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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잃은 개 2 - <논어> 읽기, 새로운 시선의 출현
리링 지음, 김갑수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7월
평점 :
[칼]. 리링에게는 논리적 칼이 있다. 그는 학문을 하는 동안 갈고닦은 그 칼을 <집 잃은 개>에서 마음껏 휘드른다. 철저한 고증과 실증을 기반으로, 자신의 생각과 이 시대의 관점을 섞어서. 먼저 그의 논리적 칼에 휘둘리는 것은, <논어>라는 책과, 그 속에서 살아 숨쉬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과 '공자와 제자들이 만난 사람들'이다. 리링은 공자의 말을 '공자의 말답게' 해석해낸다. 그는 그의 오류와 실수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는 공자가 시대적 한계에 갇혀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대신에 그는 공자가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채로, 이 시대에도 충분히 필요한 가르침을 전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제자들의 경우에는, 제자들이 어떻게 공자의 의도와는 달리 공자를 성인으로 만들었는지를 가감없이 말해준다. 그가 휘두르는 첫번째 논리적 칼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한계가 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고 힘이 있는 <논어>와 인간 공자의 모습을 원없이 만날 수 있다. 두번째로 그는 논리적 칼을, 이 시대에 공자를 신성시하고 신격화하여 '공자팔이'를 하는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공자를 이데올로기화하고 신격화하여 흠없는 성인으로 만들어 '공자팔이'를 하는 인물들을 비판하면서, 그는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한다는 명분으로 중국 문화의 정수로 소개된 유학에 의존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도 동시에 시도한다. 이 논리적 칼은 너무 서늘하고 매서워 그의 논리적인 칼을 따라가다보면 내 자신의 마음도 그의 논리적 칼에 베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늘]. 공자는 천명을 가장 두려워했다. 천명이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겼기에. 그에게 어찌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집 잃은 개>를 보면 그에게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그 자신이 생각한 '정치적 이상의 실현'처럼 보인다. 공자는 주나라의 예법이 쇠락해가는 혼란스러운 춘추시대를 살면서, 봉건제에 기반한 주나라의 예법을 다시 되살리려고 했다. '주례'만이 이 시대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는 봉건제에 기반한 '주례'에 어울리지 않은 낮은 신분의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이 이 시대에 필요한 인재가 되게 만들었다. 그 자신의 이상인 계급제도에 기반한 주례에 어긋나게. 이걸 도덕정치론의 관점으로 치환해도 마찬가지다. 그는 도적적인 정치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현실화시키려 했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의 이야기를 무시했다. 그가 힘을 실어 외친 그의 정치적 이상은, 현실의 정치 지도자들의 귀를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공자에 입장에서 보면 정치적 이상을 위한 그의 노력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집 잃은 개>에 나오는 것처럼, 불가능할 줄 알면서 실행했던 일. 불가능할 줄 알면서 시도하는,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일. 이것이 그의 입장에서는 '천명'일 것이다. 그러니 그는 '천명'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의존] <집 잃은 개>를 보면 공자는 시대적 한계에 갇힌 인물이면서, 시대적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불가능할 줄 알면서도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나섰고, 실패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과 너무나 인간적인 사제관계를 만든 인물이다. <집 잃은 개> 어디에서도 그가 신화적 인물이라거나 성인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없다. 그를 신화적 인물로, 성인으로 만든 건 그의 후대의 사람들이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정치적 의도가 있어서, 경제적 목적을 위해. 그들은 생생한 매력을 가진 한 인물을 미라처럼 박제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박제가 된 공자의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영웅의 모습처럼 보인다.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어쩌면 그들은 공자에게 의존하는 것일지도 몰겠다. 자신이 부족하니까, 자신이 될 수 없으니까, 자신들의 이상과 관념을 공자에게 투영하여 박제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리링은 그 의존에서 벗어나라고 외친다. 의존에서 벗어나야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그게 공자가 말하는 '군자'라고. 독자가 여기까지 왔다면, 벗어나야 하는 할 단계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리링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 나는 그 단계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앉아서 글을 쓰다보니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리링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금부터 시작됐다는 그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