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닌데, 책을 읽다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짧게나마 몇 자 적어본다.
책을 다 읽지도 않고 말하는 것이 문제가 있을수도 있겠지만,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에까지 차올라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음을 먼저 밝히겠다...
나는 일반화를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무언가를 일반화한다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일반화된 대상의 부분적 특성을 가지고 그 대상의 전체적인 정의를 내리는 것 같아서. 일반화가 가진 '성급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하지만 논리를 전개하고 내가 생각하는 주장이나 개념을 말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반화를 자주 이용한다. 마음 속으로나마 일반화의 위험성을 되뇌면서.
내가 일반화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일반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시간>은 소위 '최장집 학파'라고 불리는 출판사 후마니타스의 대표 박상훈 씨의 저작이다. 내가 '최장집 학파'라고 말할 때는 어떤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말한 것은 아니다. 최장집 학파라고 불린다는 게 박상훈 씨의 주장을 다 포괄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충분히 '최장집 학파'라는 말이 일반화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일반화의 위험성이 선입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주의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아무리 주의를 해도 일반화가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에 정당이라는 말이 너무 많이 나온다. 책 곳곳에 정당이라는 단어가 박혀 있고, 저자는 정당이 정치적 현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해서 강조하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지나친 강조는 민주주의적 정당 정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최장집 학파 비판에 대한 반박처럼 느껴진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나는 지나친 강조에서 저장의 주장이 옳다는 느낌을 받는 게 아니라 저자의 불안을 본다. 정당정치가 옳아서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정치가 옳아야 하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저자의 불안을 본다는 것은 독서의 피로감을 불러온다. 계속해서 정당정치가 강조되고 이 단어가 계속해서 사용되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저자의 주장을 반박하게 된다. 정당은 정치에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정당 그 자체가 정치의 모든 것을 해결한다거나 설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정당정치의 강조는 정치의 제도적 틀로서 아주 중요한다. 하지만 정치는 '제도적 틀'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를 넓게 본다면 정치는 제도적 틀로서 포섭되지 않는 비제도적이고 비절차적인 '그 무엇'까지 포함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정치학은 그 무엇까지 포함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면 저자는, 내가 일반적인 최장집 학파 비판자들처럼 정치에서 운동이나 직접 민주주의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부류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운동이나 직접 민주주의를 강조할 생각이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치에서 정당 못지않게 '정치적인 운동'이나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도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전정부를 몰아낸 촛불 집회를 보라. 정당 정치론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려면, 한국의 정치가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이루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말밖에 할 게 없다. 하지만 정치적 운동이나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말한다면 이 현상은 '정당정치론' 보다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정당정치론과 정치적 운동,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모두 포괄해서 큰 틀에서 이야기한다면 앞의 두 주장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더 쓰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쓰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은 박상훈 씨가 '정당 정치'를 너무 강조한 것의 반작용이 아닐까 싶다. 정치에서 제도와 절차만 너무 강조하는 것의 반작용이라고 할까. 제도적인 것만이 정치의 전부가 아님을,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이 표출되는 공론장으로서의 정치의 역할이 반드시 지금의 현실 정치 제도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제로 체험한 인간으로서, 박상훈 씨의 주장을 어떤 특정 영역만 강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멈출 수가 없다. 생각해보니, 설날 연휴 때 읽을 책을 쌓아놓고 읽다 이 책에 대한 반론 때문에 며칠 째 멈춘 현실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만든 것 같다. 읽고 반론하고 읽고 반론하고를 반복하면서 끝날 줄 모르는 기약 없는 책읽기 앞에서 나의 생각은 강력한 반작용의 힘으로 책을 떠나 글로 이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