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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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독 -미야베 미유키

 

책에 나오는 대로 인간들이 살아가는 곳 어디서든 '독'이 생겨날 수 있다. 그 말 대로라면

인간들의 삶 어디에서든 독은 생겨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책 또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곳에 있는 '독'이 쌓인 인간이 써낸 것이 책이기 때문에. 인간의

독이 묻은 책. 하지만 나는 적어도 미야베 미유키가 전하는 '독'이라면 안심하고 중독될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전해주는 '독'이 인간 세상의 독을 바라보는 '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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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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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야베 미유키

 

지금까지 읽은 미야베 미유키 책들 중에서 가장 힘겹게 읽은 책. 그러나 다 읽고 나서

다가오는 무게감과 공포감은 '역시 미야베 미유키'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마지막에 나오는 유령이 실제로 지금 어디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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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름 열심히 책을 읽어왔다.

그런데 그에 비해 읽은 책의 서평은 턱없이 부족했다.

언제나 그것 때문에 읽은 책들에게 미안해했는데, 이제부터는 서평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짧은 글이나마 써서 읽은 책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야겠다.

이것이 왜 고마움이냐면 내가 읽은 책들 다수가 나에게 고마운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드물지만 나를 힘겹게 만든 책들도 있었다.^^;;)

그럼 이제 시작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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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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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나쓰메 소세키 

 

"이지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자신의

의지만 주장하면 옹색해진다.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살기 힘든 것이 심해지면 살

기 편한 곳으로 옮겨 가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겨 가든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

태어나고 그림이 생겨난다. (...) 옮겨 갈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 힘들다면, 살기 힘든 곳을 어

느 정도 편하게 만들어 짧은 순간만이라도 짧은 목숨이 살기 좋게 해야 한다. (...) 

예술을 하는 모든 이는 인간 세상을 느긋하게 하고 사랑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까닭에 소중

하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살기 힘들게 하는 근심을 없애고, 살기 힘든 세계를 눈앞에 묘사하

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또는 음악이고 조각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묘사하지 않아도 좋다. 그

저 직접 보기만 하면 거기에서 시도 생기고 노래도 솟아난다."(p.15~16) 

 

<풀베개>의 첫부분은 이 소설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면서 그 자체로 하나

의 굳건한 의미망을 형성하고, 책을 읽는 독자가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뭔가 화려하거나 아름답거나 독특한 표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기 쉬운 단어와 표현들로

문장들을 만들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부드럽게 접근해서 조근조근 얘기하며 마음 속에 스 

며들게 만드는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소세키 소설의 진가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첫부분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풀베개> 이전의 두 소설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

님>과 다르다. 앞의 두 소설들이 한 사회와 인간이 만나서 빚어내는 풍경을 그려나가는 익살극

이자 풍자극이해학극의 느낌에 가깝다면, <풀베개>는 소세키 소설이 '사회와 인간'에서 

간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 로 들어가는 관문에 위치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습과 행

동을 통해서 한 사회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내던 작가 소세키는, <풀베

개>를 통해서 자신이 '인간' 그 자체로 들어가는 과정임을 알려준다. 그는 이 과정을 형상화하기

위해 '예술'이라는 주제를 선택하고 자신의 예술론과 미학적 관점을 담아, 동양의 예술적 관점이

라고 할 수 있는 '인정'과 서양의 예술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 '비인정' 사이를 방황하는 한 화가

의 얘기인 <풀베개>를 써냈다. 이는 작가 개인의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짙게 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세키가 이 작품을 통해서 예술가로서의 기본적인 입장을 정립한 것일까?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품의 마지막 부보면 분명 소세키가 '무언가'를 얻은 것은 분명

하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이 작품 보다는 그 뒤에 쓰여진 작품들을 서 알 수 있을 것

이다. 결론적으로 <풀베개>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소세키 소설의 미래와 이미 도래한 소세키

소설의 과거가 예술이라는 접점에서 만나 빚어진 소설적인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관문 자체

도 충분히 아름답고 빛나지만 아직 도래 하지 않을 미래도 무척 궁금해지는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소세키의 그 다음 작품들을 읽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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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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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나쓰메 소세키 

 

먼저 현암사판 <도련님>의 해설을 맡은 소설가 백가흠의 글 일부를 적어 보겠다. 

 

"도련님은 외롭다. 정직하기 때문에, 솔직하기 때문에, 관대하기 때문에, 순응하기 때문에

외롭다. 도련님은 세상에서 손해보고, 비난받고, 무시당하고, 빼앗기면서도 관대하다. 슬픈

일이면서도 망가진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의 소설 <도련님>이 유

효한 까닭은 백 년이 지났어도 그 방식이 촌스럽지 않다는 것, 세상이 변하고 변했지만, 그

안의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백가흠의 <도련님>에 대한 해석 모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글에서 드러난 

<도련님>에 대한 견해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도련님의 순진할 정도의 솔직함, 인간성,

순수함은 도련님 인생의 난관이 되어 그의 인생을 힘들게 만든다. 바로 이점, 우리가 흔히

미덕이라고 정의하는 덕목들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이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학교의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

에게 가르치고, 삶에서 이렇게 살라고 강요하는 덕목들이 실제 인생에서 쉽게 통용되지 않으

며, 그것만 믿고 거기에 따라 살아간다면 인생이 힘들어진다는 '윤리적 이상과 실제 현실과의

리'를 나쓰메 소세키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쁜 것은 나쁘다고,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틀린 것은 틀리다고 말할 수 없는 세상, 그렇게 얘기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고

배척하는 세상, '좋은 게 좋은거지.'하고 슬쩍 넘어가며 조용히 모르는 척 하고 살아가는 것을

권장하고 심지어 강요하기까지 하는 세상의 모습을 소세키는 순진할 정도로 순수한 도련님의

삶을 통해 해학적이고 풍자적으로 그려낸다.  

 

"세상 사람들은 나빠지는 일을 장려하고 있는 것 같다. 나빠지지 않으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간혹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들을 보면 도련님이라는 등 애송이

라는 등 트집을 잡아 경멸한다."(p.76) 

 

소세키가 그려낸 세상의 모습들이 어떻든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처럼 고정된 세상에서 고정된 채로 시간의 흐름을 흘러다니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나이가 든다는 과정은 단순히 시간의 경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간다는 말이자, 솔직하기 는 능청스럽게 거짓말도 하고 위선도 떨게 만드는 능력이 성장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쉬쉬하고 조용히 넘어가는 생활태도를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다는 사실과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시간이 쌓이고 쌓일수록 도련님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때때로 위선적인 삶을 견딜 수 없을 순간이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의 비애가 몸속에 차오르고 차올라서 견딜 수 없는 한계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우연히 <도련님>을 펼칠수도 있다.  그때 해학적으로 그려진, 우리와 다른 도련님의 삶의 모습은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 몸속에 차오른 삶의 비애를 진정시켜 줄 것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에 세상에 나와서 만들어진 <도련님>의 이 현실적인 유효성은, 도련님이 소설 속 세상에서는 무익했을 지라도 현실에서는 유익하다는 소설의 아이러니한 진실성을 보여준다. 그게 소설의 유용성 아닐까. 그것이 소세키가 바랐던 것이 아닐까.

 

"한 것은 한 것이고 안 한 것은 분명히 안 한 것이다."(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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