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86.빌린 책/산 책/버린 책-장정일(2)
3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기간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책의 ㅊ도 쳐다보지 않았다. 책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도서관, 서점 근처에도 얼씬 하지 않았다. 책을 펼친다거나 책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책은 분명 내 근처에 있었지만, 이 3개월동안 나에게는 없는 존재였다. 있지만 없는 존재. 책을 읽지 않아서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러나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다. 책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미친 사람같겠지만(^^;;) 책이 나를 부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책의 노예인 내가 어쩔 수 있겠는가? 노예답게 주제를 파악하고, 주인의 말에 따랐다. 책이라는 주인의 노예인 나에게 책이 책을 읽으라고 하는데 피할 수 없었다. 행복한 족쇄로서의 책읽기를 다시 시작할 수밖에.
오랜만에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바로 어려운 <순수이성비판>, <정신현상학>, <에티카> 같은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저런 책들을 읽다가는 부작용이 심해서 책멀미 때문에 구토를 하거나(^^;;) 머리가 멍해진 뒤에 자괴감에 빠져 책우울증이 찾아올 수도 있다. 책멀미, 책우울증이 3개월만에 책을 읽는 이에게 찾아오면, 더욱 심한 반작용으로 2021년 한해는 책을 안 읽을 수도 있는 법. 나는 안전빵(^^;;)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책 자체와 책읽기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책을 찾았다.
책장에서 내 눈에 띈 책이 <빌린 책/산 책/버린 책>이었다.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떤 때는 광오하게 독설을 날리고, 어떤 때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스러운 사고를 하고, 어떤 때는 책과 책읽기에 대한 애정을 일깨우고, 어떤 때는 나에게 일깨움을 주는 서평들. 저 서평들 때문에 더욱 더 책과 책읽기를 사랑한 경험이 있는 나에게,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계시였다. 읽으라는 계시.
계시를 따라서 책을 펼쳐 읽었다. 첫 서평은 <88만원 세대>에 관한 글이었다. 한 때 이 책을 열정적으로 읽고 토론도 하면서 엄청난 말싸움을 한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처한 상황과 위치가 달라져서 였을까? 장정일이 이야기하는 <88만원 세대> 이야기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대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사회적 구조가 어떻고 말하는데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하품이 나고 잠이 왔다. 많이 들은 뻔한 세대론, 뻔한 사회 변화 이야기 같아서. 너무 지루해서 책을 덮으려고 했다. 하지만 3개월만에 처음 읽은 책을 10페이지도 못 읽고 덮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서(^^;;) 하품과 수면욕을 참아가며 <88만원 세대>를 간신히 넘겼다. 이 부분을 넘기니 내가 아는 장정일의 서평이 나왔다.
어딘가 다른 시선, 틀에 얽매이지 않는 듯한 비판과 사유, 책과 독서에 대한 애정, 문학에 대한 그만의 사유, 그만의 시선으로 정리된 책의 내용들을 미소를 띄며 읽었다. 내가 아는 장정일 서평의 귀환 같은 느낌으로. 첫 부분에서 느꼈던 지루함은,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 부분을 읽으며 사라져갔다. 나는 <88만원 세대> 내용을 지루하게 느꼈을 뿐이었던 것이다. 장정일의 서평들은 내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책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라고. 나는 웃으면서 그 세계로 발을 내디딘다. <빌린 책/산 책/버린 책>의 서평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