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타워 6 - 수재나의 노래 다크 타워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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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5.다크타워6:수재나의 노래-스티븐 킹

보라, 거북이의 거대한 몸통을!

등딱지에 지고 있네 이 대지를.

머리는 느려도 항상 친절해,

모두를 품고 있어 그 마음 속에.(35)

미국을 대표하는 공포소설 작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의 대표작은 무엇일까요? 영화로도 유명한 <미저리>,<그린마일>,<샤이닝>일까요? 스티븐 킹의 대표 중편집이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의 원작인 <쇼생크 탈출>이 포함된 '사계'일까요? 최근에야 영화가 나온 <그것>? 6권이라는 긴 분량의 현대판 묵시록 같은 <스탠드>?

이 작품들 모두 훌륭한 작품이지만, 스티븐 킹의 대표작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분량으로 보나, 작품에 들여간 시간으로 보나, 미국에서의 지명도로 보나, '다크 타워' 시리즈가 스티븐 킹의 대표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의 인터뷰나 자기 생각을 쓴 글을 보면 본인 스스로도 '다크 타워' 시리즈를 자기의 대표작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에게 '다크 타워' 시리즈는 거의 지명도가 없습니다. 이건 진짜입니다.^^ 영화로 너무 유명한 <쇼생크 탈출>이나 <미저리>, <샤이닝>, 최근에 영화가 나온 <그것>에 비한다면, '다크 타워' 시리즈는 한국인들에게 무명의 시리즈나 다름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영화나 TV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로 '다크 타워'가 유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7년도에 나온 영화는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이름값이 없습니다. 그나마 평가도 너무 좋지 않고요. 여기에 더해 서부 판타지라는 장르의 이질감이 큽니다. 서부 판타지? 네, 맞습니다. 스티븐 킹은 '반지의 제왕'과 서부영화인 '석양의 무법자'를 더해 서부 판타지라는 지극히 미국적인 판타지 장르로서 '다크 타워' 시리즈를 구현해냅니다. 우리가 아는 중세 느낌의 기사, 마법사가 나와 괴물과 싸우는 판타지가 아니라 총잡이들이 나와서 서부 느낌의 공간에서 괴물들과 싸우면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서부 판타지. 우리가 아는 판타지가 아니니 이질감이 클 수 밖에 없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다크 타워 시리즈가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1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리즈의 첫 관문이자 포문을 여는 다크 타워 시리즈의 1권은 읽기가 생각보다 너무 어렵습니다. 흥미로운 설정이나 기대감도 있지만, 20대 때의 치기가 어려 있는 다크 타워 시리즈의 1권은 나중에 조금 고쳐 썼다고 해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너무 힘들게 읽어 다음권 읽기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읽은 게 아까워서 2편도 읽었는데 재밌어서 계속 읽게 됐죠. 저의 경우를 생각해 봤을 때, 다크타워 읽기를 시작했던 많은 이들이 1권의 벽에 막혀서 포기한 경우가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긴 하지만요.^^

'다크 타워' 시리즈는 1권을 벗어나면 자기만의 재미를 펼쳐보입니다. 20세기 미국과 가상의 서부 세계를 위시한 다양한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모험담이 펼쳐지는데, 그 모험담이 스티븐 킹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펼쳐지니 재미와 가독성이 장난이 아닙니다. 6권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5권의 마지막에 이 시리즈의 초인적 영웅인 총잡이 롤랜드의 동료 수재나가 임신한 채로 사라지는데, 그녀를 찾기 위한 롤랜드의 그의 동료들이 6권에 그려집니다. 초반에 가상의 서부 판타지 세계에서 시작한 모험은 20세기 후반의 미국으로 넘어가고, 그곳에서의 모험은 시리즈의 마지막인 7권의 이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6권은 시리즈의 마지막인 7권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한 건 작가인 스티븐 킹이 작품 세계 속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작품의 창조자가 피조물들과 함께 등장하는 셈인데, 이건 20세기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인 문학기법에서 종종 쓰인 것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면서, 기존의 문학이 가진 리얼리즘적 경향을 해체하고, 문학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장시키고 재창조 시키는데 기여한 기법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작가의 등장으로, 신선함과 새로운 재미가 더해집니다. 창조자가 피조물들과 다를 바 없는 작품 속 인물로서 등장하고,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자신이 '허구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역설로서. 또하나 생각해야 할 건, 작품을 만든 창조자가 작품에 등장한다는 것이, 작품의 창조자마저 작품 속 등장인물이 되어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한다는 점인데, 스티븐 킹은 비교적 이것을 잘 이행합니다. 창조자가 창조자가 아닌 작품 속 하나의 구조물로서 포함시키며 진행되는, 스티븐 킹의 실험적인 스토리텔링은 실제 있었던 일과 가상의 일을 뒤섞으며 '다크 타워' 시리즈를 앞에 말한 것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위치시키고 시리즈의 근원을 새롭게 부각시킵니다. 아마도 저자는, 시리즈의 마지막편인 7편을 앞두고 시리즈 자체의 근원을 튼튼하게 만들고 싶었나 봅니다. 작가를 내세우며 시리즈가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방법으로 일깨우며. 그리고 책 속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나면 스티븐 킹이 자신의 분신 같은 소설 속 '스티븐 킹'을 얼마나 철저하게 이야기 속 구조물로 활용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작가는 소설 속 '자신'마저 이야기를 위해 이용하며 시리즈의 마지막인 7편으로 나아갑니다.

다크타워 시리즈의 6편은 재밌습니다. 시리즈의 1편이 아닌 다른 편들처럼요. 그런데 이 재미는 조금 다른 재미입니다. 6편은 7편의 큰 싸움을 예고하고, 7편을 위한 작은 싸움들로(이런 말이 맞는 것일까요?^^)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7편을 위한 '새로운 탄생'을 작품 속에 위치시킵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영웅 총잡이 롤랜드의 최고의 적을 탄생시키는 식으로. 다크 타워를 둘러싼 시공간을 넘나드는 모험담의 끝을 준비하기에는 이런 방식이 옳은지도 모릅니다. 아직 등장하지 않는 큰 싸움을 위한 예비적인 것으로. 새로운 탄생은 새로운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겠죠. '생'과 '사'는 이어지니까요. 새로운 탄생을 담은 6편에 이어 7편은 거대한 싸움과 새로운 죽음으로 독자들을 인도할 겁니다. 다크 타워 시리즈를 꾸준히 읽어온 시리즈의 독자들은 7편을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읽어온 독자의 몫이니까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은 이들은 '다크 타워' 시리즈가 스티븐 킹 작품 세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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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3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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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4.한자와 나오키3-이케이도 준

"가만히 있지 않아. 이 빚은 반드시 갚아줄 거야."

한자와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 당하면 두 배로 갚아줘야지."(55)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읽으면 깨닫게 됩니다. 이 시리즈가 소설과 TV 시리즈 양 쪽에서 왜 성공을 거두었는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제 생각을 적는 저만의 서평이기에 꺼려 하지 않고 이에 대한 저만의 생각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책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 엄청난 통쾌함을 줍니다. 네, 맞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에 딱 들어맞는 말은 통쾌함입니다. 회사에 들어가서 상사의 억압에 시달려본 사람이라면, 회사가 아니라도 사회에서 '을'로서 '갑질'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절망,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시키는 극단의 카타르시스가 불러일으키는 통쾌함.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이 통쾌함을 향해 미적대지 않고, 빠르고,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달려나갑니다. 통쾌함의 대행자로 나오는 시리즈의 주인공인 은행원 '한자와 나오키'는 업무의 실패를 자신에게 다 뒤집어씌우려는 불량 상사를 향해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직언을 날립니다. 당한만큼 갚아주겠다고. 한자와 나오키의 직언 시리즈를 본 억압받은 회사원이나 사회인들은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은 교묘하고 철저한 준비로 인해 현실이 됩니다. 말뿐만 아니라 현실로 보여주기 때문에, 책이 전해주는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이 책은 극단의 속도감을 보여줍니다.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은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책의 속도감, 가독성, 흡입력 있는 이야기 전개 때문에 두께랑 상관없이 책은 술술 잘 읽혀집니다. 책이 복합적이거나 중층적인 이야기 전개를 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다, 쉬운 언어와 문체, 매력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캐릭터들의 행동에다 단순하면서도 우직한 일반통행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물론 미스터리의 요소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책에 흥미를 더하면서 재미를 만들어낸다는 점도 속도감에 큰 힘이 되어줍니다.

셋째로, 이 시리즈는 재미있습니다. 사실 재미말고 엔테터인먼트 소설(일본에서 이런 류의 소설을 이렇게 부릅니다.)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위의 두 가지 요소에 더해 미스터리한 요소가 잘 더 해져 책의 재미를 절묘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시리즈를 금융 미스터리나 기업 미스터리로 정의하기 보다는 기업 모험 소설이나 금융 모험소설로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한자와 나오키의 행동은 진짜 어드번체처럼 보이니까요.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 3편도 시리즈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통쾌하고 속도감 있고 재밌죠. 이 3편에 다른점이 있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의 과실을 맛본 베이비부머 세대라 할 수 있는 단카이 세대, 일본 경제의 정점을 경험했던 '버블 세대'와 달리, 1990년에 일본 경제의 버블이 꺼진 이후에 경제에 등장해 저성장과 취업빙하기의 현실을 경험했던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는 그 이전의 세대랑 달리 '생존'을 중시하고 조금 더 개인주의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그 현실을 반영하면서 3편은 IT 기업 간의 M&A를 둘러싼 경쟁과 음모, 대결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2편에서 상사의 무능력함과 부도덕함을 신랄하게 폭로했지만 그 때문에 은행의 자회사인 증권사로 좌천된 한자와 나오키는, 증권사를 음모로 내리누르고 IT 기업의 M&A를 진행시키려는 은행의 교활한 간부들에 맞서서, 그들보다 더한 계략과 음모를 전개시키며 자신의 진가를 보여줍니다. '잃어버린 새대' 출신의 젊은 증권사 직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는 젊은 직원들에게 당당히 맞서는 모습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이죠. 세대 간의 갈들을 지나치게 간단한 일반화로 해결하는 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이 재미있기 때문에 책은 잘 흘러갑니다. 제가 일반화의 위험성이 감지됨에도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자는 인맥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는 회사, 부조리함과 모순이 아니라 합리적인 운영으로 돌아가는 회사의 이상을 그리면서, 일본 사회에 갑질이나 부조리한 권위적 운영이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좋은 회사에 대한 이상을 재미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에 좋아하는 겁니다. 더 나아가 좋은 회사에 대한 이상은 좋은 사회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잃어버린 세대의 모습을 그려낸 3편에는 그런 모습이 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죠. 재미있는데다 좋은 것에 대한 갈망까지 녹아 있는데 어찌 제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4편을 기대해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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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보세요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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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3.카메라를 보세요-커트 보니것

앞으로 나아가는 것, 모든 장면, 모든 대화가 서사를 전진시켜야 하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깜짝 결말이 있어야 하고.(12)

여름은 잠든 중에 평화롭게 사망했고, 상냥한 목소리의 유언 집행인 가을은 봄이 다시 찾으려 올 때까지 생명력을 금고 속에 잘 넣은 뒤 잠가두었다.(230)

'커트 보네거트'(이 책에서는 '커트 보니것'이라 번역했지만 저는 이전의 번역어인 '커트 보네거트'가 더 익숙해서 이렇게 쓰도록 하겠습니다.^^;;)는 제 마음의 '문학 속 제단'에 이미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5도살장>,<갈라파고스>,<머더 나이트>,<고양이 요람>,<타이탄의 미녀>,<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같은 소설들을 읽으면서 전해진 페이소스, 신선한 설정, 기존의 소설들과 다른 구성, 비극과 희극을 넘나들며 전개되는 감정의 흐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슬프지만 웃기고, 웃기지만 슬픈, 그러면서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전해주는 커트 보네거트 소설의 힘 앞에서 '커트 보네거트'라는 이름을 마음에 새기는 방식으로. 이름을 새겼으니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들을 계속해서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이건 '사랑'과 유사할 겁니다.

커트 보네거트를 사랑하는 제 앞에 커트 보네거트의 미발표 단편소설 모음집 <카메라를 보세요>가 나타났습니다. 읽지 않을 수가 없죠. 읽고 나니 '역시'라는 말이 제 입에서 자동적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때의 '역시'는 그 이전에 제가 커트 보네거트를 읽었을 때의 '역시'와 유사하지만 다른 면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거기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카메라를 보세요>는 이전에 제가 읽었던 커트 보네거트와 소설들과 비슷합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사회에 대한 강판 비판의식, 페이소스가 짙게 배어 있는 유머러스함까지. 하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우선 단편소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분량이 길어 긴 호흡을 가져야 하는 장편소설과 달리 장편소설은 분량이 짧기 때문에 압축적이면서도 그 안에 무언가 강하게 독자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커트 보네거트도 이 책에서 단편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짧으면서도 강하게 무언가를 전하면서, 그 안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살려내는 식으로. 어떤 동화같은 스타일로, 어떤 때는 SF적인 느낌으로, 어떤 때는 자기 특유의 희비극을 넘나드는 스타일로. 커트 보네거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단편소설을 쓰며 전체적으로 이 책의 분위기를 재밌으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그러면서도 무언가 여운을 남기는 걸로 몰아갑니다.

결국은 작가가 중요한 거겠죠. 작가의 역량, 작가의 스타일, 작가의 문체, 작가의 구성 같은. 커트 보네거트 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소설이기에 재밌고 좋은 것 같습니다. 자신만의 문학적인 우주에 끌여들어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저는 커트 보네거트라서 좋고 즐거웠습니다. 커트 보네거트가 간직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좋았고, 그러면서도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을 가진 게 좋았거든요. 무엇보다 가슴 따뜻함이 이 소설들 속에 살아 있어서 좋았습니다. 차디찬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에 내리는 따뜻한 단비같은 느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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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위한 시간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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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2.별을 위한 시간-로버트 A. 하인라인

별을 향해 날아가는 쌍둥이는 나이가 거의 들지 않을 것이다. 설령 한 세기 동안 날아가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에 남겨진 쌍둥이는 늙어간다.(59)

시간 여행과 관련된 것 중에 '쌍둥이 패러독스'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만한 것이지만, 쓸데없이 굳이 설명을 해보자면(^^;;) '쌍둥이 패러독스'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전설적인 이론인 '특수 상대성이론'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특수 상대성이론'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 머리 아프다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네, 저도 그 의견에 공감합니다. '특수 상대성이론'이 쉬운 이론은 아니니까요. 특수 상대성이론에 사용되는 수식은 저 같은 수학에 무지한 인간에게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뭉기며 '여기서 꺼져'라는 말이 들릴 정도의 튕겨내기를 시전하고, 이 이론과 관련된 논의들은 명성과 달리 복잡한 면이 있으니까요. 저도 사실 잘 모릅니다. 잘 모르지만, 몇 권의 과학책을 읽고 대충 그러려니 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그래도 몇 권의 과학책을 읽고 오류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그나마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른다면 빛의 속도에 가까울 수록 시간은 느려지고, 길이는 수축하게 됩니다. 아마 너무 쉽게 말해서 서술상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감안해야할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을수도 있지만, 대충 이 정도만 알면 이 소설의 핵심적인 주제인 '쌍둥이 패러독스'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쌍둥이 패러독스'는 '특수 상대성이론'이라는 이론에 기반한 과학적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수식과 논증, 설명이 있을 뿐이고 생생한 삶의 모습은 없죠. <별을 위한 시간>은 '쌍둥이 패러독스'를 이야기화한 소설입니다. 거기에는 당연히 서사의 흐름이 있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이 있죠.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하나의 과학적 역설을 이야기화해서 생명력을 불어넣고 생생한 삶의 모습으로 되살려낸 것이 이 소설이라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SF의 3대 그랜드 마스터 중에서 가장 스토리텔링 강한 로버트 A. 하인라인이 소설을 썼으니,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강할지는 쉽게 예측이 됩니다. 읽어보니 제 예측대로 였습니다. 일단 이 소설은 쉽게 읽혀집니다. 물론 SF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소설의 전개도 빠르고, 이야기의 구성에서 복잡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없습니다. 소설 자체에 가독성이 높고,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이 소설은 SF답게 소설 부분부분에 과학적인 이론을 이야기합니다. 그 이론이라는 게 현실에서는 아직 구현되지 못한 가상이자 낭만에 가까운 이론이라 해도 소설은 실제 구현된 이론인 것처럼 현실감을 가지고 설명됩니다. 그래서 과학소설이라고 불리는 거 겠죠. 다른 부분은 이 소설에 나오는 것들의 생명력입니다. 빛에 가까운 속도로 운행되는 우주선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모습이 실제 삶인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된다는 말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계의 지구형 행성을 탐사하는 모습에서도, 지구에 있는 쌍둥이와 교신하는 모습에서도, 지구와의 시간차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들에서도. 물론 마지막은 동화같은 모습도 보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쌍둥이 패러독스와 연관된 우주 비행의 삶을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우리가 체험할 수 없는 것들을 실제 체험하는 것처럼.

과학이라는 영역은 우리와 멀리 떨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과학을 통해 발명된 기술이나 물건들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학이론 자체는 일반인들의 삶에 가까울 수 없습니다. 거기 등장하는 수식이나 설명, 이론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럴 때 과학소설이라고 불리는 SF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론과 일반인들을 이어주는 가교로서. 저는 <별을 위한 시간>이 '가교로서의 역할'에 가장 잘 들어맞는 SF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쌍둥이 패러독스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서 보여주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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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열쇠의 계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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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1.책과 열쇠의 계절-요네자와 호노부

아무리 훌륭한 규칙이라도 언젠가 어기게 된다. 그렇다면 지킬 수 있을 때 지키고 싶다고. 맞아, 나도 언젠가 이상론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될 날이 오겠지. 그래도 마쓰쿠라, 조금만 더 지켜줄 수 없을까?(365)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빙과>의 원작소설가인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은 저에게 복합적이고 독특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덧없는 양들의 축연>이나 <보틀넥>,<추상오단장> 같은 작품들은 무겁고 어두운 감정의 파고로 저를 내려앉히는 느낌이고요(특히 <보틀넥> 같은 작품은 어찌나 우울하고 어둡던지 읽다가 우울의 계곡 속으로 추락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사이트 밀>이나 <부러진 용골> 같은 작품들은 익숙한 장르의 공식을 해체하는 신선한 느낌의 세계로 저를 인도하면서도 어딘가 복합적이고 묘한 감정을 불러왔고요, <빙과>가 속한 '고전부 시리즈'나 '소시민 시리즈'는 청춘 소설 같으면서도 청춘 소설 같지 않은 씁쓸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모든 감정들을 종합해 봤을 때,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들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복합적인 감정을 들게 만드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책과 열쇠의 계절>도 요네자와 호노부 특유의 복합성이 가미된 '청춘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일반적으로 청춘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청춘 소설에 미스터리를 가미한 소설입니다. 이 때의 청춘은 우리가 아는 청춘입니다. 이미 지나간 버린 젊음의 향수를 간직한, 청춘만의 낭만과 희망이 펼쳐지는 그 청춘. 하지만 요네자와 호노부의 청춘 소설은 일반적인 청춘 소설과 다릅니다. 그는 낭만과 희망, 추억의 공간인 청춘 소설에 냉정한 현실을 덧붙입니다. 밝고 희망적인 청춘의 이면에는 냉정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죠. 청춘이라는 낭만의 무대에 차가운 현실의 무게를 더함으로써 그의 청춘 소설은 따스한 청춘과 차가운 현실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공간이 됩니다. 그래서 그의 청춘 미스터리 소설은 씁쓰레하고 쓰디쓴 맛이 납니다. 상쾌하고 밝은 맛의 청춘소설과는 다른.

이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춘의 낭만, 십대시절의 향수가 어른거리지만 그 주위를 맴도는 현실의 무게감이 어울러진 소설로서. 책에는 두 명의 십대소년이 등장합니다. 3학년이 사라진, 한가한 고등학교 도서실을 지키고 있는 2학년 출신 두 명의 도서위원. 이 둘은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자 탐정역할을 합니다. 홈즈-왓슨 콤비 같은 탐정과 조수가 아니라, 탐정이라는 대등한 관계에 놓인 홈즈-홈즈 느낌의 탐정 콤비로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해결해나갑니다. 둘이 협력하면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데 둘의 스타일과 소설에 차지하는 역할은 조금씩 다릅니다. 키크고 잘 생긴 마쓰쿠라 시몬은 놀라운 추리력을 가진 인물로서 냉소적이고 어두운 구석이 있는 인물로, 사건을 냉정한 현실의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그의 동료이자 소설에서 화자인 '나'로 나오는 호리카와 지로는 소극적이며 순진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마쓰쿠라 시몬 못지 않은 추리력으로 시몬과 협력하여 사건을 해결합니다. 시몬과 다른점이 있다면 지로는 사건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인간들의 따스함과 희망을 지켜줄려고 합니다. 시몬이 현실을 상징한다면, 지로는 낭만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겠죠. 흥미로운 부분은 이 둘이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킵니다. 혼자 있을 때 보다 함께 있을 때 더욱 더 빛을 발하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낭만과 현실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만든다'라고. 저만의 오독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보니 이 소설이 현실과 낭만의 이중주로 빛나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그 이중주는 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현실을 견뎌낼 힘을 주는 낭만과 낭만의 공허함을 가라앉혀주는 현실의 무게감의 조화로, 삶을 살아나갈 힘을 얻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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