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을 읽다 - 마르크스와 자본을 공부하는 이유 유유 고전강의 2
양자오 지음, 김태성 옮김 / 유유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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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6.자본론을 읽다-양자오(2)

'잔디를 밟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 팻말이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저 팻말의 말을 들을까요? 누군가는 저 팻발의 말을 어길텐데... '미성년자는 담배와 술을 금합니다'라는 말을 봐도 비슷한 생각이 듭니다. 저렇게 말을 해도 어기는 사람은 분명 있을텐데.^^;; 물론 다수의 사람은 금지의 말을 하면 지킬 겁니다. 언제나 지키지 않는 건 소수에 불과하죠. 하지만 소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금지가 있기 때문에, 금지 하는 행동을 했을 때 느끼는 묘한 해방감은 커질 겁니다. 이렇듯 금지에는, 금지의 말에는, 이 금지를 넘어서서 행동한다면 금지하지 않을 때보다 더 묘한 기분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숨어 있습니다. 금지의 말에 숨겨진, 금지하는 행동을 촉구하는 듯한 묘한 단어의 이질감. 누군가에게는 금지의 말은 '금지하는 것을 해라'라는 말로도 들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자본론을 읽다>의 서문에 나오는 양자오의 행동이 위에 제가 적은 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책의 서문을 보면, 과거 한국과 비슷했던, 아니 어쩌면 더 심했을 수도 있었던 반공국가의 분위기가 있었던, 과거의 대만에서 저자는 대학 도서관에 가서 금단의 열매와 같았던 <자본론>과 우연히 마주칩니다. '읽지마', '읽으면 안 돼', '읽으면 넌 위험해'라는 금지의 단어가 보이지 않는 글씨로 적혀 있던 책을 마주하고, 양자오는 그 단어들을 '반드시 읽자'라는 단어로 바꾸고 읽습니다. 그 때 그가 느낀 감정은 어떠했을까요? 그건 마치 금단의 열매를 먹고 느꼈던 누군가의 쾌락과 비슷할 겁니다. 금지했기에, 하지 못하게 했기에, 했을 때 무언가를 위반한 듯한 아찔한 쾌감이 찾아오는 겁니다. 더군다나 그게 보통의 책도 아니고, 우리의 시야를 트이게 해주는 마르크스의 책이었기에 양자오가 느낀 감정은 더 짜릿할 겁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말한 뒤에 저자는 마르크스의 사상의 특징과 핵심을 짚어주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정당화하며, 지금 일어나는 경제적인 일들을 정당화시키는 주류 경제학과 달리 마르크스의 경제학,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것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마르크스는, 눈앞의 경제적 현실이 수요 공급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경제학적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마련한 자본주의적 구조에 따른 결과라고 알려줍니다. 그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특수한 것이라고 하면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아니기에, 마르크스에게 그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건 논의하고 분석하면서 비판하는 대상이 됩니다. 논의와 분석과 비판의 끝에서 마르크스는 그건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시스템의 결과이자 자본주의적 역사의 현상이 됩니다. 자본주의적인 시스템의 결과이자 자본주의적 역사의 현상으로서 그것은 계급투쟁의 결과물에 다름 아니게 됩니다. 가진 자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가지지 않은 자들의 지배당함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산물로서.

여기에 노동가치설, 잉여가치, 소외, 상품, 화폐, 물신 같은 개념들을 설명하고 거기에 마르크스의 통찰력과 19세기 사회에 대한 관찰한 결과들을 덧붙여서 마르크스의 사상과 <자본론>을 설명합니다. 더 나아가서 양자오는 마르크스 사상의 비어 있는 부분들을 채워주는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사상과 이론을 더해서 마르크스라는 한 개인의 사상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끊임없이 만들어져가는 마르크스주의라는 거대한 사상의 밑그림을 보여줍니다. 자본주의 사상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소외되지 않는 주체적인 개인의 삶에 대한 이상을 반영한 사회상에 대한 염원,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배려하는 삶,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지는 사회에 대한 추구 같은.

읽다보면 양자오의 의도대로, 마르크스의 사상과 <자본론>에 대한 밑그림은 충분히 그려집니다. 거기서 더 나아갈려면 다른 책들을 더 읽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도 저는 양자오의 마르크스와의 첫 만남에서 얻은 기쁨이 부럽습니다. 금지된 것을 맛 볼 때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테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마르크스를 금지한 시대를 경험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마르크스에 대한 금지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에게 마르크스는 금지된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금지된 열매가 아니었기에, 금지를 넘어설 때 느끼는 강한 쾌감은 없었습니다. 자유를 통해서는 금지를 넘어서는 강렬한 느낌을 느낄 수 없으니까요. 다만 시야를 넓혀주고, 제가 서 있는 지반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이상에 대한 공감도 어느정도 있었지만, 양자오가 경험한 강렬한 느낌은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자오가 부럽습니다. 금지된 책들을 읽을 때의 강렬한 경험을 저는 느낄 수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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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6.자본론을 읽다-양자오(2)

총페이지:314p

읽은 기간:2021.4.20~2021.4.23

읽은 책에 대하여:

<다시 자본론을 읽자>를 온라인 독서 모임의 첫 책으로 정하면서 나는 다짐했다. '자본론' 원서 뿐만 아니라 관련 책들도 읽겠다고. 많은 책들을 읽어서 내 머릿속을 자본론의 내용과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로 채우겠다고. 해석의 숲에서 헤매며 그 해석과 개념과 사상에 익숙해진 신체를 만들겠다고.

다짐은 당연하게도 행동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내 뇌는 행동에 앞서 읽을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이름이 언급된 건 '우치다 타츠루'였다. 그가 공저로 쓴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는 내 머릿 속에서 쉬운 마르크스 해석서의 가장 앞줄에 놓여 있었다. 그 다음 책이 양자오의 <자본론을 읽다>였다. 사실 양자오는 내가 고전에 입문할 때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의 쉬우면서도 포인트를 딱딱 찝어서 알려주는 고전 해석은 내가 고전을 읽을 때에 큰 도움이 됐다. 그의 고전해석 덕분에 나는 동서양 고전에 부담없이 입문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저자들과 책들은 김수행, 강신준, 이진경, 임승수, HOW TO READ 시리즈의 마르크스편 등등이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대로 차근차근 책들을 읽어나갈 결심을 했다.

우치다 타츠루의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쉬지 않고 <자본론을 읽다>를 펼쳐 들었다.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책읽기를 쉬어서 그런지 책은 예전보다 빨리 읽히지 않았다. 읽는 것은 전과 비슷했지만, 책 하나를 읽는 것은 예전보다 시간이 걸렸다. 읽다가도 집중이 되지 않아 책을 내려놓고 딴 짓을 했다. 딴 짓 하다가 내가 했던 딴 짓이 지겨워지면 다시 책을 펼쳐 읽었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이 책은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보다 차분한 느낌이 든다. 마르크스를 읽던 청년 시절을 떠올리며 쓴 책이라서 그런지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는 책 군데군데 청년의 열정이 느껴진다. 그에 비해 <자본론을 읽다>는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으로 시작하여, 청년의 열정 보다는 마르크스 사상과 <자본론>의 핵심을 차분하게 짚어준다. 내 입장에서는 두 책 중 비교하여 어느 책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두 권의 책은 저마다 자신만의 특성을 가진 채 빛난다. 그래도 내가 <자본론을 읽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작가의 지극히 사적인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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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 마르크스에게서 20대의 열정을 배우다
우치다 타츠루 & 이시카와 야스히로 지음, 김경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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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5.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우치다 타츠루, 이시카와 야스히로(2)

두 달 넘어 처음으로 책을 읽으면서, 너무도 익숙한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잃어버린 옛사랑을 다시 찾은 기분과 비슷하달까.^^;; 오버하는 듯한 느낌은 있는데, 오버만은 아닙니다. 사용하지 않고 버려두었던 내 뇌의 독서회로가 맹렬할게 돌아가면서 생겨난, 일종의 쾌락작용이 저를 그런 기분에 젖게 만드니까요. 노스텔지어, 향수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두 달 동안 느끼지 않았던 예전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되니까요.

글쓰기에 관해서는 조금 다릅니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서활동을 통해서 받아들였던 인풋에 비해서, 글로서 표현되는 아웃풋이 지나치게 적었던 것이 제 독서와 글쓰기의 지나간 과정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된다면 슬플 것 같아서요. 인풋과 아웃풋의 불균형으로 뇌에 무리가 생겨났던(잡생각이 너무 많아진다는 부작용이랄까^^;;) 지난날이 되풀이된다는 것의 슬픔. 그래서 이번에는 달라져보려고 합니다. 반드시 달라진다고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달라지려는 몸부림은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몸부림은 칠 예정인데, 이 몸부림 자체도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몸부림만 계속 친다면, 예전처럼 지겹거나 권태를 느껴서 떨어져 나갈 테니까요. '어떤 몸부림을 쳐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야합니다. 고민해 봅니다. 제 글쓰기에 관한 몸부림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고민 끝에 저만 쓸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음... 저만 쓸 수 있는 글은 도대체 뭐지요? '저만 쓸 수 있는 글'에 대한 정의가 궁금해집니다. 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고민 끝에 저만 쓸 수 있는 글은 뭔지 알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장난 치는 것도 아니고,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고 고민만 계속하는 게 옳은 일일까요? 저 자신에게 물어보지만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만 쓸 수 있는 글이란 게 뭔지 저도 알 수 없으니까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뭔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물어보고 고민하면서 글을 쓸 수 밖에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요.

어쩌면 저만 쓸 수 있는 글 이라는 말 자체가 환상일지 모릅니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나 혼자서 스스로 나만의 글쓰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읽은 책, 제가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형성된 생각과 사고, 내가 살아오면서 만들어낸 나만의 삶의 길, 나와 관계된 타인의 생각, 내가 살아온 사회와 문화의 힘 등이 내게 영향을 미친 상태에서 제가 글을 쓰니까요. 그런 면에서, 저만의 완벽한 오리지날리티로 구성된 글이란 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제가 어떤 방식으로 그것들을 잘 섞어내는지가 중요할 겁니다. 섞어내는 방식에서 제 글쓰기의 독창성이 나타나는 것이죠. 말은 쉽게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독창성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길이 없으니까요.

독창성, 독창성 하다 독창성이라는 생각은 멀리 날아가버립니다. 대신에 이상한 경험이 떠오르네요. 두 달 넘어서 처음으로 도서관에 갔다 집으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가방 안에는 새롭게 읽은 책들이 들어있습니다. 가슴은 책을 새롭게 읽는다는 기대감으로 부풀어오릅니다. 버스 안의 의자에 앉아 폰을 검색해봅니다. 온라인 독서 모임의 첫 책으로 읽게 될 <다시 자본을 읽자>라는 책을. 구글로 검색하는데, 실수로 '다시 자본을 읽자'가 아니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검색하게 됩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제 손이 왜 '다시 자본을 읽자'가 아니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눌렀을까요? 구글의 자동검색 기능에 따른 실수라지만 실수치고는 너무 오묘합니다. 이왕 실수한 김에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노래를 들어봅니다. 오랜만에 듣지만 노래는 좋네요. 가사가 마음에 팍팍 와닿습니다. 가사를 파고 들어보니 이게 내 마음과 똑같습니다. 마치 제 마음을 노랫말로 만든 것처럼요.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조금 멀리 돌아왔지만

기다려왔다고

널 기다리는게

나에게 제일 쉬운 일이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고'

책을 다시 만난 저의 자세가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의 가사와 비슷합니다. 헤어진 옛사랑을 다시 만나서 기뻐하는 모습, 잃어버린 나의 자리로 다시 돌아온 느낌. 책이라는 옛연인을 다시 만나서 기뻐하는 제 모습을 노랫말로 새긴 것처럼. 어쩌면 '다시 자본을 읽자'는 저의 행동에 따라 저의 마음 속에서 '다시 책을 읽자'가 되고, 그게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로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도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는 일본에서 청년들이 마르크스의 책을 읽고 마르크스의 사상에 심취하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이 지나서 청년들이 마르크스의 책을 읽지 않은 시절이 되자, 마르크스의 책을 읽던 시절을 보낸 저자들이 나서서 마르크스의 책을 읽자고 외치는 책입니다. 그들의 행동은 마치 지나간 옛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 사랑의 힘을 현재의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들은 지나간 옛사랑의 힘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들의 말에 동의합니다. 마르크스의 비판정신, 주어진 상황 그대로를 주어진 상황 그대로 파악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상황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변화해갔는지를 파악하면서 비판적으로 파악하는 것, 사람들의 마음을 이끄는 수사학,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관념을 가지는지가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마르크스의 말과 사상은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필요합니다. 주어진 그대로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넘어서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만드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지금의 삶에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마르크스의 저서들을 살피며 마르크스의 사상의 변화과정을 살피는 방식으로, 아직도 유효한, 아직도 필요한, 옛사랑의 힘을 쉽고 재미있으며 지적인 방식으로 이 책은 읊조리고 있습니다. 저 또한 두 번째 읽지만, 책을 안 읽은 시간 탓인지, 새롭고도 익숙하게 마르크스라는 옛 사랑의 힘을 새삼 실감하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가 다시 떠오르네요.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잘있었냔 인사가 무색할 만큼

괜한 우려였는지

서먹한 내가 되려 어색했을까

어제 나의 전활 받고서

밤새 한숨도 못 자 엉망이라며

수줍게 웃는 얼굴

어쩌면 이렇게도 그대로일까

그땐 우리 너무 어렸었다며

지난 얘기들로 웃음짓다가

아직 혼자라는 너의 그 말에

불쑥 나도 몰래 가슴이 시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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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4-22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김동률에서 빵 터졌습니다. 이런 식으로만 쓰셔도 너무 좋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 글 많이많이 올려주시길 기대할께요!

짜라투스트라 2021-04-22 14:2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8325.청년이여,마르크스를 읽자-우치다 타츠루,이시카와 야스히로(2)

총페이지:240p

읽은 기간: 2021.4.18~2021.4.20

읽은 책에 대하여:

두 달이 넘는 기간동안 책을 읽지 않았다. 당연히 책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책을 펴지도 않았으며, 책 향기도 맡지 않았다. 도서관에도 가지 않았고, 인터넷에서 책과 관련된 사이트도 일체 가지 않았고, 검색에서 책과 관련된 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책의 'ㅊ'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오랜 기간 독서 모임을 했던 분들이랑 온라인으로 모여 수다를 나누지 않았다면 이 상황은 조금 더 지속됐을 것이다. 그분들이랑 온라인으로 수다를 떨다가 온라인 독서 모임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책을 읽을 시기가 다가왔다는 것을.

내가 밀어붙여서, 온라인 독서 모임의 첫 책으로 마르크스의 '자본'과 관련된 책을 읽기로 했다, <자본론>을 쉽게 풀어 쓴 책이긴 했지만, 두 달 반이 넘는 기간동안 책을 읽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과 관련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두 달 반이 넘는 기간동안, '책과는 전혀 관련없이 유튜브,아프리카티비,NBA,일본애니,한국드라마,헐리우드영화,유럽축구,쓸데없는 구글링으로 단련된 내 뇌가 과연 마르크스의 비판적인 사유를 기반으로 한 책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동시에 기대감도 들었다. 오랜 연인을 다시 만나는 듯한 기분, 잃어버렸던 추억의 세계를 다시 만나는 듯한 경험처럼.

책을 다시 만난다는 기대감과 함께 내 뇌는 맹렬하게 돌아갔다. 일단 <자본>과 관련된 책을 읽기로 했으니 '자본' 관련 책들을 마음먹고 읽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생각이 들자마자, 그 다음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서가로 가서 마르크스 관련 책들을 훑었다. 내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책이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였다. 10년 전에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지. 나는 바로 책을 꺼내들고 빌린 뒤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방에 들어가 책을 펼치고 읽어나갔다. 두 달이 넘는 기간동안 멈춰 있었던, 종이에 적혀 있는 글들의 세계가 내 눈앞에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마르크스라 철학자의 사유를 전하면서. 그 동안의 독서 트레이닝으로 단련되어 있었던 내 뇌는 기다렸다는 듯이 문자를 해석했다. 책을 읽으며 내 뇌 속에 저장되어 있던 마르크스와 관련된 사유와 사고, 전에 이 책을 읽으며 뇌에 각인된 기억들이 마구 떠올랐다. 어느 순간 문자가 흘러내리면서 책이 내 마음 속으로 거침없이 흘러 들어왔다. 그래, 이 느낌이야, 두 달 전에도 이렇게 책을 읽었지. 마치 이건,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와 같은 상황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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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5.청년이여,마르크스를 읽자-우치다 타츠루,이시카와 야스히로(2)

총페이지:240p

읽은 기간: 2021.4.18~2021.4.20

읽은 책에 대하여:

두 달이 넘는 기간동안 책을 읽지 않았다. 당연히 책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책을 펴지도 않았으며, 책 향기도 맡지 않았다. 도서관에도 가지 않았고, 인터넷에서 책과 관련된 사이트도 일체 가지 않았고, 검색에서 책과 관련된 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책의 'ㅊ'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오랜 기간 독서 모임을 했던 분들이랑 온라인으로 모여 수다를 나누지 않았다면 이 상황은 조금 더 지속됐을 것이다. 그분들이랑 온라인으로 수다를 떨다가 온라인 독서 모임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책을 읽을 시기가 다가왔다는 것을.

내가 밀어붙여서, 온라인 독서 모임의 첫 책으로 마르크스의 '자본'과 관련된 책을 읽기로 했다, <자본론>을 쉽게 풀어 쓴 책이긴 했지만, 두 달 반이 넘는 기간동안 책을 읽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과 관련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두 달 반이 넘는 기간동안, '책과는 전혀 관련없이 유튜브,아프리카티비,NBA,일본애니,한국드라마,헐리우드영화,유럽축구,쓸데없는 구글링으로 단련된 내 뇌가 과연 마르크스의 비판적인 사유를 기반으로 한 책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동시에 기대감도 들었다. 오랜 연인을 다시 만나는 듯한 기분, 잃어버렸던 추억의 세계를 다시 만나는 듯한 경험처럼.

책을 다시 만난다는 기대감과 함께 내 뇌는 맹렬하게 돌아갔다. 일단 <자본>과 관련된 책을 읽기로 했으니 '자본' 관련 책들을 마음먹고 읽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생각이 들자마자, 그 다음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서가로 가서 마르크스 관련 책들을 훑었다. 내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책이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였다. 10년 전에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지. 나는 바로 책을 꺼내들고 빌린 뒤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방에 들어가 책을 펼치고 읽어나갔다. 두 달이 넘는 기간동안 멈춰 있었던, 종이에 적혀 있는 글들의 세계가 내 눈앞에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마르크스라 철학자의 사유를 전하면서. 그 동안의 독서 트레이닝으로 단련되어 있었던 내 뇌는 기다렸다는 듯이 문자를 해석했다. 책을 읽으며 내 뇌 속에 저장되어 있던 마르크스와 관련된 사유와 사고, 전에 이 책을 읽으며 뇌에 각인된 기억들이 마구 떠올랐다. 어느 순간 문자가 흘러내리면서 책이 내 마음 속으로 거침없이 흘러 들어왔다. 그래, 이 느낌이야, 두 달 전에도 이렇게 책을 읽었지. 마치 이건,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와 같은 상황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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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4-22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라투스트라님! 누르면 두 줄 나오고 전체 글이 안 나오는데요. 🙄

짜라투스트라 2021-04-22 10:38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다시 게시글을 새로 고쳐서 써야할 듯 합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