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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색의 독 ㅣ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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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5월
평점 :
8392.일곱 색의 독-나카야마 시치리
문을 열고 들어가니 M이 앉아 있었다. M은 내가 들어오는데 전혀 신경쓰지 않고 담배 피기에 열중해 있었다. 나는 그의 맞은 편에 앉아 그에게 말을 걸었다.
"요새는 어떻게 지내나?"
그는 마치 내가 맞은 편에 앉은 게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 거리낌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여전히 책을 쌓아놓고 읽고 지내지."
"그래, 요새 읽은 책 중에 재미있는 게 있었나?"
"엄청 재미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는데, 흥미로운 책들은 있었지. 말해줄까?"
"한 번 말해봐."
"<일곱 색의 독>이라고 나카야마 시치리라는 일본 작가가 쓴 책이 있지. 자네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편인데다 일본 소설도 꽤 읽었으니 들은 작가 이름이지 않나?"
"들은 것 뿐만이 아니야. 책도 읽었지.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의 첫 편인 <속죄의 소나타> 같은 경우는 꽤 재미있게 읽었지."
"역시 그랬군."
"<일곱 색의 독>에 대해서나 말해봐."
"나카야마 시치리는 엄청난 다작의 작가로 다양한 시리즈물을 가지고 있지. 한국에 그동안 소개된 그 작가의 시리즈는 자네가 아까 말한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나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가 대표적이지. 하지만 <일곱 색의 독>이 포함된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는 <살인마 잭의 고백> 이후로는 <일곱 색의 독>이 나올 때까지 시리즈 후속편이 나오지 않았지."
"왜 이누카이 하야토 시리즈는 안 나온거지?"
"이유야 나도 모르지. 뭐 출판사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아마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어찌되었든 그건 그렇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서 해 봐."
"해설을 보니 이누카이 하야토는 시리즈는 사회파 미스터리 시리즈라고 해. 너도 사회파 미스터리는 알지?"
"당연히 알지. 누가, 어떻게 사건을 일으켰는지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퍼즐 미스터리와는 달리 왜 사건이 일어났는가에도 집중하면서, 미스터리의 진실을 밝히는 와중에 사회의 모순점이나 문제점이 드러나는 형태의 일본 미스터리 장르 중 하나잖아. 시초는 전설적인 작가인 마쓰모토 세이초이고."
"잘 아네. 한 때 일본 미스터리계를 평정했던 사회파 미스터리는 1980년대에 신본격 미스터리가 다시 대두되면서 힘을 잃긴 했지만, 미야베 미유키 같은 작가들을 통해서 명맥을 이어오게 되지."
"나도 미야베 미유키의 미스터리를 좋아해. <화차>나 <외딴 집>,<모방법>,<낙원>같은 소설은 정말 인상 깊게 읽었지."
"나도 그 작품들을 좋아하네."
"이누카이 하야토 시리즈가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건, 이 시리즈의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사회의 모순점이 나온다는 말이지?"
"그래. 인간의 악의를 일곱 가지 색으로 표현하면서 써내려간 연작 단편 미스터리인 <일곱 색의 독>도 사회파 미스터리라서 각 단편마다 사회의 모순점들이 소설이 전개 되어 가는 와중에 드러난다네. 교통사고, 환경오염, 왕따와 학교폭력, 클릭 수 장사와 출판매수 올리기에만 신경쓰는 언론과 출판계, 노숙자 문제,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노령화로 노인이 노인을 돌보면서 생기는 문제, 책임 회피하고 보신에만 매달리며 사회의 갈등을 이익화하는 공무원들의 문제, 복지 수당의 부정수급 문제 등등, 현재 일본 사회의 다양한 현재적인 문제들을 미스터리 속에 담아내고 있다네."
"미스터리는 어때?"
"사회파 미스터리라서 미스터리의 짜임새는 엉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런 것도 아니야. 독특하고 기발한 트릭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반전을 잘 쓰는 나카야마 시치리 답게 각 작품마다 꼬이고 꼬인 작품의 설계 속에 반전이 들어 있어서 그걸 보는 재미도 있어. 사회의 모순점을 꼬집으면서도 작품 속 인물의 개성도 살아있어서 그 인물들이 자아내는 심리묘사나 상황들이 흥미롭기도 해. 전체적으로 각 작품들의 짜임새가 나쁘지 않아."
"다른 특징은 뭐가 있어?"
"각 작품마다 제목에 색이 들어. 근데 그 색들이 의외로 작품 속 미스터리의 힌트가 되기도 해. 읽으면서 이 제목 속 색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를 기대하는 재미도 쏠쏠하긴 해."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뭐였어?"
"작품들 마다 다 저마다의 재미는 있어. 하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검은 비둘기>야. 흰 비둘기 속에 검은 비둘기가 있다는 식의 비유로 이누카이 하야토가 힌트를 주는데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다가 나중에 가면 정확하게 들어맞아서 탁 무릎을 치게 되지. 그 비유는 사건을 해결하는 완벽한 증거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범인을 가리키는 완벽한 비유거든. 그리고 마지막까지 범인이 완벽한 악으로 남아있어서 좋았어. 나는 범인이 완벽한 악의 형상에 들어맞는 작품들이 좋거든. 그래야 징벌도 더 의미가 있고, 악도 악답고."
"너의 취향이 그렇다는 거군."
"그래, 내 취향이 그래. 나는 악이 악답고, 악스러움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악답게 죽거나 악답게 파멸하는 거 얼마나 재미있어? 뭐, 그렇다고 해서 반성하거나 속죄하는 인물이 나오는 게 무조건 나쁘거나 재미없다는 말은 아냐.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는 부분이 있지.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악이 악다운 걸 더 선호한다는 말이야."
"검은 비둘기는 자네를 가리키는 거 아닐까?"
"어쩌면."
"여전히 나를 죽이고 싶나?"
M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담배 피우며 시간을 지체하던 그는 다시 말한다.
"죽이고 싶지. 그런데 오늘은 아니야. 언젠가 나중에 죽여줄께. 살의는 있지만, 아직 완벽하게 너를 죽일 생각이 드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군."
"다행이지. 너를 죽이기 전까지는 우리는 친구 사이를 유지하고,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잖아."
"고맙네. 나를 아직 죽이지 않아줘서."
"천만에. 나에게 이렇게 얘기를 걸어주고 내가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줘서 내가 고맙지."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그때까지는 죽지 않고 너와의 대화를 기대하고 있을께."
"다음에 봐"
나는 작별인사를 나눈 채 담배피는 M을 놔두고 방을 나섰다.
진짜 다행이야. 저 녀석은 진짜 미친 녀석이라서 죽일려고 마음 먹으면 진짜 죽일거야. 저 녀석이 나를 죽이기 전에 <일곱 색의 독>에 나오는 검은 비둘기같은 사람으로서 다른 녀석들들 더 죽여야 하겠군 .....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