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서평이 아니다. 책에 대한 내 나름의 잡담이다. 이 점을 명확하게 밝혀둔다.
설날 연휴 3일만에 겨우겨우 <민주주의의 시간>을 다 읽고 한숨이 나왔다. 왜 이 책을 설날 연휴의 처음으로 읽었을까 후회하며. 내가 한숨을 내쉰 건, 책을 쌓아놓고 처음으로 선택한 책 때문에 연휴가 다 날라가고 쌓아놓은 나머지 책을 다 읽지 못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한숨의 가장 큰 원인은, 책 읽기의 경험이 내가 책을 읽기 전에 책읽기의 경험에 가졌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내가 가졌던 기대의 반의 반의 반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그동안 내가 책을 읽고 나서 강하게 비판했던 한병철,고미숙,강준만의 책들은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그들의 책은 읽을 만했고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그 주장들중에서 비판할 것들은 비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이 책은... 이 책은...
잠시 할 말이 없어진다. 멍하니 앉아 머릿 속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어떤 말부터 해야할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그 많고 많은 말 중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말을 해보겠다. 우선 나는 이 책이 저자인 박상훈 씨의 주장에 대한 반론들에 대항하는 의도로 쓰여졌다고 생각된다. 책 곳곳에 너무 정당이라는 말이 넘쳐난다. 정당, 정당, 정당, 정당... 정당을 너무 강조하고 정당정치의 중요성과 당위성만 강조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정치적 요소들의 비중은 약화된다. 운동이라든지 직접 민주주의라든지 시민정치라든지.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온갖 것들을 갖다 붙인다. 정당정치보다 직접 민주주의가 더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성이 낮다든지(그 말은 정당정치가 직접 민주주의보다 더 직접 민주주의적이라는 말이다. 근데 이게 무슨 소리지?), 팰로우십이 을의 권리가 갑의 권리보다 약화되고 리더십이 더 민주적이고 을의 권리가 강화된다는(책에서는 이에 관해 뭐라고 정당화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냥 팰로우십과 리더십의 의미를 자기 식대로 정의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된다. 개념들을 자기 멋대로 정의하고 말하는데 거기에 내가 따라가야 할 의무가 있나?), 여론에 접근할 확률이 높은 중산층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정치를 이끌어나가면 정치가 잘못될 확률이 높다든지(진짜 묻고 싶다. 이 주장의 근거를 댈 수 있냐고. 계속해서 히틀러를 이야기하는데, 히틀러를 중산층만 지지했나? 과거에 공산당과 사민당을 지지했던 하층계급도 히틀러를 많이 지지했던 이야기는 왜 하지않나. 유럽에서 기승을 부리는 극우정당의 대표적인 지지계층이 하층계급이라는 사실은 왜 이야기를 안 하는가. 미국의 트럼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인물중에 백인 중산층만 있나? 백인 하층계급의 강력한 트럼프 지지는 왜 이야기 안 하나? 트럼프가 힐러리를 이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국 러스트 벨트의 백인 하층 노동자 계급의 강렬한 지지를 정치학자인 저자가 모른다고?) 하는 주장들을 다시 떠올리니 한숨만 놔온다. 이렇게 내 생각을 조금만 적었는데 벌써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흡사 책에 너무 먼지가 많아서 털면 먼지가 수두룩 나오는 것과 같다. 너무 할 이야기가 많아서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저자는 너무 비판을 많이 받아서 역설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더 강하게 굳힌 같다. 자신의 주장이 옳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라 옳아야 하기 때문에 옳은 것이 된 것처럼.
쓰다보니 마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이 한가지는 말해야겠다. 정치에서 저자의 말처럼 정당정치가 그렇게 중요할까. 정당정치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까. 오히려 지금까지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20세기식의 계급에 기반한 정당정치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이어서 이어지는 나의 말들.
미투운동을 아십니까? 정당정치가 아니라 남성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서양에서 시작한 미투운동이라는 일종의 정치적 운동이 서양을 거쳐 한국에까지 도달해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시죠? 이런 운동이 정치적 상황을 더 좋게 만드는데 큰 힘을 발휘하는 게 보이시죠? 미넥스트 운동은 아십니까? 최근에 벌어진 플로리다 총기난사 사건에 충격을 먹은 십대들이 자신들도 다음 총기난사 사건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총기규제를 주장하며 벌이고 있는 정치적 운동인데 이 운동이 민주당,공화당의 무기력한 정치인들보다 더 미국총기협회를 압박하고 있는 것은 아십니까? 촛불집회는 어떻습니끼? 저는 정당정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정당정치와 정치적 운동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정치'를 형성해나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정당정치가 운동보다 더 중요하다거나 더 효율적이라거나 더 민주주의에 잘 맞는다는 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것을 대조해서 정당정치를 민주주의 정치의 장에서 우위에 두려는 시도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는 게 너무 읽기 괴롭습니다. 둘은 서로를 이어주면서 정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둘을 맥락에 맞게 적용하면 됩니다. 어떤 맥락이나 상황에서는 정당정치가 위력을 발휘합니다. 정당정치가 하지 못하는 일들은 정치적 운동이 하기도 하죠. 둘의 우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맥락과 상황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아마도 저자분은 저의 말이 일부분은 맞다고 말할 것입니다.(아니, 다 틀렸다고 할 수도 있겠죠. 제가 자신의 주장을 곡해하고 완벽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라는 정치의 장에서는 정당정치가 더 중요하고 더 유효하다고 말하겠죠. 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슬프고 한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정치가 더 중요하고 더 유효하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정당,정당,정당하고 외치는 모습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그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