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쥬코 - 프랑스 희곡선 1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지음, 유효숙 옮김 / 연극과인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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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로베르토 쥬코-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책을 좀 읽는다는 분들도 모르는게 어찌보면 
이상하지 않는 이 희곡은 한국에 많이 알려진 작품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어떻게 해서
읽게 되었냐구요? 정말로 어이없는 이유인데 '그냥 읽고 싶어서 한번 읽어봤다'는 게 그
대답입니다. 며칠 전부터 희곡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희곡을 찾아서 읽고
있는데, 이 작품은 어쩌다 보니 제 레이더망에 걸려서 읽게 된 책이랍니다.
(사실은 책이 얇다는게 가장 큰 이유겠죠.^^) 어쩌다 보니 읽게 되었고, 어찌어찌 책을 넘기다
보니 다 읽게 된 작품인데, 읽고 나서의 제 감정은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고전주의적 작품도 아니고,낭만주의극도 아니고,부조리극도 아니어서 뭐라고 정의 내리기 어려운
극이며, 분명히 연속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자의 이야기인데, 이 살인자가 광기와 정상을
왔다갔다하며 사람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때로는 사람을
돕기도 하는 걸 보니 여러모로 혼란스럽고,거기다 극에 나오는 인물 대다수가 어딘지 모르게
소외되고 외로운 인물들로서 대화를 하면서도 계속 소외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뭐가 뭔지
모르게 만들었습니다.책을 읽고서 반드시 무언가의 정의를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하나의 광기일까요?) 그래도 이렇게 혼란스러우니 당혹감을 금할 수 없더군요.

뒤의 해설을 보니 이 희곡은 부조리극 이후에 유행한 일상극과도 다르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이 극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가 만들어낸 자신만의 극인 걸까요? 만일 그렇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잘 모르는 작가가 이미 자신만의 극 양식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정말 세상에는 제가 모르는 일도 많고, 작가가 많은 걸 다시한번 실감했습니다. 감히 좁은 소견과 식견으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다는 사실을 느꼈다는 말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지만 벼도 되지 못한 쭉정이에 가까운 저같은 인간은 먼저
벼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겠습니다.^^ 
 

어쨌든 콜테스는 확고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극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독서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독서가 이런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저는 저만의 의미를 찾는 독서 여정에 나섰습니다. 하나의 책에서 의미를 찾는
저만의 여정은 콜테스가 등장인물들이나 사건에 대해 일체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머물렀습니다. 콜테스는 어떤 철학적,윤리적인 메시지를 전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묵묵히 어떤 사건과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거기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수 없이 많은 정보와 마주하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알게 되는 현대의 우리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정보량과 잦은 정보들과의 접촉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이 안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많은 것을 보고 듣는다고 해서 우리의 고독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와 스마트 폰과 인터넷과 블로그와 포탈 사이트를 열심히 활용한다고 해서 우리의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예전보다 더욱 더 고독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수 없이 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기술의 발달로 더욱 더 빠른 의사소통이
강해졌지만 그만큼이나 직접적인 감정의 교류는 멀어진 사회 속에서 우리는 더욱 더 자신만의 
성에 빠져 첨단 기술 문명이 만든 기계에만 집착하는 셈이지요. 군중 속의 고독, 정보화 시대의
소외, 눈에 보이는 벽은 없지만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욱 견고해져만 가는 인간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 가속화되는 개인화가 부른 인간 개인의 파편화. 콜테스가 보여주는 건 그런
인간들의 우울하고 고독한 초상이었습니다.
 

결국 살인자 로베르토 쥬코는 죽습니다. 초반부터 예정된 죽음이었던만큼 그의 죽음이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해피엔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죽었지만 책 속의 외로운 등장인물들은 계속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쥬코의 죽음은 정의나 도덕,윤리의 승리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외로움의 지속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형사,늙은 신사,우아한 부인,여자아이,여자아이의 오빠와 언니는 쥬코가 죽는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의 죽음과 무관하게 자신의 외로움에 빠져서 계속해서 대화를 가장한 독백을 할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이 극의 엔딩은 진정한 비극의 서막처럼 느껴집니다. 죽음마저 아무 것도 아닌 사회, 죽음이 너무 흔한 사회, 죽음이 다른 이들의 외로움에 흠집조차 낼 수 없는 사회. 생과 사의 교차점인 삶에서 이런 잔혹한 비극을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주 겪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삶을 전혀 비극적이지 않게 표현하고 있는 <로베르토 쥬코>를 읽고 나니 슬퍼집니다. 에이즈로 죽음을 앞둔 작가는 무엇 때문에 실제 살인자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이런 작품을 쓴 것일까요? 혹시 죽어가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서 우리에게 우리 삶의 무언가를 경고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요? 작가가 보기에 연속 살인 조차 우리 삶의 외로움에게 별다른 영향을 끼치치 못할 정도로 우리의 외로움과 소외는 깊었던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진짜 비극은 작품에 있는게 아니라 우리 삶에 있는 것이겠죠. 어쩌면 작가는 무언의 메시지로 '인생보다 더한 비극은 없다'고 외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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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자앙 시선 지만지 고전선집 490
진자앙 지음, 송용준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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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자앙 시선-진자앙 

점점 멀어져 가는 청운의 꿈, 실현될 가망조차 없는 이상, 무절제와 비리와 폭력,살인,비방과
고발,무능력한 통치와 흉계가 판치는 측천무후 시절의 당나라 조정, 능력있고 재능있으며
절개있는 이들이 견디지 못하고 조정에서 떨어져 나가는 현실. 눈 앞에 보이는 이 모든
상황앞에서 정치 개혁의 청운의 꿈을 안고 젊은 나이에 조정에 출사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측천무후에게 무시당했던 절개있는 정치가이자 문인인 진자앙은
울분과 의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그런 의기와 울분은 그가 진나라 이후로
당나라 초기에서까지 이어진 형식적 아름다움에 치중한 시가 한,위 시기의 풍골 가득한 시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모습에서 여지없이 드러나는데요,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자신이 쓴 시로서 실현합니다. 형식과 미학에 치중하고, 현실과 사회에 눈을 돌린 아름다운 시가
아니라 사회의 진실한 모습을 표현하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호기롭고, 의기있는
시를 쓰면서 그는 위정자의 폭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무후 시절의 폭력적이며 무능력한 정치가
지배하는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아~~ 꿈도 있고,능력도 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도 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모습을 봐야 하는 한 인물의 안타까움,울분,고통,의기,슬픔....
그 감정의 덩어리가 천년의 세월을 넘어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저같은 이에게까지 전해질
정도로 진자앙의 시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았습니다. 그가 가장 힘든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가
아니라 무엇이든 해봐도 더욱 더 나빠져만 가는 현실이었겠죠. 그 현실 앞에서 시의 아름다움이나
형식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저 좌절한 자신의 꿈을 시에 의탁해서 드러냈을 따름
입니다. 하지만 시를 써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현실을 표현하는 것도 위정자들은 못마땅했나
봅니다. 그래서 무후를 따라 세상을 지배하던 무씨 세력은 흉계를 써서 진자앙을 옥사시킵니다.
누구보다 화려하고, 용기있고, 의기로우며 아름다울 수 있었던 진자앙이라는 꽃은 그렇게 꽃을
피우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져갔습니다. 천년 전의 씁쓸한 현실. 하지만 지금도 되풀이돼서 더욱 더
씁쓸해지는 현실. 저는 그런 현실 앞에서 그저 진자앙이라는 꽃이 남긴 향기를 조용히 들이마실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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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포트리스 1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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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포트리스-댄 브라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읽기를 거부했던 댄 브라운의 소설을 드디어 읽었다.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재미를 느낀 전형적인 미국식 테크노 스릴러.
탄카도가 스트래드모어에게 죽고 나서도 한방을 먹이는 장면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산 중달이 죽은 공명에게 패배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댄 브라운은 솜씨가 있는 작가이긴 하나보다.
그의 첫 소설이니만큼 앞으로 더욱 나아지기를 바라며, 이제 그의 다음 소설들을 한번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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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의 기술 - 세상에 독하게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기타노 다케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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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의 방법-기타노 다케시

기타노 다케시식 독설의 방법을 말하는 책.
여기서 말하는 독설이란 한국에서 말하는 상대에 대한 독한 말만이 아니라
비판부터 독한 말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넓은 개념.
중요한 것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독설을 사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고,
삶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기타노 다케시의 주장은 어느 정도 보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지극히 일본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또 하나의 개그의 소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자각해서
자기만의 독설 방법론으로 소화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굉장히 위험한 할 수 있음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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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개
미치오 슈스케 지음, 황미숙 옮김 / 해문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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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개-미치오 슈스케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밝게 꾸미는 것 없이 어둡게 그려내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가진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 중에서 가장 밝게 느낌으로 다가온 소설. 이 책에서는 그 어두움이 어리석음과 안타까움으로 치환되어 나타나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솔로몬의 반지를 갈망한다.
하지만 어리석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인간들은 솔로몬의 반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지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조금 더 지혜로워진 모습을 보여주고,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지혜를 찾아나서는 과거의 현자들의 여행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의 근처에서 개는 변함없이 자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나중에야 인간들은 깨닫는다. 그 개가 우리에게 지혜를 가져다주는 솔로몬의 개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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