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아는 이영철 화백이 낸 첫 책과 두번째 책 "사랑이 온다"라는 책은 서점에서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다. 출판사 잘못 만나서 화백 모르게 책 찍어 내고. 화가는 얼마나 책이 팔린 줄도 모르고, 그래서 일찍 화백 스스로 책을 절판까지 시켜버렸던 책이다. 이 책을 내신 이영철 화백은 화실에 두 번이나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었다. 이 책에는 그간의 작품 활동의 소회와 화가의 삶을 고루고루 반추할 수 있는 책이다. 하여간 무슨 예술이든 간에 저작의 바탕이 깔려 있다는 것에서 나는 후한 점수를 더주게 되더라.
일전에 화실에서 뵙고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전시회를 앞두고 전시에 출품할 그림을 한창 바쁘게 그리고 계셨다. 보통 전시회 출품하려면 작품이 30-40점은 되어야 하니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해나가고 등등 혼자의 손으로 모든 것을 다 하는 작가이다.
보통 한 작품을 그리려고 해서 족히 2-3일은 걸리고 똑같은 자세로 수십만 번의 점을 찍는 것은 상당히 육체적인 부담으로 몇 시간동안 꼼짝없이 점을 찍고 있었던 거였다. 게다가 자신의 손으로 액자도 만들고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다한다. 더군다나 누구의 손을 빌어서는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분의 그림은 붓에 물감을 찍는 많아서 점묘법처럼 점이 많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부 다 점을 찍은 것이라서 시선이 오랜 시간동안 한 곳에 고정되어 작업하다보니 나중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력도 나빠진다고 했다.
그러나 저러나, 최근에 그림이야기라서 그런지 조영남 가수가 그림 대작 때문에 논란에 대해 관심이 가지게 되었다. 미술계에서는 순수 미술은 대작이 안되고 개념 미술은 대작이 가능하다며 오랜 관례라고 했다. 그런데 그 잣대는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럴지도 모른다. 이름값 하는 화가는 대필 작가 두고 어떻게 그리라는 지시만 내리고 자신의 이름 넣고 자신이 그린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을텐데 이렇게 이름 값으로도 되기나 하는 것일까.
상식적으로는 그림은 화가 본인이 직접 그렸음을 전제로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게 일반적인 그림을 보는 생각이었으니까.
사실 이게 잘못된 건지 그래도 되는 것인지 솔직히 판단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그림 하나 가지고도 평생을 분투해 온 화가는 분명 억울할 수도 있다. 조영남 이 분은 애당초 그림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가수란 타이틀로 노래를 불렀으니까. 처음부터 화가로 시작한 것도 아닐 것이고 보면, 어떻게 순수하게 그림으로 살아온 화가들과 동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한 우물만 파고 들어가도 참 버거운 일일텐데 하나를 가지고 이름 얻고 나면 다른 것도 쉽게 동급으로 인정받는 경향도 좀 이해되지는 않기도 한다.
그렇다고 잘 나가는 사람을 탓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림에 있어서 대필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생 막노동처럼 자신의 온 몸을 비벼대며 캔버스에 덧칠을 밤새도록 하고 눈이 빠질 만큼 분투하는 자신의 예술혼을 몸으로 부딪히는 분들의 그림이 더 환영받고 더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상식적으로 가지는 것이다. 대필 작가에게 한 점에 십만 원짜리 비정규직 노동을 주고 콘셉트와 아이디어는 내가 했다는 식의 예술이라는 게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 게 예술적이냐 라는 질문에 있어서 도통 모르겠다.
하기야 대기업에서 OEM 방식으로 중소기업이 애를 먹고 만들어 놓은 것들이 대부분 이런 식이 아니었던가. 물론 정당한 가격이 산정되고 합리적인 조정을 통해서라면 모르겠으나, 우리들이 익히 뉴스를 통해 접한 바로는 갑질 행사가 늘 개발자에게 불리했다. 일하는 사람 따로 있고 만들어 놓은 거 이름만 찍어 넣고 비싼 값에 팔아먹는 것이 순수를 주장하는 예술계에서도 있다는 게 이상하리 만치 좀 놀랍기도 하거니와, 그런 이유가 외국 유명 작가가 그랬다고 해서 나도 해도 된다는 것이 핑계치고는 변명도 부족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외국의 유명 작가이면 다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이다. 상식적으로는 일한 만큼 가져가고 노력한 만큼 대가가 공정하기을 바라는 거다. 한 작품당 대필료가 10만 원이었다면 대체 그는 얼마를 남겼다는 말이 되는가?
이처럼 현실은 늘 모순과 불합리가 어울려서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메아리치는 계곡같다. 공평성의 공산적인 것을 바라지도 않겠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공정성이라야 되지 않을까 한다. 그림이란 모름지기 컨셉트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그 창조성에 더하여 그림을 그리는 기능이 추가되어야 비로소 완성이 된다는 점이다. 이 두개의 축에서 협업이 되고 분업화될 때, 컨셉트 잡는 사람 따로 있고 그리는 하청받는 사람 따로이고, 이것을 합쳐서 하나의 작품화시킨다는 게 어쩐지 그리 썩 와닿지도 않는다. 그림의 기초라는 게 댓생이나 스케치처럼 화가가 되겠다고 미대에 입학하는 사람들의 커리큘럼에서 보면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도 다 이런 기초적 기능의 충실함을 위한 것일 테니까. 군대에 입대해서 처음부터 훈련과 연습하는 게 총쏘기를 시작하지는 않는다. 입대하자마자 첫 훈련이 재식훈련부터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군인이라면 절도있는 각도와 자세일 것인데, 바로 여기에서 군인 정신이 들어갈 것이며 화가의 기초가 스케치부터였을테니까. 그 다음이 붓질이라는 기능을 익히고 배우는 자세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걸 바로 본래부터 가진 소양이 기능화시켰다고 해서 가수가 도래미 음표도 못보고 노래부터 잘 부르는 경우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나중에 언론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소식이 막상 대필한 화가(송 모화백이라고 한다.)는 생계가 상당히 곤궁하다고 한다. 유명한 가수의 컨셉트를 주문대로 그려주고도 글쎄, 먹고 사는 문제가 막막한 거라면 그래도 작품 당 판매 단가가 얼마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자기 작품에 걸맞는 작업료가 지불해야 함이 마땅하다. 곰이 재주를 부리고 주인이 재주의 대가를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곰이니까 그런 것이지 사람이 무슨 곰처럼 재주만 부릴 수도 없다. 곰도 먹을 만큼 먹이를 주고 부려 먹는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말이지, 자신의 작품에 붓들고 직접 작업을 했던 화가의 품삯값을 받아도 작업한 화가의 생계가 곤란 한 것을 이용해서 저가의 품삯값을 준 것은 아닌지, 법적인 문제는 제차 하더라도, 도의적으로 일반인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아, 진짜 쫀쫀하게 보였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꼴랑 10만원이라니 믿기지도 않았다. 그의 그림이 어떤 수준으로 팔리는지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나 같으면 적어도 5;5가 제일 좋겠지만 그나마 쫀쫀한 성격을 반영하자면 6:4 나 7:3정도는 배분 했을 텐데, 그리고 아울러 자신의 작품이라고 전시를 하게 되면 직접 작업을 했던 화백과 함께 겔러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과연 잘못된 생각일런지 곰곰히 따져 봐야 한다. 내가 알기로는 무슨 그림이든지 겔러리에 걸리는 작품은 최저 금액한도가 30만원부터 출발한다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아닐 수도 있지만 대부분 겔러리를 들렀을 때 작품에 적힌 가격이 그랬다. 물론 작품 가격을 30부터 출발한다고 했지만 조영남의 그림은 30은 훨씬 넘게 팔렸을 것이고 보면 작품의 작업료가 꼴라당 그랬다고 하니 그래서 쫀쫀 치사 빤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작품을 구입했던 사람들에게 작업했던 사람은 판매한 작가가 직접 그린 작품이 아니었다고 알렸을까? 함구했을까?. 혹시 함구했다면 이는 엄연히 이익을 편취하기 위해 매수자를 속인 결과도 성립되는 것은 아니겠는가 말이다. 자신이 아이디어만 주고 작업은 다른 사람이 했다고 생각하고 그림을 구매하는 사람이 글쎄 과연 몇이나 될까 싶었기도 하다. 이 그림은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그린사람은 따로 있습니다라고 했을 때 작품은 가격은 솔찍하게 말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기도 한다.
뭐든 그렇다. 예술도 예술 이전에 인간적인 배려와 휴머니티가 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건 특히 예술에 있어서 전체 범주를 놓고 봤을 때 인문학의 넓이 속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행동에서 인간적인 부분이 다소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 작가의 예술은 그야말로 똥밭에 딩구는 자신의 가면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예술가 행세하면서, 철학자 행세하면서 마누라 쥐 패고 아이들 학대하고 독자를 속이기 까지 하고 술먹고 개구신 지기면서 사생활 저저분한 모양새라면 사람들에게 예술가 입내 철학자 입내 거들먹 거리는 가짜같은 놈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앞으로도 얼마나 있을 것인지 말이다. 신동엽 시인이 오래전부터 시에서 주장했었다. 껍데기는 꺼지라고 !~ 인문학과 휴머니즘이 빠진 예술과 철학과 사상은 모조리 그럴싸하게 보이는 껍데기가 아닌가.
그 냥반 노래는 들어 본적이 거의 없다. 가수 데뷔부터가 외국곡을 번안가요로 시작했으니 창작적이지도 못한데다가 가사만 한국말로 붙인들 그저 노래꾼이지 진정한 소리꾼은 아닐 것이다. 그림에서까지 쫀쫀하다니, 입맛 없어질 지경 같았다. 이게 편견으로 작용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별로 탐탁하지는 않았다. 처음 가수로 데뷰하면서 불렀던 노래가 탐 존스가 불렀던 "딜라일라" 라는 곡이다. 그 때는 저작권이고 뭐고 개념없던 좋은 시절이라 아무 노래나 마구 가져다 가사 붙혀 불러도 되었길래 망정이지, 요즘 같았으면 욕 한 바가지 처먹고 명함도 못내밀고 바로 버로우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자. 자꾸 관례라고 하는데 그 관례가 일반적 상식적이지 못한 거라면 관례 핑게 대지 말자. 그런 부조리한 관례는 뜯어 고쳐야지 답습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외국의 유명 작가도 관례로 했다한들 그것이 훌륭할 수는 없다. 유명하다고 다 용인할 수는 없다는 거다. 그래도 고흐가 대필 화가에게 발주넣고 작업료 지급하고 그림 그렸단 소리는 난 들어본 적이 없다. 아이디어? 잔머리? 무얼로 입증할 것인가? 증명은 자신의 손의 힘으로 하는 거 아닌가.
그의 그림이라는 수래 바퀴가 한쪽 바퀴가 빠져 나가서 너덜너덜 거리며 굴러가는 꼴이다. 비싸게 돈주고 산 작품에서 작가의 싸인만 있고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나는 그런 그림 즉시 내리고 말 것이다. 예술은 무슨 얼어죽을 ㅠㅠ
추가 : 보통, 도재식의 그림작업도 있다는 걸 안다.
스승의 가르침과 제자의 작업으로 협업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흔히 문하생, 또는 제자의 수련과 교육적으로 가르치는 차원에서
스승의 작업에 조력하는 부사수역활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영남의 사례에서는 맞지 않았다.
송화백이 조영남의 제자는 결코 아니었던 거니까....
오늘 세로 알게 된 뉴스를 접하니 점점 의혹이 확신으로 굳어가는 정황들이었다....
솔까, 송화백 그림 실력에 자신의 이름을 덧댄 거 아닌가?
물론 화투장이나 카드라는 아이디어를 주고 이 걸 그리게 했던 하청작업이 아니었던가 말이지.
그런데 그렇게 하청용 작품은 팔지 않았다고 둘러 댄다.
팔고 안팔고가 문제가 아니라, 왜 작업자는 누구라고 애당초 부터 밝히지 않았냐는 거다.
아무래도 송화백은 "조영남의 숨겨진 남자"가 아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