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일째...
아 글 쓰는 걸 까먹었네요 ㅜㅜ
어쩔 수 없이
잠시 출석체크만 하고 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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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너무 더워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밤에 집에 걸어오는 데도 땀이 주룩주룩 나서

힘들었어요.

현실도 더운데 제가 읽은 책 안의 모습들도

참 덥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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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강박이 있습니다.

넓게 읽어야 한다는...

좁혀서 한 분야를 파고드는 독서를 하다가도,

이렇게 하면 이 분야의 시각에 매몰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며

다른 분야의 책을 읽습니다.

저 스스로가 하나의 분야에 갇히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듯 합니다.

왜나햐면 그 분야의 시각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고,

그 분야를 객관적으로 폭넓게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좁은 독서와 넓은 독서 사이를

계속해서 갈팡질팡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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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2-08-04 1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도 갈팡질팡 하고 있어요. 공감합니다 ^^;

짜라투스트라 2022-08-04 12:10   좋아요 2 | URL
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뭐가 옳은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으니 갈팡질팡하며 읽을 수 밖에 없는 듯.^^;;
 
맥베스 열린책들 세계문학 15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권오숙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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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셰익스피어

 

데미안에 이어서 맥베스 서평을 씁니다. 그것도 열린책들 판본의 맥베스를. 판본이 어떻든간에 맥베스는 맥베스죠. 세 마녀에 의해 야망이 불타올라 반역을 저지르고 왕이 되어 파멸하는 맥베스. 세익스피어 4대 비극 중에 가장 전개가 빠르고, 분량이 작은 작품. 제가 과거에 읽었지만, 가끔식 기회되면 다시 읽어보는 맥베스.

 

맥베스를 데미안 서평에서 언급한 총체성의 관점에서 한 번 다뤄보려고 합니다. 일단 제가 생각하는 총체성을 더 구체적으로 말해볼께요. 기본적으로 저는 총체성을 크게 두 가지 개념의 총합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편성과 특수성. 보편성은 언제 어느 시기든, 어떤 장소든,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든지 혹은 누구든지 적용 가능한 개념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일이라도 지금 현재 한국에서도 통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식으로. 보편성은 어떤 특정한 시기, 특정한 장소에서만 통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개념틀로 총체성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먼저 보편성. 맥베스는 야망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사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욕망 없는 인간은 없는 법이죠. 욕망은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 발화할 때가 되면 발화합니다. 맥베스가 세 마녀를 만나서 자신의 야망을 꽃 피우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여기에서 예외는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맥베스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맥베스의 보편성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특수성. 누구나 맥베스처럼 욕망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욕망의 발현 양상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적과 흑>의 쥘리앵 소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왕정복고 시기에 서민계층으로서 자신의 야망을 드러냈다 비극을 맞죠. 쥘리앵 소렐의 비극은 대혁명 이후의 왕정복고 시기의 시대적 맥락과 쥘리앵 소렐 개인의 삶이 만나서 이루어진 쥘리앵 소렐만의 특수한 것입니다. 보봐리 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봐리 부인의 비극은, 자본주의적 욕망에 가득찬 탐욕스럽고 위선적이며 천박한 당대 프랑스 사회의 시대상과 보바리 부인이라는 개인의 삶이 만나서 빚어진 것입니다. 맥베스의 비극도 시대상과 개인의 삶이 만나서 만들어집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맥베스라는 작품은, 시대상을 그려내는 풍속소설이 아니기에, 특정한 시대상을 리얼하게 그려내는 것에 치중하지는 않습니다. 시대상을 담으면서도 희곡답게,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보편적이면서도 인공적인 느낌이 있죠. 여하튼 그런 상황에서 맥베스는 자신의 고유성으로 비극을 빚어냅니다. 야망을 드러내지 않다 세 마녀를 만나 부추김을 당하고, 음모를 실행하길 주저하다 아내의 종용으로 왕을 죽이고, 왕을 죽인 뒤에는 야망을 드러내며 독재자가 되고, 나중에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죽는 아내와는 달리 죄책감 없이 자신의 야망을 지키려는 모습으로. 이 모습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맥베스만의 것입니다. 여기에 맥베스의 특수성이 있습니다.

 

저는 두 요소에 덧붙여 이라는 측면에서도 맥베스를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비극이라는 원류에서 이어진 비극의 흐름 속에 맥베스는 이라는 관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에서는 신들이 직접적으로 극 속에 등장합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는 신이 드러나긴 하지만 삶에 그 힘을 드리우는 정도죠. 에우리피데스는 그리스 비극의 전통을 해체하는 의도로 신을 이용합니다. 로마 시대 세네카의 비극에서는 잔혹한 비극의 전시적 요소로 신들이 사용되죠. 르네상스 시대와 이어지는 셰익스피어 시대의 비극인 맥베스에서는 직접적으로 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 극에서 중요한 건 인간의 선택입니다. 인간의 선택이 비극을 초래하고, 거기에서 인간은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물론 마녀라든지, 유령이라든지 하는 요소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초현실적 요소들이 신을 떠올리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비극에서 중요한 건 인간의 욕망과 선택입니다. 인간의 욕망과 선택이 삶을 만들고 그것이 운명으로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리스 비극의 전통을 이어가지만 신들과 멀어진 게 확연하게 보이죠. 그래서 맥베스는, 고대에서 확연하게 벗어나서 인간 중심의 근대로 달려가는 어떤 지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보다는 인간에 더 가까운 지점에 위치하는 식으로.

 

, 종합해보죠. 저는 맥베스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욕망을 비극의 형상으로 문학화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동시에 맥베스는 세 마녀라든지, 유령의 등장, 순신각에 바뀌는 욕망의 양상과 맥베스 특유의 대사 등으로 특유의 독특한 비극성을 가진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맥베스는 신에서 멀어져가는 인간 삶의 비극성을 표현한 작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제가 바라보는 맥베스이고, 저는 거기에서 맥베스의 총체성을 봅니다. 저와 같은 맥베스이자 저와 다른 맥베스이자 신에게 매달린 존재가 아닌 인간 고유의 삶으로 살려는 인간 맥베스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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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과제를 하는 기분으로 씁니다.

그나마 짧은 글로도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길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오늘도 이 정도 쓰고 나니 할 말이 없네요.^^;;

할말이 없다면 없는 대로

이 정도 쓰고 마치렵니다.

다시 내일을 준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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