는
현실이지만
완득이는 똥주의 도움과 다른 이들의 사랑으로
그것을 극복한다.

 

후반부에 킥복싱 선수가 되어
(한번도 이기지 못하지만^^;;)
상대방에게 킥을 날리는 건 장면은
절망을 향한 완득이의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지금 세상이 힘들고 어려운 건 사실이다.
어쩌면 그런 상황때문에 절망이 우리를 덮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도 완득이처럼 일어설 수 있다.
아니 절망적이라면 오히려 더 힘을 내어 일어서야 한다.
일어서서 절망을 향해, 어려운 현실을 향해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희망을 찾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발걸음이 유쾌하고 즐겁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비록 우리에게 똥주가 없더라도
우리의 발걸음은 지속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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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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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

이스마엘 베야.
12살에 시작된 전쟁은 그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고향은 전투의 흔적으로 사라지고,
가족들은 그의 눈앞에서 시체로 모습을 드러낸다.

 
같이 도망치던 친구들은 죽거나 실종되고,
자신은 일반 병사도 아닌
소년병이 되어
웃고 떠들고 공부해야 할 나이에
총을 들고 상대방에 대한 적의를 불태우며
살인을 자행한다.

 

살기 위해 죽이고,
자신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죽이고,
마음 속에서 솟구치는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죽이고,
총에 맞은 친구를 위해, 이미 죽어버린 가족들을 위해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이고...

 
살인의 일상화는 마약없이는 견뎌낼 수 없는 삶이라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점점 그는 자신을 정신적 죽음으로 내모는 전쟁에서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도움의 손길은
재활이라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죽음이 가득한 삶에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생의 현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 책은 죽음의 삶에서 빠져나온 베야가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자신의 자전적 여정을
기록한 이야기이다.

 

2.
전쟁은 인간사가 시작된 이래로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수많은 전쟁에서 언제나 희생되는 이들은
힘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돈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권력이 없어서
총을 쥐고 군인이 되어 전쟁의 한복판에서 희생되거나
여성이나 노약자의 이름으로 처참한 살인을 당했다.

그 생생한 전쟁의 비극.
이 책은 너무 적나라하게 그 전쟁의 비극을 까발리고 있다.

그래서 너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고통스러웠기에,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현실적이었기에
강한 의지를 솟구치게 했다.

바로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지.

 

이 글을 통해 당당하게 말하겠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전쟁에 반대한다.

 

3.

아직 베야의
집으로 가는 길은 끝나지 않았다.
시에라리온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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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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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트 디즈니판 <노틀담의 꼽추>.
월트 디즈니는 법정에서 판사복을 입은채로
망치를 들고 최후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나는 관객석에 앉아 그의 판결을 들었다.

 
'본 판사는 지금 여기서 말하겠소.
아름다운 에스메랄다는
헌신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보여준 콰지모도가 아니라
잘생기고 정의로운 피버스와 이루어져야 하오.
콰지모도는 단지 그녀와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기뻐해야 하오.

아마 콰지모도 본인도 이 결정에 만족할꺼요.'

 

뭐라고? 오만가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에스메랄다를 성심성의껏 구해준
최고의 순진남 콰지모도가
아니라 피버스랑 이루어진다고?
그건 에스메랄다의 결정도 아니고
이 만화의 원작자인 빅토르 위고의 결정도 아니고
월트 디즈니 너희 회사가 만들어낸 결정이잖아.

 

차라리 에스메랄다가
콰지모도의 사랑을 외면하고
콰지모도가 슬퍼하거나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게 훨씬 낫겠다.

 

뭐, 아이들의 꿈을 이루어야 한다고.
돈은 벌어야 한다고.
그래, 너희들의 장사속 앞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명작도
한낱 상업적인 영화에 불과하게 되겠지.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너희들이 이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부터
웬지 불길하더니만
이건 뭐 빅토르 위고의 명작을
완전 삼류 시나리오로 만든 것에 불과하잖아.
안 그래?
이제부터는 죽은 작가들에게 미안하지 않게
뛰어난 명작들은
너희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지 말아라.
제발 부탁이다!!

 

2.



음, 그런데 생각해보면
뛰어난 문호인 빅토르 위고가 썼었던 원작도
한계가 있었어.

 
인간의 사랑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는
이 작품도 결국 외모 지상주의의
벽을 넘지 못했으니까.

 
생각해 봐. 최강의 추남인 콰지모도가
사랑한 것은 아름다운 에스메랄다야.

 
진정 콰지모도가 순수하다면
정신적 교감만으로도 사랑이 가능해야지.

물론 에스메랄다의 영혼이 아름답지 않다는
말은 아니야.

단지 사랑의 순수함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콰지모도의 상대가
아름다운 에스메랄다라는게 걸려.

 

진정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면
겉모습이 아름다운
에스멜라다가 아니라
이 빠진 노파와 사랑에 빠져야 하는 거야.

 
그게 더 순수한 사랑이지 않을까?

아멜리 노통은 <공격>에서
이런 생각을 실천하고 있어.

 

아멜리 노통

' 콰지모도, 그의 영혼은 더럽고 천박하다.
... 그는 이 빠진 노파와 사랑에 빠져야 마땅하다.
그래야 그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지.'

 

3.

신사숙녀 여러분!!
여기 지상 최고의 추남 에피판 오토스를 소개합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경악하리란 걸 장담합니다!!
'그의 얼굴은 찡그림 그 자체였다.'

 
그의 벗은 몸을 보게 된다면
여드름의 불가사의를 만끽하시며
화장실로 구토하러 직행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에피판의 직업이 모델입니다.

 
네? 농담하지 말라구요?
아! 농담이 아닙니다.
에피판은 진짜 모델입니다.
그는 추한모델로
아름다운 미남미녀 곁에서
그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지극히 추한 것 옆에서
더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이죠.'

 

발상의 전환을 통해
추한모델로 성공하는 에피판은
돈을 많이 벌어도
자신의 성적인 순결을 지킵니다.

 

그도 자기 나름대로 순결한 사랑을 꿈꾸었던
것이죠.
그 사랑의 대상은
에텔이라는 아름다운 여배우입니다.

 
그녀는 에피판이 유명하지 않던 시절에
그의 얼굴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를 인간처럼 대해준 유일한 사람이죠.

 
그래서 에피판은 그녀를 성녀로 생각하고
유일한 사랑을 퍼붓죠.

 
자, 에피판과 에텔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요?
아멜리 노통의 상상력은 어떤
결말을 만들었을까요?

 

4.

에피판.
그는 외모가 추한만큼이나
정신도 추한 인물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여자만 쳐다보지
추한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는
추하디 추한 인간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상황이나 성향을
끊임없는 괴변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자신의 성격을 더욱 추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네 못난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움을 필요로 해.'
'우리는 쌍둥이 남매야.
내 사랑, 우린 닮았어.
선이 악을 닮듯. 천사가 짐승을 닮듯'

 

에피판의 그런 모습은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아멜리 노통식 공격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녀는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외쳐대는 내 방어막을 공격해서
그 안에 숨어있는 외모 지상주의의
흔적을 사정없이 공개하려고 하였다.

 
그녀는 숫컷의 본능을 적나라하게 간직한
내 안의 에피판을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 공격이 성공한 것일까?
어느새 나는 내 안의 에피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역시, 너는 내 안에 있었구나.
그렇게 추한 모습으로...

 

미안, 그동안 내가 너를 인정하지 않았구나.
이제부터는 인정해 볼께.
그리고 너를 없애도록 노력해 볼께.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아멜리 노통이 내게 건네준
칼은 그녀의 소설 속에서만 사용 가능한 것이 아닐까.

 

5.

아멜리 노통은 나랑 코드가 맞는
인물인 것 같다.

 

나는 그녀의 정상적이지 않는 상황설정이
마음에 들고,
배드엔딩에 가까운 엔딩도 마음에 든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녀가 내게 가하는 소설을 통한 공격이 마음에 든다.

나의 방어막을 무너뜨리고
내 안의 악마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그녀의 글은 그 자체로 쾌락을 가져다 준다.

그러니까 나는 아마 아멜리 노통의 글을
끊지 못할 것 같다.

 마약처럼 계속 읽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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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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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이 지나간 아프가니스탄의 거리.
그 곳은 널려진 건물의 잔해와 함께
찢겨지고 조각난 사람의 시체가
몇분전까지 그들이 이곳에서 인간으로 살았음을
증명하고 있고,
울려퍼지는 비명소리, 울음소리는
이제 그곳이 삶에서 지옥으로 떨어졌음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그러나 그곳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전쟁의 흔적이 지나가도,
절망이 몰아쳐도 그들은 아픔을
꾸역꾸역 삼키며 살아간다.
 
절망이 그들을 삼킬 지라도 
그들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것을
알고 살아간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이렇듯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희생되는
사람들의 삶을
미리암과 라일라라는 두 명의 여성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2.
그녀는 태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녀의 존재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알려지는 순간
그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고,
그녀의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부인들은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그녀는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버려진 존재였고,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어머니와 함께 외따로 떨어져서 살아가던
그녀는 아버지의 따스한 품을 그리워했다.
 
일주일에 한번 와서 선물과 좋은 말만 해주는 걸로는
그녀에 품에 가득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 몰래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녀를 집에 들여놓지 않고,
그녀는 실망하여 집으로 돌아간다.
 
열다섯살의 치기가 불러일으킨 행동.
이 행동은 그녀를 파멸로 몰고간다.
어머니의 죽음과 뒤이은 아버지집에서의 고독한 생활
그리고 마흔다섯 살의 라시드와의 결혼.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가부장적 권위주위에 파괴되는 삶 뿐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암.
 
'마리암, 그게 우리 팔자다. 우리 같은 여자들은 그런 거다.
참는 거지.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다. 알겠느냐?'
 

3.

소련이 지배했었던 한때
일군의 인물들이 서구의 근대적 사고를
여성들에게도 가르친다.

 
그녀는 그 교육의 수혜자였다.
서구적 교육을 받은 그의 아버지는
그녀를 능동적이고, 세상에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여성으로 키울려고 노력한다.

 
'나는 네가 지금 이걸 이해하고 알았으면 싶다.
결혼은 늦출 수 있지만 교육은 그럴 수 없는 거란다.
너는 아주 영리한 아이야. ...
너는 원한다면 뭐든지 될 수 있어. 나는 알아. ...
여자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사회는 성공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럴 수가 없지.'

 

그녀의 어머니는 살아있지만
그녀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반군활동을 위해 집을 뛰쳐나간
그녀의 오빠들만 생각하고
그녀는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에게는 실제적으로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도 있었고,
좋아하는 남자도 있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술에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그의 이름은 타리크.

 
그러나 소련군이 물러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내전은
그녀의 삶을 찢어놓기 시작한다.

 
친구들의 죽음. 타리크의 실종.
최종적으로 그녀의 눈앞에서
먼지가 되어버린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


그녀는 그렇게 시대의 폭력앞에서
라시드의 첩이 된다.
 
'아마드와 누르는 죽었고, 하시나는 어디로 가고 없고,
기티는 죽었고, 엄마는 죽었고, 아빠도 죽었고,
이제 타리크마저...' 
 

그녀의 이름은 라일라 

4.

구세대를 여성을 대표하는 마리암과
구세대의 가부장적 남성의 대표주자 라시드.
 
신세대 교육을 받고 자란 라일라과 타리크.
 
그 대비되는 두 세대는
마리암과 라일라의 만남으로
새로운 조화의 장을 마련한다.
 
마리암은 라일라의 실제적 어머니 역할을 하고
희생을 통해 라일라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다.
 
구세대의 희생을 통해
신세대는 내일의 살아갈 힘을 얻는다.
라일라는 아프고 힘들더라도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그녀의 뒤에서는
카불의 폐허를 아름답게 비추는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름답게...
 

“지붕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P.532)


 

5.
호세이니는 놀라운 작가적 재능으로
현실앞에 파괴된 여성들의 삶을 재현해낸다.
그 앞에서 우리는 알지도 못했고,
별다른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삶을 실감나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공감으로 이어지며
파괴되고 찢겨진 삶을 살면서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동화되게 만든다.
 
오직 살아있는 것만이 전부인 그들의 삶.
그것 또한 삶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네들의 삶에서
살아있음 그 자체가 축복임을
다시한번 배운다.
 
그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축복이다.
이제 축복을 알았으니
내일을 꿈꾸며 잠에 빠지자.
아마 꿈 속에서 우리를 비추는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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