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는 그럴수도 있지 하는 생각으로 펴들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장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좀 더 나은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하는 주장에 근거가 정확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1.그동안 세계를 지배하던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도 미국의 정치적 패권과 함께 저물고 있다. 세계는 변하고 있다.(12)
-세계는 변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미국의 힘이 과거보다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적 패권이 저물고 있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자. 미국의 정치적 패권을 뒷받침하는 것중의 하나인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 시스템이 종말을 맞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달러화 중심의 세계 경제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미국의 라이벌로 부상한 중국은 미국의 경제적 압박에 쩔쩔 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과거에 비한다면 약해보일 수도 있지만, 저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미국의 정치적 패권이 저물고 있다는 말을 쉽게 내뱉을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누구도 미국에게 쉽게 대항하지 못하는 현실, 달러화를 통해서 자국 우위의 세계 경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현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현실 앞에서 '바람'을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언제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이런 바람과 기대, 가능성의 표현들은 미래 예측의 언어이지 현실을 제대로 표현하는 언어가 될 수는 없다.
2.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세계에서 시행되고 있는 민주적 선거 제도 중에 가장 비민주적인 선거제도다.(203)
-굳이 내가 이런 것까지 반박해야 되나 싶을 정도의 근거 없는 문장이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생각을 근거없이 하나의 팩트처럼 제시하고 있다. 이걸 읽으니 내가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예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다 들어아 하나 싶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만 보자. 과거의 고어와 부시의 대통령 선거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힐러리와 트럼프의 대통령 선거를 들여다봐도 이 말이 거짓이라는 말은 정확해진다. 힐러리는 트럼프보다 표를 더 받았다. 하지만 직선제가 아닌 선거인단이라는 '간선제'를 통한 선거 시스템을 가진 미국에서는 표를 많이 받는 힐러리가 아니라 선거인단 시스템에서 승리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게 제대로 된 민의의 반영인가? 이게 한국 대통령 선거보다 민주적인가? 한국의 대통령 선거보다 훨씬 더 비민주적이고 다수에게 무력감을 안기는 결과를 연출하는 미국의 선거인단을 통한 대통령 선거 시스템 이야기는 일언반구 없이 자신들의 감정에 기반한 주장만 하는 게 옳은가. 국회의원 선거는 어떤가. 영국의 국회의원 선거는 비례대표가 하나도 없이 오로지 소선거구제에 기반한 지역구 선거만 하고 있다. 그래서 국회의원으로 뽑히지 않는 이들에게 투표한 이들의 사표가 속출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북아일랜드라는 독특한 지역성을 제외하고 국회의원 선거를 본다면, 영국은 한국보다 훨씬 강한 양당제를 가지고 있다. 비례대표 없이 계속해서 이런 식의 투표를 한다면 영국의 국회의원 선거는 한국 보다 훨씬 더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비민주적 제도가 될 것이다. 한국의 선거 제도가 독일이나 스웨덴의 투표제도보다 비민주적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저자들이 말하는 대로 '세계에서 시행되고 있는 민주적 선거 제도 중에 가장 비민주적인 선거제도'인 것은 아니다. 부탁하건대, 저자들에게 조금 더 사실에 맞는 근거를 제시하고, 사실에 기반한 주장을 하기를 기원해본다.
이외에도 할 말은 많다. 그러나 피곤하고 힘들기에 이 정도만 하고 그치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