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샨의 <사장을 죽이고 싶나>를 읽었을 때는 진실과 거짓을 넘나드는 체험을 했다. 탐정역할의 인물이 진실을 찾아 헤맬 때, 그 진실이 거짓에 기반하고 있다는 '진실'이 드러나는 경험을 하면서. 원샨의 시마다 소지상 수상작인 <역향유괴>는 그에 비해 범죄와 범죄가 아닌 행위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선사한다. 범죄면서 범죄 아닌 것 같고, 범죄 아니라고 하기엔 범죄 같은. 그 오묘하고 교묘한 범죄 행위의 기반에는 금융공학의 논리가 숨어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금융공학이 만들어낸 그 많은 파생상품들의 기반에는 도박성과 더불어 사기성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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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국 SF 작가들의 책을 종종 읽는다. 읽으면서 느낀 것인데 작가들마다 조금씩의 차이점이 느껴진다. <행성 대관람차>를 쓴 곽재식 작가의 경우는, 이 단편집에서도 드러나지만, SF인지 그냥 소설인지 잘 구분이 안가는 소설도 쓴다. SF와 '장르문학이 아닌 소설'의 경계를 헤매며 SF를 쓰는 느낌이랄까. SF의 전형적인 설정이 있는 소설의 경우에도 왠지 SF적인 설정은 있지만 SF같지 않은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SF인데 SF같지 않고, SF같지 않지만 SF인 소설. 그런 작가의 매력을 혼자서 찾아내며 앞으로도 곽재식 작가의 소설을 계속해서 읽어나갈 것 같다.

*번역책만 읽다가 한국 작가의 책을 읽으니 너무 편하고 좋다. 읽기에 이질감이 없고 술술 읽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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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기 전에는 몰랐지만,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 소설이 단순히 에로티시즘 문학의 범주에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히려 이 소설은 한 시대의 풍경을 말하고, 그 사회의 모습을 비평하면서 작가 개인의 사상을 말하는 사회 비평적인 소설에 속했다. 내가 5대 유부녀 문학(??)으로 꼽은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의 에로티시즘은 작가 자신의 사상을 전하기 위한 도구이자 문학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살면서 돈만 탐하는 동시대 사회의 허무하고 타락한 모습에 대한 대안으로서 '육체의 부활'과 '인간과 인간의 균형 잡힌 성적인 관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사상과 생각은 이 소설을 둘러싼 소동과 추문에 의해서 서서히 잊혀져 갔고, 책을 읽고 나서야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역시, 이러니 '고전'은 직접 읽는 게 좋다. 고전을 둘러싼 신화와 선입견을 깨고, 고전의 진면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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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문학을 읽으면서 소위 유부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5대 유부녀 소설(??)을 반드시 다 읽으리라는 다짐을 한적이 있다. 그게 <보봐리 부인>,<채털리 부인의 사랑>,<안나 카레니나>,<에피 브리스트>,<테스> 였는데, 그 중에서 지금까지 내가 읽은 건 <에피 브리스트> 한 작품밖에 없었다. 작년 말부터 나머지 작품들도 다 읽을 것을 다짐했고 그 다짐의 일환으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어나가게 됐다. 5대 유부녀 소설 중에 유일하게 배드엔딩이 아닌 작품인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명성대로 '문학적인 에로티시즘'의 경지를 보여준다. 자극적이면서 문학적이고, 문학적이면서도 자극적인 경지. 동시에 저자의 강렬한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도 이 소설에 가득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오직 자극을 위해서만 읽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자극을 위해서 읽기에는 이 소설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소설을 읽으면서 자극이 되는 소설이라는 말도 된다. 어쩌면 이 소설은 문학의 무거움과 대중 소설의 가벼움이라는 양극단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소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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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스타브로긴은 수수께끼에 쌓여 있다. 그러나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은 중편을 거치며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무신론과 유물론, 서구 근대 사상을 맹신하는 젊은 이들이 신이 없는 세상의 허무주의에 빠져 저지를 말도 안 되는 일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그리고 스타브로긴은 거기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러시아적인 것, 러시아주의를 강조하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떤 결말을 제시할까. 장광설과 광인들의 광기 섞인 언변을 꾹꾹 참고 읽어나가면서 내가 떠올린 건 그런 질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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