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의도한 것은 아닌데, <위기의 이성>이라는 책을 읽고나서야 이 책이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이동진 작가가 소개한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는 이 책을 이동진 작가가 소개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왜냐구요? 책을 읽고나니 책의 내용이 머리속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해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책의 문장이나 논증내용도 확실하게 인식되지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이 책이 엄청나게 어려운 책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엄청나게 어려운 책은 아닌데, 엄청나게 쉬운 책도 아닌 책입니다. 여기서 굳이 번역의 얘기를 꺼내지는 않겠습니다.(번역 이야기까지 하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에 번역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책이 가진 특성이랑 맞물리는 부분이 있어서 제가 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특성?'이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네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긴 한데, 저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현대 영미철학의 특성과 번역과 언어와 개념의 문제가 맞물리면서 제가 책의 내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영미철학 책을 제가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읽은 한도 내에서 본다면 프랑스,독일철학으로 대표되는 대륙계 철학의 책들보다 현대 영미철학책은 훨씬 더 논증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논증의 과정을 자세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에 비해 프랑스,독일로 대표되는 대륙계 철학자들의 책은 훨씬 더 문학적인 느낌이 있고요. 이 말은, 현대 영미철학책이 대륙계 철학자들의 책들보다 딱딱하다는 말입니다. 현대 영미철학책은 책 해석의 다양성, 다의성 보다는 논증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하면서 논문의 느낌이 강하게 풍깁니다. 이것의 장단점이 있겠죠. 하지만 <위기의 이성>처럼, 읽으면서 몇 번이나 문장이 무엇을 말하고 어떤 논증을 전개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상황에 처한다면(저는 여기서 번역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영미철학책은 재미가 줄어들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위기의 이성>을 제가 재미없게 읽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책이 말하는 논지가 제가 생각하는 것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저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만, 다 읽고나서 책의 내용을 되짚어보면서 떠오르는 것들이 있어 이렇게 적어본 것입니다. 저자가 조금 더 부드럽게 적었다면, 번역이 조금 더 알기 쉽게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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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모임
1.일시:2018년 9월 1일 토요일 오후 다섯 시
2.장소:서면 텐스
3.함께 읽을 책:십팔사략(현대지성) 7장:초한지~14장:동진시대까지
-11회 모임 제목: 한, 중국문명의 기틀을 세우다
-동양고전을 읽게 되는 시즌2에서는 동양고전을 읽기 위한 일종의 배경작업으로서 중국의 역사서인 <십팔사략>과 동양 고전을 소개하는 신영복의 <강의>를 나누어 읽을 예정입니다. 동양고전에 관심 있거나 읽고 싶으신 분들, 고전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 참여해보세요.^^
-나이,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임시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시면 됩니다.
-함께 고전을 읽자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참가하시고 싶으시면 쪽지로 연락주시거나 밑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고전 독서 모임의 유효성
고전을 읽고 고전독서모임에 참여하면
-고전이 더 재미있어집니다.
-고전의 다양한 면모를 알게 됩니다.
-고전이 단지 과거의 책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 있는 현재의 책이 됩니다.
-고전을 읽고 떠올린 생각들을 나누며 고전은 모임에 참가한 이들의 공유가 됩니다.
그러니 고전을 읽고 함께 모임에 참석해보아요.^^

고전 독서 모임의 목표
1.고전을 함께 읽는다.
2.고전을 통해 이 시대를 조망하는 시야를 갖는다.
3.고전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이 목표를 가지고 함께 고전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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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0일날 동양고전을 읽는 고전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와아~~^^;;). 사실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었을 때와는 달리 고민이 많았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 같은 경우는 독서모임에서 다루어 본적이 있었지만, 동양고전을 읽는 모임이 처음이었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동양고전의 경우에는 크게 두 가지 패턴이 있습니다. 하나는 책을 깊고 자세히 읽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모임. 제가 아는 어떤 모임에서는 책 한권을 가지고 몇년을 읽더군요. 다른 하나는 해설서를 읽거나 원전을 읽어도 그냥 몇 번 보고 마는 경우. 이것도 나름 의의가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조금 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있었고, 이 고민을 모임 사람들과 나누어보았습니다.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정도 윤곽이 잡히더군요. 그래서 우리 부산고전함께읽기 모임만의 독특한 동양고전읽기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누구도 하지 않을, 아마도 우리만이 할 수 있는 방법로서. 아직 논의를 더 해야하는 부분이 있고, 확실한 게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지는 않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이 이야기와 더불어 삼황오제-하-은-주-춘추시대-전국시대-진으로 이어지는, 신화에서 역사로 넘어가는 중국 초기 역사를 다룬 <십팔사략>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 부분도 분명히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임은 중국 문명의 기틀이 잡힌 한나라 시대로 넘어갑니다. 그 부분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ㅎㅎㅎㅎ 

-왜 <십팔사략>을 읽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대략적인 차이 이야기 
1.책에 대한 감상
00: 역사를 집약해서 읽을 수 있나 걱정이 되었다. 중국 역사의 흐름이 잡히는 걸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양진원: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개별 흐름보다는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00: 단편적인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흐름으로 읽으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몰랐던 이야기를 아는 기쁨은 있다.
000: 입문서라고 생각하고 읽었다. 뒤로 가면 갈수록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미있게 읽었다.
000: 춘추 전국 시대의 살벌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국의 고전이다. 그래서 실사구시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 중국 고전은 평화롭게 살아남기 위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오늘날에도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와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현실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는 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
00: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재미있기는 한데 너무 극단적인 부분이 있다. 대화편과 비교하면 훨씬 더 현실적이었다.
00: 그림으로 그려보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00: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덮고 나면 내가 무얼 봤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 장의 끝에 계통도를 그려주면 좋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동양고전을 어떻게 읽을지에 대한 고민
000: 동양고전은 한문이라는 원전을 가지고 해석을 해야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양고전을 읽는 것이 쉽지 않다. 동양고전을 방법적으로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고민이 된다.
00: 고전을 다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읽어야하는지가 중요하다. 논어와 장자를 읽고 싶다. 어렵지 않은 책이라도 읽었으면 좋겠다.
00: 동양고전을 읽어보고는 싶으나 꼭 읽고 싶은 마음은 없다.
000: 현대의 사상은 고전이 바탕이 되어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망하게 한 여자들이 있다면 그 여자들이 대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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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을 시작한지 13년이 다 되어 갑니다.
어떻게 본다면 이골이 났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일들이 있네요. ㅎㅎㅎ
최근에 들어간 모임에서 어떻게 해서 모임을 주도하게 됐는데,
이 모임이 내가 지금까지 해온 모임 중에서 뭔가 해야할 것이 많네요.
뭐하고 뭐하고 뭐하고...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모임을 자유롭게 해왔고,
거기에 길들여줬는지 알게 됐네요.
저는 자유가 좋습니다.
우리를 억압하는 게 너무 많은 현실 속에서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 모인
독서모임만큼은 조금 자유로우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생각보다 이 모임은 무언가 '형식'이 많네요.
형식도 중요하죠.
그런데 형식보다 중요한 건, 모임 그 자체가 아닐까요.
아, 제 말이 무조건 옳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에게 중요한 건 그런 형식이 아니라 모임 그 자체 같네요.
내가 모임에서 어떤 말을 하고, 내가 모임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우는가 같은.
그런 모임 자체가 중요하지 모임을 하기 위한 형식에 집착하는 것은,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안 드네요.
물론 모임을 이끄시는 분들은 제 생각 따위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겠죠.
그래서일까요? 저는 왠지 이별을 할 날이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식에 매달리다 보니 자유롭고 싶은 제 욕망이 저를 부채질하네요.
달아나자고.
네, 저는 달아날 겁니다. 저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죄송합니다. 떠날 예정이라서.
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제가 이런 인간이라서.
그럼 앞으로의 이별을 예상하며 새로운 모임 분들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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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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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사소한 부탁이지만, 이들 지엽적인 부탁이 어떤 알레고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는 않다.(95)

<사소한 부탁>은 제 입장에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칼럼을 묶은 부분과 시,소설,사진,영화에 관한 비평을 묶은 부분으로. 칼럼을 묶은 부분은 <밤이 선생이다>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동시대의 사건이나 사고에 관련한 즉물적 시각이나 생각을 정당화하는 단순한 칼럼이 아니라, 프랑스문학을 읽고 연구하고 비평하며 자신만의 인문학적인 시각을 갈고 닦은 한 문학연구자이자 문학평론가이자 인문학자가 자신의 삶에서 길어올린 인문학적 삶의 힘으로 써내려간 칼럼들은 <밤이 선생이다>처럼 깊이와 격조가 있습니다. 그건 황현산의 삶이 쌓아올린 깊이와 격조겠죠. 결국 황현산의 칼럼을 읽은 이가 받아들이는 것은 황현산의 삶의 힘인 것입니다. 칼럼에 대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입니다.

저한테 더 놀랍게 다가온 건 뒷부분의 비평입니다. 제가 요새 생각하는 게 비평에 관한 부분이거든요. 황현산의 비평이 제가 생각하는 부분을 잘 건드려서 놀랍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저는 황현산의 비평을 읽으며 게오르그 루카치의 명구가 떠올랐습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며,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소설의 이론> 중에서) 이 말을 저만의 방식대로 해석하며 제가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루카치의 명구는 저에게, 전근대인들이 느낀 자연과의 친밀감,일체감이 가져다주는 자연적이고 아름다운 감각을, 자연을 정복과 이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근대인들이 느낄 수 없고, 따라서 근대인들은 전근대인들이 느낀 행복감을 느끼치 못한 채 고립되고 외로운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이걸 비평에 적용해서 저만의 방식대로 해석해보면, 비평이란 고립되고 외로운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근대인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떠한 삶의 성좌를 그려나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게 무슨 말이야?'라고 물을 수 있겠죠. 좀 더 자세하게 말해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비평이란 비평의 대상이 되는 컨텐츠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 해석을 토대로 무언가 다른 자신만의 삶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것입니다. 이때 다른 삶의 지도를 그려나간다는 말은 자신의 의도했든 안했든 근대인이 잃어버린 전근대인의 감각이나 삶의 방식을 비평이라는 방식으로 새롭게 되살려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근대인이 잃어버린 어떤 인간적인 감각의 회복이자 인간성의 회복을 비평이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비평이 그려내는 삶의 지도, 혹은 삶의 성좌가 힘이 있어야 겠죠. 힘이 있어야 전근대인이 잃어버린 그 무엇을 되찾을 수 있으니까요. 더불어 그것은 근대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힘을 줄겁니다.

저에게 황현산의 비평은, 황현산이 비평을 통해서 그려내는 자신만의 삶의 성좌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깊이 있고 격조 있는 황현산의 비평의 언어 때문입니다. 또 비평에 황현산이라는 한 인물의 삶의 힘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문화 컨텐츠가 황현산이라는 인물의 삶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서, 그 인물의 언어라는 필터를 통과해서, 우리에게 다가와서 펼쳐보이는 비평의 성좌는 우리 삶을 재구성하고 재창조하여 우리 삶을 새롭게 만듭니다.  삶을 새롭게 하기, 그러면서 잃어버린 과거의 힘을 복원하기. 황현산의 비평이 보여주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비평의 개념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저에게 황현산의 비평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저로 하여금 다시금 비평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책을 덮으며 꿈꾸어 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저만의 비평을. 나의 삶이 녹아있는, 나만이 줄 수 있는 삶의 힘으로 가득한 비평을. 물론 그게 언제 가능할지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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