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김민철.김승은 외 지음, 민족문제연구소 기획 / 생각정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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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조한성 외

강제동원 100년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근본적인 노력은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데 있다.(13)
지난 세기 가혹한 고통을 당하고 질곡의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우리가 우리 시대의 정의와 공동체의 번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120)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은 산 자들의 일이다.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산 자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죽은 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은 결국 산 자가 죽은 자의 이름을 빌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이 의례를 넘어 생활 속에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참된 의미의 추모와 기억이 아닐까.(303)
우리는 일본, 일본인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제 침략 및 일제 강제동원의 '강제성''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세력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용서 없이 역사 청산을 이룰 수 없다.(405)

R의 고백

이 책을 읽는 도중에 너무 슬퍼서 책을 덮고 잠시동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문뜩 내 머릿속으로 심리학, 자아 정체성, 역사가 뒤얽힌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마침 제가 제 생각을 발표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그때 떠오른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뭔가 논리적으로 잘 정리된 생각은 아니지만 저만의생각이 담긴 것이기에 이해하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거에 겪였던 몇 년에 걸친 심리적인 자가 치유의 시간에 있어서 제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제 자신의 여려 면모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가 치유의 시간을 가지기 전의 저는, 저 자신의 나쁜 면, 추한 면, 악한 면, 부끄러운 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만 해왔습니다. 회피는 저 자신에 대한 부정이나 환멸, 자학으로 이어지더군요. 우울증이라는 문제가 생기고, 치유의 과정을 가지고서야 저는 저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를 회피하다 못해 부정하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가 치유의 시간을 가지고서야 저는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를 끌어안고 그것이 저 자신의 자아 정체성임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수용과 인정의 과정을 거친 저는, 그 이전의 저와는 다른 존재가 되더군요. 과거보다 조금 더 건강하고, 강해지고, 더 나은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의 존재. 저는 지금의 저가 좋습니다.

이 자아 정체성을 인식하는 과정의 문제를 단지 '자아'의 문제를 넘어서 확장시켜봅시다. 공동체,사회,국가의 영역으로. 공동체,사회,국가에도 긍정적인 면와 부정적인 면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긍정적인 면만 기억하고 부정적인 면은 무시하고 없는 것처럼 말하고 기억한다면 그 공동체가,사회가, 국가가 건강하고 괜찮은 공동체,사회,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아 정체성에 문제가 생긴 저 자신의 과거의 모습처럼, 그 공동체,사회,국가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역사의 문제를 여기에 연결한다면 좋은 역사만 기억하는 공동체,사회,국가는 어딘가 있는 문제가 있는 공동체,사회,국가라는 말이 되겠죠? 어쩌면 역사를 공부하고 배우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라는 존재가 속한 공동체,사회,국가가 더 건강하고 건전하며 나은 공동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읽으며 저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건전한 국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피해,차별,학살,폭력,강제동원 등의 사건들을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사과나 보상도 안한 채 자신들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키고 그것만 기억하는 나라가 어떻게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한국인 피해자들을 돕는 일본인들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각각의 개인들을 떠나서 일본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일본 사회 전체를 역사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일본만 문제가 있는 걸까요? 한국은 어떤가요? 한국은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돌아보고 더 건강하고 건전한 공동의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일까요?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보면 이 부분에서 한국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요? 저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저는 저 자신이 자기 치유를 했던 것처럼, 미약한 힘이지만 저 자신이나마 더 괜찮은 공동의 정체성을 가진 사회로 한국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위해 더 많은 역사책을 읽고 혼자서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과 저 자신의 생각을 교류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입니다. 저의 이런 미약한 행동이 작은 파문이나마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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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의 시대
진중권 지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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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란 무엇인가-진중권

책을 다 읽고 멍하니 앉아 있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무조건 서평을 써야한다는 1독1서평 원칙을 언제부터인가 실행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서평 쓸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글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써야하나부터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데 뻔한 서평은 쓰기 싫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진다. 일반적인 서평이 아닌, 조금은 다른 서평을 써야겠다는 의지에 굴복하여 나는 나의 정치적 궤적을 훑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 서평을 빙자하여.

나의 정치적 궤적.

 극우 마지막해: 만주를 한국이 점령해야 한다. 전라도에 대항하여 경상도가 뭉쳐야 한다. 빨갱이들이 한국을 점령하게 두어서는 안된다.
-그때 영향 받은 책이나 언론:환단고기, 조선일보 등

진보 원년: 한국은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다. 한국을 바꾸기 위해서는 급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그때 영향 받은 책: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당신들의 대한민국,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폭력과 상스러움


극좌 원년: 모든 형태의 권위적 권력은 필요없다. 국가도, 사회도 모두 해체되어 새로운 급진적인 사회로 태어나야 한다.
-그때 영향 받은 책:만물은 서로 돕는다,저주받은 아나키즘,아나키즘 이야기 등

멋대로 정치 1년: 정해진 이념 속의 정치이념을 받아들이기 보다 상황에 맞는 정치 이념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정치이념이나 사상이든 상황에 맞게 제대로 쓸 수 있다면 그것이 괜찮은 정치가 될 것이다.
-그때 영향 받은 책:1984,동물농장,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자기 앞의 생,장미의 이름,눈먼 자들의 도시,픽션들,백년의 고독,한밤의 아이들,제5도살장,언젠가 세상은 영화가것이다,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모두스 비벤디,트랜스크리틱,멈춰라 생각하라,중용 등등

멋대로 정치 8년 째(2017): 정치와 삶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생활이 곧 정치고 정치가 곧 생활이다. 거기에서 정치니 생활이니 철학이니 하는 구분은 무의미하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실행하는지가 내 삶과 정치 모두를 규정지을 것이다.
-영향 받은 것들:내가 읽은 책 모두, 내가 살아가는 삶 전부가 나에게 영향을 끼친다.

낡은 반북주의, 반공주의 이념만큼 강력하게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을 제약하는 요인은 없을 겁니다. 현상을 타개하려는 어떤 시도도 이념 앞에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지요. 새로운 생각은 무조건 위험한 생각, 시뻘건 생각으로 공격을 받았으니까요. 복지를 늘리자고 해도 빨갱이, 국보법을 폐지하자고 해도 빨갱이, 정부를 비판해도 빨갱이, 북한과 대화하자고 해도 빨갱이, 뭔가 다른 얘기를 하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 붙이니, 그 두려움 때문에 시민들 스스로 내적 검열을 해서 아예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 이제 우리도 과감히 정치적 상상력을 펼쳐야 합니다. 자유로워지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평등해지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 더 용감해져야 합니다.(144~145)

책에 덧붙여.
어떤 특정 정치이념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얽매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러면서도 자신의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의 정치적 이념이나 선택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끊임없이 파악하고 자신의 정치적 주장이나 생각을 성찰하는 것. 자신의 정치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정치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주저하지 않고 정치적 상상력을 펼치되 그 파급력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좋은 정치란 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정치적 태도에서 파생되는 어떤 특정한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정치적 태도나 생각에서 좋은 정치가 태어난다고 여기기에.

끝.
여기가까지 내가 생각한 이 책에 대한 나만의 서평이다.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의 한계 속에서 써내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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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2-03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 주제를 다룬 책을 리뷰하는 일은 난감해요. 내 생각을 소신있게 밝히면 욕 먹으니까요.. ^^;;

짜라투스트라 2017-12-03 18:11   좋아요 0 | URL
맞는 말입니다^^

sprenown 2017-12-04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성향과 이념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솔직하고 진실된 글이라면 다들 이해 해 줄수 있을 것입니다. 이 알라딘 서재에서까지 자기 검열을 한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고,억압된 사회였는지 반증이 되네요.^^

짜라투스트라 2017-12-04 11:21   좋아요 0 | URL
분명 그런 면이 있는 건 확실합니다.^^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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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이사카 코타로

1.
평화경찰은 진짜 위험한 인물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경찰에게 필요한 건 진짜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
위험한 인물을 만들어냄으로써 생겨나는 통제와 질서다.
당신이 위험해서 위험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위험인물로 지목되었기 때문에 위험인물이 된다.
위험인물이 되는 순간 당신은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자백하게 될 것이다.
자백한 순간, 당신은 죽은 목숨이다. 위험인물이 되었기 때문에.
가학을 즐기는 평화경찰들은 즐기며 당신을 괴롭히고,
당신이 굴복하여 자백하면 역시 웃으며 당신의 공개처형을 결정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바라보는 앞에서 단두대 앞으로 끌려간 당신은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쳐다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신이 죽어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당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니 오히려 그들은 당신이 죽는 걸 은근히 바라기까지 한다.
당신의 죽음이 그들에게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당신이 운이 좋다면, 정의의 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검은색 타이즈를 입고 오른손에는 목검을, 왼손에는 골프공 같은 신비의 무기를 든 남자.
그가 온다면 눈을 감고 기도하라. 나 자신을 구해주기를.

2.
위의 글은 이 소설의 내용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본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한 느낌이 있지만, 거의 들어맞는다고 보면 된다. 위의 글만 읽다보면 이 책이 어둡고 무거울 것 같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사카 코타로 특유의 위트와 톡톡 튀는 감성이 있어서 소설은 어둡다거나 우울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전개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소설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정의는 무엇인가라거나 영웅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거나 사회적 부조리가 계속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같은.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와 무거운 질문의 역설적인 공존 앞에서 독자들의 고민은 무겁지 않게 계속될 것이다. 어쩌면 그게 이사카 코타로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볍게 읽고 나서 무겁게 고민하는 식으로.

3.
책에서 흐르는 정치에 대한 독특한 시각은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그런 것처럼 보인다. 자민당의 일당 독재 같은 일본의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변화를 꿈꾸는 이라면 어쩔 수 없이 회의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회의감이 너무 깊어서 절망감과 패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그 절망감과 패배감에서 빠져나오려면 자신만의 절망을 피하는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사카 코타로는 소설을 통해서 자신의 상상력을 구현하며 그 절망감과 패배감을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뜻언뜻 들여다보이는 정치에 대한 혐오나 무력감마저 피할 수는 없었으리라. 이사카 코타로가 일본보다 정치적인 의사소통이 쉽게 이루어지고 정치 시스템이 활발하게 돌아가는 곳이었다면 그의 소설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소설을 읽다가 문뜩 그것이 궁금해졌다. 아마도 제목이 '지구에서 살 생각인가?'로 바뀌지 않았을까. 혼자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소설 '지구에서 살 생각인가?'를 떠올리며 이제 이 글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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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가 필요한 인생 - 일, 육아, 살림에 부대끼는 여성을 위한 일상 재정비 프로젝트
루스 수컵 지음, 이진 옮김 / 수오서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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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정리가 필요한 인생-루스 수컵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지혜로운 이들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거짓 친구의 배반을 견디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서 그의 최선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건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건, 사회를 개선하건,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이다.-랠프 월도 에머슨'

'모든 TV 광고, 광고판, 잡지 속에는 우리를 조롱하고, 유혹하고, 빨아들이는 근원적인 속삭임이 있다.

집을 이렇게 꾸미고 살면, 당신은 만족할 거예요.
이 차를 몰면, 당신은 성공할 거예요.
이 화장품을 쓰면, 당신은 아름다워질 거예요.
이 옷을 입으면, 당신은 선망의 대상이 될 거예요.
이 태블릿을 쓰면, 당신의 삶이 좀 더 정돈될 거예요.
이 음식을 먹으면, 당신은 날씬해질 거예여.
이 장난감을 가지면, 아이는 만족할 거예요.
이게 바로 당신의 삶을 바꾸어줄 그것이에요.
이게 바로 당신을 채워줄 그것이에요.
...
주위 사람들이 더 많은 물건, 더 예쁜 것, 더 좋은 것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는 더 큰 집을 원하고, 더 좋은 차를 원하고, 신형 휴대전화를 원하고, 더 많은 액세서리와 옷과 구두와 장난감과 전자제품을 포함하여 우리를 멋진 삶으로 안내해줄 거라 믿는 모든 것을 원한다.'(20~21)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소비 사회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더 많은 물건을 사라고. 더 많은 물건을 소비하라고. 더 많은 물건을 가지라고. 그 속삭임들은 더 많은 물건을 사고, 소비하고, 가진다면 우리가 더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우리를 유혹한다. 유혹에 이끌린 불쌍한 우리의 영혼은 더 많은 물건을 사고 소비하고 가지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문제는 이 욕망의 수레바퀴가 끝이 없다는 점. 물건을 한 번 산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또 다시 계속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비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욕망의 무서운 점이다. 마치 소비 사회의 소비 욕망 자체가 소비의 순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를 이용하는 것처럼 우리는 무한한 소비의 수레바퀴 속에서 헤매다 생을 마감한다. 영원히 만족하지 못한 채로.

이 욕망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허약한 자아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오직 소비를 통해서만 자아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소비사회의 허약한 자아가. 소비 사회의 욕망은, 우리가 오직 소비를 통해서만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 만든다. 더 많이 사고, 소비하고,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의 자아가 못난 존재가 되는 듯이 강요하는 이 욕망은, 우리가 비싼 상품을 사면 우리 자신이 그 상품이 되게 만든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비싼 상품과 한번 일체가 되는 듯한 경험을 해본 이들은 계속해서 비싼 상품들을 사게 된다. 그 경험을 계속하기 위해서. 일시적인 감정의 만족을 위한 소비는 그렇게 계속된다. 하지만 아무리 비싼 상품을 사도 일시적인 만족 외에는 우리의 자아는 채워지지 않는다. 자아의 불안감과 허전함을 소비로는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결국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자기의 자아를 오롯이 바라보는 일이다. 왜 자아는 불만족을 느끼며 불안해할까? 왜 자아는 허전함을 느끼는 걸까? 자아를 들여다보며 자아를 진정시키다 보면 소비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내 자아와 만나고 대화하는 일이 소비보다 중요하니까.

자기자신의 자아와 만나고 대화하는 일에 있어서 정리는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이 가진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자신의 소비 성향을 알게 되고 소비욕망을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소비 욕망을 진정시키는 것에만 소비가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삶을 들여다보는 데 있어서 정리는 충분히 도움이 된다.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되돌아보면, 삶에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차분히 생각할 수 있다. 여유와 차분함. 정리가 가져다주는 이 미덕들 앞에서 소비 욕망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올 수만 있다면 가능한 얘기겠지만. 여기까지 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올수만 있다면 소비의 욕망은 사라지고 자신의 삶을 오직 소비에만 저당잡히는 저주 받은 인생과는 멀어질 것이다. 나는 <정리가 필요한 인생>을 이런 방식으로서의 실용서로 바라봤다. 그 이상의 디테일한 조언과 충고는 신경 쓰지 않고. 나에게 실용서란 오직 내가 필요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들을 머리 속에서 지워 버린 채 나는 <정리가 필요한 인생>을 소비 사회의 소비 욕망과 멀어지게 만드는 데 충분히 도움이 되는 책으로만 이해하고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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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27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정리를 잘 하려면 먼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할 것 같습니다. 정리를 미루려는 나를 설득하거나 말려야 합니다. ^^

짜라투스트라 2017-11-27 21:29   좋아요 0 | URL
네,맞습니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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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의 하루 2017년 11월 23일 편

*'짜라의 하루 2017년 11월 23편'이라 명명된 이 글은 서평도 아니고 북리뷰도 아니다. 비평은 더더군다나 될 수 없다.(나는 비평을 할 능력이 안 된다) 나는 그저 내가 겪은 하루의 기록을 내 생각대로 솔직하게 써 볼 생각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2017년 11월 23일 전부에 걸쳐서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 어떤 특정 시간에만 겪은 일들에 대한 솔직한 기록.

모 독서모임에서 짜라가 <로봇의 부상>에 뒤이어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을 추천한 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히틀러 얘기라는 과거 얘기를 하고 나서 이제는 미래로 눈을 돌려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을 가진 짜라는, <로봇의 부상>을 통해 미래에 다가올 수 있는 어떤 특정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로봇의 부상>이 끝나는 지점인 '기본소득'에서 시작하는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을 통해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얘기하는 시간을 가지게 책을 추천했다. 짜라의 추천계획은 독서모임을 이끄는 분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11월은 짜라가 이끄는 계획대로 흘러갔다.

11월 23일은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짜라는 긴장했다. 어떤 말이 오고가고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올까. 혹시라도 이 자리가 싸움과 투쟁의 자리가 되지 않을까. 그 모든 생각들을 뒤로하고 독서모임은 시작되었다. 짜라가 예상과는 달리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늦게 오신 분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짜라는 지겨움을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 익숙한 이야기를 또 만나게 되어 느껴지는 지겨움을.

1.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가만히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 하나의 선언이 이어졌다.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공산당 선언도 있고, 미래파 선언도 있는 것처럼, 세상에 무수한 선언이 있다. 그 무수한 선언들은 자신들의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외치거나 어떤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발언된다. 그것은 사실의 명명이 아니고, 현상에 대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들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더 나아가서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사실을 가장해서 자신의 주장을 외치는 것은 자신의 주장이 '주장'이나 '견해'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강력히 통하는 설득력을 얻고 싶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진짜로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이런 일이 불가능해야한다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자신의 견해와 생각이 담긴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진짜로 불가능하기에 불가능한 게 아니라, 일어나서는 안되기에, 일어나면 큰일이 난다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하다고 외치는 것이다. 지겨움을 느낀 짜라는 끼어들어 외쳤다. 이건 사실이 아니라 이 분의 견해이자 주장이라고. 짜라가 계속 견해와 주장을 강조하자 당황한 그분은 자신의 전문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짜라는 그분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계속 강조했다. 이건 견해이자 주장이라고. 다른 분이 끼어들여 따지기 시작하자 그분은 물러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한 것이지 꾸준히 계속하다 보면 가능할 수도 있고, 어떤 특정 영역에서는 지금도 가능하다고. 그 말은 자신이 처음했던 불가능하다는 말이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기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어떤 특정 영역에서 가능하고, 꾸준히 계속하다 보면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 처음에 했던 불가능하다는 말은 거짓말에 가깝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이런 일들이 지겹다. 프로파간다를 프로파간다라고 말하며 따지는 일들이.

2.거시담론은 가능하지 않다.
20세기 말부터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그들을 따르는 이들은 주장해왔다. 거시담론은 틀렸다고. 아~~ 이 익숙하고 익숙하고 말들을 또 들을 줄이야. 그 다음 레퍼토리는 구소련과 중국의 얘기들이겠지. 예상대로 구소련과 중국 얘기가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건 '킬링필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 정도랄까. 그런데 왜 그들은 모르는 걸까? '거시담론'은 가능하지 않다는 말 자체도 거시담론이라는 사실을. '거시담론은 가능하지 않다'는 거시담론을 펼친 그들은 거시담론 대신에 미시담론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간 다음에 광활하게 펼쳐진 거시담론의 영역을 내팽개쳐 버리고 외친다. '거시담론은 없다'고. 그 다음에는 정치적 중립이 어떻고 떠들며 가치판단을 해야하는 영역이나 상황에서도 가치판단이나 정치적 발언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다원주의가 이어지고, 이제 다름의 존재론이 나온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다양할수록 좋다고. 짜라는 정체성의 정치를 외치는 이 말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 말들이 미시담론과 개인적 정체성에 집중할 때 광활히 펼쳐진 거시담론의 영역을 상당부분 차지하는 이들이 있다. 국가의 문제를 단일요인에 상당 부분 떠넘기는 트럼프 같은 선동가들이나 극우 집단들이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손쉬운 답을 제시하여 인기를 얻고 거시담론의 영역에서 큰 힘을 얻는다. 거시담론의 영역을 이들에게 상당부분 빼앗긴 정체성의 정치를 외치는 이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자신들이 거시담론을 내팽개쳐 버렸다는 사실을 잊은 그들은 그제서야 정치적 공론장의 영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다음부터는 그들은 다시 거시담론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그들이 잊어버린 사실은 사람들이 거시담론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담론 못지않게 사람들은 거대하고 큰 담론과 서사를 원한다. 더 나아가서 거대하고 큰 담론은 사회에서 분명히 자신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게오르그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의 첫구절에서 말한 '별빛의 비유'처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역할을. 무조건 거시담론이 나쁘고 미시담론만 말하자거나 미시담론은 무조건 틀렸으니 거시담론만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상황과 맥락에 맞게 거시담론과 미시담론을 적절하게 이야기하자는 말이다. 거시담론은 가능하지 않다거나 틀렸다는 말처럼 극단적인 말 대신에.

여기까지 쓰고 나니 피곤하다. 그때의 지겨움이 되살아나서. 지겨움은 짜라게 글을 쓰지 말라고 강요한다. 알았다. 여기까지 쓰고 그만둬야 겠다. 확실한 건 위의 두 가지 지겨운 말에 대항해서 내가 무슨 말을 했다는 점이다. 짜라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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