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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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국의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파커 J. 파머가 내놓은 정치에 대한 마음의 제안서. 다름이라는 긴장을 끌어안은 채, ‘부서져 깨어나가는 마음‘이 아니라 ‘깨어져 열린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이 책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제도가 지속되는 과정일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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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9-17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짜라투스트라님 오늘부터 추석연휴 시작입니다.
즐거운 명절과 좋은 주말 보내세요.^^

짜라투스트라 2021-09-18 11:59   좋아요 1 | URL
아,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추석 잘 보내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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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2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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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7.문명2-베르나르 베르베르

 

 

"요새는 한 작가의 작품세계, 세계관이라는 말보다는 다른 말을 쓰고 싶어."

 

"왜 그런데?"

 

"작품세계나 세계관이라는 말이 낡은 느낌이 들거든. 뭔가 엄숙하고 무거운 느낌이 들기도 하고. 예를 들어, 일본 작가인 이사카 코타로나 나카야마 시치리 같은 작가가 쓴 작품들이 구축한 세계는, 작품세계니 세계관 같은 말을 쓰지 않아. 그 작가들한테는 월드라는 말을 붙이지. 이사카 코타로 월드나 나카야미 시치리 월드 같은. '월드'도 좋지만 유니버스도 괜찮은 거 같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같은 거?"

 

"맞아. 작가가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구축한 하나의 세계상을 유니버스라는 말로 하는 것도 좋은 거 같아. 가볍고 신선하고 접근하기도 좋고."

 

"뭔가 생각하는 거 있어?"

 

"있지. 내가 생각하기에 유니버스라는 말을 붙이기 좋은 작가 중 한명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야.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써왔지만 공통적인 세계상의 느낌이 있거든. 이 작가의 소설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이야. 실제로 저런 이름의 책을 내기도 했지만, 소설 속에 나오는 저 책은 실제의 책이라기보다는 작품속에 필요한 지식들을 소개하는 가상의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가 자신이 지식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쓰는 느낌으로. 그래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지식소설이라고 부를 수도 있어. 지식의 습득과 소개를 목적으로 하는 듯한.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작가는 지식소설과 모험소설과 환상소설을 '상상력'이라는 아교로 붙인 형태의 소설을 쓰는 것 같아. 소설 내용을 봐도 지식의 습득, 지식의 습득을 통한 발전과 진화를 중요시 해. 거기에 환생, , 무의식 같은 소재를 즐겨 사용하지. 이런 공통된 요소들을 모아서 살펴보면 베르나르 베르베르 유니버스의 대체적인 그림이 그려져. 지식과 모험과 환상이 결합되어 살아숨쉬는 이야기의 우주로서."

 

"그 우주에 대한 너의 생각은 어때?"

 

"기본적으로 흥미롭고 좋게 보고 있어. 모르는 지식을 알려주고, 지식의 습득에 적극적인 주인공들도 좋고, 지식을 얻으면서 진화해가는 존재들이 되는 것도 재미있어. 거기에 모험과 환상의 요소가 더해지면서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여는 것도 좋고, 이야기의 흥미를 끄는 것도 좋아. 어떨 때는 비슷비슷한 느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흥미로운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괜찮은 것 같아. <고양이>에 이어지는 고양이 3부작의 두번째 편인 <문명>을 한 번 보자구. 고양이 3부작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유니버스에서 <개미>와 더불어 인간 주인공이 아닌, 동물 주인공이 나오는 예외적인 작품이야. 내가 여기서 집중적으로 본 것, 고양이의 행동이야. 전작인 <고양이>에서도 느꼈지만, 인간 문명의 폐허 위에서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고양이 문명'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고양이 바스테트의 행동은 전혀 고양이 같지 않아. 거의 인간에 가깝지. 그러니까나는 <문명>에 나오는 고양이 바스테트가 고양이가 아니라 인간화한 고양이 처럼 느껴져. 물론 내가 동물행동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고양이에 대해서 완벽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어떤 고양이가 저렇게 문명을 세우려고 하겠어? 안 그래? 고양이를 인간화 했기 때문에 문명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거지. 책을 보면 고양이 바스테트가 진화한다는 설정으로 그것을 정당화해. 하지만 인간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문명을 세우려고 하는 게 아니겠어? 나는 인간화한 고양이가 문명을 세우려고 하는 건, 인간이 고양이의 진화를 자기 식대로 정하고 인간적인 고양이 문명을 세우려는 것처럼 보여. 인간이 고양이인척, 인간화한 고양이 문명을 세우려고 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고양이가 아니라 이 소설의 중심에서 인간을 봐. 책 중간에 나오는 돼지들의 재판 부분도 마찬가지야. 거기서 돼지들은 축산업과 투우의 현실을 지적하며, 동물의 입장에서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지. 이것도 마찬가지야. 돼지들과 소들이 인간의 말을 하는 건 아니잖아? 그건 인간이 돼지들과 소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그들의 입장이 되어 말을 하는 거야. 인간들이 동물인 척 한 뒤에, 인간들을 비판하는 거지. 인간이 아닌 척 하지만 인간들의 이야기, 아니 정확하게 동물화한 인간들의 이야기가 나는 <문명>이라는 소설의 근간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근데 이건 인간들의 특징이야. 인간들은 마치 인간이 아닌 척, 인간 자신의 삶과 행동, 태도를 비판하지. 인간들은 자신을 비판하면서 인간이 아닌 척 하는 존재들인 거야. 이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이상하며 기묘한 행동인지 알겠지? 그런데 나는 거기서 인간의 독특한 힘이 있다고 생각해. 인간이 자신들의 존재 범위를 확장해서 사고할 수 있다는 것, 자신들의 삶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시키면서 자신들을 불확실하며 오묘한 존재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말이야. 자기 자신을 불확실성의 안개로 감싸면서 자신들의 삶과 존재를 확장시켜나가는 존재로서의 인간. 멋있고 신기하지 않아? <문명>에서 내가 바라본 건 그런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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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2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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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인간 문명의 폐허 위에 고양이 문명을 건설하려는 고양이의 모험담을 그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당연히 인간은 중심이 아니고, 인간중심주의는 통렬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인간 독자인 나는 그래서 이 소설이 더욱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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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8개월 28일 밤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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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6.28개월 28일 밤-살만 루슈디

 

 

"나는 이야기하면 항상 셰에라자드가 생각나. 살기 위해, 여성들을 죽이는 왕에게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천일동안 이야기를 하는 그녀가 말하는 이야기에는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의 힘 같은 것이 들어 있어. 한 번 시작하면 그칠 수 없고, 듣다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을 나는 믿어. 그녀만 그런 힘을 가진 것일까? 아니야. <일리아드>,<오디세이아>라는 이야기를 노래하는 호메로스도, 아서왕 전설이나 성배 전설, 롤랑의 노래를 읊조리는 중세 유럽의 음유시인들도 이야기꾼으로서 이야기의 힘을 사람들에게 전해주지. 그리스 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 켈트 신화, 북유럽 신화, 중국 신화, 일본 신화 속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들도 마찬가지지. 그들은 이야기에 홀린 사람들로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고, 듣는 이들도 이야기에 홀려서 들을 수밖에 없지."

 

"이야기에는 진짜 힘이 있는 것 같아. 시간을 걸쳐서 전해지고 전해져서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잖아."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이야기는 시간을 건너뛰어 지금도 전해지고 있지. 문학은 이 이야기의 후손들이야. 문자 시대에 인쇄매체에 적혀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흥미로운 건 20세기에 이야기에 적대감을 가지거나 이야기를 해체하려는 이들이 나타난 거야."

 

"그들은 누구인데?"

 

"현대적인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이지. 포트스모더니즘을 한다는 사람들이나 문학적인 실험을 한다는 이들은 전통적인 서사구조를 해체하거나 파괴하여 자신들만의 문학을 하려고 했지. 토마스 베른하르트 같은 오스트리아 작가는 이야기를 증오한다고도 했어. 그런데 실험과 해체의 흐름 앞에서 이상하게도 문학은 길을 잃고, 힘도 잃어버려. 문학의 위기 담론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야. 이런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흐름이 나온 건 서구쪽이 아니야. 20세기 후반에 유행하기 시작한 라틴 아메리카의 붐 소설이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게 돼. 근데 붐소설에서 뭔가 돋보이는지 알아?"

 

"뭐가 돋보이는 데?"

 

"이야기의 부활이야. 서구 문명에서 인위적으로 사라지게 만들려던 이야기가 라틴 아메리카의 붐소설에서는 맹렬히 살아 숨쉬면서 문학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어. 붐 소설에 속하는 작품 중에 실험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는 소설들조차 이야기의 힘을 받아서 생생하게 살아 있었어. 그러니까 소설은, 문학은 이야기와 함께 할 때, 생명력을 가지는 것 같아. 소설은 이야기의 자식이니까. 자신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은 근원적인 것과 함께 할 때 에너지가 생기고 생명력을 받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잖아?"

 

"맞지. 니 이야기를 듣고 보니 붐 소설이 또 읽고 싶어지네. 참 붐 소설 이후의 문학적인 흐름은 어때?"

 

"붐 소설 이후 이야기는 부활하여 큰 역할을 차지하게 되지. 붐소설을 쓰는 이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문학을 하는 이들도 이야기를 자신의 소설 속에 잘 쓰게 되거든. 대표적인 인물들이 중국의 모옌이나 영국의 살만 루슈디 같은 이들이야. 이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붐소설에서 쓰였던 마술적 리얼리즘을 자신의 소설에 집어넣고 있어. 말도 안되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리얼리즘을 부여하면서 소설 속에 집어넣거든. 그런데 이런 환상적인 요소는 과거 이야기의 특징이잖아?"

 

"그렇지. 변신, 요술, 마술, 기적 같은 것들이 과거 이야기에는 자주 등장하지."

 

"맞아. 마술적 리얼리즘을 사용하는 작가들은 과거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받은 현대의 이야기꾼들이지. 그들은 현대의 삶 속에 환상을 담아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하지만 그 환상이 현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야. 오히려 그것은 현재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비추는 거울이 돼."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네."

 

"살만 루슈디가 쓴 <28개월 28일 밤>이라는 소설이 있어. 제목을 계산해보면 1001일인데, 1001일이 뭘 의미하는지 알겠지?^^ 바로 천일야화야. 그래, 살만 루슈디는 제목부터 1001일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현대판 천일야화를 쓰겠다는 말을 하고 있어. 이 현대판 셰에라자드는 '이계 전쟁'이라는, 마치 SF와 판타지 영화나 소설에 쓰일 듯한 소재를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마계에서 인간계로 넘어온 마족이 등장하고, 마족 중에서 마신들은 변신을 하면서 인간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공중 부양을 하거나 손끝에서 번개가 나가거나 자신이 그린 그림 속 존재가 살아나는 능력을 지닌 이들이 마계공주의 도움을 받아서 싸우면서 영웅이 되는 식으로."

 

"와우, 마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나오는 이야기 같은데?"

 

"맞아.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정확하게 말하면, 마블의 영화들이 고대의 이야기 흐름을 이어받아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변화했다고 해야겠지만. 어쨌든 이 환상적인 모험담이 단지 환상적인 모험담으로만 끝나지 않는 건 이 소설이 가진 여러가지 장치 때문이야. 작가는 첫 부분부터 서양에서 아베로에스로 불리는 이슬람권의 철학자 이븐 루시드를 등장시키고 있어. 이븐 루시드는 자신의 논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잘리와의 논쟁에서 패배하고 궁중에서 물러나게 되고, 쉬는 와중에 인간계에 호기심을 가진 마계의 공주 두니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자식들을 낳지. 이 자식들의 후손들이 나중에 영웅이 되는 존재들이 되고.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이븐 루시드와 가잘리의 논쟁이야. 이븐 루시드는 철학자답게 이성을 옹호하는 편에 서 있고, 가잘리는 이슬람 신학을 언급하며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이븐 루시드의 패배는 동시대에 신앙에게 이성이 패배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지. '이성'과 신앙으로 대변되는 '비이성'의 대결은 이 책의 중요한 구도야. 미래에 이븐 루시드는 두니아에 의해 영혼으로 부활하고, 가잘리는 마신에 의해 영혼으로 부활하지. 당연하게도 영웅이 되는 이븐 루시드의 후손들은 '이성'의 힘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고, 램프의 지니 시절을 거칠 때 가잘리와 인연이 있었던 마신은 영혼이 된 가잘리의 부탁을 받고 세상을 공포에 빠뜨리고 파괴함으로써 가잘리로부터 이어지는 '비이성'의 힘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지. 이성을 상징하는 인간 영웅들과 비이성을 상징하는 마신들과의 싸움은 이성과 비이성의 대결을 이 소설의 핵심 주제로 부각시키면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게 이야기의 전개를 이끌어나가지. 여기에 다른 것들이 추가 돼. 언뜻언뜻 스치는 것처럼 언급되지만, 종교적 자유와 관용, 현대의 혐오를 이용하는 정치와 비타협적 배타주의 등등등. 작가는 이성과 비이성의 대결이라는 뼈대 위에, 철학, 사상, 예술, 역사, 상징, 우화, 현대문화와 사회정치적인 현실등의 요소들을 섞어서 다양한 것들이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고전적이고 현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살만 루슈디가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게 이런 점이야."

 

"너는 재밌게 봤겠네?"

 

"재밌게 봤지. 나는 살만 루슈디의 이야기로 쓰여진 소설이 좋아. 엄청난 달변으로, 능청스럽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환상적인 모습을 보이다 보니 계속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들거든.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의 힘을 현대 문학으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할까.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보는 건, 이슬람권의 이야기를 서양의 이야기와 섞어서 펼쳐내는 힘이야. 이 부분에서는 살만 루슈디가 현재 가장 독보적인 것 같아.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까? 살만 루슈디가 펼쳐내는 이야기에 매혹된 독자로서 나는 그의 소설이, 그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기를 바라.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를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야기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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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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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식 천일야화. 철학과 사상과 종교와 역사와 판타지와 영웅신화와 모험담과 풍자와 우화와 상징이 뒤범벅된 이야기가, 능청스러운 살만 루슈디의 손끝에서 흥미진진하고 기상천외한 소설로 태어나 읽는 독자를 마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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