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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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소년이 온다-한강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 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17)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95~96)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114)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115~116)
죽음은 새 수의같이 서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지나간 여름이 삶이었다면, 피고름과 땀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삶이었다면, 아무리 신음해도 흐르지 않던 일초들이, 치욕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삶이었다면, 죽음은 그 모든 걸 한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라고.(122)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130)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135)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어.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207)

G의 이야기
(앞부분 생략)
지금까지는 한강 작가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해봤습니다. 뭐 대단한 발표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저만의 '한강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디까지나 저만의 생각에 불과하지만. 이제는 저만의 작가론에 덧붙여서 <소년이 온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한강 작가가 '서사'에 능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강 작가가 특유의 독특한 언어를 바탕으로 하는 스타일의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예상 밖으로 <소년이 온다>는 생생하게 '서사'가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궁금증이 생긴 저는 혼자서 계속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어떻게 이야기가 생생히 살아 남아 읽는 독자에게도 강력하게 전해지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절대적인 해답은 없겠죠. 고민 끝에 저 나름의 해답은 나오더군요. 저는 <소년이 온다>의 서사가 생생히 살아 있는 건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서사에 작가의 창조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이야기의 흐름 속에 한강 작가가 접속하여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소설을 써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펄떡이며 살아 숨쉬면서 여러 사람들과 우리의 역사에 자신의 흔적을 아로새긴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힘이 한강 작가가 써내려간 글속에서 굽이굽이 맺혀 있는거죠. 어쩌면 이 소설은 한강 작가가 쓴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사건이, 그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힘이, 한강 작가의 몸을 빌려서 <소년이 온다>라는 글로 나타난 것일지도 모르죠. 뭐 이것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대답은 아닐지 모르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 생각한 것은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소년'의 의미입니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질문도 저만의 대답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역시 고민끝에 저만의 해답이 나왔고, 그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년'은 이 소설에서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마지막 날에 전남도청에 있다 죽은 소년 동호는 살아남은 사람들과 소년의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아무리 큰 사건을 겪은 이들이라도 일상이라는 관성에 매몰되다 보면 생물학적으로 죽어 있지만 정신적으로 죽어 있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데, 이미 생물학적으로 죽은 소년은 그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남아 그들에게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게 만들고 그들의 삶을 살아 있게 만들거든요. 저는 그런 부분들을 보면서 문득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의 '역사의 천사'가 떠올랐다.

"클레(P. Klee)가 그린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라고 불리우는 그림이 하나 있다.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그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떨어지려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그의 입은 열려 있으며 또 그의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들 앞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쉬임없이 쌓이게 하고 또 이 잔해를 우리들 발 앞에 내팽개치는, 단 하나의 파국을 바라보고 있다.
천사는, 머물러 있고 싶어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깨우고, 또 산산히 부서진 것들을 모아서 다시 결합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는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또 그 폭풍은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천사는 그의 날개를 더 이상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성완 편역,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중 <역사철학테제>, 민음사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 가능한 '역사의 천사'. 저는 <소년이 온다>의 '소년'에게서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이 된 '역사의 천사'가 보였습니다. 과거를 거쳐 현재,미래로 일직석으로 나아가며 '발전'한다는 근대적 시간관속에서 미래로 떠미는 진보적인 시간의 폭풍을 견디면서 과거로 시선을 돌리고 날개짓을 하는 '역사의 천사'가 흡사 <소년이 온다>의 소년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미래로 가면 발전하기에, 미래에 구원이 있다는 근대의 속삭임에 넘어가 정신적으로 죽어 있는 삶을 살다 과거로 눈을 돌리면 거기에서 날개짓을 하며 과거의 힘을 통해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소년'은 우리에게 미래가 아닌 과거에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여 현재를 더 낫게 만들고 미래까지 나아가는 방식의 구원으로. 그러니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과거를, 역사를, 죽은 소년 동호로 대변되는 희생자들을, 아직도 고통 받는 생존자들과 연관된 이들을, 이 사건을 일으킨 이들을. 이 사건을, 이 역사를, 이 사람들을 잊지 않아야 우리 사회의 구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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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14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전 책을 읽으면 그저 이야기를 중심으로 느낌만 갖게 되는데
이렇게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나름의 작가론까지 생각해보시는 자세가 대단하세요. 저도 이 책을 읽었지만 5.18이라는 역사적 의미만을 담았었는데 짜라 님께 배우고 갑니다.

짜라투스트라 2017-12-14 18:01   좋아요 1 | URL
아직 많이 부족한 저이지만 이런 글 써주서셔 감사합니다^^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정치의 시대
최강욱 지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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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최강욱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이 정치를 심판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은 결국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세력의 이해관계와 힘의 우열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며, 정치권력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5~6)
정치를 심판하는 것은 언제나 주권자들이며, 올바른 법을 만들어낼 정치를 강제하는 것도 주권자들이고, 법률가들의 위선을 감시하고 바로잡는 것도 주권자의 몫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7)
민주주의의 역사는 결국 모두가 같은 권리를 지니고 태어난 같은 사람이고, 그 사람들의 뜻이 모여 만들어진 법을 능가해 군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는 자들은 철저히 응징해야만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온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땅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는 토대가 튼튼해질 때, 정치는 비로소 제 역할을 하며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이고 법은 비로소 제 역할을 하며 주권자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밝히건대 올바른 정치가 법을 지배하고 심판하게 해야 한다. 법과 법률가에 대한 환상은 단호히 배격해야 하며, 그들에게 거는 과도한 기대는 올바른 정치를 위한 노력으로 치환되어야 한다.
깨어 있는 유권자가 주권자로 굳건히 설 때 바른 정치가 이루어지고, 그 정치를 통해 만들어진 정의로운 법이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8~9)

헌법의 정의대로라면 주권자가 인정하지 않는 권력은 권력이 아니다.(19)
헌법이 제일 우선이고 그다음이 법률이고 마지막으로 자기 양심에 따라서 재판을 해야 되는데 자기 생각을 양심이라고 하면서 먼저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법률을 갖다붙이고 헌법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게 대한민국 재판의 현실인 것 같다.(97)
정치 현실은 주권자의 각성과 감시와 비판이 있지 않으면 절대 달라지지 않습니다.(102)
법은 건전한 상식의 범위를 뛰어넘을 수도 없고 뛰어넘어도 안 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원칙과 기준이 곧 법에도 통용되고, 상식이 확립된 사회가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절대로 놓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질 때 올바른 정치권력이 만들어지고, 시민의 건전한 상식이 뒷받침된 올바른 법이 만들어집니다. 그 법에 의해서 올바른 법문화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주권자인 시민들이 법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입니다.(106)
법이 정치를 심판하는 도구가 되기보다 정치를 통해 올바른 법이 만들어지고, 법을 집행하거나 법을 통해 판단하는 이들은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주권자의 입장에서 가장 올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이 훨씬 건강한 민주주의의 길입니다. 올바른 정치는 주권자의 뜻이 그대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진다면 법은 당연히 정치의 아래에 놓여야 하지요.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법이 올바로 만들어지고 올바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주권자에겐 일종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128)

과거에 논쟁을 즐기던 시절의 저는 동시에 심판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너는 나쁘다, 당신은 나쁘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쁜 주장을 하는 인간은 나쁘다... 온갖 심판질에 세상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뭔가가 잘못된 것 같더군요. 이렇게 온갖 것에 심판질을 해대는 너는 나쁘지 않은건가? 너의 '심판질'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닌가? 너의 심판질에 무슨 근거가 있는가? 니가 뭔데 세상의 온갖 것에 심판질을 하는가? 저 자신을 비판하는 질문을 던지다 보니 찔려서 더 이상 심판질을 못하게 되더군요. 지금도 가끔씩 제가 심판질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 시간이 과거의 저와 지금의 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됩니다.

과거의 저와 연관지어서 이런 생각을 한 번 해옵니다. 어린시절부터 공부 잘하는 수재로서 인정받고 그 상태로 계속 성장하여 좋은 대학에 간 이가 있다고 칩시다. 그 사람은 많은 이들에게 시험치는 능력과 등수로서 인정받아 자존감이 비대해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마도 혼자서 '나는 뛰어난 인간이야,나는 최고야, 내가 못하는 것은 없어'라고 속으로 외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거기서 더 나아가 사법시험에 붙어 검사와 판사가 됐다고 칩시다. 자존감이 비대해지다 못해 만능감에 빠진 인간이 '심판질'을 전문으로 하는 법조계 인사가 되어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힘마저 가지게 된다면 어떤 인간이 될까요? 좋은 인간이 되면 좋겠지만, 지나친 자존감과 자신감이 과연 그 사람을 좋은 인간이 되게 만들까요? 오히려 그 사람은 다른 인간을 자신의 아래로 보는 오만한 인간이 되지 않을까요? 그 사람이 정치적 권력마저 가지게 된다면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요? 물론 제가 어떤 특정한 인간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만(^^;;)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사람은 결코 좋은 인간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큰 해악을 끼치지 않으면 다행일겁니다.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에서 최강욱 변호사는 그 오만방자하고 충분히 나빠질 수 있는 사람들이 현재 한국의 판사나 검사일 수 있다고 얘기하며 정치적 주권자인 우리가 판사나 검사에 대한 신화적인 믿음을 버리고 깨어 있는 유권자가 되어 올바른 정치적 현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 정치적 현실 속에서 올바른 법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진짜 올바른 말인데, 너무 올바른 말이라서 실현되기가 쉽지 않은 말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실현되기 쉽지 않은 올바른 말이기에 지켜진다면 말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그 올바른 말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분명히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것이 확실하기에. 자, 이제 시작해봅시다. 올바른 정치와 올바른 현실을 위해서 깨어 있는 유권자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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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2-1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법개혁은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우리사회에서의 가장 큰 적폐중의 하나죠.교육개혁 언론개혁 종교개혁. 적폐가 산적해 있는 우리나라.

짜라투스트라 2017-12-10 21:42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정치의 시대
한홍구 지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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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광장,민주주의를 외치다-한홍구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지만, 늘 꾸준히 진보하는 것은 아니다. 긴 역사를 들여다보면 지금과 같은 진보의 시기는 아주 짧은 반면, 정체의 시기는 좀 길고, 퇴보의 시기는 아주 길었다. 역사에서 진보의 기회과 주어졌을 때 성큼성큼 나아가지 못하면 제법 긴 정체와 아주 긴 퇴보의 시기를 견뎌낼 수밖에 없다.(6)
똑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돌아본다. 같은 듯, 반복되는 듯하면서도 늘 새로운 것이 역사다. 역사가 전개되어온 과정을 보면 당장 내일, 다음 달, 내년을 예측하기는 어려워도 역사의 큰 흐름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믿음은 생기게 마련이다. 그 믿음은 흔들리는 대지에서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이요, 험난한 바다를 헤쳐나가는 대한민국호의 복원이다.
오늘 우리가 보낸 하루가 내일의 역사가 된다. 이 험한 역사를 만들어온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과 스스로의 실천이 절실한 때다.(8~9)
역사가 그런 것입니다. 망치는 놈 따로 있고 구한다고 죽어라 길바닥에서 촛불 드는 사람 따로 있는 법이지요. 역사가 망하지 않고 흘러온 건 촛불 드는 사람들이 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28)
광장이라는 공간은 언제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그러나 광장이 진짜 의미를 찾는 순간은 우리가 광장을 메웠을 때입니다.(61)
민주주의의 과정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이 그랬습니다. 끈질기게, 이길 때까지 계속해왔기 때문에 역사에서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늘 쥐어터지고 피 흘리고 그대로 말입니다.(77)
 
독서모임을 10년 넘게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의 시간이었습니다.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배를 눈앞에 두고도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데다 자기들 책임이 아닌 척하는 정부, 거짓 보도로 일관하는 언론, 세월호 문제를 제기하면 오히려 이상한 인간으로 몰아가는 특정 정치 세력이 설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절망감과 어두움이 독서 모임을 하는 시간에도 영향을 미쳐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함께 좌절감과 절망감과 어두움을 느끼며 저도 힘들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때에는 쉽게 농담도 건네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독서모임을 하면서 가장 즐겁고 힘찬 시기는 지난 연말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촛불을 들고 외치며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경험, 정권을 몰아내고 시민들 자신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체험을 한 이들이 보여주는 즐거움과 기쁨과 긍정의 힘은 특별했습니다. 언제나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미약한 힘밖에 가질 수밖에 없다 여겼던 평범한 이들이 정권을 몰아내고 정치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변화를 이루어냈을 때 느꼈던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분이 독서모임 하는 내내 공기를 떠돌고 다니니 그때의 모임이 얼마나 즐겁고 긍정적이었던지요!!
  
<광장,민주주의를 외치다>를 읽으며 대조적인 두 시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을 쓴 한홍구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광장이 폐쇄된 억압의 시간과 광장이 열린 개방적이고 열정적인 시간이 너무나 달랐기에 벌어진 대조였던 셈이죠. 아무 말도 하지말고 절망을 받아들여라와 말하고 외치며 변화를 이끌어내자의 차이랄까. 두 시간을 모두 경험한 저에게 민주주의의 언로로서의 광장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광장 없이는 민주주의의 생명력이 없다고 해야할까요?
 
책에서도 확인했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다행인 것은 광장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민중의 열망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2000년대 들어서 특정 시기마다 일어난 촛불시위와 지난해 연말의 촛불집회까지. 한국인들은 살아서 죽은 삶을 살며 지속적으로 절망을 받아들이는 삶 대신에 때가 되면 들고일어나 변화를 이끌어내는 걸 선택했습니다. 언제나 좋은 결말을 이끌어낸 것은 아니지만, 살아서 죽은 삶을 사는 것을 거부하며 생생히 살아 있는 저항의 삶을 선택하는 한국인들이 열정이 언젠가 좋은 결말을 만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항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삶의 질적 변환을 이끌어내는 것이죠. 비록 이것이 제 생각에 불과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그 시간이 오리라는 걸. 제 믿음이 보답받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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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2-08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역사는 확실히 나선상의 발전과정 밟아가는것 같아요 반동과 퇴보속에서 결국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요.이러한 역사발전과정 속에서 ‘광장‘의 역할이 중요했죠. 하버마스까지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여기 알라딘 북풀공간이 건전한 공론장의 기능을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짜라투스트라 2017-12-08 21:3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북플이 건전한 공론장의 기능을 하기 바랍니다^^
 
이젠, 함께 읽기다 - 독서공동체 숭례문학당 이야기
신기수 외 지음 / 북바이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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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이젠, 함께 읽기다-신기수 외

독서가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다른 생각을 듣고 그 차이를 경험하는 독서토론은 실천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삶의 문맥에 놓인 타자를 체험하고, 또 경험하는 자리다. 그러므로 독서토론은 인문적 실천의 장이다.(24)
마음에 새살이 돋아나게 하려면 내면의 어떤 힘이 약동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소망과 가능성을 응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을 꺼내어 존재의 날개로 펼칠 때 기꺼이 갈채를 보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우정과 환대가 곧 힐링이 된다.(60)
물질의 풍요가 아닌, 정신의 풍요를 원하기에 책을 진지하게 대하고 자신의 언어로 곱씹고 싶어 한다.(88)
가장 좋았단 점은 명쾌한 답이 아니라 모호한 그 느낌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그 모호함을 견디는 힘인 것 같다(158)
진정 '자기 찾기'를 하고자 한다면 타인과 무관한 존재로서의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포함한 이 네트워크는 어떤 구조이고, 이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168)
독서토론은 세게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독후활동이다. 책 속의 지식을 체화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은 물론 외부의 세계를 분석하고 정리해 스스로 인생관을 바로 세울 수 있다.(177)
독서는 언어의 규칙 안에서 하나 이상의 의미를 구축하려는 독서가의 노력을 반영하는 생산적인 과정(221)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유용한 것이 결핍되었을 때의 그 답답함을 생각하기 바란다. 억압된 욕망은 그것이 강력하게 억압될수록 더욱 강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중략) 인간은 문학을 통해, 그것에서 얻은 감동을 통해, 자기와 다른 형태의 인간의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확인하고 그것이 자기의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226~227)

독서토론을 한지도 거의 12년째가 되어 갑니다. 처음 군대를 제대하고 철학책과 사회과학책만 잔뜩 읽고 토론이 아닌 말싸움을 하고 싶어 독서모임에 들어가서 독서토론을 시작한 이래로 말다툼, 독서모임 내에서늬 싸움과 강제탈퇴, 우울증의 시간, 문학으로의 입문, 지금에 이르기까지 독서토론을 하며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겪은 시간이었습니다. 켜켜이 쌓인 시간만큼이나 독서토론에 대한 제 생각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복합적인 시각으로 독서토론을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제가 독서토론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건 다시 인생을 거꾸로 돌린다고 해도 독서토론을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만큼 제 인생에서 책과 더불어 독서토론이 무수한 영향을 미친 것이 맞고, 그것에 긍정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를 힘들게 한 것도 많지만, 그것보다 더욱 더 좋은 영향을 미친 것도 많습니다. 우울증으로 삶의 생기가 죽어가던 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길로 인도한 것도 책과 독서,독서토론이고, 예전과 달리 쉽게 우울해지지 않는 자아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과 책과 독서, 독서토론입니다.(책과 독서,독서토론만이 저를 치유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요인도 있지만 책과 독서, 독서토론이 큰 힘을 발휘한 것은 맞습니다.^^)

저처러 <이젠,함께 읽기다>의 저자들이 말하는 독서토론의 힘을 실감하는 독자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독서토론의 힘을 몸소 체험하고 삶과 자아가 변화한 인간으로서 저는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독서토론의 힘에 거의 공감합니다. 함께 책을 읽고, 나이와 직업과 성별에 상관없이 책에 대해 대화하며 웃고 즐기고, 때로는 치열하게 논쟁하며 소통의 시간을 가지고, 그것을 반복하며 자신의 생각과 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변화시키고, 살아온 나날들이 12년이 넘어가는 데 어찌 제가 독서토론의 힘에 대해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독서토론의 힘을 겪어온 산 증인으로서 저는, 저자들처럼 독서토론의 힘을 믿고 많은 이들이 이 경험을 하고 좋은 힘을 받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바란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겠죠. 책 읽는 사람을 찾기 힘들고, 실용적인 책이거나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책이 많이 팔려나가기 어려운 척박한 한국의 독서 현실 속에서 독서토론이라는 경험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믿음이 있습니다. 독서토론이라는 경험을 계속 해나간다면 그 이전과는 다른 인간이 되어 더 좋은 자아를 가지고 더 좋고 괜찮은 인간을 위해 나아간다는 믿음. 물론 어디까지나 제 믿음이지만, 저는 그럴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 확신이 의심스럽다면 한 번 독서토론을 해보시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는 전제는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욱 더 많은 이들이 독서토론을 하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기 바라며 이제 글을 마치려 합니다. 참 글을 둘러보니 독서토론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간증 같은 글이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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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2-0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토론을 하게 되면 확실히 책만 읽으면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분위기를 느껴요. 책을 읽으면서 잘못 생각한 것을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피드백할 수 있어요. ^^

짜라투스트라 2017-12-07 10:32   좋아요 0 | URL
네 독서토론은 정말 좋은 경험입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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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바꾸는 것이다.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18)
제가 버클리에서 '인지과학 입문'이라는 수업을 진행하며 프레임 연구를 강의할 때, 처음으로 하는 일은 학생들에게 한 가지 과제를 내주는 것입니다. 그 과제는 바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은 것'인데요, 말 그대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옮긴이] 저는 이 과제에 성공한 학생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코끼리'와 같은 단어는 그에 상응하는 프레임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어떤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지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끼리는 크고, 펄럭이는 귀와 긴 코가 있고, 서커스와 연관되어 있고... 등이지요. 이 단어는 그러한 프레임에 의거하여 정의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합니다.(23~24)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닙니다. 본질은 바로 그 안에 있는 생각입니다. 언어는 그러한 생각을 실어 나르고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26)

예전에 저와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흥분해서 싸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회의감이 들더군요. '어차피 말도 안통하는 사람이고 말을 해봤자 내 인생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데다 이 사람도 자신의 생각을 바꿀 여지가 전혀 없는데 이렇게 쓸데없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자료와 증거를 제시하고 논리적으로 얘기하는데 상대방은 '안 들을건데, 안 믿을건데'로 응수하는 수준이라 도저히 내가 이 사람과 왜 말을 하고 있는지 의아해지더군요. 말다툼을 끝내고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식의 말다툼은 하지 않겠다고.

2006년도에 이미 읽었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독서모임 때문에 다시 읽으며 저 말다툼이 떠올랐습니다. 나와 말다툼을 한 나이 많으신 분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얘기한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의 틀로서의 프레임을 완벽하게 구축해놓고, 언어는 그 프레임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자신의 프레임을 벗어나는 말은 완벽하게 무시하는 모습으로. 저는 그 말다툼을 통해 조지 레이코프의 말이 얼마나 옳은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2006년에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읽고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적이 있습니다. 2006년에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읽고 그것이 얼마나 옳은지 알았고, 인식틀로서의 프레임과 인식틀을 전하는 도구로서의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저마다 자신만의 인식틀인 프레임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나서 세상을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재구성한 뒤에 그것을 언어로서 표현하고 있는 셈인데, 이 프레임과 말의 힘을 무시하고 말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2006년에도 저의 고민은 깊었습니다.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나의 프레임을 타인에게 전하기 위해 어떤 말을 써야할까. 깊은 고민만큼 나름대로 여러 방법을 써봤습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타인의 벽은 높았고 저의 좌절은 깊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저만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저만의 언어를 써왔죠. 어느새 시대가 바뀌고 나서야 깨달은 게 있습니다. 저만의 노력과 더불어 시대의 변화가 따라주어야 성과가 있는 거라고. 시대의 변화는 내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그냥 저의 이상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믿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수밖에 없다고. 그렇습니다. 조지 레이코프가 제시하는 것들이 어떤 희망을 준다고 해도 시대가 따라주어야 성과가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묵묵히 자신을 믿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제는 미소가 지어지네요. 미소로 글을 끝내려 하는데, 마지막으로 덧붙여서 미국인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네요. 조지 레이코프가 과거에 저에게 주었던 힘만큼 트럼프 시대를 살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제가 힘을 주고 싶네요. 노력하다보면 분명 좋은 날이 있을 거라는 말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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