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1.정치가-플라톤(정치가/소피스트)
'이 대화편에서는 철인 왕이 다스리는 이상 국가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탐색하고 있다. 마치 직조공이 모든 준비 과정을 거쳐서 날실과 씨실을 엮어 천을 짜듯, 이상적인 치자는 국가의 하부기관들을 통할하여 모든 시민이 최대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정치라는 천을 짜야 한다. 시민들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치자는 당파싸움을 일삼는 사이비 정치꾼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상적인 치자를 찾을 수 없을 때는 시민들이 되도록 법을 어길 수 없도록 세심하게 입법하는 것이 차선책이다.(13)
1.
<국가>,<법률>에 이어 <정치가>를 읽음으로써,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책 세 권을 모두 읽게 되었다.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고 눈에 들어오는 대로 <국가>,<법률>,<정치가>를 순차적으로 읽었다. 책이 쓰여진 순서대로 하면, <국가>가 제일 먼저이고, <법률>은 가장 나중에 쓰였으며, <정치가>는 그 중간에 속한다. 책 내용도 쓰여진 순서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가장 먼저 쓰인 <국가>에서 플라톤의 자신의 이상주의적인 국가관을 이상주의적인 모습 그대로 주장하는 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최후의 대작이라고 불리는 <법률>에서, 플라톤은 자신의 이상적인 국가관을 현실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변용시키는 노회한 모습을 보인다. 법률의 제정이나 구체적인 법집행을 위한 세밀하고 실천적인 지침을 글로 쓰는 식으로. <정치가>는 <국가>와 <법률>의 중간적인 시기에 쓰인 책답게, 내용도 그 중간에서 맴돌고 있다. 플라톤은 이 책에서 자신의 이상적인 국가관을 피력하지만 동시에 그 이상적인 내용이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을수도 있음을 실감하면서, 그것이 안 되면 '법률'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국가관이 현실에 반영되기를 바란다.
2.
이 책은 '방문객'과 '젊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소피스트>에서 이어진 것으로 보이는 <정치가> 속 대화는, <소피스트>의 대화가 그랬던 것처럼, 분류로 나누는 방법과 분류를 한 상황에서 배타적 성격을 가진 개념을 제거하는 방법을 써서 '정치가'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당연하게도 플라톤은 이 대화 형식을 통해서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왕도 정치'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통치술은 전문지식으로 다수가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다수보다는 1인이 통치하는 게 좋다는 식으로. 반면에, 플라톤은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아테네식 민주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적개심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3.
나는 알고 있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왕도정치의 왕이라는 지배자는, 평범한 왕이 아니라 철학을 공부하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에 속하는 철인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진리를 추구하며 공부하는 철학자 왕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왕이라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왕은 왕이고, 왕도 정치는 왕에 의한 1인 통치다. 이것을 철학서로서 하나의 이념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념이 아닌 현실이다. 현실은 이념으로만 재단할 수 없다. 이념은 현실 앞에서 현실화하거나 현실의 통치자나 정치가들의 필요성에 의해서 현실을 정당화하거나 덮는 도구로 자주 쓰인다. 결국 <정치가>에 나오는, 1인 통치를 주장하는 플라톤식 왕도정치 개념은, 현실에서 독재정치나 독재자를 옹호하거나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일 확률이 높다. 이 진실 앞에서 내 머리는 현실과 이념의 혼란으로 뒤덮인다. 하지만 이 혼란은 기본 좋은 혼란이다. 하나의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책의 내용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머리 속에서 현실과 뒤섞는 현실화의 과정을 통해서, 책이 가진 한게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동시에 책의 의의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기에. 앞으로도 책을 읽으면서 계속 이런 기분 좋은 혼란을 느끼고 싶다. 그리고 정치라는 것은 쉽게 답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쉽게 답이 나올 수 없기에 정치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이념을 표출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플라톤의 <정치가> 같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주장하는 책이 게속 나오기를 바란다. 끝나지 않은 과정으로서 정치야말로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좋은 정치의 모습이기에. 거기서 무언가가 나와 현실의 좋은 결실을 맺는다면 그것은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