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게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걸렸다. 읽다가 책을 덮고, 읽다가 책을 덮고 하면서. 나만 이렇게 이 책이 안 읽히나. 이 책에 관련된 다른 블로그 글을 보고, 그 글을 쓴 이도 나처럼 '이 책이 읽히지 않더라'는 말을 해서 안심이 됐다. 나 혼자만 이 책이 읽히지 않은 건 아니구나. 이 책은 다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과는 다르다. 다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현실감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만의 독특한 관념과 사상과 사고로 빛난다면, 이 책은 당대 현실과 딱 붙어서 엄청난 현실감을 자랑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기반으로 만든 소설답게. 물론 그 현실도 도스토예프스키라는 필터로 걸러져서 문학적으로 재창조된 현실이긴 하지만. 근데 그 현실이라는 게, 감옥과 감옥에서 사는 죄수들의 현실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다. 죄수들의 현실과 죄와 벌의 문제의 앙상블. 죄와 벌의 문제라는 도스토예프스키식 주제와 현실성이라는 도스토예프스키 답지 않은 특징이 맞물리면서 빚어지는 소설. 죽음과도 같은 그 현실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나는 어떤 곳에서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소설을 쓰면서 한 생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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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하)>를 읽음으로써 도스토예프스키의 5대 장편소설(백치,미성년,죄와벌,악령,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다 읽게 됐다. 다 읽고 나니 감회가 새롭다. 특히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같은 경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이자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세계의 총결산 같은 작품이라서, 이 소설을 읽은 것 자체가 의미 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구축한 '도스토예프스키 제국'이라는 그의 문학 세계를 열심히 탐험하고 탐험을 끝낸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제국'을 '관념의 제국'이라는 말로 바꿔도 될 것 같다. 현실적으로 살아 숨쉬는 인물들의 세계가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 내면의 관념들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느낌의 관념의 제국.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 속에서는 인물들의 현실감이 약하다. 대신에 도스토예프스키 내면의 관념들이 형상화된 독특한 느낌이 있다. 아마도 그 독특함이 인물들의 매력을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 그 매력이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어쩌면 그건, 도스토예프스키식의 '문학적 생명력'이자 '문학적 살아 있음'일 것이다. 그 매력에 빠져든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세계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나 자신이 그랬으니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다 읽은 지금, 다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가 그리워진다. 광적이고, 열정적이고, 순수하고, 비열하고, 선하고, 종교적이고, 철학적이고, 정치적이고, 어둡고, 우울하고, 밝고, 극단적인 그 세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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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0-02-06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가운데 맨 처음으로 읽은 게 <까라마조프 형제들>이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세계‘를 더욱 강렬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어린 나이에(열아홉 살 때)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난 탓에, 일견 무섭기도 한 그의 작품 세계에 너무 빠져들까봐 다른 작품들을 오랫동안 펼쳐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가운데 제가 두 번째로 읽은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와의 첫 만남 이후 무려 39년 만이더군요. <죄와 벌>에 대해서는 작품을 소개하는 동영상까지 직접 만들어 올렸기 때문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작품으로 남을 듯합니다.^^
https://youtu.be/2URH19RUq3A

짜라투스트라 2020-02-07 16:56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이 책을 다 읽고 급격히 피로감이 몰려왔다. 내 몸이 피곤해서 그런가, 아니면 책의 무게감이 장난 아니라서 그런가. 아버지 살인범으로 몰린 드미뜨리에 대해, 읽으면서 엄청난 반박을 해서 그런가. 아니면 도스토예프스키식 유신론 옹호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을 머릿속으로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조금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하)권 읽을 준비를 해야겠다. (하)권 읽기를 미룰 수는 없다. 내친김에 다 읽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안나 카레니나>라는 대작이자 걸작이 또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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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스토예프스키 5대 장편 소설의 마지막 소설인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읽기 시작했다. 명성대로 깊이 있고, 무게감 있으며, 지금까지 내가 읽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들 중에서 가장 문학성이 뛰어난 느낌이다. 가히 걸작이자 대작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소설처럼 보인다. 이 소설을 가지고 말을 하려고 마음 먹으면, 너무 많은 말을 할 것 같다. 하여서 말을 줄이기로 했다. 쓰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다만 이 말 한가지는 해야겠다. 후반부에 나오는 '대심문관'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너무 인상깊었다. 종교와 계몽주의, 엘리트주의에 대해서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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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0-02-02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작들을 읽고 난 직후의 느낌을 말로 다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나, 먼 훗날을 기약한다면(?) 힘들더라도 리뷰나 페이퍼로 한번쯤 정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까라마조프 형제들>을 39년 전에 읽었는데, 그 당시 책을 읽고 난 직후의 생생했던 느낌을 제대로 기록해 놓지 않아서 아직도 이 책을 볼 때마다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한 느낌은 그저 ‘대단하다, 심오하다, 깊디깊은 소설이다‘는 정도로밖에 표현할 수 없거든요.

그나마 등장인물들에 대해 제가 느꼈던 감정들을 조금 끄적거려 놓은 게 유일한 위안거리랍니다. 장남 표도르는 순박하고 정직하고 어쩌고, 둘째 이반은 무신론자니 어쩌니, 셋째 알료샤는 청순한 박애가니 어쩌니, 사생아 스메르쟈꼬프는 비열하고 꾀가 많고 악마적이니 어쩌니, 조시마 장로는 긍정적이니 어쩌니, 라끼찐은 경박한 재줏꾼이니 어쩌니, 그루셴까는 또 어쩌니.. 정도가 제 기록의 거의 전부입니다.

대작을 읽고 나서 ‘기록‘을 안 남기고 지금도 후회 중인 책들이 정말 많은데, 가령 <전쟁과 평화>, <돈키호테>, <마의 산> 등과 같은 작품들이 그렇습니다.(그 대신,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 <데이비드 코퍼필드> 등에 대해 끙끙거리며 리뷰로 정리해 놓으니, 나중에 그 리뷰들을 볼 때마나 얼마나 뿌듯하고 기분이 좋은지 모른답니다.) 이런 작품들을 읽고 난 뒤의 생생한 느낌들을 그냥 마음 속으로만 간직한 채 ‘리뷰‘로 정리해 놓지 않으니, 세월이 가면서 자꾸만 그 작품에 대한 구체성은 희미해지고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느낌들만 남는 것 같아요.

짜라투스트라 2020-02-0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하면 좋죠.^^
 

마지막에 있는 <찌혼의 암자에서>를 읽지 않았다면, 스타브로킨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추측은 할 수 있었지만 정확한 '상'을 그릴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찌혼의 암자에서>를 통해 스타브로킨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서 그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적 투쟁 대상인 허무주의적인 무신론의 화신이자 그 자체인 인물. 도스토예프스키가 생각하는 도스토예프스키식 '악'의 화신이자 악령 같은 존재. 처음에는 스타브로킨이 소름이 끼쳤는데, 읽어나가면서 점점 우스워졌다. 이게 허무주의적인 무신론에 대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바랐던 의도인건가, 아니면 허무주의적인 무신론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속성인 것인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도스토예프스키가 허무주의적 무신론을 악에 가까운 그 무엇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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