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놀이터는 24시
김초엽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6월
평점 :

8390.놀이터는 24시-김초엽,배명훈,편혜영,장강명,김금희,박상영,김중혁
다채로움.
엔솔로지의 최대 장점은 다채로움일 것이다. 같은 키워드를 가지고도 작가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색채를 가지고 다양하게 써내려가기 때문이다. 마치 다양한 작은 그림이 그러져 있고, 그것들이 모아져서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구성하는 것처럼. 그 큰 그림의 제목은 엔솔로지에서 작가들에게 부여된 주제일 것이다.
<놀이터는 24시>도 엔솔로지이다. 당연하게도 엔솔로지이기에 작가들에게 공통된 키워드가 주어져 있다. 즐거움이라는. 앞에 쓴 대로, 즐거움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가지고 작가들이 만들어낸 소설들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소설은 전혀 즐거움과 연관된 것 같지 않고, 어떤 소설은 즐거움을 탐구해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식으로. 이 소설들을 따라가다보면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떠올리는 고정관념들을 다 부수고, 작가마다 자신만의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서 즐거우면서도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게 엔솔로지의 특징이긴 하지만.
김초엽 작가가 쓴 첫 작품인 <글로버리의 봄>부터 즐거움의 고정관념은 부서져 나간다. 의외로 잔인한 면도 있고 반전도 있는 이 소설은 즐거움을 구성하는 것들에 관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눈앞에 보이는 즐거움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을 하는지 아느냐 하는 식으로.
배명훈의 <수요 곡선의 수호자>는 어떤 하나의 경제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거기에 SF라는 양념을 쳐서 만들어낸 느낌의 소설로서, SF가 가진 사고실험의 성격이 오롯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오로지 즐거운 소비를 위해 존재하는 로봇과 그것에 앙심을 품은 세력,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독특한 컴비네이션에다 배명훈 소설 특유의 분위기가 더해져서 이색적이고 흥미롭다.
편혜영 작가의 <우리가 가는 곳>은 열린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작가가 결말을 열어두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결말을 독자가 상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
장강명의 <일은 놀이처럼, 놀이는...>은 내가 아는 장강명 작가의 소설 느낌이 아니라서 오히려 좋았다. 스토리텔러로서의 장강명의 힘을 보여주는 소설이 아니라 일본 사소설 느낌의 소설이라고 할까. 아니, 사소설이 아니고 픽션인 건 알겠는데, 읽다보니 계속 사소설 느낌이 드는 게 신기한 소설이라고 할까. 아무튼 마지막까지 이게 진짜 작가의 삶인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김금희 작가의 <첫눈으로>는, 직장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는 직업의식과 개인적인 윤리의식 사이의 갈등이 드러나는 소설이다. 윤리적 갈등의 문학적 형상화. 즐거움은 잠시 거드는 느낌이고.
박상영 작가의 <바비의 집>은 이 엔솔로지에서 가장 내 취향이 아닌 작품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떠올린 것이지만, 이 소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된 분위기가 가득하다. 마치 무슨 일이 언제 벌어져도 이상이 없는 듯한. 다른 말로 하면 불길한 에너지가 가득하다고 해야하나. 마지막의 환상적인 결말은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보여서.
김중혁 작가의 <춤추는 건 잊지마>는 김중혁 작가다운 작품으로, 이 엔솔로지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느낌이 확실하게 든다. 난민, 감시, 숲, 식물과의 합일, 춤 같은 이질적인 소재들이 김중혁 작가의 손 안에서 합쳐지며 흥미롭고 독특한 작품이 된다는 점에서 좋았다.
다 쓰고 보니 즐거움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건 독자인 나였다. 작가들은 저마다의 생각으로 고정관념을 다 부수고 나가면서 자유로운 개념의 곡예를 보여주는데, 내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 느낌이라 작가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즐거움이라는 키워드가 나온다면 즐거움의 고정관념이 조금 더 남아 있어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마지막까지 하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평범한 인간인가 보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