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빛 - 검은 그림자의 전설 안개 3부작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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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은이) | 송병선 (옮긴이) | 살림 | 284p

 

1.

사폰의 소설은 내게 매혹 그 자체다.

우연히 읽게 된 <바람의 그림자>와 그 책을 읽고 나서 기를 쓰고 읽으려 했던 <천사의 게임>이라는 소설은

나를 이야기의 미로 속에 가두고, 그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했다.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어둠과 환상과 영원한 사랑과 이야기를 품은 책의 마법이 울려퍼지는

사폰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이 이야기들의 미로는

나를 잡고 뒤흔들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혼을 빼놓게 만들었다.

사폰의 이야기에 사롭잡혔다 빠져나오고 나서 나는 다짐했다. 사폰의 소설은 놓치지 않고 반드시 읽겠다고.

 

2.

다짐의 연장선상에서 나는 <9월의 빛>을 빼 들었다. 사폰이라는 세이렌이 부르는 유혹의 노래를 이겨내지 못하고 책의

마법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사폰이 그려내는 이야기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를 잃고.

 

무대는 아름다운 바닷가이다. 무대의 막이 오르는 건 사연을 가진 소벨 가족이 그곳으로 이사하고 나서이다.

무대에는 소벨 가족의 아름다운 소녀 이레네가 있고, 그녀의 몽상가 동생 도리안와 친절한 엄마 시몬이 있다.

곧이어 건강한 젊음을 간직한 청년 이스마엘이 나온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갈 어둠을 간직한 수수께끼의 장난감 제작자 라자루스 얀이 환상과 마법과 미스테리가 가득한

기이한 저택 크레븐 무어에 살고 있다.

 

이제 이야기는 맹렬히 속도를 내어 달려가기 시작한다. 내 의식도 그 속도에 발말추어 달려간다.

이야기는 과거와 미래를 비틀고, 환상과 현실을 뒤집으며, 이야기와 이야기를 뒤 섞는다.

그 혼란 속을 헤메다 보니 어느 순간 무대의 막이 내려가 있었다.

 

나는 무대위의 연극을 회상해본다. 

내가 그 무대에서 본건 그들이 어둠에게 위협을 받다가 이겨내는 모습이었다. 어둠속에서 9월의 빛을 찾아내는 모습이었다.

어둠이 불멸의 사랑을 이겨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희망이 어둠을 몰아내고 삶에 빛을 회복하는 모습이었다.

소년과 소녀가 어둠을 이겨내고 성숙하여 다시 그들의 사랑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이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물론 변한 건 없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를 느낀다. 이 일상 어딘가에 9월의 빛이 빛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알려준다. 이 세상이 아직 살만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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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웃음판 - 한시로 읽는 사계절의 시정
정민 지음, 김점선 그림 / 사계절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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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지은이) | 김점선(그림) | 사계절출판사 | 260p

 

1.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간다는 건 먹고 살기 위해서 쉼없이 달려야 함을 의미한다.

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소비 하기 위해.

우리는 일하고, 또 일하며 자신의 삶을 영위해간다.

 

하지만, 열심히 일만하다 보니 우리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상의 아름다운 풍광은 물론이고 우리 곁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모습들,

심지어는 가족들의 미소까지 놓치기도 하는 우리들.

정신없이 일하고 나서, 피곤한 몸으로 잠을 청한 채 날이 밝아오면 다시 일터로 가야하는 그 모습들.

거기에 여유는 없다. 거기에 주변을 살필 시간은 없다. 거기에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건 낄 여지가 없다.

그게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우리의 삶이란 생존을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삶이 되어버렸다.

 

2.

<꽃들의 웃음판>은 한시의 비다.

아니 삭막한 현실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여유라는 영양소를 주사놓은 주사기다.

그것은 여유를 잃고,단순히 생존에만 함몰되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고아함과 풍취와 풍류, 정신적 품격과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일상 미학이 혼재된 삶의 잔치판이다. 

과거라는 시간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 일상의 강력한 메시지는

생존과 이득으로 얼어붙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녹이며, 우리에게 삶을 살아갈 새로운 활력소가 된다.

 

조상들이 이뤄놓은 삶의 지혜과 아름다움이 압축된 한시를 통해 우리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여유시간은 우리의 조상들과 교류하는 시간이자 그들의 삶을 통해 지금의 우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단순한 휴식이 아닌 지금삶의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

우리와 너무나 비슷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그들을 만나서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재구성해보는 시간.

 

결국 우리는 그 시간을 지나쳐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돌아갔을 때, 꽃들의 웃음판을 거쳐갔을 때, 우리는 미약하나마 주변을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주변을 둘러보면 그 순간 꽃들은 웃을 것이고, 우리의 얼굴에도 웃음이 지어질 것이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된 것이다.

그 짧은 순간의 여유가 우리 자신을 위한 또 다른 방식의 치유와 회복일테니까.

 

'백년도 잠깐이요 쳔년이라도 꿈이라건만

여름날 하루해가 그리도 길더구나

인생은 유유히 살자 바쁠 것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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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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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지은이) | 정영목 (옮긴이) | 청미래 | 214p

 

공항이라는 거대한 고래는 알랭 드 보통이라는 피노키오를 삼겼다.

거짓말 대신 일상의 철학적 재구성을 마구해대며,

코가 길어지는 형벌 대신 독자들의 뇌 속 뉴런의 활동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행복한 형벌을 가하는

이 피노키오는 공항이라는 고래의 구석구석을 뒤지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곳을 거쳐가는 사람들과 그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과

그곳에 남겨진 인간들의 흔적들과 그곳 자체의 모습을

생생하고,내밀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떠남과 도착함의 교차, 그 경계의 혼돈을 관찰해서 특유의 관점과 언어로 복원해가는

보통의 이 세밀한 작업은 자본과 예술의 행복한 동거이자

자본에 대한 철학과 비판적 지성의 행복한 침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철학이 어떻고, 비판적 지성이 어떻고, 자본이 어떻고를 떠나

생생히 살아있는 공항의 모습과 그곳을 거쳐가는 인간들의 모습은

생명력 그 자체로서 생생한 삶의 비린내에다 보통의 문학적,철학적 향취가 더해져

아름답고, 고고한 빛을 발한다.

 

작업이 끝나는 순간, 보통이라는 피노키노는 공항이라는 고래의 바깥으로 토해져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이미 망각의 시작이리라.

하지만 그의 내면에 새겨진 욕망은 또다시 공항을 원할 것이다. 그 공간의 체취와 생명력과 욕망이 그를 부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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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의 인생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나라 요시토모 그림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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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지은이) | 나라 요시토모(그림) | 김난주 (옮긴이) | 민음사 | 128p

 

이 넓고 넓은 우주에서, 많고 많은 별 중에서 우리는 지구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모자라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이름을 부여받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자신만의 삶.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다.

그건 죽음이 삶의 결말이라는 전제이다.

 

그렇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는 소멸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우리의 결말이 죽음과 소멸이라고 해서 우리의 삶이

무의미해지거나 허무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은, 그 희소성과 유한성으로 인해 밝게 빛난다.

우리가 걸아가면세 세상에 남긴 흔적이자

인생이라는 하얀 도화지에 우리의 방식으로 채색한 우리의 삶은

희소성과 필멸성으로 인해 진정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그 삶의 유한성은 우리에게 우리의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실감나게 한다.

뒤돌아서 바라본 우리의 추억은 자신만의 색채와 분위기로 환하게 빛나는 보석이 될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에 도달하면 우리는 우리의 삶이 모두 추억임을 알 수 있다.

그때,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삶에 제목을 붙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인생이라는 제목을.

아니, 마지막에 도달하지 않아도, 현재진행되고 있는 삶에 자신의 인생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도 그런 삶을 소설로 써 내었다. 바로 <데이지의 인생>이라는 소설이 그것이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던 친구의 죽음이라는 예상치 못한 현실에 마주해서야

그녀와 함께한 추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삶에 죽음이라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음을,

현재라는 순간, 현재 함께하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평범한 데이지의 인생을

통해 바나나는 세상에 많고 많은 데이지들에게 희미하게 속삭인다.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추억상자를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의 삶이 그 자체로 소중하고, 찬란히 빛나고 있다고.

 

그리고 나는 책을 덮고 깨달았다.

<데이지의 인생>이 평범한 삶을 비범하게 만드는 비범한 비밀을 간직한 평범한 삶의 책이라는 사실을.

그게 바나나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꾸준하게 해온 치유의 행위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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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9
앙드레 지드 지음, 오현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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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 (지은이) | 오현우 (옮긴이) | 문예출판사 | 200p

 

사랑은 절름발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육체에만 탐닉해서도 안 되고, 정신적으로만 사랑을 이끌고가려 해도 안 된다.

만약 정신과 육체의 균형없이 한쪽으로만 치우친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랑은 비극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

좁은 문에서의 알리사와 제롬의 사랑은 그렇게 비극을 예고하고 있었다.

정신적인 사랑으로만 사랑을 이끌었으며, 종국에 가서는 신을 향한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희생시키려

했던 알리사는 자신이 절름발이 사랑을 한다는 것도 모른채 파국을 초래한다.

그리고 운명적인 사랑이라 여기며 알리사를 미친 듯이 사랑했던 제롬도 정신적 덕목이라는 가치에 얽매여

소극적인 행동으로만 일관했기에,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알리사처럼 비극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다.

 

결국 이 사랑은 비극이 될 수 밖에 없었기에 비극이 된 것이다.

천상을 향한 좁은 문을 가려 했던 두 사람은 정작 사랑의 진정한 의미는 망각한 채

사랑다운 사랑을 하지 못했기에,

천상을 향한 좁은 문 대신 그들만의 비극이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버렸다.

 

지드의 내면적 고민과 갈등이 그대로 표현된, 종교적 신념과 인간적 욕망의 갈등 사이에서 요동치는

인간을 모습을 담은 이 소설에서 지드는 명확한 결론을 이끌어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지드가 남긴 글의 여백에서 자유의 향기를 맡는다.

그 자유의 향기는 내게 말한다.

사랑할 때 사랑하라고. 자신을 얽매지 마라고. 좁은 문 때문에 사랑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다고.

 

*지드는 <좁은 문>과 반대 쪽 날개가 되는 소설 하나를 더 썼다.

그게 바로 <배덕자>. <좁은 문>이 관념에 얽매인 인간의 비극이라면, <배덕자>는 자유로운 인간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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