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회사에 근무하다 보니 협력업체 대표나 오너분들이 회사로 방문을 자주 한다.
계약이나 견적할 때도 있고 결제 자금 때문에 오기도 하는등 여러가지로 오고 갈 일이 많다.
오늘도 오랜만에 온 방문한 어느 대표가 아침에 다녀갔다.
현장 소장 혹은 사장하고 이야기 하는 게 보통인데 업무소관이 아닌 경우에는 나와 보통은 일상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나를 보자 대뜸,
"아따, 유레카 부장, 좀 섭섭하네."
"네, 아 결제 좀 늦어진게 섭섭한 건 죄송합니다.ㅎㅎㅎ요즘 수금이 어찌나 어렵던지요"
"결제는 너희 사장이 미안할 부분이지 부장이 미안할 건 없꼬. 그러데 왜 나안테 책 냈다는 통보가 없었노. 이제 알았다. 약간 섭섭하더만"
"우잉? 회사와 조금이라도 관련 된 분들에겐 일절 알리지 않았는데요. 어케 알았어요?"
" 다 아는 수가 있단다. 저네 처남회사와 내가 거래 하잖아. 유레카 부장 처남이 이야기 하더라."
그렇게 퍼질 줄은 몰랐다.(처남은 건설업체 대표이다.)
"처남과 거래 때문에 이런 저런 이야기 나오다가 부장이야기가 나왔길래 책이야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알게 된거야. 그런데 왜 밝히지 않았노.나도 책 읽기 무척 좋아하는데 몰랐지? 이 험악한 노가다판에서 책을 낸다는 게 기적같아서 말이지. 상당히 놀랬다."
"아 그랬어요? 그럼 남아 있는 재고 책이 몇권 있으니 드릴까요?"
" 야, 무슨 소리야. 됐고 당연히 주문해서 사서 봐야지. 안그래?"
"
" 돈 벌자고 낸 게 아니라서요."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내 주변에 책 낸 사람이 유부장이 유일한데 이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잖아?"
"아놔, 정말 감사합니다.ㅎㅎㅎ 그럼 주문 하시구요. 혹시 출판사 재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주문 어려우면 그때 몇 권드릴테니 주변 분들과 나눠 보셔도 됩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나는 회사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분들에게는 전혀 알라지 않았다. 무슨 출판기념회로 정치자금을 끌어 모으는 정치가도 아니고, 협력업체 사장들의 거래성 찬조를 받을 만큼 갑질하는 게 제일 못마땅하게 생각한 놈인데 그런 뒷꿍꿍이 짓을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게다가 누구의 관혼상제에 거래관계나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통보하고 암묵적인 거래의 주고 받는 카르텔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순수한 협찬도 아닐 것이며 선량한 부조의 개념도 없다.
하기사 출판기념회 랍시고 리셉션 장 대여하고 초청장 남발해가면서 화환도 수십개나 근사하게 펼쳐 놓은 그 허례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요란을 떨었더라면 얼마나 책을 내는 도움도 되고 이미 내놓은 책의 비용 본전치기, 나아가 몇 푼이라도 손에 쥘 수 있었을 것이다. 온통 소문 내고 광고하고, 그래서 알리려고 발버둥치는 것에서 왜 그렇게 부끄럽게 여겨 지던 것인지, 진정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노영민 전 국회의원이 낸 책이다. 작년인가 시집을 출판해서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출판사 명의로 된 카드 단말기 설치해 놓고 책을 팔았단다. 무려 국회의원이 낸 책이다. 상임위와 연관된 이익 단체에서는 눈치를 봐야 하는 관련 당사자들일텐데 책은 보지도 않고 눈치 백단으로 사게 된다. 그럼,그렇치? 알아서 기어야 하고 알아서 모셔야 되는 협조문같 거다. 굳이 공문이 아니더라도, 세상사에 닯아 빠진 처세술에서 그만한 눈치를 못읽을 사람은 없는 것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알아서 기게 되듯이 알아서 눈치 끍고 사야 한다는 거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무슨 기관의 힘있는 조직의 말단이라도 이해관계에 따라 눈치는 보게 되는 현상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무사히 지나 갈 수 있을 것인가 싶었던 까닭이다.
책이 암묵적 거래의 매게가 되고 이러므로써 차후에 대한 보장받을 수 있는 거래의 우위에 대하여 눈도장의 성격은 엄밀한 기준에서는 일종의 담합과도 같다. 책이 보험용은 결코 아니며 책이 거래의 수단이 되는 매게체로 전락할 때 책의 내용은 송두리째 자기 부정 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순수한 의미와 지식의 내용을 책에서 이야기 한들, 그것은 이미 타락한 것이며 일종의 사기 행각 밖에 되지 않는다.
책으로 돈버는 시대가 아님은 누구나 느낀다. 출판계는 오래전부터 비명횡사한 상태나 마찬가지 일 것이고 그나마 유명 작가, 내지 인지도 높은 작가들의 터전인 셈이다. 더구나 권력을 가진 사람의 책이란 모름지기 알아서 기어야 할 만큼 눈치밥으로 나오는 사회상은 아니었던가.
그래서 나는 이해관계가 조금이라도 있다 싶은 거래처 직원이나 대표들에게는 일절 알리지 않았고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노가다 판에서 있어 보면, 책의 세상은 너무나도 거리가 먼, 딴 나라 이야기이자 저 세상 사람들 이야기처럼 공허하게 치부되는 곳이니 알려봤자 괜히 갑질이나 하지 않을까 싶었던 까닭이었다.
누군 그럴지도 모르겠다. 니 잘났다.니가 무슨 돈이 많아서 사진찍고 글 쓰며 놀고 자빠졌냐 라고 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순수함은 잃어 버리고 싶지 않아 작은 자존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설사, 나만의 순수함이 오도될 수도 있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나에게 조금이나마 떳떳하고 싶은 자부심을 버리고 싶지 않다. 그래야 내가 죽을 때 나에게 해줄 말은 그래도 순수하고 더럽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긍지가 아닐까 한다.
언제 다시 또 책을 내고 싶은 충동이 없지는 않다. 또 책을 낼려면 개처럼 돈을 벌어야 한다. 누가 내달라 할 수가 없다. 지방의 출판사는 영세하고 가난하다. 책 무지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 출판사도 베스트셀러를 내 본 출판사나 할 가능성이 많고 지방의 작은 출판사는 마케팅 자체가 안되는 초 영세한 곳에서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 책 내달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하물며 시집보다도 인기 없는 사진 책이란 두말하면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겠는가. 사진에 써 놓은 글은 무척 많은데 언제 또 세상에 책으로 내놓을 수가 있겠나. 아득할 뿐이다.