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지음 / 돌베개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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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습니다. 이 분노를, 희생자들을, 판사,검사로서의 책임과 직업의식을 저버리고 무고한 이들을 희생시킨 판검사들을, 권력의 의향에 따른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이들과 권력에 저항한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권력의 주구들을, 군사독재 시절의 암울한 분위기와 시대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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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의 논조로 일관되었던 전의 글을 다시 바라보며, 문득 다른 생각이 든다. 책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균형을 잡아야겠다는. 나의 불치병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 편협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불편하다. 하나의 대상을 오직 하나의 관점으로만, 한쪽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한다는 의미이다. 나의 불치병에 따라(??) 나는 <민주주의의 시간>에 대한 이전의 글과 다른 시각의 글도 써보기로 한다. <민주주의의 시간>이 주장하는 정당정치의 장점에 관해서.

현대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직면하고 있다. 기술의 혁신과 발전, 전지구적인 자본의 흐름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문화적인 교류의 증대와  빠른 사회의 변화는 이전과 달리 현대인들에게 '안정'이라는 말을 쉽게 쓸 수 없게 만들고 자신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생존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삶을 유지해나가기 위해 계속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런 사회상 속에서 정치라는 영역에 우리가 모든 것을 투자할 수는 없다. 정치적 의사결정에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쏟을 수 없고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없다면, 우리를 대신해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나름의 정치적 행위를 해온 집단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통해서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면 된다. 여기에 가장 적합한 집단이 어디일까?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정당'이 그 집단이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당은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대강이라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정당이 아니었으면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우리는 수없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내가 쓴 글을 바라본다. 무언가 틀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내 머리 속 생각을 가다듬고 다시 글을 써본다.

비록 현대 기술의 발달로 평범한 이들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고 그에 따라 현대인들은 과거보다 정치적 의사결정을 더욱 효율적으로 정확하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중요한 이유는 정당이 현실 정치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집단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무조건 정당을 불신하고 정당정치를 넘어선 정치를 하자는 건 가장 큰 힘을 가진 중요한 현실의 정치 집단을 무시하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행동이자 이론일 수도 있다. 직접 민주주의,시민정치, 운동도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에 또렷이 존재하는 정당을 무시하는 정치적 행동이 현실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옳을 수는 없다. 우리의 정치적 행동에서 정당을 배제하지는 말자. 정당이 있다면 그 정당이 제대로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정치적 행동이다. 이것을 나쁘게 보지 말자. 현실에 존재하는 정담의 힘도, 정당정치가 정치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내가 쓴 글을 바라본다. 이 정도만 적으면 되는 걸까. <민주주의의 시간>의 저자 박상훈 씨는 더 강하게 정당을 강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박상훈 씨가 아니기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 분명한 건 나도 정당의 강한 현실적 영향력을 알고 있고, 정당을 통한 정치행위가 충분히 합리적이고 올바른 정치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다만 오로지 정당정치만으로 정치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고, 정당정치만으로 정치적 행위가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었다.

불치병에 따른 글쓰기는 이 정도에서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정당정치의 전문가도 아니고, 정치영역의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이러니저러니 해봐야 더 추해질 것 같아서. 객관적인 균형 잡기라는 나의 불치병 치유는 이쯤에서 마쳐야 할 것 같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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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8-02-26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박적 글쓰기는 하지마세요. 시간과 에너지 낭비?
아마,처음의 비판적 글쓰기가 옳은 판단이었을것 같습니다.^^

짜라투스트라 2018-02-26 22:12   좋아요 0 | URL
균형잡기라는 건 결국은 내 생각의 좌표축을 어디에 위치시키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겠죠. 이 생각의 좌표축을 지정해서 그것을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따라 자기만의 비평이 시작되는 건데, 리뷰나 서평 형식과 유사한 글을 쓰면서 비평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저 같은 인간은 이런 식의 글쓰기를 앞으로도 계속 할 확률이 높습니다. 책을 읽고 제 나름대로 글을 쓰다보니 생기게 된 저만의 습관이나 버릇이라고 해야할까요 ㅎㅎㅎ 어쨌든 sprenown님의 고견은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글을 쓸때 sprenown님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어떻게 쓸지 고민 해보겠습니다.^^

sprenown 2018-02-26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제 의견 무시하시고 자유로운 글쓰기 하세요! 저도 그냥 생각나는대로 쓸뿐입니다 이자리가 논문심사하는것도 아닌데...

짜라투스트라 2018-02-26 22:1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 글은 서평이 아니다. 책에 대한 내 나름의 잡담이다. 이 점을 명확하게 밝혀둔다.

설날 연휴 3일만에 겨우겨우 <민주주의의 시간>을 다 읽고 한숨이 나왔다. 왜 이 책을 설날 연휴의 처음으로 읽었을까 후회하며. 내가 한숨을 내쉰 건, 책을 쌓아놓고 처음으로 선택한 책 때문에 연휴가 다 날라가고 쌓아놓은 나머지 책을 다 읽지 못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한숨의 가장 큰 원인은, 책 읽기의 경험이 내가 책을 읽기 전에 책읽기의 경험에 가졌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내가 가졌던 기대의 반의 반의 반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그동안 내가 책을 읽고 나서 강하게 비판했던 한병철,고미숙,강준만의 책들은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그들의 책은 읽을 만했고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그 주장들중에서 비판할 것들은 비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이 책은... 이 책은...

잠시 할 말이 없어진다. 멍하니 앉아 머릿 속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어떤 말부터 해야할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그 많고 많은 말 중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말을 해보겠다. 우선 나는 이 책이 저자인 박상훈 씨의 주장에 대한 반론들에 대항하는 의도로 쓰여졌다고 생각된다. 책 곳곳에 너무 정당이라는 말이 넘쳐난다. 정당, 정당, 정당, 정당... 정당을 너무 강조하고 정당정치의 중요성과 당위성만 강조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정치적 요소들의 비중은 약화된다. 운동이라든지 직접 민주주의라든지 시민정치라든지.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온갖 것들을 갖다 붙인다. 정당정치보다 직접 민주주의가 더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성이 낮다든지(그 말은 정당정치가 직접 민주주의보다 더 직접 민주주의적이라는 말이다. 근데 이게 무슨 소리지?), 팰로우십이 을의 권리가 갑의 권리보다 약화되고 리더십이 더 민주적이고 을의 권리가 강화된다는(책에서는 이에 관해 뭐라고 정당화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냥 팰로우십과 리더십의 의미를 자기 식대로 정의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된다. 개념들을 자기 멋대로 정의하고 말하는데 거기에 내가 따라가야 할 의무가 있나?), 여론에 접근할 확률이 높은 중산층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정치를 이끌어나가면 정치가 잘못될 확률이 높다든지(진짜 묻고 싶다. 이 주장의 근거를 댈 수 있냐고. 계속해서 히틀러를 이야기하는데, 히틀러를 중산층만 지지했나? 과거에 공산당과 사민당을 지지했던 하층계급도 히틀러를 많이 지지했던 이야기는 왜 하지않나. 유럽에서 기승을 부리는 극우정당의 대표적인 지지계층이 하층계급이라는 사실은 왜 이야기를 안 하는가. 미국의 트럼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인물중에 백인 중산층만 있나? 백인 하층계급의 강력한 트럼프 지지는 왜 이야기 안 하나? 트럼프가 힐러리를 이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국 러스트 벨트의 백인 하층 노동자 계급의 강렬한 지지를 정치학자인 저자가 모른다고?) 하는 주장들을 다시 떠올리니 한숨만 놔온다. 이렇게 내 생각을 조금만 적었는데 벌써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흡사 책에 너무 먼지가 많아서 털면 먼지가 수두룩 나오는 것과 같다. 너무 할 이야기가 많아서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저자는 너무 비판을 많이 받아서 역설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더 강하게 굳힌 같다. 자신의 주장이 옳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라 옳아야 하기 때문에 옳은 것이 된 것처럼.

쓰다보니 마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이 한가지는 말해야겠다. 정치에서 저자의 말처럼 정당정치가 그렇게 중요할까. 정당정치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까. 오히려 지금까지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20세기식의 계급에 기반한 정당정치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이어서 이어지는 나의 말들.
미투운동을 아십니까? 정당정치가 아니라 남성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서양에서 시작한 미투운동이라는 일종의 정치적 운동이 서양을 거쳐 한국에까지 도달해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시죠? 이런 운동이 정치적 상황을 더 좋게 만드는데 큰 힘을 발휘하는 게 보이시죠? 미넥스트 운동은 아십니까? 최근에 벌어진 플로리다 총기난사 사건에 충격을 먹은 십대들이 자신들도 다음 총기난사 사건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총기규제를 주장하며 벌이고 있는 정치적 운동인데 이 운동이 민주당,공화당의 무기력한 정치인들보다 더 미국총기협회를 압박하고 있는 것은 아십니까? 촛불집회는 어떻습니끼? 저는 정당정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정당정치와 정치적 운동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정치'를 형성해나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정당정치가 운동보다 더 중요하다거나 더 효율적이라거나 더 민주주의에 잘 맞는다는 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것을 대조해서 정당정치를 민주주의 정치의 장에서 우위에 두려는 시도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는 게 너무 읽기 괴롭습니다. 둘은 서로를 이어주면서 정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둘을 맥락에 맞게 적용하면 됩니다. 어떤 맥락이나 상황에서는 정당정치가 위력을 발휘합니다. 정당정치가 하지 못하는 일들은 정치적 운동이 하기도 하죠. 둘의 우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맥락과 상황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아마도 저자분은 저의 말이 일부분은 맞다고 말할 것입니다.(아니, 다 틀렸다고 할 수도 있겠죠. 제가 자신의 주장을 곡해하고 완벽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라는 정치의 장에서는 정당정치가 더 중요하고 더 유효하다고 말하겠죠. 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슬프고 한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정치가 더 중요하고 더 유효하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정당,정당,정당하고 외치는 모습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그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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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8-02-26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정당정치가 많이 부족하죠 양당정치가 확고한 서구와 달리.
저자의 개인적 이익 때문인지,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염원하는 순수한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최장집파니 뭐니 하는것.별로 바람직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아직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짜라투스트라 2018-02-26 14:11   좋아요 0 | URL
자기 주장에 대한 정당화가 너무 심한 것 같아 조금 읽기가 괴로웠습니다. 자기 주장의 옳음만 주장하는 게 제가 보아온 우리 사회의 지식인상과 겹쳐져서요.^^
뭐,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대화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하는 대화가 오해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 신중한 접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무지한 저의 입장에서는 sprenown님의 이야기에 뭐라고 쉽게 말하기가 어렵네요. 서로 얼굴 보고 대화한다면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어쨌든 댓글 써주셔서 감사하고요, sprenown님의 고견은 잘 들었습니다.^^

sprenown 2018-02-26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말인줄 알겠어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결국은 사익을 추구하는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그냥 입진보들!

2018-02-26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6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8-02-26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진 않았지만 저자가 엄청 잘난척 하면서 꼰대짓 했는가 보네요.

짜라투스트라 2018-02-26 14:51   좋아요 0 | URL
아 잘난 척하며 꼰대짓을 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자기 정당화가 심하다는 것은 맞습니다.^^
 

책은 불로 태워 죽이지 못합니다. 사람은 죽지만 책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나 힘도 사상을 강제수용소에 영원히 가두어놓지 못합니다. 그 어떤 사람이나 힘도 이 세상으로부터 각종 독재에 맞서 싸우는 영원한 투쟁의 구현체인 책을 빼앗가 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책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p.8)

1933년 5월 10일 베를린. 수천 명의 대학생들이 번쩍거리는 횃불을 들고서 안개 낀 거리를 걸었다. 그들은 커다란 베벨 광장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광장에는 이제 벌어지려는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4만 명의 구경꾼들이 나와 있었다. 베벨 광장 한가운데는 길이 3.7미터, 높이 1.6미터의 거대한 장작더미가 있었다. 광장에 도달한 학생들은, 광장을 천천히 구불구불 기어다니던 차량에 다가가서 자동차 안에 가득 쌓여 있던 책들을 불길 속으로 던져넣었다. 군중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나치의 인종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이 썼다는 이유로, 무수한 책들이 불길 속에서 사라졌다. 나치의 지원을 받는 것이 확실한 학생 단체의 대표가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독일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나치당의 전국적인 운동을 위협하는 '비독일적인' 책과 문헌은 전부 불태워 없애야 합니다. ... 그들은 독일 사상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해 그 사상을 드높이지 못했고 결국에는 독일 정신을 해칠 것입니다."(p.18~19) 독일의 선전장관인 괴벨스도 현장에 도착해서 일장연설을 했다. "독일 민중의 영혼은 이제 그 자신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화염은 옛 시대의 종언을 고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환히 밝히고 있습니다. 일찍이 젊은이들이 과거의 잔재를 이처럼 깨끗하게 청소하는 멋진 권리를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만약 늙은 사람들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우리 젊은이들처럼 지금 한 일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옛것은 화염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 가슴의 불꽃으로부터 새것이 만들어질 것입니다."(20) 이 책 불태우기 행사는 독일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당연하게도 그와 함께 사상과 표현의 자유, 인권은 독일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것은 1938년 폴란드 침공 이후에 2차 대전이 벌어지고, 독일이 대부분의 유럽 지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무수한 책들이, 그림들이, 예술작품들이 비독일적이라는 이유로, 독일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아리안족을 모독한다는 이유로, 유대인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사라져갔다.

대서양 건너편에 위치한 미국은 1933년의 분서 사건이 일어나자 작가들,언론인들,지식인들이 나서서 독일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헬런 켈러는 분서 사건을 일으킨 학생 단체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반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당신들이 사상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들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 폭군들이 예전에 이런 짓을 하려 했지만, 사상은 더욱 강력하게 되살아나서 오히려 폭군들을 죽였습니다. ... 당신들은 내 책과 유럽의 최고 지성인들의 책을 불태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책들 속에 들어 있는 사상은 수많은 경로를 통해 흘러 들어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활성화시킬 겁니다."(p.22) 미국 지식인들의 독일에 대한 반감은, 독일이 2차 대전을 일으키고 반유대주의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유럽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것이 알려지자 평범한 미국인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이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1940년 미국이 독일과의 전쟁에 참전하며 많은 젊은이들이 징집되어 전선으로 나가는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독일인들과 다른 반응을 보인다. 미국 육군과 도서관 사서들은 힘을 합쳐 전선에 나가는 미군들을 돕기 위해 책을 대규모로 보내는 운동을 벌인 것이다. 일명 전국 국방 도서 캠페인. 나중에 승리 도서 캠페인으로 이름이 변경되는 승리 도서 캠페인은 군인들에게 커다란 호응을 얻으며 계속되다가 '진중문고'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책의 관점에서 보자면, 2차 대전은 책을 불태우고 없애려한 독일군과 책을 읽으라고 권한 미국군의 대립으로도 볼 수 있다. 반문학적이고 반독서적인 독일군과 독서를 권장하는 미국군의 대립. 이 대립을 더 파고들어가보면 두 개의 대립하는 투쟁의 가치가 나타난다.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성을 위해 책이나 예술은 없애버려도 된다는 독일군과 군인들에게도 책을 읽을 자유를 권하는 미국군의 대립은, 우리가 너희보다 우월하다는 우월감을 위한 투쟁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를 빼앗길 수 없다는 투쟁의 대립인 것이다. 우월감을 위한 투쟁과 자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투쟁. 대립하는 두 가치 사이에서 어느 가치가 나을지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자유를 빼앗길 수 없다는 투쟁'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두 가치 사이의 투쟁에서 진중문고가 탄생했고 그 진중문고가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여려모로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다.

군인들에게 진중문고가 소중한만큼 내게도 진중문고가 소중하다. 2월 23일에 열린 책나루 모임에 진중문고의 탄생을 다룬 <전쟁터로 간 책들>을 읽고 모여서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24일 토요일 오후 다섯 시. 전쟁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혹시라도 전쟁을 염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우리는 전쟁 때문에 탄생한 진중문고의 탄생을 써내려간 <전쟁터로 간 책들> 읽고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에 그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내용을 적어본다.

몽당연필: 반양장이라는 책 자체의 형태가 좋았다.
진중문고의 탄생이라는 과정이 설명이 잘 되어있는 교양역사책이다.
새로운 접근이라서 우리 모두가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소남발: 책에 리얼함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여러가지 책을 알 수 있어서 그 방면으로 도움을 받았다.
잿빛하늘: '전쟁은 야전에서 이기기 전에 마음속에서 먼저 이겨야 합니다'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독일과의 전쟁이지만 미국 내부의 불평등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려준 것도 인상 깊었다.
몽당연필,미소남발: 전쟁이 끝났다 여성들은 주방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짜라투스트라: 책과 예술을 거부하는 편과 책과 예술의 자유를 주장하는 편의 싸움으로 2차 대전을
바라보는 시각이 신선했다.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를 끝냈다. 앞으로 '책나루문고'가 탄생할지 안할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삶'이라는 제목의 자신의 인생을 담은 자신만의 문고본 책을 자신의 삶으로 써내려가는 인생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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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2-26 0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 경험이 많은 나라들은 전시 상황에서도 진중문고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시스템을 잘 활용해요. 제대하는 군인들을 위해서 취업 관련 도서 위주로 진중문고를 마련하는 군대의 모습이 좋았어요.

짜라투스트라 2018-02-26 13:3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안녕하세요!!^^
부산고전함께읽기모임 세번째 시간을 가집니다.
두번째 시간에서 얘기한 대로 3회 모임부터는 본격적으로 고전을 읽을 예정입니다.
이번 모임에서 읽을 예정의 책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숲출판사,천병희 번역)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고 그리스 고전의 맛을 느끼고,
서양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핵심적인 사상들을 한 번 만나봅시다.^^




3회 모임
1.일시:2017년 3월 3일 토요일 오후 다섯 시
2.장소:서면 텐스
3.함께 읽을 책:소크라테스의 변론(숲출판사,천병희 번역)

-고전이라는 게 이름은 들어봤지만 읽은 사람은 찾기 힘든 게 현실인데(^^;;),
함께 읽으면 분명히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혼자 읽을 때보다 부담은 덜고, 재미는 두배가 되고, 거기다 유익하기까지 한
고전 읽기를 함께하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함께 나누어보아요.^^
-나이,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임시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시면 됩니다.
-함께 고전을 읽자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참가하기고 싶으시면 쪽지로 연락주시거나 밑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고전 독서 모임의 목표
1.고전을 함께 읽는다.
2.고전을 통해 이 시대를 조망하는 시야를 갖는다.
3.고전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이 목표를 가지고 함께 고전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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