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밀란 쿤데라 전집 10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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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잃어버린 발자국들이 새겨져 있는 다시 별견된 오솔길, 몇 년간의 방랑 끝에 그의 섬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 귀환, 귀환, 귀환의 위대한 마술.(9)
향수는 무지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나타난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어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 내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는 고통 말이다.(11)
오래 기간 떠나 있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오고서야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건 당연한 거라는 명백한 사실에 놀라지.(171)
그들은 우리가 무얼 생각하는지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살아 있는 증거로서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에게 관대했고 그 점에 자부심을 느꼈지. 언젠가 공산주의가 무너졌을 때 그들은 나를 심문하는 듯한 눈초리로 쳐다보았지. 그때 사태가 악화됐던 거야. 나는 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거든.(171~172)

가끔씩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해서 어떤 생활을 했을까 같은. 둘은 행복하기만 했을까? 부부싸움도 하고 그렇지 않았을까? 왕자가 바람도 피고 신데렐라가 분노하는 일은 없었을까? 아니면 작은 문제들이 있어도 잘 참고 살아갔을까? 여러질문을 던지다 보면 신데렐라의 결말이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디세우스의 결말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이십 년의 방황 끝에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행복하기만 했을까?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의 삶은 문제가 없었을까? 이십 년 만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고향의 삶을 잘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에게 고향의 삶은 낯선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고향의 삶을 못 견디고 다시 또 떠난 건 아닐까? 답이 있을 수 없는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고 내 나름대로 상상하니 흥미롭더군요. 내 상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재해석과 재창조가.

<향수>를 읽고나니 밀란 쿤데라도 저와 비슷한 상상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향수>가 밀란 쿤데라식 '오디세우스'의 '재해석' 혹은 '재창조' 같아 보이거든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귀향과 향수의 이야기인 오디세우스를, 밀란 쿤데라는 자기 자신의 망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체코에서 망명했다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창조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식에서 벗어난 이야기로서.

처음부터 소설은 상식적인 궤를 벗어납니다. 책속의 주인공 중 한명인 체코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망명객 이레나는, 공산주의가 무너진 상황에서 프랑스인 친구 실비의 권유로 고향인 체코로 떠밀리듯 가게 됩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고향에서 떠난 사람은 고향에 돌아갈 기회가 생기면 당연히 가고 싶어 할 것 같은데, <향수>의 이레나는 자신은 갈 생각이 없는데 다른 평범한 이들의 일반적인 통념에 떠밀려 고향에 가게 됩니다. 고향에 돌아온 이레나가 겪은 일들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네, 소설은 그야말로 쿤데라 특유의 스타일로 이레나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귀향과 향수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다시 돌아온 고향은 이레나에게 너무나 낯섭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 따위는 잊으려고 합니다. 도시의 풍경도 공산주의의 과거 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공산주의 시절의 흔적을 지우려고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이레나가 떠나있던 시절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다시 만난 어머니도 이레나에게 별관심은 없고 자기자신의 삶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레나는 과거의 연인이자 이레나처럼 망명했다 귀향한 조지프와 만나서 그가 자신을 알고 있다고 여겨 기뻐하며 성관계를 맺지만, 성관계 후 그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레나는 절망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고, 자기 자신이 알던 과거의 흔적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 고향. 이레나에게 거기가 고향이 맞을까요? 다시 돌아온 자기 마음의 안식처이자 태어난 모태로서의 고향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까요? 그녀에게 체코는 단순히 태어나고 자란 장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이제 그녀에게 체코는 고향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그녀에게 고향은, 체코를 떠나서 자신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삶의 안식처가 되어준 프랑스가 아닐까요? 태어나고 자란 장소 그 이상의 의미 는 가지지 못하는 체코보다는 삶의 기반이자 삶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프랑스가 이제는 더 고향에 맞는 장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단언할 수 없지만, 저는 이레나가 프랑스를 더 고향처럼 여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지프는 어떤가요? 이레나보다 그가 상황은 더 나아 보인 것은 맞습니다. 고향에는 형도 있고, 과거에 자신을 도와준 친구 N도 건재합니다. 하지만 고향에 가니 다시 형을 만난 그에게 형수는 과거처럼 적의를 드러냅니다. 자기 스스로 포기했기에 부모님의 물건이나 집은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니고요. 고향의 가족은 그가 필요하지 않다고, 그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과거의 일기를 읽은 그는 과거의 자신이 너무 낮설어서 당황합니다. 고향에서 나고 자란 과거의 자기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친구 N은 친절하지만 그가 떠나고 나서의 얘기는 일체 하지 않습니다. 그도 조지프가 그동안 없었던 것처럼 대하는 것이죠. 낯설고 낯설어서 당황하는 그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같은 망명객 신세로 귀향한 이레나입니다. 둘은 서로를 위로하며 사랑을 느끼다 성관계를 맺죠. 그런데 문제는 조지프가 이레나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그저 그녀와 낯선 고향에 대한 정서를 공유하다 호감을 느껴 거기까지 간 것에 불과합니다. 실망하는 이레나를 두고 그는 '낯선' 고향을 떠나 익숙한 '타향' 덴마크로 돌아갑니다. 이레나처럼 그도 체코라는 고향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대신 익숙한 타향 덴마크를 자신의 새로운 고향으로 얻은 것이고요.

자, 여기까지 얘기하면 이 책은 오직 귀향과 향수의 얘기만 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밀란 쿤데라가 그렇게 단순하게 책을 쓰는 작가는 아닙니다. <향수>는 단순히 귀향과 향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체코가 고향이 아님에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와서 굉장한 매력을 느끼는 이레나의 애인 구스타프, 굉장한 생명력으로 구스타프를 유혹하다 성관계까지 맺는 이레나의 어머니, 조지프의 과거 애인으로 그에게 버림받고 자살하려다 실패하고 그 시점에 삶이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레나의 친구 말라다 같은 다양한 인물들이 빚어내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향수>를 다양한 관점과 이야기들이 어울려지며 빚어내는 소설로 만듭니다. 밀란 쿤데라 특유의 한 마디 말로 표현할 없 수 없는 소설이 만들어진 것이죠. 하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귀향과 향수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쓴 것에 불과합니다. 책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나오는 <오디세우스>를 보고 <오디세우스>가 이 책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자, 다시 오디세우스 얘기로 돌아갑시다. 오디세우스는 돌아온 고향에서 이레나나 조지프처럼 고향이 낯설다고 느낄까요? 아니면 이레나나 조지프와는 달리 고향을 익숙하게 느낄까요? 제가 명확하게 알 수는 없겠죠. 다만 <향수>를 보면 밀란 쿤데라는 오디세우스가 고향을 낯설게 느낄 것이라고 암시하는 대목을 써놨습니다. 아마도 밀란 쿤데라는 오디세우스가 귀향해서 고향을 낯설게 느낄 것이가고 생각하는 것이겠죠. 고향이 고향이 아니게 되고, 자신이 방황했던 곳들이 오히려 익숙해지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면 오디세우스는 어떻게 할까요? 자신이 느꼈던 향수가 현실이 아닌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오디세우스의 행동이 어떻게 이어질까요? 저는 다시 떠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고향이 아니라 자신이 익숙했던 곳으로. 어쩌면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과 자신이 익숙해진 장소로서의 고향을 계속해서 맴도는 방랑자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방랑자는 오디세우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포함될지도 모릅니다. 고향이 언제라도 낯설어질지 모르는 게 인생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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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정 -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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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서는 속았다는 것이 핑계가 되지 않는다.(5)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지만, 가르침을 준다.(13)
우리는 민주주의의 유산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그러한 위협으로부터 지켜 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잘못된 생각이다. 오랜 전통에 따라, 우리는 역사를 연구하여 폭정의 뿌리 깊은 근원을 이해한 다음 여기에 적절하게 대처할 방법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우리는 20세기에 민주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에 굴복하는 것을 보았던 유럽인들보다 결코 더 현명하지 않다.(16)
역사는 우리에게 자유를 모색할 수 있는 구조를 보여 준다. 역사는 여러 순간을 드러내는데, 각각이 다 다르지만 어느 것도 유일무이하지는 않다. 어느 순간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순간의 공동 창조자가 될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역사는 우리를 책임지는 존재로 만든다. 모든 것을 책임질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책임질 수 있다. 폴란드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는 그러한 책임 의식이 고립과 무관심을 깨뜨린다고 보았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렇게 고립과 무관심을 깨뜨린, 우리보다 고초를 더 많이 겪은 동지들을 찾을 수 있다.(162~163)

위에 적은 문장을 보니, 책의 저자인 티머시 스나이더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역사가 반복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죠.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주되어 반복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역사를 왜 공부하냐?' 혹은 '역사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도 이어집니다.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폭정>을 읽고나니 개인적으로 저는 반복되는 역사를 살피고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인가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게 되네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

그런데 역사에서 교훈을 얻은 것만큼이나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도 중요한 일인 건 틀림없습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변주되긴 하지만, 왜 인간들은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는가 하는 문제를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죠. '왜 일어나느냐'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이어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원인을 파악해야 그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있으니까요. <폭정>을 읽은 분들은 알지만, 책의 저자인 미국의 역사학자 티머시 스타이더가 꽂혀 있는 부분도 여기입니다. 특히 티머시 스나이더는 1930년대에 대공황을 맞아 유럽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전성기를 맞은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 자신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당선된 것에 충격을 받고 이 책을 쓰게 되었는데, 저자는 1930년대 유럽의 상황이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저자처럼 1930년대 유럽의 상황과 최근 미국의 상황이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내부의 문제를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선동정치의 성공도 그렇고, 합리적인 이성,대화,토론,존중,공존,이해 같은 민주주의 사회의 덕목을 무시하며 생존과 이득에만 집중하는 모습에서도 그렇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정치적 성공 자체가 그것을 나타내고 있죠. 아마도 나름대로 미국에서 성실하게 살며 미국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한 채 지내고 있는 이라면 화날만도 하겠죠. 민주주의의 덕목이나 가치를 존중한 인물이 아니라 오직 수단방법 안 가리고 당선에만 매달린 이가 대통령이 됐으니까요. <폭정>의 저자인 티머시 스나이더도 분노한 이들 중에 하나로 보입니다. 분노가 한 권의 책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티머시 스나이더의 분노는 생산적이네요. 자기 자신의 분노를 생산적으로 승화시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를 역사의 힘을 빌려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는 20세기에서 배운 20가지로(20-20 라임이 딱 맞네요.^^;;) 폭정을 이겨내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미리 복종하지 말라, 제도를 보호하라, 직업 윤리를 명심하라, 앞장서라, 직접 조사하라, 시선을 마주하고 작은 대화를 나누어라, 어법에 공을 들여라, 다른 나라의 동료들로부터 배우라, 위험한 낱말을 경계하라,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침착하라, 최대한 용기를 내라  같은. 저자의 제안이 특별한 건, 기본적으로 명령형의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는 실천적인 제안이라는 점입니다. 자기 계발서 느낌의 이 제안들을 뒷받침하는 건 자기계발서류의 성공 사례 나열이 아니라 철저하게 엄선된 역사적 사례들과 사회과학적 이론들입니다. 흡사 자기계발서류의 성공을 위한 방법들을 인문학적 지식이 뒷받침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 책도 성공을 바라는 건 맞습니다. 경제적 성공이 아닌 현 시대의 폭정에서 벗어나는 정치적 성공.

저자가 정치적 성공을 바라는 만큼이나 저도 미국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강대국인 미국이 자신들만 생각하며 이기적이고 이득만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지 못하는 건 세계적인 비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다른 나라들에게 도움도 안 되구요. 저자의 바람이 어떻게 될지는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점입니다. 미국인들도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정치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더 분발해주기 바랍니다. 아직 폭정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이루기에는 모자라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배우고 더 노력해서 부디 티머시 스나이더의 바람대로 정치적 변화를 이루어내기를. 한국에 사는 우리들도 <폭정>을 읽고 변화할 테니. 다 쓰고보니 희망사항만 잔득 적어놓은 주술적 느낌의 글이 됐네요. ㅎㅎㅎ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의 바다에 나 자신의 바람을 적은 '병 속에 든 편지'를 띄우는 기분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폭정>의 저자 티머시 스타이더가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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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공감필법 공부의 시대
유시민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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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는 글쓴이기 텍스트에 담아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야 한다. 그래야 독서가 풍부한 간접 체험이 될 수 있다. 간접 체험을 제대로 해야 책 읽기가 공부가 된다. 그리고 남이 쓴 글에 깊게 감정을 이입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가상의 독자에게 감정을 이입하면서 글을 쓸 수 있다. 자기 생각과 감정 가운데 타인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것을 골라낼 수 있고, 그것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쓰게 된다.(8)
공부가 뭘까요?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 작업'입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공부의 개념이에요.(17)
문자 텍스트를 읽을 때는 글쓴이가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한 지식, 정보, 생각,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읽어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게 되지 않으면 공감도 교감도 비판도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해야 책에서 얻은 것이 세상과 타인과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형성하는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죠?
그러면 이제 공부의 다른 측면인 글쓰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글쓰기는 뭐냐? 내가 가치있다고 여기는 정보, 옳다고 믿는 생각,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을 문자로 표현하는 일입니다. 글쓰기는 공부한 것을 표현하는 행위인 동시에 공부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문자 텍스트로 표현하기 전까지는 어떤 생각과 감정도 내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 모든 것은 문자로 명확하게 표현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겁니다.(75~76)

예전에 영화비평서를 한창 열심히 읽었을 때, 저만의 '비평론'을 한 번 만들어보았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개똥철학에 가까웠던 저만의 비평론을 저는 '공감비평'이라고 명명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이왕 썼으니 자세하게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한 공감비평이란, 일단 비평을 하는 텍스트에 깊이 공감하는 첫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텍스트에 깊이 공감하여 텍스트를 만든 이의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여 공감하거나 이해하는 공감의 단계를 거치고 나서 두번째 단계로 비평을 한다는 거죠. 공감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비평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공감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비평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깔려 있었구요.

<유시민의 공감필법>을 읽으며 과거에 만들어두었던 저만의 비평론인 '공감비평'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더군요. 책의 저자인 유시민 씨는 공부와 글쓰기에 관한 강연을 하면서 공감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했습니다. 유시민 씨에게 공부란 책을 읽고 그때의 감정이나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인데, 이 때 공감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거죠. 깊이 공감하는 독서의 경험을 해야 자기자신에게 무언가가 깊이 남고, 또 그것이 글쓰기에도 안정적인 토대가 된다는 말로 느껴졌습니다. 저도 유시민의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공감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는 것같지만(^^;;) 공감 없이는 제대로 된 독서의 경험도 없고, 독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글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독서를 하며 제가 뭐 엄청나게 깊은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수준 높은 글을 쓰는 것도 아니지만 제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봐도 정말 맞는 말이거든요.

무엇보다도 제가 유시민 씨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는 공감을 해서 책을 읽을 때 독서가 가장 기쁘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책에 아로새긴 생각과 감정과 삶의 흔적들을 깊이 공감하여 내것으로 받아들일 때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정을 느끼는 독서의 경험. 제가 이 맛을 알기 때문에 독서를 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유시민 씨는 공감해서 읽는 게 가장 좋은 독서의 방법이자 공부의 방법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조금 다르게 이야기해보면 저는 독서의 즐거움과 공부는 붙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독서야, 이건 공부야, 이건 즐거움이야 라고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공감하여 즐겁게 읽다보면 제대로 된 독서의 경험을 할 수 있고, 내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공부가 되는 것이죠. 독서와 즐거움과 공부가 하나로 되는 경험. 그것이 저는 공감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경험한 적은 없지만, 유시민 씨의 말에 따른다면 공감독서를 하다보면 좋은 글쓰기로도 이어지겠죠.

적다보니 의욕이 솟구칩니다. 공감해서 잘 읽고 즐거워하며 공부도 하고 글쓰기도 해야겠다는. 이 경험에 지름길은 없을 겁니다. 꾸준히 공감해서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쓰기를 하는 수밖에 없겠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저는 유시민 씨의 말대로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끈기있게 밀어붙여 보겠습니다. 그런데 벌써 글 한 개를 썼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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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5-23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짧은 글을 선호하는 시대가 될수록 남이 쓴 글에 감정을 이입하고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반대로 글 쓰는 사람들은 더 많아질 거예요. 짧은 글을 쓸 수 있는 SNS는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고, 공감(인정)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최적의 글쓰기 공간이죠. 사람들이 인정하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많으면 자신의 글에 향한 타인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페이스북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페이스북에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글 잘 쓰는 사람치고는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어요. 타인에게 비판을 받으면 어떻게든 자신의 글이 틀리지 않았다는 식으로 답변을 해요. 대화 분위기가 꼬이면 감정싸움으로 번집니다. 그런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서 페이스북 계정이 있는데도 안 써요.. ^^;;

짜라투스트라 2018-05-24 14:38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런 일이 종종 있죠. 그래서 저는 페이스북은 그냥 아는 사람들하고만 소통하는 걸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 지음, 문이얼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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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지역이란 미국의 경제적 요구에 종속되어야 할 곳을 말한다. 가능하다면 지구 전체까지도 포괄할 생각이었다. 이 계획은 기회가 되는 한 그대로 실행되었다.(23)
권력자들은 조용하고 수동적인 국민을 원한다. 이들을 골치 아프게 만들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잠자코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행동들이 지속적이고 조직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124)

촘스키 책을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책을 펼치기 전에 '언제적 촘스키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대 중반만 해도 저는 촘스키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불만, 반항에 대한 열망, 개혁과 발전, 정의와 윤리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20대 중반의 저에게 촘스키는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변형문법생성이론'으로 현대 언어학을 대표하는 언어학자가 되어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도 평온하게 명성을 얻은 채 지낼 수 있었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끊임없이 미국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하고, 전세계 분쟁지역의 평화를 외치는 행동하는 지성인의 면모를 계속해서 보여온 인물입니다. 베트남전 반전 시위와 민권 운동, 신자유주의의에 대한 비판, 9.11 사태 이후에 일어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판적 발언, 전세계에세 전쟁과 폭력과 독재에 저항하는 이들에 대한 지지표명까지 실로 그의 인생은 행동하는 지성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과 더불어 미국의 행동하는 지성의 대표적인 인물인 그가 쓴 책을 20대 중반의 제가 어떻게 안 읽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시간은 저를 무디게 했습니다. 20대 때 가졌던 열정과 이상과 믿음은 시간의 힘앞에 마모되고 사사그라들더군요. 제 열정과 이상과 믿음이 사그라드는 만큼, 촘스키의 책에 대한 제 열정도 사라져갔습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촘스키는 저에게 과거에 열심히 읽었던 저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흘러 며칠 전에 촘스키 책에 제 눈앞에 보였습니다. 아, 과거의 유물 같은 그 이름 촘스키. 저는 신기했습니다. 마음먹고 읽기로 했죠. 읽기로 하면서도 '이미 다 아는 내용인데 새로운 것은 없을거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럴수가. 저는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읽으며 놀랐습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렇게 새롭고 생생하다는 점에. 어쩌면 저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과거의 많이 읽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 믿고 게으름을 피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에 많이 읽은 것은 과거에 불과함에도, 뇌세포속에 담긴 기억이 시간이 지나며 망각의 늪에 빠진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다 안다는 식의 오만함으로 무장해 있었던 것이죠. 책을 읽으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 시간은 어떤 책이든 다르게 읽을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30대의 저는 20대때의 뜨거운 열정 가득한 독서와는 다른, 조금 나이 먹었지만 그래도 열정은 간직한 차분한 열정으로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누군가는 노엄 촘스키를 싫어하고 엄청 비난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가 맨날 미국을 지나치게 깎아내리고 비난한다고. 미국의 정치적 폭력과 미국적인 식민주의의 실상을 지나치게 과장한다고. 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까지 부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노엄 촘스키가 말하는 것의 가치입니다. 그는 우리가 쉽게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여줍니다. 그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만듭니다. 우리가 손쉽게 접하는 폭력과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폭력이 자행됐고 아직도 폭력이 자행되며 많은 이들이 죽고 희생되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그는 얘기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은 킬링필드는 알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캄보디아의 진보적인 크메르루주 정권이 자행한 대학살이죠. 언론들이 엄청 떠들었고, 영화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의 친미 독재자인 수하르토가 저지른 동티모르 대학살은 얼마나 알고 있나요? 들어본적은 있나요? 미국와 친했던 인도네시아의 독재자 수하르토가 저지른 그 참혹한 학살을 아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동티모르 대학살과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가 뭐가 어떻게 다르기에 이렇게 유명세에서 차이가는 나는 걸까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미국과 친했던 중앙 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니카라과,과테말라 정권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아나요? 제 생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 나라들의 친미정권이 저지른 학살을 아는 사람이 얼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촘스키의 말을 빌려 이 학살 중 하나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예수회 신자들은 미국이 창설하여 훈련시키고 장비까지 지원한 정예 조직 아틀라카틀 부대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조직은 1981년 3월에 미 육군 특수부대 학교가 반게릴라전 전문가 열다섯 명을 엘살바도르에 파견하면서 창설됐다. 이들은 창설되자마자 대대적인 학살을 시작했다. 미국 교관들조차 이 군인들이  "유별나게 잔인해서... 우리 교관들은 포로들을 죽인 후 귀만 잘라오지 말고 제발 산 채로 잡아오도록 설득하느라 늘 애를 먹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1981년 12월, 이들은 살인과 강간, 방화를 자행함녀서 1000명도 넘는 민간인을 살해했다. 그들은 그 뒤에소 수많은 마을을 폭격했고 사살하거나 물속에 빠드리는 등의 방법으로 추가고 수백 명의 민간인을 죽였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여자와 어린이, 노인 들이었다.(55~56)

이번에는 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신부의 증언입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죽음의 특공대가 사람을 그냥 죽이지만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의 머리를 베어 창에 꽂아 이곳저곳에 세워놓았다. 엘살바도르 재무경찰도 남자들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는 데 그치지 않고 생식기를 잘라내어 시체들의 입에 물려놓기까지 했다.(56)

으~~ 너무 끔찍한 얘기들입니다. 이것까지 쓸 생각은 없었는데 쓰다보니 생생함을 위해 이 정도만 적었습니다. 존재하는 최악의 조직으로 불렸던 ISIS 못지 않은, 어쩌면 그들보다 더한 생생한 폭력에 대한 증언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식의 끔찍한 폭력과 학살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었는데 우리들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ISIS,킬링필드,유대인 대학살은 알고 있지만 우리는 동티모르,엘살바도르의 학살은 모릅니다. 우리는 왜 이런 사건들을 모르는 것일까요? 언론은 왜 이런 사건들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일까요? 저는 이 부분에서 노엄 촘스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식의 균형을 위해서, 한 개인이 가진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기 위해서.

생각해봅시다. 킬링필드도 나쁘고, ISIS가 저지른 짓도 나쁘고, 유대인 대학살도 나쁩니다. 마찬가지로 동티모르,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의 학살도 나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는 한쪽의 나쁨만 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과 사이가 안 좋은 세력이 저지른 학살이나 미국 정치권에서 힘을 가진 이들이 당한 피해만 안다는 말입니다. 이건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요? 이건 세상을 편향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지금까지 한쪽의 시각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의 주류 세력이나 기득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자, 그들이 부유하지 않거나 평범한 이들이 인식했으면 하는 시각. 여기서 깨어나야 합니다. 세상을 조금 더 폭넓고 균형있게 바라보는 것은 지금의 편향된 인식보다 훨씬 괜찮은 일입니다. 노엄 촘스키의 책들은 당연하게도 이것에 도움이 됩니다.

책은 왜 읽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다양한 대답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책을 읽고 더 나은 존재가 되고, 더 괜찮은 인식과 시각을 가지기 위해서라는 대답도 있겠죠. 자, 여기 책을 읽으면 기존의 시각을 깨부수고 더 균형잡히고 폭넓은 인식과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이 책을 읽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두려워서 책을 안 읽겠습니까. 눈 딱감고 읽으면 됩니다. 적고보니 무언가 책팔이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군요. 출판사랑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물로서 변명을 해보자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경험을 하며 제가 깨달은 게 지금까지 제가 적은 내용입니다. 어차피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저와 똑같은 경험을 할지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확실한 건, 저에게는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읽는 경험이 유효하고 좋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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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머니 밀리언셀러 클럽 148
로스 맥도날드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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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몬테비스타 주민으로서 말해 줄 게 있어요. 여기선 거의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답니다. 거의 무슨 일이든 벌어져 왔고.(44~45)
현재는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그 수수께끼와 의미를 아프게 의식하게 만들 수 있다.(254)
비극의 후속편이 아니라 전원시를 위한 배경 같았다. 인생은 짧고 달콤하다고 난 생각했다. 달콤하고 짧고.(307~307)

진실을 아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것일까요? 누군가 감추려고 하는 것들을 알아야만 세상이 선하고 행복해지는 것일까요? 지금 보다 나이가 어릴 때는 진실을 아는 것이 진실을 모르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보니 진실을 아는 것이 반드시 좋거나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진실을 몰라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실을 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거나 좋은 것은 아니니까요.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는 고독하게 진실을 쫓는 탐정의 모습을, 미국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의 스타일로 풀어낸 소설입니다. 고독하고 쓸쓸한 탐정 루 아처는 현실의 씁쓸한 실상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과 마주서는 인물입니다. 그가 마주치는 현실은, 미국의 신화를 구성하는 것중 하나인 가족의 이상이 무너져내린 동시대의 미국의 모습입니다. 사랑의 신화가 무너져내린 부부, 해체된 가족, 서로를 믿지 않는 가족관계, 더 나아가 서로를 이용하다 비극을 맞는 모습들까지. 과거의 이상이 통하지 않는 그 시대의 미국 가족의 비극적인 현실을, 탐정 루 아처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을 가진 채 파헤칩니다. 자신의 행동이 그들의 상처를 후벼파다 못해 터뜨린다고 해도. 왜냐하면 이미 곪을 때로 곪을 상처는 결국에는 모두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미 그들은, 곪을때로 곪은 상처 때문에 큰 피해를 입고 입고 있어서 누군가가 그 상처를 터뜨려주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루 아처는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바란 행동을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로스 맥도날드는 가족의 해체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바람을 담아서 탐정 루 아처를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동시대의 현실이 작가로 하여금 이 시리즈를 만들게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루 아처 시리즈에서 무너져 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모습과 그 무너져내림 속에서 사그라져 가는 가족의 이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루 아처는 형체만 남은 가족의 이상과 아메리칸 드림을 두고 괴로워하는 인간들을 돕는 탐정입니다. 그것이 본인에게 너무나 아파서 견디기 힘들다 해도.

<블랙 머니>도 루 아처 시리즈의 패턴을 따라갑니다. 부유한 도시 몬테비스타에 와서 의뢰인을 만난 그는 의뢰인의 의뢰를 받아들여 사건을 파헤치다 추악한 현실을 마주합니다. 연쇄살인, 폭력, 도박, 불륜, 원조교제, 협박. 마치 막장 드라마에 나올 듯한 자극적인 사건들의 한가운데를, 사람들을 돕고 싶어하는 인간적인 마음을 가진 채 나아가는 탐정 루 아처는 아무리 비극적이라고 해도 진실에 가닿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아프다고 해도 우리 앞에 진실을 펼쳐 보이고 그는 쓸쓸하게 사건을 마무리합니다.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 봅니다. 진실을 아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것일까요? 누군가 감추려고 하는 것들을 알아야만 세상이 선하고 행복해지는 것일까요? <블랙 머니>를 읽고 나니 더욱 더 쉽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나오지 않네요. 그래도 확실한 건, 루 아처는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점입니다. 그는 곪을때로 곪은 상처와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니까요. 저는 어떨까요? 저는 아직까지 확답을 내놓지는 못하겠습니다. 비겁하게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는 말은 할 수 있겠네요. 저에게는 지금 이 대답이 그나마 최선이니까요.

"당신이란 사람을 모르겠어요, 아처. 목표가 뭐예요?"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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