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하는 마음 - 김혜리 영화 산문집
김혜리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묘사하는 마음-김혜리

 

저는 김혜리 기자의 책들을 좋아합니다. 섬세하게 영화의 결을 살피며 자신이 바라보고 생각한 것들을 꼼꼼하게 말하는 모습도 좋고, 글 속에서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사랑이 전해지는 것도 좋습니다. 과격한 언사들이 넘쳐나는 현재의 시류에서 벗어난 듯한, 조곤조곤하게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과 표현을 전하려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저런 말로 표현했지만, 김혜리 기자의 영화 관련 글이 제가 생각하는 스타일과 너무 맞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죠.^^

 

언제나 그랬듯이 김혜리 기자다운 글을 기대하며 책을 펼칩니다. 제목은 <묘사하는 마음>.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씨네21>에 연재했던 개봉작 칼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를 모은 책이라고 합니다.(2017년에 이전에 쓴 글도 있다고 하네요.) 저자인 김혜리 기자는 그러면서 2020년 이후로는 개봉작 평을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과 오디오 매거진 <조용한 생활>을 통해 말로서 주로 전하고 있다고 하네요. 사실 저는 <성시경의 꿈꾸는 라디오> 때부터 김혜리 기자가 나오는 방송이나 팟캐스트들을 꾸준히 들어와서 알고 있는 사실이긴 했습니다. 목소리로 듣는 것만으로는 만족 못해서 책을 찾아서 읽기까지 했으니까요. 팬심이라는 표현이 맞겠네요. ㅎㅎㅎ 그러면서 김혜리 기자는 이 책에서 영화를 보면서 한 일을 묘사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영화에 이목구비가 있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그 초상을 그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허락된 재료로 방금 본 영화와 비슷한 구조물을 짓고 싶었다.

...

내게 해석은 묘사의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는 전망 좋은 언덕과 같았다. 묘사하는 마음이란, 그런 요행에 대한 기대와 아님 말고. 이걸로도 족해하는 태평스러운 태도를 포함한다. 묘사는 미수에 그칠 수밖에 없지만, 제법 낙천적인 행위이기도 하다.‘(p.11)

 

배우들에 이야기부터 책은 시작합니다. 이자벨 위페르부터 시작된 책은 배우들을 거쳐 영화에 대한 평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보지 못한 영화부터 본 영화들을 포함해서 김혜리스러운, 김혜리다운 필치와 목소리로 영화에 대한 해석을 담은 묘사들이 펼쳐집니다. 섬세하면서도 차분하게 영화의 결을 훑은 평들을 읽으며 언제나처럼 만족을 느낍니다. 동시에 <매드맥스:분노의 도로>편에서는 차분하기보다는 열정을 담아 영화에 대한 해석을 전유하려는 이들을 논리적으로 반박합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양한 면모가 있기에, 이런 면 또한 좋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가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개봉작들에 대한 평이 있습니다. 이 영화평들에는 영화의 미래를 바라보는 김혜리 기자의 시선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시네마가 아니라 TV 시리즈 같은 영화를 만들려는 이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아. 김혜리 기자의 말대로 영화가 단독자로 서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품으로서 이어지는 것에 종속된다면 그건 우리가 아는 영화가 맞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건 미래의 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서 존재하는 것 아닐까요? 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서의 영화란 우리가 아는 영화와는 다른 그 무엇이 아닐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혜리 기자의 말대로 이런 방식이 지속된다면 영화의 미래는 제가 아는 영화와는 다른 무언가가 되겠죠. 하지만 예언가도 아니고, 영화평론가도 아닌 저는 이쯤에서 저의 사유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책이 다 끝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고 싶어! 죽게 해 줘!"

순간 고다가 거칠게 나나에의 따귀를 짝 때렸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 깜짝 놀라 몸이 굳었다.

"어머니..."

고다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 죽습니다."

멀리서 경찰차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이들은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p.134~1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쓰기를 하고 싶을 때 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글쓰기는 불규칙하게 될 거 같네요.^^


정말 우연히 읽었습니다. 우연히...

좋은 인연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일까요?

올해 읽은 책 중에서 제 마음을 가장 강하게 건드린 책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과거에 펑펑 울면서 책을 읽었던 시절의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얽히고 섥힌 인연의 관계망,

그 속에서 드러나는 추악하고 어두운 현실,

그리고 포기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삶의 희망까지.

2019년 책의 잡지가 선정한 베스트 10 1위라고 하는데,

1위가 됐는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 이래서 소설을 읽나봐요.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건드릴 수 있는 건,

아직 저한테는 소설인가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식에도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것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결과나 실험이 있으면 바뀌기에.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을 읽으며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었던 과학지식 업데이트를

 

너무 등한시 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식이 고정된 것이 아님에도

 

마치 고정된 것처럼 생각한 저 자신을 반성하면서

 

꾸준히 지식을 업데이트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이야기는 독서 모임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지난 토요일날 우연히 제가 가는 독서모임 두 개가 동시에

 

정모를 하는 바람에 한 곳만 가게 됐습니다.

 

제가 미처 가지 못한 독서 모임도 가고 싶긴 했으나

 

시간의 문제로 못 갔는데,

 

갔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 모임의 한 분은 10년 전에 했던 말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는데,

 

바뀔 생각은 없으신지...

 

아무리 그게 옳은 말이라고 해도,

 

시간의 흐름이 가리키는 게

 

그 말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는 방향으로

 

가는데,

 

바뀔 마음은 있으신지...

 

이야기는 다시 또다른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오늘 도서관에 가서 우연히 모 지식인 분의 책을

 

살짝 훑어보았습니다.

 

그 분도 참 바뀌지 않더군요..

 

난 옳아... 너희들은 틀렸어...

 

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

 

난 이렇게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였으니 더욱 더 옳아...

 

, 아직도 '난 옳아, 옳아'를 외치는 그 분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 오셨고,

 

전 그 태도가 너무 지겨웠습니다.

 

이제 그분이 한 번 이렇게 말하는 걸 들어보고 싶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어...

 

나 자신도 그렇고, 독서 모임 분도 그렇고,

 

모 지식인분도 그렇고,

 

제발 변화할 수 있기를...

 

변화하기를...

 

안 그러면 삶이 너무 지겨워 보이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랜드스탠딩 - 도덕적 허세는 어떻게 올바름을 오용하는가
저스틴 토시.브랜던 웜키 지음, 김미덕 옮김 / 오월의봄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랜드스탠딩-저스틴 토시, 브랜던 웜키


책을 읽을 초반부에는 그랜드스탠딩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갔습니다. 이해가 안 가면 당연히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고, 반감만 들죠.^^;; 어제 적은 글에서 별 한 개를 줘야겠다고 맘 먹은 것도 이해가 안 가서였습니다. 그런데 알라딘의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보니 그랜드스탠딩이 직관적으로 이해되었습니다. , 도덕적 허세나 도덕적인 자기 과시. SNS와 인터넷 게시판에 널리고 널린 그 전투적인 도덕화한 언어들. ‘난 너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해아니면 넌 비도덕적이야’, ‘우리 편이 옳고 너희들은 틀렸어.’라는.

 

 

이 지겹고도 지겨운 언어의 양상들을 그랜드스탠딩이라는 말로 표현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책을 읽으니 그랜드스탠딩이라는 단어가 서구권에서는 널리 쓰이고 있더군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나니, 저자들이 왜 그렇게까지 그랜드스탠딩을 비판하고 고치려 하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도덕적 허세를 부리며 도덕적 우월성을 고취하는 점에서 그친다면 굳이 저자들이 나서서 비판할 필요는 없겠죠. 자기만족이나 자기과시에서 머무니까요. 하지만 그랜드스탠딩이 거기서 그칠 리가 없습니다. 그랜드스탠딩은 실제로 사회에 해악을 끼칩니다. 남발되고 오용되는 그랜드스탠딩으로, 정치나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토론을 할 때 피로도가 극심해져서 사람들이 그런 것들에 무관심해지거나 회피하거나 분노를 드러내지 않게 된다는 점부터,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하면서 정치적인 단절을 초래한다는 것까지.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는 점에서 그랜드스탠딩은 비판받고 교정되어야 합니다. 저자들의 말대로 좋은 쪽으로 교정되거나 아예 다른 방식으로 바뀌면 좋겠죠. 그런데 저는 궁금해집니다. 저자들의 낙관론처럼 그랜드스탠딩이 쉽게 바뀔까요? 저는 쉽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여기에 관해서 할 말이 있습니다. 진화생물학 관련 책이나 인류의 미래를 다룬 책이나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는 책들을 보다가 본 구절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집단에 쉽게 동조하는 쪽으로 진화되었다고. 집단을 뭉치게 하는 것에 있어서 자신의 집단과 다른 외집단과의 구별을 이용하는 것만큼 좋은 게 있을까요? 저 집단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하는 것만큼 하나의 집단을 쉽게 뭉치게 하는 게 있을까요? 집단과 집단 간의 구분뿐만이 아닙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이와의 비교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에 있어서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우는 것만큼 손쉬운 게 있을까요? 진화생물학적으로 봐도 그렇고 심리학적으로 봐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봐도 그렇고 그랜드스탠딩만큼 좋은 정치적 전략이 있을까요? 저는 인간들이 그랜드스탠딩 같은 좋은 정치적 전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사회적 해악이 너무나 크기에 어떤 식으로든 그랜드스탠딩에 대한 변화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저자들처럼 꿈꾸어 봅니다. 그랜드스탠딩이 없어지거나 변화한 세상을. 비록 쉽지 않겠지만, 그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상상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